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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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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세계


BY 한이안 2015-09-24

하지만 뫼는 생각은 다르다. 아니 알고 있는 게 다르다. 이선이 글쓰기를 멈추겠다는 말에 놀라 기겁을 한다.

아 아뇨. 그럼 우리 삶도 멈춰요. 아줌마가 계속 써 나가야 우리도 살아 움직여요. 그러니 멈추지 말아요.”

뫼가 펄쩍 뛴다. 다급한 마음이 되어 말도 다급하게 나온다.

걱정 마! 이 글은 사이버 공간에 올려놨어. 내 컴퓨터를 꺼도 그곳에 올려놓은 내 글은 언제나 열려 있을 거야. 그러니 니들 삶도 멈출 일은 없어. 세상 참 무섭지? 이게 21세기의 현실이야. 나도 가끔은 치를 떨 때가 있어. 21세기의 산물을 집어던지지 못한 채 누리면서도 그게 괴물이 되어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거든.”

이선은 TV에서 가끔 전해 듣는 뉴스들을 떠올린다. 조지오웰의 1984년을 읽을 때만 해도 웃기네 했다. 그녀는 그 책을 1984년에 읽었다. 대학 3학년 때였다. 한데 작품이 주는 치 떨림은 그때도 느꼈다. 한데 그 1984년이 뒤늦은 21세기에 와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뉴스에서 비슷한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1984년이 떠오른다. 형태야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자신과 관련된 정보가 떠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도 않다. 잠깐만 맘을 놓으면 가진 걸 고스란히 빼앗길 수도 있다. 거리에는 CCTV가 넘쳐난다. 그녀가 몸 담았던 학교에도 구석구석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그녀가 움직이는 곳에는 누군가의 시선이 따라오고 있다. 그녀의 움직임은 늘 혼자가 아니다. 반야 산은 아직 이지만 그 놈의 CCTV가 언제 거기까지 따라올지 알 수가 없다. 구실을 만드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다. 몸에 한기가 든 것처럼 떨려온다.

듣고 보니 가슴이 먹먹하네요.”

그래. 가슴이 먹먹할 일이지.”

아줌마도 걱정이 많네요.”

ㅎㅎ. 쓸데없는 걱정이지. 다들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는데, 그러면 되는 건데.”

이선의 말이 씁쓸하게 늘어진다.

지금 괜찮다고 내일도 괜찮을 거란 법은 없잖아요.”

니 말이 맞아. 눈 감을 때까지 내 머릿속에 있는 삭막함과는 만나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왠지 자신이 없다. 말에도 힘이 없다. 가슴의 먹먹함도 가시지 않는다.

이젠 아줌마를 탓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린 절대 아줌마를 탓하지 않을게요.”

무슨 일 있으면 날 찾아와. 내 카페에 언제든 글을 남겨. 난 컴퓨터에 붙어사는 사람이 아니라서 자주 떠나 있거든. 그래서 니가 원할 때 언제든 지금처럼 말을 나눌 수가 없어. 하지만 내 카페에 글을 남기면 내가 볼 수 있어.”

카페, 그건 또 뭔가요?”

가상공간에 꾸며놓은 내 작업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들어올 수도 있어. 내가 허락하기만 하면. 들어오면 내가 허락해줄 게. ’http://www.daum.net/pinepang’. 이게 내 카페주소야. 여기 들어와서 가입을 해. ID(아이디)password(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어. 대신 두 가지는 모두 기억하고 있어야 해. 기억을 놓치면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가 없거든. 그게 바로 내 카페로 들어올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하면 돼.”

여기 쓰인 IDpassword도 글자인가요?”

그래. 영어 알파벳이야.”

이 글자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자판 맨 아랫줄 오른쪽에 보면 /이라고 쓰여 있는 게 있어. 그걸 눌러서 한글과 영어를 넘나들며 쓸 수 있어.”

어디에 쓰고 어떻게 들어가야 하나요.”

뫼가 모르는 것들을 하나하나 묻는다.

인터넷 주소창에 쓰고 Enter를 누르면 돼.”

인터넷은 또 뭐죠?”

ㅎㅎㅎ.”

이선이 ㅎㅎ 웃는다. 갑자기 꼬치꼬치 묻고 들어오는 뫼가 귀엽다. 서너 살 애를 상대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긴? 모르면 묻는 게 정상이다. 게다가 아직은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다. 바로 웃음을 거둔다.

뫼는 이선의 웃음소리에 머쓱해진다. 2013년이라면 다 알고 있는 것들을 묻고 있는 자신이 마치 어린 아이 같다.

이러다 우리 끝이 없겠다. 알아야 할 게 참 많아. 화면 아래를 봐! ’e’라는 글자에 원이 그려져 있는 게 보일 거야. 그걸 누르면 열리는 세상이야. 가상공간.”

이선이 차분하게 설명을 해준다.

, 그게 인터넷이군요? 들어가 본 적이 있어요. 수없이 창이 열리고 또 열리고 또 열리더라구요. 아줌마를 만난 곳이기도 하잖아요.”

맞아. 그 안에 수없이 많은 서로 다른 세상들이 들어있어.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현실의 부산물들. 현실보다 더 거대할지도 몰라. 그 창을 열고 들어가서 맨 위에 글자들을 지우고 아까 그 주소를 쳐 넣어. 그리고 ’Enter’를 눌러. 그러면 내 카페창이 떠. 그럼 들어올 수 있어.”

알았어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피곤하구나.”

우리가 너무 오래 붙들었군요? 우리가 우리 생각만 했나 봐요. 미안해요. 아줌마가 피곤할 거란 생각을 못했어요.”

뫼가 미안함에 쩔쩔 맨다.

