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었지?”
들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묻는다.
“응. 저 놈들이야. 우릴 놓쳤어.”
뫼도 한껏 들떠있다. 앉아 있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들이 손을 치켜든다. 뫼도 마주 든다. 손바닥을 소리가 나게 부딪힌다.
“애들한테도 알려주자!”
들이 인터폰을 누른다. 넷이 쪼르르 달려온다.
“왜? 무슨 일이야.”
뫼와 들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그들을 맞는다.
“놈들을 찾아냈어. 놈들은 우릴 놓쳤어. 아줌마 말대로 지금 우리를 찾느라 혈안이 돼 있어.”
“확실한 거지?”
“확실해. 우릴 놓친 걸 두고 놈들끼리 다투는 소리를 들었어. 놈들은 셋이야.”
“셋이 한 패가 돼서 우릴 만들어냈다고?” “지금은 갈렸어. 둘과 하나로. 들어봐!”
뫼가 소리를 키운다. 소훈과 애니가 나누는 말소리가 건너온다. 말소리와 함께 애니의 자판 두드려 대는 소리, 마우스 굴리는 소리까지도 고스란히 넘어온다. 믿기지가 않는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와 하는 함성이 쏟아진다. 얼싸안고 손바닥을 부딪치고 펄쩍펄쩍 뛰기도 한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누리가 방방 떠서 나댄다. 버들도 이든도 누리의 판에 끼어든다. 아미도 주춤주춤하더니 분위기에 몸을 내맡긴다. 모든 게 끝난 것처럼 온 몸이 들썩인다. 뫼도 들도 들뜬 마음에 웃음을 흘린다. 들뜬 마음이 며칠 동안 쭉 이어진다. 소훈과 애니의 한숨이 그들에겐 웃음꽃으로 피어난다. 둘의 넋두리에 신이 나서 방방 뜨기도 한다. 하지만 겨우 며칠로 끝이 난다. 그동안의 자신들이 스며들어온다. 뒤이어 아픔이 찾아든다. 사람이 아닌 애니민이라는 게 쓰리다. 만 년의 현실도 아닌 가상공간이라는 것도 뼈저리게 다가온다. 그래도 목숨이 붙어 있다. 그것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넘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놈들이 2013년의 그 두뇌파들이라는 거지? 우리끼리 주고받은 말소리를 이렇게 엿들었다는 거지?”
누리가 곱씹는다. 눈빛이 날카롭다. 소훈과 애니, 이균을 노려보는 듯한 눈빛이다. “말소리만이 아니지. 우리의 모든 걸 엿본 놈들이야. 그걸 팔아서 돈벌이를 했다는 거 아냐?”
아미가 상처투성이인 나머질 꺼내놓는다.
“망할 놈들, 꼴좋게 됐네. 이젠 니놈들 차례다.”
누리가 소리가 나는 화면을 노려본다. 화면이 애니와 소훈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한다.
“그만 노려봐! 컴퓨터 화면 망가지겠다. 여기선 고칠 수 있는 사람도 없어.”
뫼가 누리를 살짝 꼬집는다. 그 말에 누리가 눈꼬리를 내린다.
“너, 놈들이 앞에 있다면 아작을 낼 기세다?”
이든도 나서서 누리를 놀린다.
“그걸 말이라고 해? 놈들이 앞에 있으면, 당근 아작을 내줘야지. 그래야 분이라도 풀리지. 안 그래?”
“그래야 누리지. 누리 니가 그동안 아작을 내겠다는 말을 한두 번 했어? 이젠 놈들을 찾아냈으니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때지. 그럼? 아작을 내야지. 그래야 막혔던 속이 뻥- 뚫리지.” 버들이 빈정거림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누리가 버들의 말에 히죽 웃는다.
“왜?”
“왜는? 니가 내 마음을 제대로 아는 거 같아서 그렇지. 아무튼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버들 너밖에 없다니까?”
“그렇지? 나밖에 없지?”
버들이 맞장구를 쳐준다.
“그럼? 아작을 내주고 말겠어.” 말뿐이 아니다. 속으로 단단히 벼른다. 용서할 수가 없다. 용서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놈들이다.
놈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일 듯도 하다. 기분이 으쓱해진다. 고소하다 못해 달콤하다.
