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과 아미 버들은 부싯돌로 불을 피운다. 나뭇가지들을 잔뜩 주워다 옆에 쌓아놓고 하나씩 올린다. 먹거리를 챙겨오면 불에 구울 생각을 하니 입에 군침이 돈다. 들이 저 혼자 피식 웃는다.
“왜?”
“그냥. 누리가 처음 토끼를 잡아왔을 때가 생각나서.”
“맞아. 그때 생각하면 누리한테 미안해? 반은 장난이었어도 사나운 짐승 보듯 했는데. 지금은 고걸 기다리면서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고. 나도 참 간사해.”
말끝에 버들도 피식 웃는다.
“너만 그랬나? 나도 그랬는데. 니가 간사한 게 아니라 사람이란 족속이 원래 간사해. 봐! 우리 모두가 다 그렇잖아. 조금도 빠지지 않는 100%야. 그러니까 켕길 필요 같은 건 없어.”
아민 도가 튼 사람처럼 말한다. 들과 버들이 ㅋㅋ 웃는다. 고작 여섯을 가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이란 족속, 100% 운운하는 아미가 우습다.
“내 말이 우스워서?”
아미가 눈치를 채고 따지고 들어온다. 들과 버들은 나뭇가지를 들어 불에 올린다. 둘은 웃음이 나오려 하는 걸 가까스로 참아낸다.
“내 말 무시하고 딴 짓거리는? 일부러 그러는 거지?”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말하는데 그럼 안 웃겨?”
버들이 실토를 하고 만다. 아미도 따라 웃는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사람이란 족속을 떠올려 봐야 고작 여섯이다. 여섯을 놓고 사람이란 족속을 입에 올리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다. 몸집에 비해 턱 없이 큰 옷을 입혀놓은 것만 같다.
“생각해 보니 너도 웃겨?”
“응. 무심코 뱉을 땐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까 웃기네. 통과. 얘들은 언제 올까?”
“토끼 두어 마리는 잡아야 돌아오겠지? 우리 이러지 말고 열매나 따러 가자! 색색으로 골고루. 넘의 살점 뜯으면서 눈요기라도 실컷 할 수 있게.”
“다 먹지······.”
“하지 마!”
버들이 들의 입을 손가락으로 누른다.
“나도 아까운 거 알아. 그래도 색색으로 차려놓으면 근사하잖아. 어차피 지천으로 널려 있는 열매 다 따 먹을 수도 없어. 땅에 떨어져 썩는 거나, 우리 잔치 상을 빛내주고 땅으로 가는 거나 다를 게 뭐가 있어. 기분 내기로 한 거 팍 내보자!”
버들이 일어나며 요란을 떤다. 들은 피식 웃는다. 버들의 요란스러움에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따라나서곤 하는 자신이 우습다. 또 그런 쪽으로 트여 있는 버들이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버들은 신이 나서 콧소리를 한다.
“누가 말려. 야 버들! 그런 기특한 생각은 어떻게 해 낸 거야?”
아미가 버들을 뒤쫓아 가볍게 뛰어가면서 묻는다.
“드라마 생각이 나서. 흉내 내는 건 아니지만, 잔치 상은 조촐한 것보다는 다채로운 게 좋잖아. 색깔별로 늘어놓으면 근사해 보이기도 할 테고. 뿐만이야?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니까 색색의 열매들이 입맛도 돋워주겠지. 그럼 되는 거 아냐?”
버들이 한껏 들떠서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들은 버들의 기분에 물들어 간다. 버들이 말하는 근사한 식탁이 그녀의 머릿속에도 그려진다.
셋은 열매를 색깔별로 골고루 따가지고 와서 돌 판에 늘어놓는다. 버들 말대로 거무스름한 돌 판에 울긋불긋한 열매들을 늘어놓으니 마음이 넉넉해진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말도 딱 들어맞는다. 눈이 즐겁다. 불에 구운 고기를 올려놓으니 고기 맛이 더욱 맛깔스럽게 느껴진다.
“야~. 이 정도면 2013년 식탁도 부럽지 않다. 안 그래?” 누리가 식탁을 휘 둘러보며 감탄을 쏟아낸다.
“내 작품이야. 색깔이 곱지? 입만 행복하란 법 있어? 눈도 좀 호강을 시켜줘야지.”
버들이 우쭐해서 말한다. 다들 피식피식 웃는다.
“먹자! 입으로는 뜯고 눈으로는 더듬고. 이 정도면 2013년 식탁도 부럽지 않아. 안 그래?”
누리가 버들의 기운을 받아 분위기를 띄운다. 아무도 딴지를 걸지 않는다. 다들 스스럼없이 분위기를 받아들인다. 틈틈이 웃음꽃이 피고 진다. 말도 조용조용하지 않고 떠들썩하다. 아주 오래, 다가오지도 않은 나이의 주변에서 맴돌다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오래오래 붙들고 싶다.
배가 빵빵하다. 다들 손을 든다. 더 먹을 것도 없다. 열매마저도 모두 바닥이 나 있다. 뫼가 벌러덩 드러눕는다.
“뭐야? 그냥 누워서 보내겠다고? 잔치를 이렇게 끝내겠다고?”
누리가 뫼를 일으킨다. 이든은 뫼를 따라 드러누우려다 만다. 누리의 눈총이 따갑다.
“그럼? 할 일 있어?”
누리의 눈치를 보며 더듬거린다.
“없으면 찾아야지? 누워서 빈둥거리는 것보단 그럴 듯 한 거. 우리의 몸과 마음이 모두 빠져들 수 있는 거면 더 좋고. 그래야 잔치지. 겨우 먹고 끝낼 거 같으면 뭐 하러 이렇게 판을 벌여?”
“빙고. 누리 넌 늘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말하더라. 니 옆에 있으면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가 없어. 내가 하고 싶은 말 니가 알아서 다 해주잖아. 고마워!”
버들이 아양을 떤다. 다들 누가 말려 하는 눈빛으로 버들을 본다. 이든은 그런 버들이 낯설지 않다. 드라마에서 본 2013년의 주인공 여자와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이 번쩍한다.
“드라마 어때? 몸과 마음이 흠뻑 빠져들 수 있는 걸로 치자면 으뜸일 거 같은데.”
다들 머릿속이 꿈틀거린다. 달콤함이 온몸을 감싼다. 몸이 근질근질하다.
“어때는? 딱이고만. 이든 너도 멋져.”
버들이 신이 나서 이번엔 이든을 추켜세운다.
“그래. 그게 낫겠어. 2013년 현실로 나가보자!”
들이 이든의 제안을 받아들이자는 뜻으로 말한다. 이미 모두의 머릿속을 차지해 버린 드라마다. 밀어낸다고 해서 밀쳐질 분위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