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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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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발견


BY 한이안 2015-04-30

이만 들어가는 게 어때? 할 일이 태산이잖아. 한데 여기서 빈둥거리기만 할 수는 없잖아.”

들이 뫼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조심스럽게 말한다. 누리가 벌떡 일어난다. 엉덩이를 툭툭 털더니 몸을 돌린다.

들어가자!”

이든과 버들, 아미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누리를 올려다본다. 누리는 그런 눈빛을 묵살한다.

뭐해? 들어가자니까.”

누리가 퉁명스럽게 말을 던진다. 다들 누리의 말에 끌려 발걸음을 옮긴다.

뫼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 낯선 물건을 다시 집어 든다. 어제 하다 그만 둔 방법을 다시 해보기로 한다. 단추들을 이것저것 꾹꾹 눌러본다.

갑자기 글씨들로 빼곡한 화면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무리 다른 걸 눌러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상하다. 어떻게 화면이 바뀌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는 화면을 읽어낼 양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댄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봐도 읽어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말은 주고받는데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글은 도무지 뭐가 뭔지 뜻을 읽어낼 수가 없다. 그래도 그게 글이라는 것은 기억 속에 남아 있나보다. 한눈에 글이라고 알아봤으니 말이다. 어찌 생각하면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뒤죽박죽인 것은 없다. 누군가의 빈틈없는 계산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더 단단해진다.

뭘까? 어떻게 뜬 거지? 내가 뭘 누른 거지?’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다시 찬찬히 들여다본다. 하지만 여전히 알 수가 없다. 같은 단추를 두어 번 더 눌러 확인한다. 그런 다음 다른 단추로 넘어간다. 눈에 띄는 다른 것을 더는 찾아내지 못한다. 생각은 자꾸 글씨가 빼곡한 화면으로 가서 머문다.

뭘까? 뭐지?’

집안을 서성이기 시작한다. 시선을 떼어낸 후 생각만 따라가 보기로 한다. 서성이며 가운데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툭 건드린다. 하지만 아무 것도 얻어내진 못한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나는 건 싫다.

뭐지? 뭘 누른 거지? 왜 되돌려지지가 않는 거지?’

다시 물음을 쏟아낸다. 아무리 되풀이해서 물어도 나오는 것은 없다. 보이는 것을 떼어내고 생각을 되짚어 가는 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면 앞으로 바짝 다가간다. 그곳에서 찾는 게 오히려 빠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몇 가지를 빼면 화면과 드러나 있는 것들은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 안에 답이 들어 있을 것 같지만 그걸 찾아내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주변을 열어서 샅샅이 뒤진다. 쓸모없지는 않다. 틈새가 있는 뚜껑 같은 걸 잡아당긴다. 그랬더니 떨어져 나온다. 안엔 이상한 연장 서너 개가 들어 있다. 그는 그것을 꺼내들고 이리저리 돌려본다. 뭐에 쓰는 연장인지 알 수가 없다. 쇠붙이 끝에 홈이 넷으로 파인 게 눈에 들어온다. 그는 앞 쪽을 좀 더 살핀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홈이 파인 못들이 보인다. 그는 연장 하나를 들어 끼워본다. 딱 들어맞는다. 슬슬 돌려본다. 판에 박혀있던 못이 불거져 나온다.

못을 빼낼 때 쓰는 연장이었어.’

그는 나머지들로 하나하나 박혀있던 자리에서 빼낸다. 그랬더니 고정되어 있던 판이 들린다.

이건 또 뭐야?’

안에는 또 다른 뭔가가 있다.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낸다. 글자가 새겨진 단추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글자 하나를 누른다. 화면 속 작은 네모 안에 글자가 그려진다. 그는 다른 단추들도 눌러본다. 역시 단추 위에 쓰인 글자가 화면에 그대로 옮겨진다.

뭐하는 거지? 글자를 옮겨놓은 후 어떻게 해야 하지? 뭘 눌러야 하는 거야?’

그건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자판 아래 왼쪽에 있는 것들도 눌러본다. 이상한 창이 뜬다. 그림과 글씨가 뒤섞여 있다.