그럴 거 없어. 나도 니들을 만나서 새로웠어. 잘 있어? 난 빠져나간다. 마트에 좀 다녀와야 하거든.” 뫼는 이선이 말한 마트를 산으로 알아듣는다. 그녀가 걸어가던 하얀 눈길을 떠올린다.

아 참. 하나만요? 지금도 눈이 많이 쌓여있나요?”

지금은 여름으로 가고 있어.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어. 대신 끈적거리는 더위가 꽉 차 있지. 한데 어떻게 알았어?”

이선은 자신이 애니민들의 화면에 고스란히 잡혔었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 멍해진다. 컴퓨터 화면에서 눈 쌓인 산길을 걸어가는 아줌마를 봤거든요. 그래서.”

그랬구나? 아마 놈들이 연결해 놨을 거야. 한데 어떻게 찍은 거지? 어쨌든 이젠 진짜 빠져나간다. 마음 놓지 마라! 이 사실을 알았다면 놈들이 지금쯤 방방 뛰고 있을 테니까. 게다가 혈안이 돼서 니들을 찾아 나설 거고. 어쩜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 수도 있어. 그동안은 놈들의 일방적인 훔치기였다면 지금부턴 치열한 맞섬이 될 거야.”

그럼,······.”

뫼가 말을 하려다 만다. 이선의 피곤하다는 말이 생각나서다. 쉴 수 있도록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도 아프다 하니 한꺼번에 무리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럼 뭐?”

이선이 빠져나가려다 다시 돌아선다.

아니요. 나중에 물을게요.”

그럼 즐겁게 보내! 마음을 놓지도 말고.”

이선은 한 번 더 당부를 하고 화면에서 사라진다.

뫼는 이선이 빠져나간 화면을 한동안 바라본다. 빈자리가 느껴진다. 그는 그 마음을 바로 털어낸다. 옆에는 다섯이나 되는 친구들이 있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친구들을 본다. 들이 보인다. 미소를 짓고 있다. 이든도, 누리도, 버들도, 아미도 웃고 있다. 하지만 화사하지가 않다.

우리 운명을 생각하면 서글픈데 그래도 다행이야.”

버들이 먼저 입을 연다.

나도 그래. 이제야 우린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게 된 거 같아. 그것만으로도 희망이 보여. 누구까지는 아니지만 맞서야 할 상대가 아줌마가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히 드러났잖아. 아줌마 카페에 들어가서 가입을 하자!”

들이 이선의 말을 떠올린다. 뫼가 다시 화면으로 몸을 돌린다. 그리고는 손을 움직여 카페화면으로 들어간다.

가입하기가 있어. 거기를 눌러봐!”

뫼가 들의 말에 따라 가입하기를 눌러 새 창을 연다. 한데 낯선 단어가 들어온다.

주민번호를 입력하라는데? 이게 뭐지?”

처음부터 쉽지가 않다. 주민번호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써 넣으려 해도 생각나는 게 없다. 뫼가 생각해내려 애를 쓴다.

잠깐, 조용히 해봐!”

뭔가 어렴풋이 생각이 날 것도 같다. 그는 머릿속의 뿌연 안개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간다. 숫자들이 떠오른다.

생각났어!”

뫼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다. 버들이 손을 마주치며 펄쩍펄쩍 뛴다. 뫼가 또박또박 숫자를 쳐 넣는다. 그리곤 다음으로 넘어간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우리가 만들면 되지? 뭐로 할까?”

니 거니까 니가 알아서 만들어.”

그럴까?”

뫼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그거 기억해야 하는 거 알지?”

들이 이선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알아. 이게 있어야 카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잖아. 그러니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야지.” 순서대로 따라하다 보니 가입되었다는 문구가 뜬다. 다들 신기하다.

빠져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봐! 확인해야 할 거 아냐.”

이든이 고개를 들이밀며 말한다. 뫼는 카페를 빠져나온다. 인터넷 창이 전면에 뜬다. 화면은 글자들로 빼곡하다. 끊임없이 만들어져서 그때그때 올라온 2013년의 부산물이다.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기분이 묘하다.

그는 주소창에 이선이 알려준 주소를 쳐 넣고 Enter를 누른다. 이선의 카페창으로 화면이 바뀐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써 넣고 다시 Enter를 누른다. 방문을 환영한다는 글이 뜬다. 다들 미소를 짓는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이선의 말은 머릿속에서 잠지 외출을 한 듯하다.

카페라는 게 이런 거구나. 2013, 참 재미있다.”

버들이 활짝 웃으며 말한다.

나쁜 것들만 빼면.”

아미가 토를 단다. 버들이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아미에게 눈을 흘긴다.

꼭 그렇게 초를 쳐야 하는 거야?”

참지 못하고 한마디 날린다.

방방 뜨는 건 아직은 일러.”

아미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래, 너 잘났다. 그래도 난 방방 뜰 거다. 거꾸러질 땐 거꾸러지더라도.”

버들도 지지 않는다.

들은 둘의 토닥임을 들으며 화면을 보고 있다. 그녀도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 세상을 꾸며놓고 언제든 들춰볼 수 있는 2013년의 현실은 조물주들로 득실거린다. 모두가 조물주가 되어 세상을 만든다.

글을 남겨!”

그럴까?”

뫼가 얼른 한줄메모란다녀갑니다.’라는 글을 남긴다. 그의 글이 그대로 뜬다. 뿌듯함이 차온다. 손깍지를 끼고 팔을 앞으로 쭉 내밀어본다. 눈길은 다녀갑니다.’라는 글에 머물러 있다.

이제 뭘 하지?”

드라마라는 거, 그거 한 번 보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말이 뭔지 확인해보고 싶어.”

이든이 제안을 한다. 재미와 짜릿함을 준다는 이선의 말이 여전히 알쏭달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