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는 어이가 없다. 말이 나오질 않는다.
“혹시 그런 거라면 일찌감치 때려치워! 니들이 탐낼 만큼의 돈이 내겐 없어. 그러니 내게 다가와 봐야 헛수고만 할 뿐이야. 내가 해줄 말은 그것뿐이야. 난 작가지 몽상가는 아니야. 아무리 믿어보려 해 봐도 니 말이 믿기지 않아.”
이선이 다시 거부감을 들어낸다. 혹시 돈을 뜯어내기 위해 다가오는 치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못 믿는 건 그쪽 사정이고 이쪽은 아니라고요. 몇 번을 말해야 하죠? 몇 번을 더 말해야 믿을 거죠?”
또 다시 억울함이 밀려온다. 다가오는 듯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이선이 밉다. 헛바퀴를 돌린 기분이다.
“그쪽이 믿건 못 믿건 우린 만 년에 살고 있어요. 그쪽 작품 속 등장인물로요.”
“이제 그만 하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만 년의 사람? 그렇게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아. 하지만 내게 들러붙으려 하지는 마!”
이선이 뫼를 떼어내려 거칠게 말한다.
“들러붙으려는 게 아니라니까요? 우리는 그쪽 머릿속에서 빠져나오고 싶다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내가 그렇게 해주든가 말든가 하지?”
이선의 말소리도 다시 높아간다.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떻게 해야 믿을 수 있죠?”
“말했잖아. 서로의 공간을 보여주자고.”
“어떻게 하면 되죠?”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봐! 그럼 내가 보고 판단할게.”
“그게 뭔데요?”
“그것도 모른다고?”
“예. 그쪽이 어찌 생각하든 난 그게 뭔지 몰라요.”
“믿어야 돼 말아야 돼.”
이선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알쏭달쏭하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생각을 곰곰 되짚어 올라가본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 같지는 않다. 하지만 워낙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천지가 개벽을 해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두 생각이 머릿속에서 옥신각신한다.
뫼는 이선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쩜 믿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기다리기로 한다. 한참 화면이 멈춘 채로 있다. 뫼는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WebCam은 알아?”
한참 만에 이선이 다시 입을 연다.
“그게 뭔데요?”
뫼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있다. 다부지게 따져 물었던 처음의 당찬 생각은 빠져나가고 없다.
이선에게서 대답은 바로 들려오지 않는다. 한참 후에야 이선의 한숨소리가 건너온다. 여자도 난감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린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거지?”
“컴퓨터요?”
“그것도 뭐냐고 물을 거야?”
말을 하고 이선이 실소를 터트린다.
“니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컴퓨터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니가 보고 있는 것은 모니터 화면이야. 정보를 저장하고 내려 받고 보내고 하는 네모난 상자는 본체라고 해. 니가 손을 올려놓고 두드리는 글자가 있는 판은 자판이고 손에 쥐고 눌러대는 건 마우스고. 그 모든 것을 아울러 컴퓨터라고 해.”
“그래요? 그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거 맞아요.”
뫼가 고분고분하게 대답한다. “그럼 자판 주변으로 해서 ‘WebCam‘이라고 쓰여 있는 그림이 있는지 살펴봐!”
여자가 말을 하고 기다린다. 뫼는 위에서부터 찬찬히 훑어나간다. 한쪽에 여자가 쓴 글자모양이 눈에 띈다.
“있어요.” “웹캠 드라이버가 설치되어 있다는 뜻이야. 그럼 웹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을 지도 몰라. 그곳에 불이 들어와 있는지 살펴봐! 그 옆의 것들과 다른 색이라면 불이 들어와 있다는 뜻이야.”
“불이 들어와 있어요. 헌데 이게 무슨 뜻이죠?”
이선은 뫼의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쉴 틈 없이 손을 움직이기만 한다. 꼭 뫼의 글을 읽지 못한 사람 같다.
“그럼 거기 저장된 자료를 여기에 올려봐!”
“어떻게요?”
이선은 뫼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한다. 그녀가 설명하는 대로 뫼가 따라한다.
이선은 뫼가 올린 동영상을 다운받아 마우스를 누른다. 화면이 열리자 숨을 죽이고 동영상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눈이 점점 커진다.
“맙소사!”
동영상이 작동하자마자 이선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왜요? 왜 앓는 소리를 하는 거죠?”
“이건? 이건? 맙소사, 애니메이션이야. 맙소사. 애니메이션 속 인물들이 살아 숨을 쉬다니! 말도 안 돼. 게다가 내 상상대로도 아니야. 뭔가 더해졌어. 누군가 끼어든 거야. 내 작품을 가지고 살아 숨 쉬는 애니메이션 인간을 만들어 냈어. 도대체 누구지?”
이선이 놀라 허겁지겁 혼잣말을 쏟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