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파서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거 같아. 깨어난 이후로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
들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뫼를 보며 말한다. 뫼는 그런 들을 일으켜보려 한다. 하지만 들은 배고픔으로 주저앉을 뿐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뫼는 들을 내버려 둔다. 자신의 힘으론 어찌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먹을 걸 찾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밖으로 나가야만 할 거 같다. 하지만 두려움이 발걸음을 붙들고 놔주지 않는다. 밖으로 발을 내딛는 게 겁이 난다. 그래도 용기를 내 일어선다.
‘안 되겠어. 먹을 걸 찾아나서야 해. 그렇지 않으면 들이 죽을지도 몰라. 들이 죽으면 다시 나 혼자가 돼. 그렇게 놔둘 순 없어. 다시 혼자가 될 수는 없어.’
“들, 나 밖에 나갔다 올게!”
뫼가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다. 말소리에 힘이 팍 실려 있다.
“왜?”
들이 겨우 고개를 들어 묻는다.
“먹을 걸 찾아야겠어. 이대로 있다간 죽을지도 몰라.”
“어떤 걸 먹어야 하는지는 알아?”
들은 뫼를 붙잡아 주저앉히지 않는다. 외려 뫼가 제대로 알아낼까 그게 걱정이다.
“아니?”
“열매들은 대부분 먹을 수 있다고 했어.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달콤하다고 했어. 입에 넣었을 때 혀가 밀어내지 않으면 먹어도 좋다고 했어.”
들이 자료한테 들은 것을 뫼에게 말한다. 뫼가 허탕치고 돌아오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녀는 뫼가 먹을 걸 가득 들고 오길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을 내비친다.
“알았어.”
뫼가 서두른다. 두려움에 멈추어 서기라도 할까봐 후다닥 몸을 돌린다. 들은 뫼를 불러 세운다.
“뫼! 또 하나. 움직이는 게 다가오면 일단 피해. 잘못하다간 그것들에게 잡혀 먹힐 수도 있어. 아니면 물리든가.”
“사나운 짐승들 말이야?”
“알고 있었어?”
“풀숲과 나무숲에 숨어 있다고 들었어.”
뫼가 자료에게서 들었다는 것을 들에게 알린다.
“조심해. 위험하면 그냥 돌아와! 알았지?”
들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말한다. 뫼는 고개를 끄덕인다. 겁이 나서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는다.
뫼는 단추를 누르고 고개를 늘여 밖을 여기저기 살핀다.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천천히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몸도 빼낸다.
‘휴우~.’
저도 모르게 참았던 숨이 길게 터져 나온다. 그는 잔뜩 긴장한 채 가슴까지 자라있는 풀들을 헤치고 숲으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숲 가까이 가자 울긋불긋 휘황한 색깔들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멀리서 볼 때는 푸른빛만 보였다. 한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온갖 색깔들이 가득하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황홀함에 젖어든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린다.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다가온다. 배고픔으로 주저앉은 들도 떠오른다. 열매를 찾아야 한다.
열매를 어렵지 않게 찾아낸다. 나무에도 풀 같은 것에도 열매들이 달려 있다. 그는 다가가 따서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들의 말대로 달짝지근하다. 나무에 달린 것들도 따서 먹어본다. 맛은 다르지만 입에 넣자 혀가 신이 난 듯 받아 삼킨다. 그의 손도 덩달아 신이 난다. 따서 입에 넣기에 바쁘다.
어느 사이 배가 빵빵해져 온다. 혀가 열매를 밀어낸다. 그제야 들이 생각난다. 그는 들에게 어떤 열매를 따다 주어야 좋을지 고민을 한다. 그는 큼직하면서 먹을 게 많은 나무열매를 고른다.
들은 기다림에 지쳐간다. 뫼가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겁이 난다. 그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그녀도 더는 혼자이고 싶지 않다. 그럴 바엔 차라리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게 낫다.
그녀는 다시 배를 움켜쥔다. 깨어난 후로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뫼가 먹을 걸 가지고 돌아오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가온다. 혼자 남겨지느니 죽는 게 나음에도 죽음을 생각하자 두려움이 밀려온다. 죽음도 좋은 건 아닌 모양이다.
그녀는 문가로 기어간다. 뫼가 오는지 내다보고 싶다. 하지만 단추를 누르려면 일어나야 한다. 한데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날 수가 없다.
