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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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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목숨을 건 맞섬16


BY 한이안 2015-11-26

눈꺼풀을 치켜든다. 밖이 훤하다. 어둠은 물러가고 없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이내 애니가 다가온다. 컴퓨터로 가서 손으로 매만진다. 마음이 가볍지가 않다. 하루가 그의 몸속으로 스며든다.

아침을 물리고 다들 뫼의 컴퓨터 앞으로 몰려든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뫼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뫼가 아무리 괜찮을 거라고 안심을 시켜도 소용이 없다.

뫼가 전원을 넣자 화면이 살아난다.

전원을 넣었어. 다들 모여 있어. 뭘 하려는 거지?”

소훈이 애니에게 넌지시 묻는다.

가만 있어봐!”

애니가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애니민의 움직임을 잡아내려 안간힘을 쓴다.

우리 움직임을 읽고 있어. 지금 우리 얘기 다 듣고 있는 거지?”

곧 차단할 수 있어.”

방화벽은?”

프로그램을 죄 동원해서 뚫고 있어. 한데 쉽지가 않아. 방화벽이 번번이 걸러내고 있어. 여자야. 그 놈의 망할 여자가 우리 계획을 이렇게 꼬이게 만들었어.”

그걸 지금 탓해봐야 뭐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자고 덤비는 꼴이지. 그러니 누가 여자까지 끌어들이랬어? 작품만 훔치면 됐을 걸.”

소훈이 볼멘소리를 한다. 돈줄이 끊긴 것만 생각하면 입맛이 씁쓸하다.

모르는 소리 작작해. 여자 아니었으면 꿈도 못 꿨어. 여자가 때맞춰 상상해 냈기에 가능했어. 우린 애니민들을 만들어냈을 뿐이야. 생명을 불어넣은 건 여자야. 여자의 작품이 바탕이 됐어. 한데 문제는 여잔 작품을 끝낸 게 아니었다는 거야. 쓰고 있는 중이었어. 하지만 그게 아니었으면 우린 지금도 작품 찾는 일에 매달리고 있을지 몰라. 그럼, ? 아직 꿈도 못 꿔! 이 만큼 걸맞은 작품이 없거든.”

애니가 답답하여 쓴 소리를 한다.

그걸 왜 지금까지 숨겼는데?”

말해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이균도 몰라?”
거기까진.”

결국 니 말은 애니민을 만들어내도 적절한 작품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뜻이네? 그럼 우리가 운이 좋았다는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어. 그냥 애니메이션이 아니잖아. 살아있는 생명체야. 우리 욕구대로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엄연한 생명체라고. 그건, 학습을 통해서 성장한다는 뜻이야. 여자의 작품엔 그게 들어 있었어.”

그래서 그렇게 매달렸던 거였어?”

소훈의 목소리가 좀 누그러져 있다. 애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늙지 않게도 만들 수 있어?”

애니가 소훈을 낯설게 쳐다본다. 뜬금없이 툭 던지는 걸로 보아 이균과 말이 오간 듯하다. 만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말까지 주고받고 있다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놈들을 손아귀에 넣기만 하면 안 될 것도 없어.”
한 번 볼래? 이균이 보내온 자료야. 내용을 보니까 구미가 당겨.”

소훈이 애니에게 자료를 건넨다.

뭔데?”

인간의 노화를 담당하는 유전자. 그걸 조작하면 늙지 않을 수 있대. 한 번 써보면 어때?”

애니민들한테?”

당연하지. 우릴 실험 대상으로 할 순 없잖아.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애니민이 딱이야. 피터팬처럼 늙지 않는 애니민이라면 확실한 거 아냐?”

가능하기만 하다면야. 이균한테 전화해서 한 번 더 알아봐! 내용이 확실한 건지 아닌지. 동물실험을 해봤는지. 그놈 속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말이지. 꼼수가 있어서 들이대는 걸지도 몰라.”

그거야 어렵지 않지. 놈을 녹이는 재주는 내게 있잖아.”

말소리가 거기서 뚝 끊긴다. 뫼가 컴퓨터를 끈다.

무슨 꿍꿍이지? 우리가 듣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왜 속에 담아둘 말을 다 드러낸 거지?”

뫼는 애니의 속셈이 뭔지 알 수가 없다. 꿍꿍이가 없다면 말을 가려서 하는 게 정상이다. 애니에겐 그게 없었다. 일부러 드러내고 있었다. 듣고 있다는 걸 빤히 알면서 말이다. 그게 영 이상하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들으라는 건데? 계획까지도 다 까발린 거잖아.”

아미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진다.

노화 담당 유전자도 건드릴 수 있다는 거잖아. 우리를 손에 넣게 되면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나 다를 바가 없었어.”

이든도 아미를 닮아간다. 찝찝함을 털어낼 수가 없다.

놈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겠지?”

누리가 뫼를 본다. 눈빛에 간절함이 묻어 있다.

, 말해봐!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

속이 쓰리다. 마음을 쓰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뫼가 끊어내지 못하고 맴도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그럼에도 홀로 튕겨져 나가는 건 죽어도 싫었다. 그래서 훼방하지 않는 걸로 뫼를 거들었을 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데 애니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다. 뫼가 옳았다. 심장이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쑤시고 아프다. 통증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껴본다.

그렇게 만들어야지.”
뫼는 누리의 눈빛을 읽어낸다. 머뭇거릴 수가 없다.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그렇다고 누리 때문만은 아니다. 누리보다도 자신이 더 절실하다. 애니의 손아귀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애니민이라고 깔볼지언정 속은 고스란히 인간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인간답게 사는 게 마땅하다.

아줌마를 만나 봐야겠어.”

뫼가 컴퓨터의 전원을 넣는다.

우린 가줄까?”

괜찮아. 여기 있어도, 다른 볼 일을 봐도 난 상관없어.”

이든, 사냥이나 다녀오자! 세 끼를 다 열매로 채울 순 없잖아. 넘의 살을 먹어줘야 힘이 나지.”

누리가 이든을 꼬신다. 이든은 궁시렁거리지 않고 누리를 따라 나선다. 있어 봐야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토끼를 잡아와 든든하게 먹이는 게 도와주는 거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