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좋다. 한데 어떻게 볼 수 있지?”
“검색어에 쳐보자! 밑져야 본전 아니야?” 뫼가 말을 하고 얼른 검색란에 ‘드라마’를 치고 Enter를 누른다. 화면이 드라마와 관련된 글과 그림, 사이트로 가득하다.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열어 확인해본다. 방송국 홈페이지로 들어간다.
“세상에. 이게 다 드라마야. 드라마가 널려있어?”
다들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고 감탄사만 쏟아낸다.
“뭘 보지?”
뭘 봐야 할지부터가 난감하다. 2천 년대의 세상이 넘쳐나다 보니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2013년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뫼는 2013년 드라마 화면에서 서성거리기만 한다.
“이것도 하나씩 열어보자!”
들의 제안에 뫼가 드라마마다 열어본다. 모두가 거기 쓰여 있는 글을 중얼거리며 읽는다.
“이게 좋겠다. 이걸 보자!”
뫼가 얼른 마우스를 누른다. 한데 열리지 않는다.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는 문구가 뜬다. 2013년은 허락 없이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게 상식인 모양이다. 가입하기에 들어가서 회원가입을 한다. 한 번의 경험이 모든 걸 꿰뚫어 보게 한 모양이다. 식은 죽 먹기다.
드라마를 다시 연다. 걸림돌이 없이 스르르 문이 열린다. 광고 화면이 지나간다. 그러더니 암흑 속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말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화면을 분주하게 오간다.
“이게 드라마라는 거구나. 2013년의 사람들이야. 한데 다들 겉모습이 우리와 달라. 우린 칼로 깎아놓은 것 같은데 드라마 속 사람들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 아줌마 말대로야.”
다들 입을 다물고 말이 없다. 눈길은 화면에 가 닿아 있지만 내리뜨고 있다. 가슴이 다시 먹먹하다.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꾸며진 인간. 너무도 티가 난다.
“2013년으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겠다. 우린 사람 속에 낄 수가 없을 거야.”
아미가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 말에도 다들 무반응이다. 어이없어서가 아니다. 너무나 와 닿아서다. 가슴을 두드려대는 말이다.
그런 그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드라마는 계속되고 있다. 그들의 내리뜬 눈이 차츰 올라간다. 눈길을 딴 데로 돌리지도 않는다. 하나라도 놓칠까 치켜뜨고 보고 있다. 끼니 생각도 빠져나가고 없다. ㅎㅎ 웃다가 훌쩍훌쩍 울었다가 손뼉을 쳤다가 욕을 해댔다가 한다. 2013년의 드라마가 그들을 집어삼킨다.
“이런 게 드라마구나?”
드라마의 마지막 편까지 죄 본 후 버들이 기지개를 켜며 기분 좋게 말한다.
“드라마라는 거 정말 대단해. 앞으로 숲에 가지 않아도 되겠다.”
누리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하지만 뫼와 들은 낯빛이 어둡다.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말도 나오지 않는다.
“왜?”
차츰 뫼와 들을 닮아간다. 다들 가슴이 쿡쿡 쑤시고 아프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하다는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이선의 말이 뼈아프게 와 닿는다. 놈들이 방방 뛸 거라는 말도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진다. 다들 어두운 얼굴이 되어 제집으로 돌아간다. 아무도 배고프다는 말이 없다. 배고픔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뫼는 쓰린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직업이 배우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들은 작가가 쓴 대본의 역할에 따라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카메라가 그걸 찍어 손질하여 만들어지는 게 드라마다. 웹캠이나 CCTV도 카메라다.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훔쳐간 놈들이 가상공간에 설치한 카메라.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머리를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하지만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점점 더 웃음소리가 낭자해진다.
언제 왔는지 들이 다가와 옆에 앉는다.
“혼자 있으니 더 힘들어. 드라마를 보며 웃고 울었던 게 떠올라서 미치겠어.”
그 말을 하고 들이 고개를 딴 데로 돌린다. 차마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나도 그래. 나도 그 생각을 털어낼 수가 없어.”
“보는 게 아니었나봐.”
“그래도 놈들과 맞서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졌어. 다들 벼르고 있을 거야. 그게 없다면 배알도 없는 거지. 그러니 너무 속상해 하지 말자!”
“무슨 안이라도 있어?”
들이 한 가닥 기대를 가지고 묻는다.
“놈들이 우릴 찾아내기 전에 우리가 먼저 놈들을 찾아내야 해.”
“그래서?”
“실은 나도 뾰족한 수가 없어. 기가 막히고 억울하고 화가 나서 혼자 분을 삭이고 있었어. 그러던 차에 니가 왔어. 너와 말을 나누는 중에 생각난 것일 뿐이야.”
들이 넋을 놓고 허공으로 시선을 날린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빠져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도 머릿속이 가지런해지는 걸 느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뫼의 말이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니 말이 맞아. 우리가 먼저 놈들을 찾아내자! 그래서 놈들의 손아귀에 달려있는 우리의 운명을 되찾자! 그래야만 먹먹함이 사라질 거 같다.”
들이 억지로 미소를 짓는다. 씁쓸하다. 활짝 개어 있지가 않다. 뫼가 고개를 돌린다. 그 미소를 바라볼 자신이 없다.
“한번 인터넷에 접속해보자! 지금은 너무 막막하잖아.”
“놈들도 인터넷을 이용하겠지? 우릴 이 가상공간에 가둬놓았으니 아니라면 이상한 거야?”
“아마도.”
뫼가 인터넷 화면을 띄운다. 놈들이 어느 곳에 숨어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마우스만 끊임없이 눌러댄다. 그때마다 새로운 화면이 떴다 사라진다.
“잠깐!”
들이 뫼가 마우스를 눌러 빠져나가려는 것을 막는다. 뫼가 누르려던 손가락을 얼른 떼어낸다.
“왜?”
“쉿!”
들이 말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뭔가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렷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주고받는 말소리다. 둘의 귀가 바짝 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