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노인 기준 연령을 75세로 상향 조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128

2부 : 목숨을 건 맞섬12


BY 한이안 2015-11-13

하지만 뫼는 틈을 주지 않는다. 방화벽 뒤로 숨어버린다. 날렵하다. 그의 추적을 알고 있는 눈치다. 거의 잡아 놓고 놓친 게 화가 난다.

뫼는 아슬아슬 애니를 따돌린다. 붙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끼어들기는 했지만 어렵지 않게 밀어낸다. 미끼가 되기로 한 이상 두려움 따윈 던져버려야 한다.

? 놈이라도 만났어?”

뫼의 다급한 손놀림에 다들 놀라 바라본다. 숨도 참고 있었는지 헉헉 숨을 몰아쉰다.

애니 놈이야. 놈이 입구까지 따라왔어.”

놈이 어떻게?”

홀로그램으로 꾸며진 놈의 아바타가.”

아바타가 뭔데?”가상세계에 머물고 있는 놈의 분신. 진짜는 아니야.”

그럼 별거 아니잖아.”그게 아니야. 놈을 대신해 가상세계를 누비고 다닐 수 있어. 놈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인다고.”놈이 움직이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는 거네?”. 그게 무서운 거야. 움직이면서 정보를 끊임없이 놈에게 보내주거든. 하마터면 놈의 아바타에게 길을 내줄 뻔 했어. 그럼 놈의 손아귀에 우리 컴퓨터가 들어가는 건 순식간이야.”

스피커에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제기랄, 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주먹으로 쾅쾅 내려치는 소리도 들린다.

놈이야. 놓친 게 분한 모양이야. 아바타에게 분풀이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들은 놈의 아바타가 걱정된다.

걱정 마! 아바타에게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어. 그에겐 생명이 없거든. 어찌 한다고 해도 느끼지도 못해. 화가 나도 분풀이를 할 수 없는 이유야. 기껏 해봐야 아바타를 삭제하는 게 다야. 그럼 놈은 손해를 입게 돼. 가상세계로 직접 들어올 수 없으니 아바타가 없으면 안 되거든. 그러니 삭제도 못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겠네? 삭제도 못하고 속만 부글부글 끓고 있을 거 아냐? 이를 갈아대며 머리를 굴리겠네.”

그럴 거야. 꼼꼼하게 대비를 해야 하는 이유야. 놈의 아바타가 언제 따라붙을지 모르니까.”

대비는 내게 맡겨. 놈의 아바탄지 뭔지가 다시 나타나면 내가 올가미로 오지게 낚아줄 테니까. 올가미를 입구에 설치하면 될까? 컴퓨터를 손에 넣겠다는 생각에 앞뒤 없이 밀고 들어올 때 확 낚아채게 말이야. 놈들은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걸 모르겠지? 뫼 니가 도와줄 거지? 낚아채는 건 식은 죽 먹기지만 설치는 니가 해! 너나 할 수 있잖아. 우린 곁다리잖아.”

누리가 혼자 신이 나서 올가미 타령을 한다. 정말 입구에 올가미를 칠 기세로 뫼에게 도움을 청한다. 뫼는 씩 웃는다.

미련한 놈들. 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몰라도 한참 몰라.”

누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모르는 게 아니라 지들이 나는 놈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버들이 누리의 말을 자기 식으로 바로 잡는다.

맞아. 한 번 당해봐야 우리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겠지? 반드시 올가미에 걸려들게 하고야 말겠어. 올가미 안에서 바동거리는 놈들을 봐야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 거 같아.”

마치 그동안 잠을 설치기라도 한 사람처럼 말한다. 들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는다. 누리가 너무 진지해서 차마 웃을 수가 없다.

놈들은 우리가 그쪽에서 하는 말을 모두 듣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몰라. , 될 수 있으면 넌 이 앞에서 떠나지 않는 게 좋겠어. 놈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길이 보일지 몰라. 놈이 너에게 집착하는 진짜 이유를 밝혀낼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아직은 놈의 꿍꿍이가 뭔지 모르겠어.”

들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손놀림을 잡아내며 말한다. 그녀는 소리 나는 쪽으로 귀를 가져간다.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있어. 마우스를 끊임없이 눌러대. 가상세계를 들쑤시고 있나봐?”

들이 소리를 낮춰 말한다.

혹시 우리 말소리가 그쪽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겠지?”

들의 말에 아미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그럴 리는 없어. 놈들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걸 보면 우리 말소리가 넘어가지 않는 것은 틀림없어. 그건 마음을 놓아도 돼. 하지만 앞으로도 쭉 그럴 거라고는 말할 수 없어. 언젠가는 놈들도 알아챌 거야. 그쪽으론 아주 빠삭한 놈들이니까.”

들이 아미의 걱정을 다독인다. 하지만 마음을 아주 놓지는 못한다. 애니의, 넘쳐나던 자신감을 지워낼 수가 없다. 말속에서 풍겨오던 꿍꿍이도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게 영 걸린다.

