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말 겨루기는 끝난 건가? 그럼 다음으로 넘어간다? 다음은 인류가 언제 멸망했느냐야.” 누리가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더니 잠잠해진 틈을 타 나선다. “바보. 뫼가 한 말 잊었어? 우린 7987년을 잠을 잔 게 아니라 그 시간대를 건너뛰었어. 우리에게 중간 시간대는 없어. 2013년과 만 년만 있다고?” 버들이 누리의 생각이 엇나갔다는 것을 일깨운다. “아 참. 그랬지? 내가 잠깐 2013년에 현혹돼서 깜빡했어.” “아냐. 지금은 어느 것도 똑 부러지는 것이 없어. 그러니 우리의 생각과 상관없이 찾아보는 것도 괜찮아. 혹시 모르니까 시간대를 옮겨보자!” 뫼가 다시 화면에 얼굴을 들이민다. 그리곤 마우스를 이용해 새로운 화면을 끊임없이 열고 들어간다. “그게 가능할까?” 내 참견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던 들이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듯 묻는다. “글쎄. 일단 시간대나 옮겨보고. 시간대를 옮겨보면 알 수 있겠지.” 그 말에 다들 입을 다물고 화면만을 쳐다본다. “어, 이상해! 중간 시간대가 존재해.” 다들 놀라 머리를 화면으로 들이민다. “정말? 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잖아.” 그 경황에도 누리는 들의 말을 잡고 늘어진다. “내 생각에 따르면 여자의 상상이 우리를 여기로 보낸 게 틀림없는데······. 내 생각이 틀린 걸까? 우린 정말 7987년 동안 잠을 잤던 걸까?” 뫼가 자신감을 잃는다. 끊어질지 모른다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팽팽하게 늘려 잡고 있던 고무줄이 중간에서 툭 끊어진 느낌이다. 허탈함을 지울 수가 없다. 뫼가 움직임을 멈춘 채 맥없는 시선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들이 얼른 뫼의 얼굴을 살핀다. 실망한 빛이 고스란히 얼굴에 떠 있다. “그냥 따라가 보자. 밑져야 본전 아냐?” 들이 뫼를 재촉한다. 뫼가 다시 손에 쥔 마우스를 움직인다. 화면의 시간대를 2013년 이후로 옮겨간다. 2100년을 지나 3000년까지 가도 화면엔 글이 뜬다. 시간대를 더 이후로 옮긴다. 비로소 화면에 백지상태가 나타난다. “어떻게 된 걸까? 2013년 이후로 이렇게 많은 자료들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 이걸 보면 우린 7987년 동안 잠을 잔 게 맞는 것도 같아. 그럼 여자는 뭐지?” 들의 말에 다들 어리둥절 한다. 뫼를 쳐다본다. 뫼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다른 넷은 글쎄, 하는 시선만 서로 주고받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확실한 답이 없다. 그럴 듯한 생각도 다가오지 않는다. “지금은 어느 시간대지?” 들이 참지 못하고 다시 묻는다. “우리가 잘못 짚은 거 아니야? 여자의 시간대와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해서 저쪽이 2013년이라고 단정 지은 건 좀 성급했던 거 아닐까?” 들이 나름대로의 생각을 추려내서 말한다. 하지만 뫼는 여전히 반응이 없다. 눈빛을 화면에 고정시킨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다. “여자보다 훨씬 뒤에 산 누군가가 여자의 작품을 가지고 장난 친 건 아닐까?” 누리가 허리를 곧추 세우며 말한다. “글쎄?” 들이 짧게 대꾸한다. 달리 할 말이 없다. 아는 게 없으니 대꾸를 해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뫼 역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머릿속도 어수선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가지런하던 생각이 뒤죽박죽으로 얽혀버린다. 지금까지의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알 수가 없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화면의 자료를 훑어나간다. 그리고 날짜도 확인한다. “3013년 언제쯤이야. 더는 자료가 보이지 않아.” 뫼가 마지막 자료의 시간대를 확인하고 말한다. 다들 시간대를 확인하고 허리를 편다. “여자가 글을 쓰고 있는 때보다 딱 천 년 후야.” 아미가 질겅질겅 씹듯 말한다. “여자가 2013년에 이 글을 쓰고 있다면 아미 니 말이 틀리지 않아. 한데, 왠지 꼭 짜 맞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 내용들을 보면 그런 거 같지는 않고.” 이든이 아미의 말꼬리를 잡는다. “자료들이 꾸며진 게 아니라면 이유가 뭘까? 누가 언제 우리를 여기로 보냈을까? 2013년? 아니면 3013년?” “다른 건 몰라도 보낸 이유는 확실해진 거 아니야? 인류의 멸망을 막아내기 위해서.” 이든이 단정 지어 말한다. 다들 이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한데 찝찝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맞장구를 쳐줄 마음이 일지 않는다. “여기 누군가 적어놓은 글이 있어. 내용을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