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원하는 걸 찾을 수도 있어.’
그의 머릿속이 갑자기 환해진다.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간다.
“부싯돌을 찾았어! 부싯돌을 찾았다고?”
문밖에 서서 고함을 친다. 모두의 움직임이 한꺼번에 멈춘다. 그와 동시에 뫼에게로 시선이 모아진다.
“부싯돌을 찾았다고.”
뫼가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말한다. 마법이 풀리고 다섯이 뛰기 시작한다. 줄곧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왔던 들과 아미, 버들도 부싯돌을 찾았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인다. 냅다 달려온다.
“어디?”
누리가 제일 먼저 다가와 묻는다.
“화면에. 그것도 화면에 있어. 와서 봐!”
모두들 화면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여기 이 네모 안에 글자를 써 넣고 검색을 누르면 돼.”
뫼가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다들 말을 잊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화면에서 부싯돌이 뛰쳐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다.
뫼가 자판에서 부싯돌 글자의 닮은꼴을 찾아내 차례대로 누른다. ‘부싯돌’이 네모 안에 채워진다. 마지막으로 검색을 누른다. ‘부싯돌’이 화면 여기저기에 보인다. 뫼는 그 중의 하나를 눌러 새로운 창을 띄운다. 다들 고개를 들이밀고 화면에 뜬 글을 읽는다.
“돌이라는 거네?”
“응. 단단한 돌이야. 이걸 부딪히면 불똥이 튀어나와서 주변의 부스러기에 불이 붙게 돼. 그럼 불을 피울 수 있어. 누리가 말한 게 바로 이거야.”
뫼가 신이 나서 읊어댄다. “그럼 찾아보자! 돌멩이를 찾아내서 부스러기를 모아 놓고 부딪히면 되는 거 아냐?”
“맞아. 그러면 돼.”
“그럼 여기서 이렇게 미적거리지 말고 어서 찾아보자!”
다들 한꺼번에 우르르 밖으로 몰려 나간다. 돌판 위에 차려진 열매는 잊어버린다. 배고픔도 밀려나고 없다.
“뫼 넌 이거나 지켜라! 힘이 없다며? 그러니 여기서 이거나 지켜!”
누리가 들고 있던 토끼를 얼른 뫼의 손에 쥐어주고 뛰어간다. 뫼는 얼결에 토끼 지킴이가 된다. 하지만 혼자 멍하니 앉아있기는 싫다.
“야!” 뛰어가는 누리를 불러댄다. 하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 멀리 뛰어가고 있다. 뫼는 할 수 없이 돌덩이에 앉아 애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한참 후에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린다. 돌멩이와 나무부스러기를 찾아 숲으로 갔던 모두가 떼를 지어 돌아오고 있다. 그는 일어나 슬슬 다가간다.
“이거야?”
뫼가 이든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 거 같아. 그래도 몰라서 다른 것들도 주어왔어.”
다들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뫼에게 보여준다. 뫼는 하나하나 눈여겨본다. 하지만 그도 모르긴 마찬가지다.
들과 버들, 아미가 부스러기를 빈터 한가운데 쌓는다. 그 사이 누리는 돌을 조각낸다. 조각낸 돌을 양 손에 하나씩 쥐고 부스러기 밑에 가져다 댄다. 그리곤 탁탁 치기 시작한다. 불꽃이 튀어 나온다.
“불꽃이야.”
탁탁 튀는 불꽃에 다들 함성을 지른다. 하지만 쉬 불이 붙지는 않는다. 그래도 누리는 실망하지 않는다.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불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게 흐뭇하다. 불이 붙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기다리는 것쯤이야 가볍게 참아줄 수 있다. 다들 얼굴에 온통 미소가 가득하다.
뫼도 쪼그려 앉아 누리가 불 피우는 것을 지켜본다. 한쪽 손에는 여전히 토끼가 들려있다. 언제부터인지 입에서는 꼴깍꼴깍 침이 넘어간다. 눈동자는 누리의 손에 가 머물러 있다.
연기가 찔끔찔끔 피어오른다. 그러더니 제법 자욱해진다. 붉은 불꽃이 작게 일어난다. 그리곤 금세 부스러기를 집어삼킨다.
