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우리나라에도 청소년 스마트폰 제한 제도가 생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127

서로 다른 관심사


BY 한이안 2015-08-20

이든은 화면에 시선을 박은 채 들과 뫼의 기 싸움에는 관심도 없다. 가상세계로 들어가 이 화면 저 화면을 죄 열어보기에 바쁘다. 글자가 빼곡하면 얼른 닫고 빠져나온다.

뭘 그렇게 찾고 있는 거야?”

뫼가 화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면서 묻는다. 그림이 가득한 화면. 아님 운 좋게 요란하게 몸을 놀리는 화면이 걸려주면 좋고. 난 글씨보다 그림이 좋더라. 쉽게 와 닿기도 하고. 움직임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고.”

읽는 거보다 보는 게 빠르긴 하지.”

뫼도 화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이든이 열어놓은 것을 눈으로 훑는다.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나온 거겠지.”

뫼의 말에 이든이 고개를 들고 그를 돌아본다. 하지만 뫼는 이든의 눈길을 외면한다.

지금까지 이런 화면만 뒤졌던 거였어?”

.”

이든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뫼는 풀이 팍 죽는다. 누리야 그렇다 쳐도 이든에게는 자신과 같은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의 얼굴엔 진지함이 하나도 없다. 즐길 거리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표정이다.

들은 여전히 새침하다. 화면을 보고 있지만 속으론 뫼가 하고자 했던 말이 뭐일지 더듬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로는 가 닿을 수가 없다.

이든은 또 다시 화면을 바꾼다. 화면에서 무슨 사람과 동물 그림 같은 게 끊임없이 달리고 뛰고 뛰어오르고 한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네모난 뭔가가 쌓아올려졌다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무언가 빵 터지기도 한다.

무슨 내용 같아? 여기도 내용이 있을 텐데? 끊임없이 이 화면만 반복되고 있어.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든이 뫼와 들을 올려다본다. 뫼의 속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로지 무슨 내용인지,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그게 알고 싶을 뿐이다. 이든이 뫼를 툭툭 친다.

말 좀 해 봐!”

?”

뭘 해야 하는지 좀 알려달라고?”

이든은 뫼가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뫼도 모른다.

몰라. 니가 모르는 걸 나라고 알겠냐? 그것도 처음 보는 건데.”

그럼 자세히 봐! 니 머리가 내 머리보다 낫잖아?”

이든의 넉살에 뫼가 웃음을 터뜨린다. 섭섭함은 눈감기로 한다. 다들 한 곳을 바라보면 좋겠지만 그건 바람일 뿐이다. 늘 현실은 마음과 다르게 나타난다. 그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넌 그림-체질해라! 누리도 숲에서만 눈빛이 빛나는데 너라고 눈빛을 빛낼 곳이 없겠냐?’

이든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고 뫼가 찬찬히 들여다본다.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머리로 해결이 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영 감이 오지 않는다.

글쎄?”

뫼가 화면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한 채 말한다. 아무리 살펴도 그 역시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모르겠는데? 그림-체질인 니가 알아내야 할 거 같아. 난 그림에 젬병이라서.”

뫼가 두 손을 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화면에서 아주 눈을 떼지는 않는다.

뭔가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이든은 이상할 정도로 화면에 마음이 끌린다. 뭘 하라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느낌은 그렇다.

그러긴 해. 니 말대로 글자가 빼곡한 것보다는 볼거리가 다양해서 눈이 즐겁긴 하네.”

들이 가볍게 맞장구를 쳐준다. 이든의 입이 헤 벌어진다. 뫼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맞장구쳐줄 마음까지는 아니다.

, 넌 아니지? 여자의 상상에서 벗어날 생각만 간절하지?”

이든이 뫼의 정곡을 찌른다. 뫼가 움찔한다. 예고 없이 날아든 한 방이 제법 예리하다.

아냐?”

얼른 둘러댄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굴엔 어색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든은 그걸 지나치지 않는다.

니 맘 나도 알아. 나도 우리가 여자의 상상대로 살고 있다는 게 속상하긴 해. 한데, 난 너처럼 글자 읽어내는 것엔 별 흥미가 없나봐. 지루하고 하품만 나오고. 너처럼 눈빛이 살아나는 게 아니라 살아있던 눈빛도 글자가 빼곡한 화면만 바라보면 바로 풀어져버려. 그래도 노력은 할게. 너에게만 맡겨버릴 수 없다는 거 나도 알고 있어.”

이든이 뫼의 속내를 다독거린다. 뫼도 싫지는 않다. 생각해 보면 이든의 마음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아닌 걸 억지로 붙들 수는 없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나도 알아. 너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거. 나 혼자 이 일을 해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 니들이 함께 거들어줘서 이 만큼이나 알아냈다는 것도. 난 니들이 있어서 존재하는 거야.” 어물어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뱉어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늘 그 생각을 하며 힘을 얻고 있다. 이를 악물 수도 있었다. 혼자였다면 벌써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알아. 우리가 니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에게 힘이 된다는 거. 그래도 그게 다가 아니었으면 하지? 우리가 뭔가 해주길 원하잖아. 노력할게.”

이든이 거듭 속내를 내비친다. 뫼는 할 말을 잃는다. 이든이 자신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난 말할 주제가 안 된다 여겨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