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는 가상세계로 나가기 전에 먼저 이선의 대화방으로 들어간다. 마음이 뒤숭숭니 무거운 걸 걷어내고 싶다. 이선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달래줄 것도 같다.
이선의 컴퓨터는 켜져 있다. 하지만 두드려도 그녀는 듣지 못한다.
이선은 인터넷을 차단한 채 글을 쓰고 있다. 만 년의 사람이 아니다. 생명을 가진 애니민들이 그녀의 상상을 토대로 살아내는 건 내키지 않는다. 약속대로 그녀는 그 작품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렇다고 글쓰기를 아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상상이란 끝이 없다. 퍼낸다고 해서 줄어드는 게 아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잠시 글에서 생각을 떼어낸다. 무선인터넷의 전원을 넣고 대화방으로 들어간다. 뫼가 들어와서 얼쩡거리고 있다가 빠져나가려고 한다.
“가려고?”
이선이 얼른 뫼를 붙잡는다. 그녀의 부름에 뫼가 돌아선다. 얼굴이 어둡다.
“왜? 얼굴이 왜 그래?”
이선이 놀란 목소리를 한다.
“그냥, 답답해서요.”
“뭔데?”
이선이 안쓰러움을 드러낸다. 받아줄 것처럼 다가온다. 뫼는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도움을 받을까 하여 들어왔다. 한데 막상 들어오고 나서 이선을 마주하자 괜히 미안해진다. 걱정이 밀려온다. 놈들이 이선의 컴퓨터를 들여다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선이 아무리 철통같이 놈들을 막고 있다 해도 놈들은 포기하지 않을 위인들이다.
“왜? 겁이 나?”
이선이 지레 짐작으로 묻는다. “예.”
뫼가 얼른 그렇다고 말한다. 발뺌을 할 수가 없다. 이선의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뭐가?” “놈들에게 미끼를 던지고 있어요. 놈들이 그걸 눈치 챘고요. 인터넷에 들어가기만 하면 따라붙고 있어요. 놈의 아바타가 입구까지 따라오기도 했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어요.”
“놈의 아바타라고? 한 두 개가 아닐 텐데?”
“여러 개일 거란 말인가요?”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많아. 혹시 뭐 얻어낸 건 없어?”
“놈들은 우릴 되찾을 생각밖에 없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고 있어요. 얻은 거라면 그게 다예요. 오로지 거기에만 매달리고 있거든요.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을 거 같아요.”
“내 생각에도 그래. 지금 놈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없어.”
“예.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고리를 완전히 잘라내기 전까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요. 언제 놈들의 손아귀에 들어갈지 모르잖아요.”
뫼의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이선은 그걸 놓치지 않고 알아챈다. 마음이 무겁다. 미안하기도 하다. 꼭 자신 탓인 것만 같다.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마음이라도 다독거려 주고 싶다.
“겁나지 않아?”
“겁이 나요. 것도 많이. 한데도 멈출 수가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린 놈들에게 잡혀 놈들의 뜻대로 살든가, 아니면 죽을 때까지 벌벌 떨면서 살든가 해야 하거든요.”
“그래. 니 말이 맞아. 나라도 그럴 거야. 그래도 놈들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건 조심해. 잡히면 끝이야. 돈에 눈이 먼 놈들이야. 어떤 짓을 할지 몰라.”
“알아요. 우릴 돈줄 내지 돈뭉치로 생각하더라고요. 한데 돈에 눈이 멀면 왜 그렇게 무서운 거죠.”
“왜?”
이선이 당황한다. 사실대로 말을 하자니 애니민들이 가엾다. 하여 망설인다. 둘러댈 말을 찾는다.
“예. 왜 그렇게 되는지 궁금해요.”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서요.”
이선이 망설이는 듯하자 뫼가 재촉한다.
“그래.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안다고 해도 치명적인 독이 될 거 같진 않아. 마음은 개운하지 않을 거야. 너무 마음 쓰지 않길 바라.” 이선이 뜸을 들인다.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마음의 준비를 시킨다.
“여기에서 돈은 곧 힘으로 통해. 사람들은 힘이 있으면 다 제 맘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아주 틀린 것도 아니야.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볼 수 있거든. 문제는, 돈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야. 돈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인간의 도리를 지켜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 앞에서 아주 눈이 멀어 버리는 사람도 있거든. 갖고 싶은 욕구가 인간의 도리를 앞지르면 그래. 도리 같은 것은 아주 가볍게 내던져 버리게 되지. 그럼 욕구만 남게 돼. 그게 그 사람의 전부가 되는 건 순간이지. 돈이 전부가 되었으니 돈 외에 다른 건 보이지도 않겠지.”
“사람조차도 돈으로 본단 말인가요?”