“이대로 그냥 보낼 거야? 이처럼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다고? 이런 날은 두고두고 떠올릴 추억꺼리를 만들어두는 게 으뜸이야. 다들 기분이 째지게 좋잖아?”
“이대로 그냥 보내지 않으면?” “잔치라도 벌여야지. 고기와 열매로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놓고 말이야. 웃음도 흥건하게 쏟아내고. 그게 사는 거 아니겠어? 드라마에서도 봤잖아. 좋은 일이 있으면 푸짐하게 차려놓고 들썩들썩했던 거. 우리도 그래 보자! 나도 그런 추억 하나 만들고 싶어.”
누리가 응석받이처럼 말한다.
“딱 내 마음이야. 누리 너 어쩜, 그렇게 내 마음을 잘도 꺼내? 난 찬성.”
버들이 살살 눈웃음을 치며 누리에게 달라붙는다.
“나도 해보고 싶어. 드라마 볼 때 엄청 부럽더라. 누리 말대로 우리도 그렇게 해 보자! 소박하지만 푸짐하게 차려놓고 맘껏 웃어보자! 2013년처럼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러면 어때? 우리 식으로 하면 되잖겠어?”
이든도 한껏 들떠 있다. 들뜬 마음이 가라앉기 전에 그 마음을 맘껏 누려 보고 싶다. 아미도 싫지 않은 기색이다. 뫼와 들의 눈치를 보느라 주저주저 하면서도 몸과 마음은 누리 쪽으로 기울어 있다.
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뫼의 눈치를 본다. 뫼의 얼굴엔 희미하게 떠 있던 미소가 거두어지고 없다. 들은 뫼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어렵지 않게 뫼의 마음을 느낀다. 기쁜 일이긴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씁쓸함도 다 거둬진 게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놈들과의 한 판이 될지 두 판이 될지 모를 싸움을 앞두고 있다. 결전을 앞에 두고 잔치를 벌이자니 마음이 당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싹둑 거두자니 들뜬 마음을 깔아뭉갤 자신이 없다.
“어쨌든 좋은 일이야. 딱 오늘 하루고. 내일도 그러겠다는 건 아니잖아.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다들 알고 있어. 때론 느긋할 필요도 있어.”
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다. 뫼의 마음을 알지만 나머지 넷의 마음도 모른 척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어정쩡하게 바라보기만 할 수도 없다. 들의 설득에도 뫼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얼굴빛이 그대로다. 누리가 그런 뫼에게로 다가온다. 뫼가 걱정하는 게 뭔지 그도 안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은 거기에 매이고 싶지 않다. 훌훌 털고 맘껏 들뜨고 싶다.
“알아.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 그래도 어쨌든 기쁜 일이야. 며칠 전과는 아주 다른 날이라고. 다른 마음이고. 늘 참담한 기분에 갇혀서 살 수는 없잖아. 그럼 아줌마의 상상에 갇혀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나 다를 게 뭐가 있어?”
누리는 뫼의 얼굴빛에 눌리지 않는다. 외려 하루쯤은 뫼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숨을 쉴 수가 있다 생각한다.
뫼도 누리의 말에 귀가 솔깃하다. 놈들 생각에 매여 죽을상을 하고 사는 건 바람직한 게 아니다. 들 말대로, 누리 말대로 내일 피 터지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 해도 오늘은 오늘이다. 오늘까지 내일에 꼭 붙들어 매어둘 수는 없다. 내일이 오늘을 대신할 수도 없다. 오늘은 오늘이다.
“나도 이대로 보내는 건 좀 그래. 이럴 땐 누리가 있어서 다행이야. 나라면 눈치만 보다가 말았을 텐데.”
버들도 다가와 누리를 거들고 나선다.
“알았어. 어이 사내들! 숲에 다녀오자! 토끼라도 잡아와야지? 잔치를 벌이려면 고기도 있어야 하잖아.”
뫼가 판세를 읽고 끼어든다. 누리의 얼굴이 급 환해진다. 뫼와 이든의 팔을 잡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잠깐!”
세 사람이 뛰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파이팅! 세 마리만 잡아와!”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는 파이팅을 해보인다. 셋도 파이팅을 해보이고 다시 뛰어간다. ctd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