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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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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


BY 한이안 2015-06-01

이든과 누리는 뫼가 누워있는 침대로 시선을 옮긴다. 침대에 누워있는 뫼가 보인다. 뼈에 거죽만 겨우 붙어있는 몰골이다. 뫼 같지도 않다. 둘은 그 모습에 놀라 뒤로 벌러덩 나자빠진다. 무서운 생각에 냉큼 일어나 다가가지도 못한다. 일어날 수가 없다.

뫼야?”

누리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묻는다. 들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다. 그제야 이든과 누리는 정신이 번쩍 돌아온다.

?”

우리도 몰라.”

아미가 볼멘소리로 말한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저물녘에야 돌아온 둘이 너무도 얄밉다.

죽은 거야?”

아니? 다행이 죽지는 않았어.”

그럼, 뭐라도 먹여야 할 거 아냐?”

먹였지, 그냥 뒀겠냐?”

아미가 화가 나는지 볼멘소리로 쏘아붙인다. 이든은 입을 꾹 다물고 더는 말하지 않는다. 아미의 눈치를 슬슬 보다가 시선을 뫼에게로 옮긴다.

뫼를 내려다보는 이든의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놀람 뒤에 찾아오는 냉정함이 더 아프다. 뼛속까지 저리다. 살아 돌아올 거 같지가 않다. 눈은 휑하고, 볼은 움푹 들어갔다.

들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함께 있었는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뫼가 쓰러져 있었다니. 저 몰골을 하고. 하지만 말을 하는 들의 표정이 너무나 눈물겹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 같지는 않다.

도대체 그 짧은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든은 끊임없이 되묻는다. 대답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상황에선 뫼만이 알고 있을 일이다. 하지만 뫼는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다. 뫼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들랑날랑하는 숨소리와 오르락내리락하는 배뿐이다. 입은 죽은 자처럼 굳게 다물어져 있다. 삶과 죽음 사이가 너무도 가깝다. 아니, 어쩜 함께 공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뫼를 보니까 그렇다.

뫼는 다음날도 깨어나지 않는다. 다들 뫼 옆을 떠나지 않고 밤을 지새운다. 눈 한 번 붙이지도 않는다. 간간이 뫼의 입안으로 열매를 밀어 넣어준다. 뫼는 오물거리다가 꿀꺽꿀꺽 삼킨다. 살아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여전히 눈을 뜨고 말을 하기에는 벅찬가보다. 눈도 입도 열리지 않는다.

, 내말 들려?”

누리가 허리를 구부리고 뫼의 귀에 바짝 입을 대고 묻는다. 뫼가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누리가 고개를 들어 이든을 쳐다본다. 이든은 자리에서 튕겨져 나가고 없다.

알아들었어.”

이든은 침대 난간에서 튕겨져 나와 환호한다.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다. 들과 버들, 아미는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글썽인다. 뫼가 반응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죽었다 살아온 것처럼 기쁘다.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뫼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차분히 뫼를 내려다본다.

우리들과는 상관이 없지?”

뫼가 또 고개를 끄덕인다. 그 뒤로 한참 침묵이 이어진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뫼도 말을 하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눈도 열리지 않는다. 게다가 말할 힘도 없다. 누군가 위에서 마구 내리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밀어내려 하지만 힘이 미치지 않는다.

만 년의 사람. 만 년의 사람.······.’

다시 여자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감각기관이 여자와 닿아있는 모양이다. 컴퓨터와 떨어져 있음에도 귀에 와 닿는 소리는 그대로다.

왜 또 다시 저 말을 중얼거리지?’

뫼는 여자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이유가 뭔지 알아내려 애를 쓴다. 그럴수록 그의 몸은 힘이 빠져간다.

먹을 것 좀 줘! 애들아, 열매 좀 달라고?’

생각은 간절한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는다. 아무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들이 맨 먼저 알아챈다.

?”

뫼가 말은 못하고 입을 벌린다. 들이 알아채고 잽싸게 열매를 으깨 즙을 만들어 뫼의 입에 흘려준다. 뫼는 넣어주는 대로 꿀꺽꿀꺽 넘긴다.

배가 고픈가봐. 열매를 더 따와야겠어.”

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든과 누리가 일어나 잽싸게 밖으로 뛰어나간다. 들은 잠시 멍하니 둘의 뒤를 좇는다. 다섯이 멀쩡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들은 이든과 누리, 버들과 아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뫼는 눈물을 흘린다. 혼자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 여자가 처음으로 고맙다. 혼자였더라면 견디지 못하고 막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자를 용서할 수는 없다.

여자의 중얼거림은 그치지 않고 들려온다. 만 년의 사람. 아직도 그 말이 입에 붙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면 맘에 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포기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내려놓았다 주워들기를 되풀이하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뫼는 여자가 만 년의 사람을 머릿속에서 내려놓았으면 한다. 여자와 맞장 뜨지 않고 여자에게서 놓여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여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여자가 만 년의 사람을 글의 제목으로 정한 모양이다. 거리낌 없이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한다. 굼뜨던 만 년의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그의 귀가 날카롭게 그 소리들을 잡아낸다. 그의 귀에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댄다. 시들해서 앉아있던 들도, 버들도, 아미도 이리저리 오가고 있다. 얼마 후 이든과 누리가 들어온다. 이든과 누리가 따온 열매를 건네받아 들과 아미, 버들이 즙은 낸다. 그리고는 그의 입에 흘려 넣어준다. 뫼는 정신없이 받아 마신다. 그러면서 귀로는 여자의 자판소리를 따라간다. 들이 넣어준 것을 먹어서인지 견딜 만하다. 그는 여자의 생각을 따라 잡으려 애를 쓴다. 여자의 생각을 앞질러야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아직 힘에 부친다.

, 더 줄까?”

그는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여자를 앞지르려면 먹어야 한다.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는 들이 부어주는 것을 벌컥벌컥 마신다. 그래서인지 몸이 좀 살아난다. 몸이 살아나자 잠이 쏟아진다. 얼마를 잤는지 알 수가 없다. 눈을 뜨고 들을 본다. 버들과 아미, 이든과 누리가 눈에 들어온다. 다들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

뫼가 목이 잠긴 소리로 들을 부른다. 그 소리에 다들 화들짝 놀라서 몸을 낮게 구부린다.

!”

다섯이 동시에 뫼를 부른다. 뫼가 살포시 웃는다. 여자는 생각에서 잠시 내려놓는다. 여자에게 잠시 자신의 삶을 내맡긴다.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들의 목소리에 걱정과 기쁨이 얼버무려져 있다.
이젠 좀 나아졌어. 한데 니들은 다들 괜찮은 거야?”

목소리가 낮게 쳐진다. 가까스로 말을 쏟아낸다. 힘이 달린다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