“나무, 나무를 올려!” 누리가 다급하게 외친다. 들이 얼른 나무 조각을 불 위에 올린다. 버들도 아미도 나무를 올린다. 부스러기 위에 나무더미가 만들어진다. 불꽃이 잠깐 사그라지는 듯 하더니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다시 일어난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하긴? 토끼를 잡아야지.”
누리가 해결사라도 되는 양 똑 부러지게 말한다.
“누가?”
뫼가 누리를 보며 묻는다. 행여 자신에게 그 일을 떠맡기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잔뜩 묻어있는 눈빛이다.
“글도령한테 잡으라고 할까봐?”
누리가 눈치를 채고 말한다. 뫼는 어물어물한다. 누리가 히죽거리며 토끼를 낚아채간다.
“불 꺼뜨리지 마!”
그 말을 남기고 누리가 숲으로 사라진다. 다들 누리의 뒷모습을 좇는다.
나무를 올릴 때마다 불꽃이 옮겨 붙으면서 타닥타닥 튀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끌리 듯 시선이 모닥불로 모아진다. 다들 말이 없다. 불꽃을 보며 누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마음속에선 미안하다. 누리에게 귀찮은 걸 모두 떠맡겼다는 생각들을 한다.
누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허겁지겁 돌아온다. 그의 손엔 홀랑 발가벗겨진 살덩어리가 축 늘어진 채 들려있다. 다들 시선을 돌린다.
“왜? 살려서 들고 올 거라고 생각했냐?”
누리가 비아냥거린다. 못 볼 걸 본 거 같은 표정으로 변한 모습들이 여간 어줍지 않다.
누리는 나무꼬챙이에 토끼를 꿴다. 그리곤 불 위에 올린 후 이리저리 돌린다. 붉은 토끼의 살색이 변하면서 지글거린다. 뫼는 지글거리는 소리에 입안이 침으로 가득 고여 간다. 꿀꺽꿀꺽 침 삼키는 소리도 숨길 수가 없다.
누리가 꼬챙이에서 바짝 졸아든 토끼를 떼어내더니 다리 하나를 쭉 찢어낸다.
“먹어!”
누리가 뜯어낸 다리를 뫼에게 쑥 내민다. 뫼가 놀란 듯 뒤로 몸을 빼낸다. 하지만 눈길까지 돌리지는 못한다.
“너부터 먹어!”
뫼가 놀란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한다.
“내가 입에 대면, 니가 먹을 게 남을 줄 알아? 그러니 먹어! 너 아까부터 침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거 알고 있어. 괜히 뒤로 빼지 말고 받아먹어! 너 먹고 손 털면 그 다음에 내가 먹을 게.”
뫼가 누리가 건네주는 걸 받아 이리저리 살핀다. 입에선 침이 넘어가는데도 냉큼 입으로 가져가기가 꺼려진다.
“침만 꼴깍꼴깍 삼킬래?” 누리가 한소리 날린다. 뫼가 어설프게 고기를 입으로 가져간다. 그러더니 쩝쩝 소리를 내며 씹기 시작한다. 다들 그런 뫼를 쳐다보고 있다.
“꼭꼭 씹어서 천천히 삼켜! 너 잘못 되면 우린 여기서 바보처럼 살아야 하니까.”
누리의 말에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겁지겁 먹어대던 뫼가 움직임을 늦춘다.
“니들도 먹어봐! 맛이 죽여준다.” 그제야 혼자서 먹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미안함을 털어내며 뫼가 말한다.
“너부터 먹어! 여럿이 나눠 먹을 만큼 양이 많은 게 아냐.”
행여 다른 사람들이 손이라도 댈까 그런지 누리가 딱 부러지게 말 금을 긋는다. 하지만 말이 입안에 고여 있는 듯하다. 침이 가득한 입으로 말을 하려니 어색하다. 그렇다고 침을 꼴깍 삼킬 수도 없다. 그러면 뫼가 손을 탈탈 털고 일어날 거 같다. 그럴까봐 누리는 먹고 싶은 걸 참는다. 먹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뫼부터 먼저 먹여야 한다. 지난번 쓰러진 후유증으로 쉬 지친다는 뫼다. 뫼가 건강해야 여자와의 지루한 싸움에서 뭐라도 얻어낼 수가 있다. 뫼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 그는 믿는다.
