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 난 두려워. 사나운 짐승과 마주칠까봐 겁이 난다고?”
들이 무거움을 매단 채 주눅 들어 말한다.
“괜찮을 거야. 이미 열매를 따러 밖에 나갔다 오기도 했잖아.”
뫼가 그런 들을 달랜다. 들의 말에 맞장구를 쳐줄 수가 없다. 그랬다간 희망은 영영 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거야 먹어야 배고픔이 가시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면, 그건 좀 그래. 그래 그런데, 바깥세상은 창을 통해 내다보면 안 될까?”
들이 밖으로 향하는 뫼의 마음을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뫼는 돌아보지 않는다. 들의 잔뜩 주눅이 든 얼굴을 보면서 말을 이어갈 수가 없다.
“나도 두렵긴 마찬가지야. 하지만 두렵다고 안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어. 밖으로 나가야 해. 들, 안에서만 머무는 것은 너무 단조로워. 조만간 이 안에서만 머무는 것에 지쳐 짜증만 내게 될 지도 몰라. 그러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보자!”
뫼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미 밖으로 나가보자고 생각을 굳혔다. 몸도 그렇게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하지만 들의 움츠림은 풀리지 않는다.
“그럼, 일단 나 혼자 나가볼게. 넌 이 안에 있어.”
“지금? 너 혼자 나가겠다고? 니가 돌아오지 못하면 난 어쩌라고?”
들이 잔뜩 겁먹은 소리를 한다. 뫼가 그런 들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눈에도 겁이 잔뜩 들어있다.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잖아. 내가 먼저 나가보고 안전하면 같이 나가면 돼. 짐승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찾아보자! 그럼 겁나는 게 줄어들지도 몰라. 언제까지 이 안에만 있을 순 없잖아.”
뫼가 일어난다. 들도 엉겁결에 뫼를 따라 몸을 벌떡 일으킨다.
“그렇게 겁을 잔뜩 뒤집어 쓴 마음으론 안 돼! 넌 그냥 여기 있어.”
뫼가 들을 밀어낸다.
“너도 겁이 난다며?”
들이 풀죽은 목소리도 말한다. 잠깐 따라나설 생각에 몸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자신감은 조금도 일지 않는다. 그냥 몸만 일으켰을 뿐이다. 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뫼가 밀어내는 대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뫼는 손에 막대 하나를 꼬나 쥐고 밖으로 나선다. 그런 뫼를 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뫼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속으론 그도 겁이 난다. 바짝 긴장한 채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뱀이라도 만날까봐 눈은 발끝만을 보고 걷고 있다. 스치는 소리만 들려도 바짝 얼어 발걸음을 멈추고 둘러본다. 숲까지 가는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진다. 열매가 빠져나간 머릿속은 두려움으로 꽉 차 있다.
숲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가슴은 사정없이 콩닥거린다. 그는 막대를 쥔 손에 힘을 준다. 그래도 두려움은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물러서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허망하게 짐승의 밥이 될 수도 없다.
그는 자세를 낮추고 발소리를 죽인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몸이 알아서 그렇게 한다. 열매를 땄던 곳은 가볍게 지나친다. 숲 안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나무들이 얼기설기 얽혀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암흑처럼 깜깜하지는 않지만 환하지도 않다.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몸을 바짝 낮추고 나무 뒤로 몸을 숨긴다.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발걸음이 멈춘 채 내디뎌지질 않는다. 몸도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대로 돌아설 수는 없다. 마음을 추스른다. 힘겹게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또 다시 뭔가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주변을 살핀다. 주변엔 아무 것도 없다. 그러고 보니 소리는 위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위를 본다.
몸집이 작은 짐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그는 몸을 움츠리고 달아날 자세를 한다. 한데 이상하다. 나무 위에서는 움직임이 없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어 위를 본다. 나무 위의 짐승은 태평하다.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도 못한 채 열매를 따 입에 넣고 있다.
“넌 내 편인 거냐? 날 해치지는 않을 거지?”
뫼는 나무 위의 짐승을 향해 말을 건다. 하지만 녀석은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말이 없다.
“니 이름이 뭐야? 뭐라고 불러야 해?”
그가 멈추지 않고 말을 걸자 녀석은 귀찮은 모양이다. 휭하니 돌아서더니 어디론가 사라진다.
뫼도 몸을 돌린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어둠이 짙어지는 게 보인다. 오늘은 돌아가야 한다. 몸을 돌려 가볍게 뛴다. 심장이 쿵쿵거린다. 두려움은 몇 발자국 거리로 물러나 있다. 대신 짜릿함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뫼가 들어서자 들이 벌떡 일어나 다가온다.
