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가 상황을 파악하고 얼른 다른 화면을 불러온다. 화면엔 그림과 글씨가 적당히 섞여있다.
“이건 뭐야? 못 보던 거잖아?”
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온다. 하품을 쏟아내던 지루함은 싹 달아나고 없다. 눈동자가 초롱초롱 굴러간다.
“읽어 보자! 나도 뭔지는 몰라. 읽는 건 처음이거든.”
“언제 찾아낸 거야?”
“지난번에. 이것저것 찾아 헤매면서 우연히 알게 됐어.”
“2013년이야?”
“그건 아직. 글을 읽을 수 없었잖아. 그냥 뒤적거려보기만 했어.”
“아 참, 그랬지? 어서 읽어보자! 이젠 읽을 수 있으니 눈 뜬 장님은 아니잖아. 무슨 내용들이 있는지 궁금하잖아.”
들이 들뜸을 감추지 못하고 화면에 얼굴을 들이민다.
“그래볼까?”
뫼가 맞장구를 친다. 그도 알고 싶다. 2013년과 관련이 있는 자료들인지는 자신도 알지 못한다.
“말이 토막토막 끊겨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들이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잠깐 기다려. 내가 다른 걸 열어볼게.”
뫼가 커서가 깜빡이는 곳에서 마우스를 누른다. 화면이 엉키는 듯하더니 곧이어 새로운 화면이 열린다.
“세상에. 이게 다 뭔 소리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읽어도 뜻이 와 닿지 않아.”
들이 고개를 들고 뫼를 본다. 눈빛이 힘을 잃고 흔들린다. 뫼가 다른 화면을 불러온다. 알쏭달쏭하기는 마찬가지다. 화면을 닫고 또 다른 화면을 불러온다. 몇 번을 거듭한다.
“잠깐, 끝까지 읽어 보자! 2013년의 먹거리 얘기야.”
뫼와 들의 눈빛이 화면으로 조여든다.
“다들 건강을 걱정하고 있어. 먹거리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어.”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 완전히 딴 세상 이야기야.”
“7987년 전이잖아. 같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그러긴 해. 그래도 우린 2013년에서 건너왔잖아. 희미하게라도 기억이 나야 정상이야. 한데 기억은 고사하고 낯이 설어. 신기하긴 한데, 정감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여기도 열어보자!”
뫼가 새로운 화면을 불러온다. 화면에 그림이 가득하다. 간간이 글씨도 보인다.
“이건 뭐지?”
들이 한참을 들여다본다. 그러더니 깔깔깔 웃기 시작한다.
“왜?”
“그냥. 그냥 웃음이 나와. 너도 읽어 봐! 이 사람 참 재밌다.”
뫼도 읽더니 웃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렇게 엉뚱할 수가 있어? 나이가 들었다면 또 몰라. 고작 우리 나인데 말이야. 꼬맹이가 외려 어른스럽다.”
들이 간신히 웃는 걸 멈추더니 어이없다는 투로 말한다.
“그러게. 건망증에 걸린 스물 한 살의 젊은이. 말 되네. 2013년은 참 재미있어?”
“그래. 한데 정말 이럴까? 말이 안 되잖아. 스물한 살에 깜빡깜빡 한다는 거잖아. 서글픈 일 아냐? 한데 왜 웃음이 나오지?”
“그러게? 듣고 보니 이상해. 니 말대로 앞뒤가 안 맞아.”
갑자기 박제된 듯 화면 속에 붙박혀 있는 2013년의 젊은이가 가엾다. 건망증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젊은이의 난처해하는 모습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뫼와 들의 얼굴이 이내 시무룩해진다. 깔깔 웃었던 게 미안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뼈아픈 게 다가온다.
“우리도야. 건망증, 우리도 그 남자와 다르지 않아. 아니 우린 더 해. 아예 기억을 잃었잖아. 이건 치명적인 건망증이야.”
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뫼도 세게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다.
“누구지? 왜 그랬지? 기억을 지울 필요는 없었을 텐데. 살아내는 거야 여자의 상상대로라고 해. 그래도 기억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것도 여자 작품일까?”
들이 만화 속 젊은이에게서 자신들에게로 생각을 돌린다.
“밝혀내야 해. 이대로는 살 수 없어. 2013년의 젊은이처럼 손을 써 보지도 못한 채 당하고 살 수는 없다고.”
들이 간절함을 드러낸다. 간절함이 스며들어 뼛속까지 시리다.
“누리와 이든, 아미와 버들에게도 알려주자! 다 함께 찾아보는 거야. 그럼 더 쉽지 않겠어?”
“그래. 처지가 같으니 함께 해내야지.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발뺌하지는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