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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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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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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목숨을 건 맞섬8


BY 한이안 2015-11-07

누린 그동안의 장난기를 버린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던 것들이 자신의 발목을 옭아맨 느낌이다. 하지만 제 힘으론 풀어낼 자신이 없다. 뫼처럼 매달릴 자신이 없다.

어렵다. 하지만 이젠 받아들일 수 있어. 우리에게도 현실이 있다는 니 말이 맞아. 그게 놈들과의 목숨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라는 게 아프지만. 그래도 놈들의 돈줄이 되는 것보단 낫겠지.”

천천히 곱씹고 나서야 들은 뫼의 말을 받아들인다. 웃음거리로 만들어졌다는 게 아프긴 하지만 현실이 없다고 생각할 때보단 마음이 든든하다. 그것마저 없다면 희망도 가져볼 수 없다. 한데 희망을 가져볼 수 있게 됐다.

아미와 버들, 이든도 더는 묵묵히 숨죽이고 있을 수가 없다. 나도 나도 나도를 줄줄이 읊어댄다. 뫼가 피식 웃는다. 삶이란 참 묘하다. 현실이란 알다가도 모를 놈이다. 엉뚱한 모습을 하고 나타나서 사람을 엉뚱한 상황에 떠밀어 놓는다. 우리에겐 현실이 없다는 들의 말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장황하게 말할 일도 없었다. 갑자기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그래도 드라마는 아니다. 현실이다. 자신도 사랑이 뭔가 해서 잠깐 드라마를 기웃거려 본 보통의 젊은이일 뿐이다. 누리나 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자신이 중심으로 몰리자 좀 쑥스럽다.

고마워. 내 생각을 받아들여줘서.”

? 니 말이 하나도 그른 게 없는데. 게다가 그렇게 사는 게 싫기도 하고. 먹거린 열심히 댈 게. 알지? 나 몸으로 치고받는 건 자신 있지만 머리싸움은 젬병이라는 거. 그것만은 봐줘라. 서운해 하지도 말고.”

생색을 내도 될 것 같은데 누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발뺌을 한다. 뫼도 더는 말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씩 웃고 만다.

한데 너 아까 왜 그랬어?”

아미가 생각난 듯 불쑥 좀 전의 일을 들춰낸다.

맞아. 왜 그랬는데?”

아미의 일깨움에 다들 뫼에게 돌아서며 묻는다. 뫼는 멋쩍어진다. 말을 하자니 쑥스럽다. 그렇다고 안 하자니 서먹해질 게 겁이 난다.

나중에 말하면 안 될까?”

그렇게라도 빠져나와야 한다. 쑥스러움도 서먹해짐도 지금은 감당하기 싫다. 구멍이 있다면 빠져나가고 싶다.

그래. 이번 한 번만 봐주마. 두 번은 안 된다?”

누리가 빠져나가라고 길을 비켜준다. 뫼는 머뭇거린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말은 해둬야 할 거 같다.

하나만 더. 내가 또 그런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냥 눈감아줘라!” 뫼가 눈을 꿈쩍여 누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뭐야? 한 번도 크게 봐주는 건데?”

아미가 걸고넘어진다. 뫼는 누리를 보고 다시 눈을 꿈쩍인다.

언제까진데?”내가 내 입으로 말할 때까지.”

-어지는 건 아니지?”

그럼 안 되냐? 겨우 여섯뿐인데.”

여섯뿐이라서 안 된다면?”

누리도 그냥 무조건 봐줄 거 같지는 않다. 뫼가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오래 끌지는 않도록 노력할게.”

나는 알았어. 그래도 너무 오래 끌지는 마라!”

누리의 말에 다들 물러난다. 뫼는 한숨 놓는다. 누리 말대로 달랑 여섯이다. 여섯이 제각각 흩어지는 건 막아야 한다. 자신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더더군다나 견딜 수 없을 거 같다.

가자! 우리가 가줘야 뫼가 일할 거 아냐?”

누리가 돌아서더니 휘적휘적 나간다. 다들 뒤따라 나선다. 한데 아미가 어물어물 눈치를 본다. 모두를 불러 세운다.

잠깐, 우리도 알아봐야 할 거 아니야? 우리 화면에서는 왜 아줌마 카페에 들어갈 수 없는지, 왜 가입이 안 되는지. 그것 때문에 온 거 아니었어?”

아미가 와글대며 몰려온 이유를 일깨워준다.

맞아!” 다들 아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발걸음을 멈추고 뫼 주변으로 다시 모여든다.

왜 우리 화면에서는 아줌마 카페에 들어갈 수가 없지? 드라마 시청도 할 수가 없어. 가입을 해야 하는 곳엔 들어갈 수가 없어. 우린 주민번호가 떠오르지 않아. 왜지?” 다들 뫼가 방법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따져 묻는다. 뫼는 좀 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어안이 벙벙하다.

안 돼?”

안 되니까 이렇게 몰려왔지? 우린 주민번호가 생각이 안 나.”

글쎄? 왜 그러지? 난 그냥 생각이 났는데. 그게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다고 했어. 사람이 태어난 후 출생신고를 하면 주어지는 번호라고 했는데?”

뫼도 그건 알 수가 없다. 자신은 그냥 떠올랐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그걸 따져 생각해 보지 않았다. 기억장치에 입력이 돼 있는 거 같다는 이선의 말이 떠오른다.

아줌마 말이 내 기억장치에 누군가의 주민번호가 입력돼 있는 거 같다 했어.”

그럼 이것도 놈들의 짓이란 거네?”

맞아 놈들이 주고받았던 말도 그랬어. 아이핀인가 뭔가 하고 주민번호를 내 몸에 넣었다고 했어.”

뫼는 애니와 소훈이 주고받던 말을 떠올린다.

죽일 놈들. 두고 봐라!”

누리가 셋을 두들겨주기라도 할 것처럼 벼른다.

그럼 여기서 한 번 들어가 봐! 컴퓨터 문제일지도 모르잖아.”

뫼가 자리를 비켜준다. 누리가 그 자리로 파고든다. 뫼가 말하는 대로 누리가 따라한다. 여자의 카페가 열린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굴려도 주민번호나 아이핀은 떠오르지 않는다. 대화방을 열어보려 하지만 열릴 리가 없다.

그럼, 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가!”

뫼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불러준다. 누리가 입력하고 엔터를 친다. 하지만 열리지 않는다. 가입이 안 되었다는 안내문만 뜬다.

컴퓨터가 우리를 인지하고 있어. 주민번호뿐이 아니야. 우릴 구별할 수 있는 또 다른 뭔가가 입력되어 있어. 그게 뭐지?”

뫼가 머리를 마구 굴린다. 뭔지 알아내려 해보지만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까 놈들이 너한테만 주민번호를 부여했어. 그리곤 너 외엔 쓸 수 없게 만들어 놨어. 왜지?”

들도 머리를 굴린다. 뭐보다는 왜가 빠르다.

우린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야. 실험대상이기도 해. , 너야. 너를 통해서 가능성을 확인하려 한 거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이 크게 빗나가지는 않을 거야.”

들이 뫼를 바라본다. 뫼도 들의 말을 새겨본다. 그럴 듯하다. 옆에 늘 붙어 있는 소훈에게도 숨긴 채 주민번호와 아이핀을 자신의 몸속에 집어넣은 애니다. 이유가 빤하다. 뫼는 움찔한다. 들의 생각이 그대로 와서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