뫼는 인터폰으로 모두를 불러들인다. 혼자서는 너무 벅차서 더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 뭐야? 뭘 찾아낸 거야?”

맨 먼저 들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묻는다. 나머지도 들어오며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말을 한다. 그러고 보니 한없이 들떠서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게 뭐야? 화면이 왜 이래?”

뫼가 있는 곳으로 다들 모여든다. 그들의 눈에도 낯선 화면과 자판이 눈에 들어온다. 다들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이게 뭐지? 화면은 뭐고? ! 어떻게 한 거야?”

이든이 놀람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눈은 화면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뫼가 그랬던 것처럼 훑어보기에 바쁘다.

모르겠어. 아무리 단추들을 눌러도 되돌려지지 않아.”

그럼 얘가 알아서 저절로 뜬 거야?”

들이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 묻는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 내가 뭔가 눌렀을 텐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혹시 이걸로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건 아닐까?”

들이 뫼에게 시선을 옮긴 후 묻는다.

누가?”

그건 나도 모르지.”

그건 통과. 언젠가는 답이 찾아지겠지. 이걸로 이 못들을 빼낸 거야?”

누리가 여유로운 호기심을 드러낸다.

. 꽂아봤더니 딱 들어맞아서. 그래서 돌려봤어. 그랬더니 못이 빠져나오더라고.”

다들 누리에게서 알쏭달쏭한 연장을 받아들고는 이리저리 살핀다.

그러니까, 이게 못을 빼낼 때 쓰는 연장이라는 거지?”

뫼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아직은? 아직은 모르겠어. 이제부터 그걸 찾아내야 해. 잠깐, 이것도 봐!”

뫼는 단추를 눌러 아까 보았던 화면을 띄운다. 자판을 눌러 네모 안에 글씨를 써 보여준다.

이건 또 뭐야? 모양이 같아.”

다들 어안이 벙벙하다.

맞아. 화면에 글씨도 써 넣을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어찌 하라는 건지 그걸 몰라서 그렇지. 그리고 이것도 봐!”

뫼가 인터넷 창을 열어 보인다.

뭐야? 이거 글자들이지?”

맞아. 읽지 못해서 뜻을 알 수는 없지만 글자들 맞아.”

신기해. 한 번 이걸 눌러서 모양을 만들어봐!”

뫼가 자판을 눌러 글자를 만들어낸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신기해. 이게 글자를 만들어내는 거라는 거지? 한데 왜 이런 걸 우리에게 남겨 놓은 걸까? 우리한테 뭔가를 찾아내라는 거 아닐까? 꼭 그런 뜻으로 다가와.”
들이 머릿속의 생각을 더듬고 있기라도 한 듯 눈을 깜빡인다. 뫼도 들의 눈빛을 따라 마구 머리를 움직여본다. 하지만 끌려오는 것은 없다.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데 어떻게? 이건 니 말대로 글자를 만들어내는 기계야. 찾아내려면 이 글자들을 알고 있어야 해. 한데 우린 글자를 몰라. 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것들, 우린 단 한 글자도 읽어낼 수가 없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야.”

뫼가 들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들의 말이 그럴 듯하면서도 냉큼 다가갈 수가 없다. 들이 더 생각을 끌어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인다.

처음 화면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더듬어 보자! 이것만 들여다보고는 뭔지 알 수가 없어.”

그럴 수가 없어.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 수가 없어. 어떻게 열렸는지도 모르겠고.”

그래?”

말을 하고 들이 생각에 잠긴다.

이 상태가 마지막은 아닐 거야? 되돌리는 길도, 다른 화면으로 나가는 길도 어딘가에 분명 있을 거야.”

누리가 들과 뫼가 잠잠한 틈을 타 끼어든다. 뫼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 머릿속은 텅 빈 것처럼 뿌옇다.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내 생각에 이건 문이야.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만 찾아내면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도 되찾을 수 있을지 몰라.”

누리의 말에 자극이라도 받은 듯 이든이 뭔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한다.

