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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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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여자의 유전자


BY 한이안 2015-05-14

졸지에 들과 아미와 버들은 여자가 돼버렸다. 들과 아미, 버들은 물론 이든도 누리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뫼만 의아한 눈빛으로 들과 아미, 버들을 찬찬히 훑어본다. 다들 눈을 내리뜨기만 하고 말이 없다.

, 너 여자였어?”

뫼가 놀라 확인하듯 들을 보며 묻는다.

몰랐어? 난 니가 남자라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들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한다.

어떻게?”
어떻게는? 혼자서 숲에 다녀오는 거 보고 알았지.”

근데 왜 모른 척 했어?”

모른 척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아는 척을 안 했어.”

들이 우물쭈물하며 말한다.
뫼는 갑자기 머릿속이 어지럽다. 깨어난 후로 켜켜이 쌓일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건 아니다. 그렇다고 생각을 못 할 만큼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한데도 그동안 남자와 여자를 구분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들이 남자일 거란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그냥 옆에 두어야 하는 친구라는 생각이 다였다. 그 뿐이었다. 그런데 들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란다. 그제야 뫼는 들이 숲을 왜 그렇게 몸서리치도록 싫어했는지 알 거 같다. 왜 자신이 들의 몫까지 챙겼는지도 알 거 같다. 남자와 여자의 유전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7987년 동안 그 부분의 유전자는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은 듯하다. 생각이 가 닿기 전에 몸이 알아서 먼저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다.

, 너 생각보다 둔해? 그걸 지금까지 몰랐다고?”

누리가 놀림조로 말한다. 뫼는 살짝 속이 뒤틀린다.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겉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낯빛도 바로 잡는다. 그리곤 다시 숨을 고른다. 누리에게 한 방 멋지게 먹여야 한다. 속으론 그렇게 벼르고 있다.

이든, 너도 이미 알고 있었어?”

드러난 걸 감추지 않고 외려 더 드러낸다. 숨기는 것보다 그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누리의 말에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럼 내가 뭐 하러 얘들을 위해서 숲에 다녀오겠냐? 가서 따 먹고 오라 하면 되는 걸. 넌 아무 생각도 없이 들을 챙겨왔던 거야?”

그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으니까. 혼자 남겨지는 건 죽기보다 싫었거든.”

이든이 당당하게 나오자 오히려 뫼가 어물어물 한다. 그렇다고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들이든 자신이든 혼자 남겨지는 것은 어느 쪽도 원치 않았다. 숲속에서 움쩍달싹하지 못하면서도 들 혼자만 남겨두게 될까봐 그것만을 걱정했다. 들이 무섭다고 가기 싫다고 할 때도 투덜거리지 않고 기꺼이 혼자 숲에 다녀온 것은 들이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그게 더 겁이 나서였다. 남자라서가 아니었다. 들이 여자라고 생각돼서도 아니었다.

, 넌 촉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거야.”

누리가 또 한 방을 날린다. 뫼가 할 말을 잃는다. 약이 바작바작 오른다. 꼭 누리의 말이 넌 덜 자랐어, 하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누리가 말하는 촉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쪽으로 덜 자랐다는 것만은 발뺌을 할 수가 없다. 그래 그냥 입을 다물어버린다.

, 정말 내일 숲에 안 갈 거야?”

이든이 뫼의 속내를 눈치 챘는지 씩 웃으며 장난기를 버리고 진지하게 묻는다.

. 난 화면을 더 들여다봐야겠어. 뭔가 찜찜해. 그래서인지 여자가 내 머릿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와. 난 집에서 우리들이 알고 싶어 했던 걸 찾아볼게. 결코 겁나거나 무서워서 안 가겠다는 건 아니야.”

뫼는 속이 뒤틀리는 것을 억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속으론 언젠가 되갚아 주리라 사납게 벼르고 있다. 그래도 지금 그 마음을 들키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러 오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마지막 말을 덧붙인다.

맞아. 뫼는 니들이 여기 오기 전에도 혼자서 숲에 다녀온 적이 있어. 사나운 짐승이 몸집이 작은 짐승을 잡아먹는 것도 봤다고 했어. 그렇지, ?”

들이 뫼를 거들고 나선다. 들은 이든과 누리가 뫼를 오해할까봐 은근히 마음을 졸인다.

, 우리가 뫼를 이상하게 볼까봐 걱정되는 거야?”

걱정은? 그렇다는 거지.”

들은 이든이 정곡을 찌르자 머쓱해서 말한다.

알아. 뫼가 두려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거 우리도 안다고. 혼자서 숲에 다녀올 만큼 배짱이 두둑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뿐야? 남들은 좀이 쑤셔서 몸을 배배 꼬는데도 진득하게 앉아서 끝까지 물러나지 않는 끈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러니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놔!”

들이 얼굴을 붉힌다. 나서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괜히 나섰다가 이든에게 한방 얻어맞고 말았다.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이든이 뫼를 겁쟁이로 오해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그래도 이든의 한 방은 무시할 수가 없다.

이든, 넌 참 매서워. 사람의 속을 꼭 그렇게 할퀴어야 되겠어? 그래도 발톱은 날카롭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들이 머쓱함을 떨쳐내며 이든에게 한 방 날리는 것으로 속풀이를 한다. 이든은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고 만다. 그 결에 들은 뫼의 얼굴을 슬쩍 살핀다. 뫼는 오고간 말들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얼굴이다.

걱정 마! 난 괜찮아.”

뫼는 들의 눈길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들이 자신을 두둔하는 마음도 고스란히 느낀다.

맨 먼저 만났다. 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며칠을 함께 보냈다. 누군가 하나가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겁이 났다. 그 생각을 그녀라고 안 했을 리가 없다. 그러기에 그만큼 더 가깝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건 뫼 자신도 마찬가지다. 버들이나 아미에게보다 들에게 마음이 더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뫼가 그렇게 많이 걸려? 그래서 그렇게 두둔하고는 그 마음 들켰을까봐 뫼의 눈치를 살피는 거야?”

이든이 다시 한 방을 날린다. 순간 들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수습할 수가 없다. 정곡을 찔려도 돌려차기로 찔린 것과 직방으로 찔린 것은 다르게 와 닿는다.

걸리긴? 그렇다는 거지. 넌 사람 놀리는 게 취미냐?”

들의 말이 날카로운 화살촉이 되어 날아간다. 그 바람에 이든이 움찔한다.

미안. 그냥 장난이었어. 별 뜻 없다는 거 알면서? 그래도 내가 주제넘게 끼어들었다면 미안해. 그냥 장난 좀 치고 싶었을 뿐이야.”

이든이 얼른 물러선다. 자신이 둘의 감정을 건드리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챈다. 감정을 깊이 건드리면 탈이 날 수 있다는 것에도 그제야 생각이 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