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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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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목숨을 건 맞섬15


BY 한이안 2015-11-23

셋은 아무일 없었던 듯 히히덕거리며 숲으로 간다. 뫼는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애니를 생각한다. 조물주라고 으스대며 피조물들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그건 보이는 것이 그럴 뿐이다. 속은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안다. 놓친 후유증에 시달리며 애가 달아 있을 게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을 밀어붙인다. 그의 자신감도 소름끼치는 웃음도 포장용이다. 그의 아바타도 가상세계를 누비고 있는 허깨비일 뿐이다. 놈은 현실세계에 존재할 뿐이다. 가상세계에는 한 발짝도 들여놓을 수가 없다. 생각을 다지고 다진다.

애니는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내려친다. 벌써 사흘째다. 뫼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가 없다. 컴퓨터도 모두 꺼버려 말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여전히 자신감은 있지만 겉돌고 있다. 서버도 보강하고 장비들도 새로 들였다. 용량도 최대한으로 키웠다. 망을 뚫고 들어가 자료를 꺼내오기만 하면 만 년 구역의 컴퓨터를 손에 넣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데 뫼가 가로막고 있다. 컴퓨터가 망에 접속되는 걸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접속을 해보려고 끊임없이 시도해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우리가 놈을 너무 얕봤어. 아님 니가 뫼에게 너무 큰 권한을 부여했든가. 그렇지 않고야 이러겠어? 니가 뫼에게 매달리는 게 영 맘에 걸려.”

소훈이 다가와 다시 상처를 쑤셔댄다. 애니는 못 들은 척 작업에 열을 올린다.

애니민을 새로 만들어 보내는 것은 어때?”

어디에?”

만 년의 구역이지 어딘 어디야?”

애니가 고개를 쌀쌀 내두른다. 소훈의 제안에 입맛이 당기긴 한다. 하지만 뫼가 있어서 것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뫼를 뛰어넘을 수 있는 애니민이어야 한다. 뫼를 뛰어넘을 수 있는 애니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 생각을 주워 들다가도 번번이 내려놓게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소훈에게 그걸 다 까발릴 수도 없다. 그렇잖아도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소훈이다. 안 봐도 훤하다.

?”

뫼가 너무 아까워.”

누가 버리래? 새로운 애니민을 이용해 휘어잡자는 거지.”

누가 니 말을 몰라? 휘어 잡힐 거 같으니까 그렇지.’

대놓고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고함을 내지른다.

이균은 내가 설득해 볼게.”

소용없어. 이미 자신들의 운명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놈들이야. 그 운명을 걷어내겠다는 거 아냐? 그러겠다고 들고 일어선 놈들이야. 새로운 애니민은 그걸 받아들일 거 같아? 놈들에게 설득당해서 우리에게 칼을 겨눌걸? 놈을 손아귀에 넣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어. 새로운 애니민은 그 다음이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달리 방법이 없어.”

그럼 만 년 구역은 내팽개치고 새로운 구역을 만들어 그곳에 풀어놓으면 되잖아.”

소훈이 짜증을 낸다.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게 눈에 보인다. 한데 애니는 태평하다. 뫼에게 붙들려 빠져나올 생각을 못한다. 애니민들을 새로 만들어 가상세계에 풀어놓으면 일은 쉽게 해결될 거 같다. 경험도 있고 노하우도 있다. 처음처럼 오랜 시일이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한데 꽁무니를 뺀다. 이균 역시 주저주저한다. 잔뜩 웅크린 채 땅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둘 다 꿍꿍이가 있는 것만 같다. 서로 다른 꿍꿍이. 한데 그게 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제작에 직접 참여한 게 없으니 속내도 알 수가 없다.

얼토당토않은 소리. 뫼를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귀찮은 생각에 확 떼어내고 싶은 생각도 다가온다. 하지만 혼자 남겨지는 건 싫다. 속이 답답하고 거북하다.

귀를 막는다. 소훈이 혼자 지껄이게 내버려둔다. 가상세계를 기웃거리다 빠져나온다. 만 년의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애니는 애니민들을 생각한다.

불꽃에 토끼 두 마리가 지글거리며 구워지고 있다. 다들 눈길이 토끼구이에 머물러 있다. 군침을 삼키며 먹기 좋게 구워지기를 기다린다. 토기 몸뚱이가 갈색빛을 입는다. 누리가 나뭇가지로 쿡쿡 찌른다.

다 익었어. 먹자!”

뫼가 다리를 뜯어내려 팔을 뻗는다.

됐어. 그건 내 일이야. 이것마저 니가 하면, 난 그냥 곁다리잖아. 내가 떼어줄게.”

뫼가 얼른 손을 거둔다. 누리가 다리를 떼어내 뫼에게 먼저 건넨다. 나머지도 떼어내 돌아가며 하나씩 건네준다.

이런 일이라도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야.”

다들 숨을 죽이고 누리의 말을 듣는다. 웃음소리도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도 없다. 애니가 듣기라도 하는 듯 조용조용 말이 오간다. 나중엔 고기를 씹어서 삼키는 소리만이 끊이지 않고 들린다.

생리적인 욕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어. 다행이야.”

그게 왜?”

먹고 나니까 조여 들었던 몸이 쫙 펴지는 거 같아서. 놈의 아바타를 따돌리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 같고. 뱃속이 든든하니까 겁도 조금은 밀려나. 아무리 속상해도 끼니를 거르면 안 되겠어.”

그래. 먹을 건 내가 책임진다잖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어?”

모두의 얼굴에 희미하나마 웃음기가 돈다.

내일부턴 다시 시도해볼 거야. 가상세계로 나가보겠어.”

가상세계로 나가다니?”
마우스를 눌러 열어보기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곳을 나가서 다른 곳도 누비고 다닐 수가 있어.”

그래봤던 거야?”

. 놈의 아바타가 따라붙는 바람에 겁이 나서 얼른 돌아오긴 했지만, 나가보긴 했어. 이젠 달아나거나 피하지 않겠어.”

세상에. 놈이 그걸 노리고 있는 거 아냐?”
맞아. 놈의 꿍꿍이가 그거였어.”
만약을 위해 그렇게 한 건가?”
아니? 그건 아냐. 지금은 그런 꼴이 돼버렸지만.”

그럼?”
이것까지도 우리의 삶으로 설정을 했어. 가상세계를 누비고 다니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팔아 돈을 벌려 했던 거야. 그래서 내 몸에 상상할 수 있는 건 모두 심었어. 가능성을 확인해보려고. 한데 일이 꼬인 거야.”

그건 고소하네.”

누리가 입맛을 쩝쩝 다신다. 걱정은 되지만 움츠러들지는 않는다.

오늘은 일찍 자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놈의 아바타에게 당할 테니까.”

뫼는 컴퓨터를 켜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자고 자신을 다독인다. 침대로 가서 몸을 눕힌다. 애니를 생각하다 잠속으로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