그렇다고 2013년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뜻은 아니다. 이유만이라도 알고 싶을 뿐이다. 아니,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뫼와 들이 빠져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뒤끝 없이 훌훌 털어버리면 만 년의 삶이 고스란히 자신들 것이 될 거 같다. 그럼 뫼도 들도 더는 거기에 얽매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야 여섯이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유만은 찾아내야 할 거 같다. 그걸 밝혀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뫼다. 이든도 들도, 버들도, 아미도 있지만 그들에겐 뫼에게 있는 끈기가 부족하다. 아니 끈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인 것도 같다. 뫼가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뫼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뫼가 있어야 이든도 들도 아미도 버들도 제 몫을 해낼 것이다. 자신은 여벌이다. 진득하게 앉아서 보이지 않는 것과의 싸움을 치러낼 자신이 없다. 몸으로 이뤄내는 거라면 다르겠지만 그 밖의 것은 그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뫼는 머쓱하다. 텅 빈 거 같던 안이 채워진 느낌이다. 멍멍하던 머리도 다시 맑아졌다. 그는 더 먹고 싶은 걸 참고 뒤로 물러난다.
“난 이제 배불러. 니들 먹어! 누리 너도 어서 먹어! 맨 먼저 먹고 싶다고 했던 사람은 너잖아.” 누리가 뫼의 얼굴을 살핀다. 그러더니 뒷다리 하나를 다시 뜯어내 뫼에게 건네준다.
“왜? 니들 먹으라니까.” “우리는 아직 견딜 수 있어. 넌 아니잖아.”
뫼가 뿌리친다. 누리도 물러나지 않는다. 억지로 뫼의 손에 뜯어낸 다리를 들려준다.
“먹어둬! 그래야 몸이 빨리 나아지지.”
누리는 뫼의 손에 다리를 들려주고 다시 살점을 발라낸다. 그걸 그는 들과 버들, 아미, 이든에게도 나누어 건네준다. 그들은 그걸 받아들고 서로 어색하게 눈치만 본다. 냉큼 입안으로 가져가질 못한다.
“일단 먹어봐!”
“난 그냥 열매 먹을게.”
버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말한다. 영 내키지가 않는다.
“아직 참을 만하다 이거지? 하지만 니들에게도 곧 닥칠 거야. 입안에 시큼한 맛이 돌며 열매의 달콤한 맛을 밀어낼 때가 올 거라고. 그럼 어떤 줄 알아? 먹는 게 오히려 괴로워. 그게 바로 넘의 살점을 넣어달라는 세포들의 아우성이고. 거기까지 가볼 거야?”
누리가 은근히 겁을 준다. 누리가 다시 손을 놀려 뼈에서 살점을 뜯어낸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게 입으로 가져간다.
“정말이야?”
버들은 누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뫼의 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응. 먹고 나니까 확실히 알겠어. 누리 말대로 나도 입안에 신맛이 돌고 열매를 삼키는 게 고역이었어. 토끼를 보자 입맛이 당기고 군침이 돌긴 했는데 세포들이 원해서 그런 거라는 생각은 못했어. 한데 먹어보니까 누리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아. 신맛이 싹 가셨어. 처음 열매를 먹었을 때처럼 단맛이 돌고 혀가 낼름낼름 채 가. 이젠 다시 열매를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뫼의 말에 버들이 고깃덩어리를 들고 요리조리 살핀다. 그러다가 입으로 밀어 넣고는 오물거린다. 흐물흐물하던 눈빛이 생글거린다. 입안에 육즙이 고이면서 달콤해진다. 입가에도 웃음이 번진다.
“야! 헛소리가 아니었어! 맛있어!”
버들이 호들갑을 떤다. 버들의 호들갑에 들과 아미도 눈짓을 하며 고깃덩어리를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그러더니 이내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누리가 살점을 발라주기도 전에 알아서들 뜯어먹는다. 금세 뼈만 수북하게 남는다. 손가락을 쪽쪽 빤다. 입맛을 다신다. 하지만 남아있는 건 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