“아무 일 없었던 거지? 짐승은 만나지 않은 거야?”
“몸집이 작은 짐승 하나를 만났어. 어쩜 여럿 만났을지도 몰라. 한데 그 녀석 먹이도 열매더라. 나중엔 먹이를 놓고 녀석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우릴 해칠 녀석이 아니더라.”
뫼는 우쭐해서 말한다.
“그뿐 아냐. 짜릿했어. 온몸을 훑고 지나가던 그 짜릿함을 너도 맛봤어야 하는데. 시간이 흐르는 것도 느껴지지 않더라. 다녀온 그 시간이 잠깐처럼 여겨졌어. 내겐 딱이야. 난 내일도 숲에 다녀올 거야. 넌?”
뫼가 후련함을 쏟아낸다. 들은 뫼의 말을 잘근잘근 씹는다. 하지만 선뜻 따라나서겠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여전히 두렵고 겁이 난다.
“나 건너갈게.”
들은 대답 대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뫼는 몰아대지 않고 일단 지켜보기로 한다.
숲속을 돌아다니다 와서인지 졸음이 몰려온다. 어둠이 내리면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가뿐하다. 빵빵했던 배도 푹 꺼져있다. 뫼는 들의 집으로 건너간다.
“잘 잤어?”
들어서면서 뫼가 묻는다.
“응. 너는?”
들은 거짓말을 한다. 밤늦도록 뒤척였다. 그래서인지 몸이 무겁다. 하지만 뫼에게 내색은 하지 않는다.
“나도.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잠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눈을 뜨자마자 건너온 거야.”
들은 뫼의 시선을 피한다. 뫼의 얼굴에 생기가 넘쳐난다. 살짝 약이 오른다.
“배고프다. 먹을 걸 구해오자!”
뫼가 앞장선다. 어제 숲속을 돌아다닌 보람이 느껴진다. 두려움도 멀찍이 달아나고 없다. 그래 그의 발걸음은 씩씩하다.
“이젠 겁나지 않아?”
들이 뒤따라가며 묻는다.
“처음보다는. 숲도 별 거 아니더라. 숲 안쪽에도 먹을 것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잘만 하면 동물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물론 사나운 짐승은 피해야 하겠지만, 우리보다 약한 동물들이라면 만나도 겁낼 필요는 없을 거 같아.”
뫼가 어제 기분에 취해 한껏 늘어놓는다.
“그래도 난 집에 있을 거야. 아직은 숲에 들어가는 건 좀 그래. 선뜻 내키지가 않아.”
들이 풀죽어 말한다.
“그렇게 해. 억지로 가자고는 안 할게. 니가 가고 싶을 때 따라나서.”
“그래. 대신 난 집에서 다른 친구들을 찾아볼게. 우리 둘이서 숲을 상대하기는 너무 수가 적어.”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서인지 들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아와 있다. 뫼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되겠다. 난 숲을 살피고, 넌 집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친구들이 늘어나면 먹을 것도 많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입구에 있는 걸로는 부족할지도 몰라. 숲을 누비고 다니면서 열매도 눈여겨 봐둘게. 친구들이 늘어날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말을 하다 보니 뫼도 괜히 들떠간다. 그도 둘은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들의 말이 헛말도 아니다. 들과 그도 같은 시간에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기대를 해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열매만 신경 쓰자! 오늘은 무슨 열매를 따 먹을까?”
“무슨 열매?”
들이 머릿속으로 열매들을 죄 떠올린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크고 먹음직스런 빨간색 과일이 떠오른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큼직하니 불그스름하며 먹음직스런 과일 있잖아? 오늘은 그걸 따 먹자!”
“좋아! 나도 그 열매가 먹고 싶었어.”
“그래?”
들의 목소리가 통통 튀어 오른다. 꿀꿀했던 기분은 싹 달아나고 없다. 발걸음도 가벼워 나는 듯하다. 뫼를 뒤따라가며 폴짝폴짝 뛰어본다. 몸이 싫지 않은지 멈추지 않는다. 마음도 덩달아 들썩인다. 콧소리도 흥얼거린다.
들의 활짝 갠 마음은 뫼에게도 전해진다. 뫼는 뒤를 돌아보려다 만다. 모르는 척 막대로 길 가장자리의 풀들을 탁탁 쳐낸다. 하지만 들의 흥얼거림을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긋 세운다. 손은 손대로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