한데 왜 다른 한쪽은 조용한 거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라도 들려와야 하지 않아? 하다못해 발걸음 소리나 손놀림이라도.”

아미가 이균 쪽으로 걱정을 옮겨간다. 아미 말대로 이균이 너무도 잠잠하다. 숨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다.

숨죽이고 찾고 있겠지. 아줌마가 끼어들어줘서 그 놈도 우릴 놓쳤어. 한데 아미 니 말대로 너무 조용해. 우릴 찾아내려 몸이 달아있을 텐데 말이야. 그 놈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같아.”

그러니까. 그 놈의 꿍꿍이가 뭐냐는 거야? 답답해 죽겠어.”

아미가 투덜거린다. 시간이 갈수록 겁은 몰려오는데 애니 쪽도 이균 쪽도 속셈을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애니는 자신감이 철철 넘쳐난다.

간이 오그라드는 거 같아. 놈이 내게 집착하는 게 마음에 걸려. 양쪽에서 놈들이 한꺼번에 덤비지는 않겠지? 새로운······.”

말을 하려다 만다. 오싹 한기가 돈다. 애니가 했던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자신이 없다. 자국이 되어 몸에 또렷이 박혀있는데도 빼낼 수가 없다.

들도 대답을 못한 채 시선만 떨군다. 못할 거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뫼가 꺼내다 만 애니의 말을 떠올린다. 벽이 너무 두껍다. 머리에선 엉뚱한 생각이 맴돈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단속을 하는 게 먼저다. 뫼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걱정 마!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야.”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물러서지 않는 게 대수가 아니야. 니가 무사해야지. 아줌마 말대로 가상세계에 흔적을 남기는 일은 그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너무 위험해.”

이든이 무겁게 입을 뗀다. 져보지 않아서 뫼가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짐을 지고 끙끙대는 뫼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편치가 않다. 마음이 졸아든다. 뫼가 헛손질을 해댈 때는 조마조마하여 죽는 줄 알았다. 애니의 손아귀에 잡히는 건 아닌가 하여 간도 콩알만 해졌다. 온 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놈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맞아. 포기할 놈이 아니야. 우리가 숨죽인다고 멈춰지는 게 아니야. 놈이 멈춰야 해. 한데 놈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아. 모든 걸 제쳐놓고 우릴 찾아 헤매고 있어.”

생각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다. 무너진다면 일으켜 세워야 한다. 뫼가 이를 앙다문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분위기가 무겁다.

놈이 그래? 우릴 기어이 찾아내겠다고? 그래서 손아귀에 쥐겠다고?”

.”

대답에 힘이 없다. 이든이 들을 멀건이 쳐다본다. 들이 이든의 시선을 피한다. 뫼도 딴 데로 눈길을 돌린다. 애니의 말을 미주알고주알 다 들려 줄 수는 없다. 이든의 시선이 꺾인다. 바짝 들이대면 꺼내겠지 했는데 둘 다 피해버린다.

그래도 난 니가 무사하길 바래. 나 간다.”

이든이 말을 하고 돌아선다. 그의 말에 뫼의 눈시울이 젖어든다. 가슴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먹먹하다. 온기도 느껴진다. 이든이 지핀 불기운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간다.

그럴 거야.”

내가 멀쩡해야 니들이 멀쩡할 수가 있는데, 내가 어떻게? 꼭 무사할 거야. .’ 뫼는 다시 이를 앙다문다. 애니가 아무리 벼른다 해도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다진다.

니들도 그만 가 봐! 난 괜찮으니까.”

너한테만 미루는 거 같아서 발이 떨어지지 않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면서 말이야.” 버들이 울상을 한다.

내가 짊어져야 할 운명이야. 놈들이 내게 짊어지게 한 운명이고. 꽁무니 뺀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냐. 애니 놈이 그렇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 그럴 바엔 꿋꿋하고 싶어. 흐느적거려 봐야 놈들만 좋을 일이잖아. 그러려면 내가 먼저 기회를 잡아야 해. 놈들의 허술한 구석을 찾아서 그걸 공략해야 돼.”

그러니까. 그 운명을 건 싸움에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면 좋을 거라는 거지. 한데 도울 수도 없다는 거 아냐. 그게 마음이 아프다고.”

그것만으로도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데? 나 혼자가 아니라서, 니들의 마음이 함께 하고 있어서 내가 얼마나 힘이 솟는데? 그게 도움이 아니면?”

뫼가 야무지게 말을 쏟아낸다. 버들이 눈물 사이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누리와 버들, 아미가 제 집으로 돌아간다. 들과 뫼가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눈길을 옮긴다. 화면은 뫼가 빠져나온 인터넷 창 그대로다.

놈들의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야 해. 그때까진 멈추지 말고 미끼를 던져야 돼.”

들이 뫼를 본다. 겁이 난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