가슴이 먹먹하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돈으로 생각하는 건 백 번 생각해도 안 될 일이다. 사람끼리 함께 더불어 살라고 혼자가 아닌 여럿을 세상에 내놓은 거 아닌가? 가슴 한복판이 아리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 놈들이 니들을 놓고 돈줄, 돈뭉치라 하든?”
“예. 우리를 놓치는 바람에 돈줄이 끊겼다 하더라고요. 한 놈은 나만 찾아내면 돈뭉치가 줄에 매달려 들어올 거라 했어요.” “널 찾아내면 그렇다고?”
“아참. 놈이 유독 나한테 매달려요. 이유가 있긴 한 모양인데 자세히 말하지 않아서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너한테 매달린다고?”
“예. 내가 있어야 한데요. 그래야 새로운 사건이 끊임없이 만들어진대요. 짐작은 가지만 확실한 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선은 한숨을 내쉰다. 뫼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다. 주민번호도 아이핀도 저장되어 있다.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걸 그도 안다. 꼼꼼히 따져 물어 밝혀내고 싶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어차피 뫼가 하나하나 알아갈 일이다. 미리 알아서 그 아픔을 좀 더 일찍 겪어내게 하고 싶지가 않다.
“놈이 그렇게 말했다는 거지?”
“예. 들이랑 같이 들었어요. 뭐 짚이는 거라도 있나요?”
“들이랑 둘이 들었다고? 지금도 옆에 있어? 다른 애들은?”
이선은 그제야 들 생각이 난다. 다른 애니민들도 떠오른다.
“지금은 다들 제 집으로 가고 들만 있어요.”
“그래? 들은 괜찮아?”
“예. 저보다 더 씩씩해요. 뭐 짚이는 거라도 있느냐고 물었는데요?”
이선이 엉뚱한 걸 물고 늘어지자 뫼가 이선에게 좀 전에 물었던 것을 일깨운다.
“그랬지 참. 그게, 나도 어디까지인지는 놈들의 속을 잘 모르겠지만, 넌 그냥 애니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 정도로 얼버무린다. 자세한 건 말을 하고 싶어도 아는 게 없다. 상상을 해 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주민번호도 제게만 줬더라고요. 다른 애들은 그게 없어요. 그래서 가입을 하려고 해도 안 돼요. 뿐만 아녜요. 제 비밀번호와 아이디를 치고 들어가려 해도 들어갈 수가 없어요. 저만 들어갈 수 있어요. 생체인식식별정보 시스템도 제 몸 안에만 심어져 있어요.”
“놈들이 거기까지 니 몸에 손을 댔다고? 그건 빙산의 일각일 거야. 그게 서서히 드러나게 돼 있는 거 같아. 그 끝이 어디인지는 나도 감을 잡을 수가 없지만 생각은 그래. 그 정도 가지고 매달릴 놈들이 아니야. 그러니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너무 겁을 내진 마! 이성을 잃지도 말고. 차분하게 되돌아보고 거기서 길을 찾아보는 것도 잊지 마! 말과 행동은 생각에서 비롯돼.”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킨다. 그래도 겁을 다 물릴 수는 없다. 하지만 주저앉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일어날 힘이 있어야 한다. 지금으로선 마음의 준비가 바로 그거라 생각한다.
“예.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굳건히 할게요. 차분하게 돌아보는 것도 잊지 않을 게요.”
뫼가 이선의 말뜻을 알아채고 머뭇거림 없이 말한다. 속으로는 그 말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진다. 이선도 그 마음을 읽어낸다.
“나도 찾아볼게. 어딘가 길이 있을 거야. 그 길을 찾도록 나도 도울게.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다 아줌마까지 잘못 되면 어쩌게요.”
뫼가 펄쩍 뛴다. 이선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놈들은 나도 찾고 있을 거야. 내게 이를 갈고 있을 테니까.”
“그건 아줌마 말이 맞아요. 하지만 아줌마까지 나서면 아줌마도 저희도 모두 다 위험할 수 있어요. 그럼 저희가 헤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게 돼요. 그냥 있다가 우리가 위험하면 그때 도와줘요. 위험에 빠지면 신호를 보낼게요.”
“그게 좋겠다. 인터폰을 연결해 둘 테니 그걸 눌러! 아니면 카페에 남기던지. 인터폰이 더 안전하겠다. 집에 있을 땐 언제든지 들을 수 있으니까.”
이선도 뫼의 말에 일리가 있다 생각한다. 그래 직접 나서는 건 미뤄두고 그냥 지켜보기로 한다.
뫼는 더 머물고 싶은 걸 밀어내고 빠져나온다. 응석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비집고 들어온다. 거기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이선은 서둘러 빠져나가는 뫼가 마음에 걸린다. 한참을 멍하니 화면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