문이라고? 어떤 점이? 그렇게 생각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들이 이든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특별한 이유? 그런 건 없어. 다만 창에 뜬 화면만 가지고는 우리를 이곳으로 보낼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뿐이야. 그건 너무 밍밍해. 7987년을 건너뛰게 했다면 이 정도의 밍밍함으로는 불가능해. 하지만 길잡이 역할은 돼 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이든과 같은 생각이야. 내 보기에도 이것은 우리가 찾는 자료가 아니야. 자료가 이렇게 엉성할 리가 없어. 그러기에는 이든 말대로 7987년은 아주 긴 시간이야. 한 화면에 담아낼 만큼 작은 시간이 아니야.”

뫼가 이든의 말에 설명을 덧붙인다. 그도 화면을 보는 순간 그게 다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화면은 끊임없이 깜빡거리는 것들과 낯선 그림들, 알 수 없는 글씨들로 가득해서 마치 뒤죽박죽 섞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자신들의 생각일 뿐이다. 거기에는 나름의 질서가 지배하고 있다.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생각은 그렇다.

니들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해. 생각이 나쁘진 않아. 2013년까지의 기억은 모두 잃었지만, 다행이 우리들의 머리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어. 느낌도 살아있고.”

들도 거들고 나선다. 그러자 이든도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걸 생각해 낸다.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돼! 이 주변에 있을 거야. 그게 연장이든 아니면 이 안에 있든 둘 중에 하나일 거야. , 넌 이 안에서 찾아! 우린 주변을 뒤져볼게.”

뫼만 화면 앞에 남겨두고, 다들 주변을 뒤지기 시작한다.

이것저것 눌러보고 만져보고 한다. 그러다 눈길이 옆으로 옮겨간다. 뭔가 눈에 띈다. 자판을 꺼낸 옆모서리 부분에 또 다른 뭔가가 보인다. 그는 그걸 조심스럽게 꺼내든다. 물건이 크지 않다. 손 안에 딱 들어간다. 한데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자판 옆에 내려놓고 손으로 쥐었다 폈다 한다.

화면에서 뭔가가 움직인 듯하다. 그는 화면을 들여다보며 손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느낌은 정확했다.

됐어! 이거야.”

뫼가 들떠서 소리친다. 다들 다시 뫼에게로 모여든다.

뭐야?”
이거야. 움직여. 이걸 움직일 때마다 화면에서 움직이는 게 있어. !”
뫼가 마우스를 손에 쥐고 마구 움직인다. 그때마다 화면에서 움직이는 게 모두의 눈에 보인다. 다들 어 어를 되풀이하고 있다.

정말이야. 이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열쇠인가 봐.”

! 더 움직여봐! 모양이 바뀌었어.”

, 그러네? 어떤 뜻이지?”

모두의 목소리가 들뜸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떻게 해 봐!”

어떻게 해야 하지?”

얼결에 뫼의 손가락이 눌러진다. 이내 다른 화면이 열린다.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손가락이 눌러졌을 뿐이야.”
뫼가 모두를 올려다본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이다.

살펴봐!”

들의 말에 뫼가 손안에 쥐고 있던 것을 들어 유심히 살핀다. 거기에도 나름의 표시가 되어 있다. 그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본다. 손가락과 함께 살짝 움직인다.

! 이것들도 누르게 되어 있어. 원하는 위치에다 표시를 옮겨놓고 누르면 다른 화면이 열리는 거야.”

세상에, 누굴까? 기억은 사라졌지만 느낌은 아직 남아 있어. 왠지 그런 생각 들지 않아?”

아미가 잠자코 지켜보고 있다가 입을 연다. 그녀의 눈은 마우스에 가서 멈춰 있다.

어쩜 니 말이 맞을지도 몰라. 우린 그 느낌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이든이 차분함을 되찾아 말한다.

느낌만 남겨놓고 모든 걸 지웠다?”

누리가 곱씹는 듯 말한다.

모든 것은 아니지. 기본적인 욕구에다 주고받을 수 있는 말도 남겨놓았어. 그리고 여기 이런 것들도.”

뫼가 누리의 말을 받아낸다.

일부러 그런 걸까? ?”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온다. 다들 그 물음에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문다. 모든 건 늘 거기에서 멈춘다. ? 누가? 어떻게? 도대체 왜? 그것도 달랑 여섯만. 무슨 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