‘그래도 일어나자. 단추를 눌러서 문을 열어두자. 그럼 뫼가 사나운 짐승에게 쫓기더라도 안전하게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벽을 잡고 겨우겨우 일어난다. 손을 뻗어 단추에 올린다. 문이 스르르 열린다. 뫼가 문밖에 서 있다가 얼른 들어온다.
“뫼,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기는? 내가 밖에서 단추를 눌렀지.”
말을 하면서 뫼는 두 손을 번쩍 들어 보인다. 양손엔 먹을 게 가득 들려있다.
“손에 열매를 들고 어떻게?”
들이 놀라서 묻는다. 배고픔도 잠시 잊는다.
“누르는데 손가락 하나면 돼. 어렵지 않던데? 한데 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야?”
“문을 열어 두려고 엉금엉금 기어왔어. 니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겁이 나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뫼가 아린 시선으로 들을 바라본다.
“나도 니가 잘못될까봐 겁이나. 그러니까 어서 먹어!”
뫼가 열매를 들에게 내민다. 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뫼가 건네주는 열매를 받아 입에 넣는다.
“달콤한 거 맞지?”
“그럴 거야. 혀에 닿기가 무섭게 혀가 채가는 것을 보면 달콤한 거 맞아.”
들은 정신없이 열매를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은 열매 대여섯 개를 먹어치운다. 그러더니 두 손을 든다.
“더는 못 먹겠어. 혀가 그만 넣으라고 밀어내.”
뫼가 깔깔 웃는다. 들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여기 만져봐. 아깐 푹 꺼져 있었는데 지금은 빵빵해졌어.”
들이 배를 쑥 내밀며 말한다. 뫼도 빵빵한 배를 들에게 들이민다. 둘은 서로의 배를 만지며 흐뭇하다.
“먹을 거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숲 가장자리에 먹을 게 널려 있더라.”
“그래? 사나운 짐승들은 안 만났어? 난 니가 사나운 짐승들을 만나 쫓기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거든.”
“오늘은 다행히 만나지 않았어. 언젠간 마주치겠지? 그럼 그땐 어쩌지? 우리보다 힘이 센 놈이라면 말이야.”
“피해야겠지. 그러기 전에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자기보다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는 짐승들이 많다고 들었어.”
뫼가 몸을 으스스 떤다. 밖에 나가 있을 때는 잠시 잊었던 두려움이 또 다시 밀려온다.
“그래도 먹을 건 널려 있으니 다행이야. 사나운 짐승들을 피할 수 있는 방법만 찾아내면 딱인데.”
뫼가 머릿속으로 사나운 짐승들을 떠올리며 말한다.
“이제 졸린다. 한데 다시 잠속에 빨려 들어가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지?”
들이 졸음이 가득한 눈빛으로 걱정스럽게 말한다. 그 말에 뫼는 기겁을 한다.
“안 돼! 니가 자면 나도 자고 싶단 말이야. 그리고,······ 아무튼 자면 안 돼! 또 다시 7987년 동안 잠을 자면 어쩌려고.”
뫼가 다급하게 들을 깨운다. 들이 긴 잠에 빠져들기라도 한다면, 그 다음은 생각하기도 싫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밀어내도 밀리지를 않고 끈질기게 다가온다. 그래도 그 말만은 차마 입밖에 낼 수가 없다.
“그래, 안 잘게.”
들은 뫼가 하려다 만 말이 뭔지 안다. 뫼가 겁을 내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녀도 겁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들은 하품을 늘어지게 한다. 눈은 점점 감겨온다.
“들! 눈을 떠! 눈꺼풀이 내려가지 않게 바짝 치켜 올려!”
뫼가 들을 거칠게 흔들어댄다.
“그러려고 애쓰고 있어.”
들이 겨우 입을 달싹여 말한다. 하지만 눈꺼풀은 내려진 채 올라가지 않는다.
“눈꺼풀이 다 내려가고 있잖아?”
뫼가 다시 큰소리로 일깨운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뫼,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내 힘으로는 도저히 들어 올릴 수가 없어. 미안해.”
들의 눈꺼풀이 닫히고 고개가 젖혀진다. 뫼는 두려움에 더 거칠게 들을 흔들어댄다. 하지만 들은 반응이 없다. 축 늘어진 채 뫼가 흔들어대는 대로 무겁게 움직이기만 한다.
‘난 깨어있을 거야. 잠은 안 잘 거야.······ 그래도 혼자서 뭐해? 혼자 남는 건 싫어. 들! 너가 자면 나도 잘 거야.’
뫼는 들 옆으로 가서 나란히 누워 눈을 감는다. 그의 몸이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