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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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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아픈 2013년


BY 한이안 2015-06-22

말을 전하기 무섭게 이든과 누리, 아미와 버들이 달려온다. 실컷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몸도 개운하다.

새로운 거라는 게 뭐야?”

아미가 들어서며 묻는다.

또 골치 아픈 거라면 난 빼줘!”
누린 미리부터 질린 표정을 하고 다가온다. 달려오긴 했지만 일에 달려들고 싶어서가 아니다. 몸도 마음도 그것만은 거부한다.

이번엔 아냐? 서글프긴 하지만 골치 아픈 건 덜해.”

들이 누리의 섣부른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

뭔데?”
신기루 같은 세상. 2013.”

정말?”
다들 관심을 보이며 화면으로 몰려든다. 뫼가 화면을 열어 하나하나 보여준다. 생각했던 대로 모두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누리도 언제 투덜거렸나 싶다. 입까지 헤 벌어져 있다. 키득키득 웃기까지 한다.

“2013년의 세상 일부야.”

들이 화면의 세상을 일깨운다. 들의 말은 들려오지도 않는다. 눈은 화면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입술 사이로 감탄사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마치 그 속에 푹 몸을 담고 있는 것처럼 달콤하다.

그야말로 신세계야.”
누리가 감격해서 말한다. 뫼가 얼른 화면을 닫는다. 신기루는 사라지고 없다. 눈 쌓인 산길을 걸어가던 여자가 떠오른다. 약이 오른다.

염병할 여편네. 우릴 이 환상 속에서 빼내 이곳으로 보냈다 이거지? 염병할 여편네가?”

여자가 한스럽다. 누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돌아가고 싶어.”

누리가 뼛속까지 스며든 말을 토해낸다.

정말 멋져. 2013년이 이렇게 멋질 줄은 몰랐어. , 고마워! 이 멋진 세상을 만나게 해줘서.”

버들이 들을 와락 끌어안는다. 들은 어정쩡하게 버들의 품에 안긴다.

“2013년에 마음을 빼앗기라고 보여준 게 아냐. 우린 2013년의 신기루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절대 안 돼! 거긴 현실이 아니야. 우리의 현실은 바로 여기야.”

뫼가 단호하게 현실을 일깨운다. 다들 멋쩍어진다.

지금 본 것은 2013년의 극히 일부야. 그곳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 나도 놀라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어. 그때는 이게 여자가 살고 있는 2013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어. 그저 과거 어느 시대에 존재했던 모습이라고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이야.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시대를 뛰어넘어 그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중요한 건 현실이야. 현실을 벗어나서 그곳으로 갈 수는 없어. 나도 니들도.”

뫼의 말에 다들 고개를 숙인다. 현실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여자의 상상에 갇혀 아무도 없는 만 년의 세상에 내던져졌다. 기억나는 것도 없다. 분명 살아본 세상인데 너무 낯설다. 까마득한 과거일 뿐이다. 21세기가 자신들을 버린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21세기를 버리고 도망쳐 나온 것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물거리는 것도 없다. 다만 여자의 상상이 덫이 되어 그 안에서 살고 있다는 어렴풋한 생각뿐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20131월 눈이 많이 내린 산길을 여자는 혼자 걸어갔다. 어떤 생각이 여자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일까? 그리고 여잔 어떤 능력이 있었기에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을 만 년으로 옮겨놓을 수 있었던 걸까? 생각은 복잡하다.

미안해.”

뫼가 겨우 입을 달싹여 말한다.

아냐. 우린 2013년도 알아야 해. 단지 빠져들면 안 되는 거라서 안 된다고 한 거뿐이잖아. 그러니 미안해할 건 없어.”

이든이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가슴이 아리다. 현실의 아픔이 짙은 안개가 되어 밀려온다. 그걸 밀어낼 수가 없다. 뫼의 말을 고깝게 받아들일 수도 없다.

“2013년 날씨나 알아볼까? 여자의 글에서처럼 눈이 내렸는지 알아도 볼 겸.”

뫼가 미안한 마음을 접으려 말을 돌린다.

이 안에 그런 것도 있어?”

분위기가 칙칙하다. 빠져나가려면 생각을 돌려야 한다. 누리가 뫼의 말에 크게 반응을 한다.

.”

“2013년은 대단하구나? 만 년에서 들여다봐도 전혀 손색이 없어. 누가 만든 거지?”

누리가 제대로 감탄을 토해낸다.

손색이 없는 게 아니라 별천지야. 여긴 거기에 비하면 처져도 한참 처졌고.”

이든이 현실을 제대로 헤아려 매김 한다.

이건 새 발의 피야. 고작 이것 가지고 감탄하기는 일러. 21세기는 우리가 평생을 쏟아 부어도 다 알까 말까야. 거기다 20세기도 있어. 2013년에서 13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야. 20세기나 21세기나 큰 차이는 없을 거야.”
그 정도야? 끝이 있기는 할까?”

모두들 놀라 자빠질 모양새다. 칙칙함을 떨쳐내려던 어색함은 21 세기에 밀려 사라지고 없다.

글쎄?”

어서 열어봐! 눈이 왔는지 궁금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