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는 파란 단추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더디 간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하지만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왜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거지?”
“듣기 단추를 누르지 않아서입니다. 주황색 듣기단추를 누르십시오. 맨 위에 있는 단추입니다.”
“듣기 단추라는 게 있어?”
“예.”
“알았어.”
뫼가 듣기단추를 누른다. 누르자마자 여보세요라는 말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긴장감이 가득 묻어있는 목소리다.
“여보세요?”
뫼가 얼른 상대를 부른다.
“여보세요?”
낯선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한데 목소리가 바뀌어 있다. 긴장감은 사라지고 없다. 톡톡 튈 것처럼 한껏 들떠 있다. 뫼도 들뜨기는 마찬가지다. 몸 전체가 들뜸으로 부풀어 오르는 듯하다.
“여보세요?”
“들었지? 대답을 했어. 나 말고 누군가 있는 거야?”
낯선 목소리가 들뜸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다.
“누구에게 말하는 거야? 나는 아닌 거 같은데.”
“아마 그쪽 자료한테 하는 말일 겁니다.”
“여보세요?”
자료의 말에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다시 좀 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확인하려 하는 듯하다.
“여보세요?”
뫼도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한다.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지? 너도 사람이지? 맞지?”
여전히 들뜬 목소리다. 들떠서 말이 가볍게 뜀박질을 하고 있는 듯하다.
“맞아. 난 사람이야. 한데 니 이름은 뭐야? 난 뫼라고 하는데.”
“나? 들. 난 들이야.”
“만나서 반가워, 들.”
“나도. 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줄 알았어. 그래서 다시 잠을 자려 했어. 그런데 신호가 들어왔어. 그게 너였던 거지?”
들은 말을 하고 후하고 길게 숨을 내쉰다. 긴장감과 들뜸으로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그게 훅 터져 나온다.
“맞아. 내가 보냈어. 한데 너도 지금 깨어난 거야?”
“아니? 며칠 됐어.”
“그랬구나. 난 지금 깨어났어. 뭔가에 부딪치는 바람에 눈을 떴어.”
“아마 나무에 부딪쳤을 거야. 나도 그랬거든. 아무튼 때맞춰 깨어나 줘서 고마워.”
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떠 있다. 뫼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인다. 혼자가 아니라는 게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다.
“나도 고마워. 니가 신호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나 역시 그 생각을 했을 거야. 우리 지금 볼 수 있을까? 난 니가 보고 싶은데.”
“나도. 우리 만나자!”
“어디서 어떻게 만나지?”
“난 만년 산 근처에 있어. 넌?”
“모르겠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
“화면을 켜봐. 그걸 보면 니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어.”
“어떻게 켜는데?”
”오른쪽 맨 아래쪽에 있는 단추야. 그걸 눌러.“
뫼가 단추를 찾아 누른다.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다가 멈추더니 화면이 뜬다.
‘현재 있는 곳은 만년 산에서 가장 오래된 주목나무 기점 북동쪽 삼십 리 밖입니다.’
“들. 난 만년 산에서 가장 오래된 주목나무 기점 북동쪽 30리 밖에 있어. 넌?”
“난 주목나무 기점 남동쪽 칠십 리 밖이야. 거기 가만히 있어. 내가 갈게.”
들은 뫼가 있는 곳을 화면에서 찾아 출발 단추를 누른다. 캡슐이 서서히 위로 솟아오른다. 그런 다음 곧장 날아간다. 이동 시간은 잠깐이다. 캡슐이 멈춘다. 들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살핀다. 뫼의 캡슐이 이내 눈에 들어온다.
“뫼!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고 위를 봐!”
뫼는 얼른 창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민다. 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들은 천천히 캡슐을 움직여 뫼의 캡슐 옆으로 다가간다.
“뫼!”
“들!”
둘의 시선이 서로에게 가서 움직이질 않는다. 눈물도 고여 있다.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린다. 둘 다 그게 뭔지는 알지 못한다.
“반가워!”
뫼가 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들이 얼굴 가득 웃음꽃을 띠고 있다. 손을 높이 들고 흔들어대는 것도 여전하다.
“나도.”
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사그라지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7987년의 기나긴 세월동안 쌓인 외로움이 구석구석에서 기어 나온다.
“내 집으로 건너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내가 갈게.”
뫼는 몸을 움직인다. 들이 얼른 단추를 눌러 건널목을 만든다. 뫼가 서투르게 건널목으로 몸을 들이민다. 그런 다음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쓰러질 거 같아.”
뫼가 잔뜩 겁을 먹고 멈추어 선다.
“괜찮아.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그래. 그러니까 다시 움직여봐!”
들의 말에 뫼가 다시 걸음을 옮긴다. 들은 미소를 짓고 뫼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본다. 뫼도 들의 미소에 마음이 놓인다.
뫼가 다가가자 들이 손을 내밀어 뫼를 끌어당긴다. 뫼가 와락 들을 끌어안는다. 들도 두 팔로 뫼를 감싼다.
“내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 뫼!”
들이 안았던 팔을 풀고 뫼를 지긋이 바라본다. 뫼도 미소를 짓는다. 가슴이 벅차 말이 나오지 않는다. 지긋이 바라보기만 한다.
“안으로 들어가자!”
한참만에야 들이 그런 뫼를 안으로 잡아끈다. 들의 집안으로 들어선 뫼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다.
“왜?”
“내 집하고 똑 같아?”
“설마?”
“아니야. 똑 같아. 다른 게 전혀 눈에 띄지 않아.”
“그래? 왤까?”
“글쎄?”
둘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뫼는 천천히 집안을 살핀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건 눈에 띄지 않는다.
“너와 나도 같은 거 아냐?”
돌아보고 나서 뫼가 묻는다.
“그건 아닐 거야. 이름도 다르잖아. 그러니 모습도 다를 거야. 목소리도 다르잖아.”
“그러-겠지?”
자신이 없다. 혹여 모습까지도 똑같을까봐 속으론 겁이 난다. 하지만 말로 내뱉지는 못한다. 입을 꾹 다문다.
“뫼, 너의 집도 가보자!”
들은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아닐 거라고 말은 했지만 꼭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두 눈으로 확인해봐야 마음이 놓일 거 같다.
“그래.”
뫼가 힘없이 대답한다. 둘은 건널목을 건너 뫼의 집으로 간다. 이번엔 들이 찬찬히 안을 살핀다.
“니 말이 맞아. 똑 같아.”
이번엔 들이 의아함을 드러낸다. 뫼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다. 뭔가 이상한 생각이 자꾸 다가온다.
“난 7987년 동안 잠을 잤대.”
뫼가 그런 들을 지긋이 바라보며 낯선 느낌을 떨쳐내려는 듯 말한다.
“그래? 나도인데? 나도 7987년 동안 잠을 잤다는데? 왜지? 이제부터 우린 뭘 해야 하지?”
처음과 달리 들은 와락 겁이 몰려온다. 잔뜩 겁이 난 눈빛으로 묻는다. 뫼도 덩달아 겁이 잔뜩 올라온다.
“자료한테 물어보자! 자료는 알고 있을지 몰라.”
들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인다.
“헤이 지료! 우리가 지금부터 뭘 해야 하지?”
둘은 자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동안 꼬박꼬박 대꾸해주던 자료에게서는 들려오는 게 없다. 뫼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료야! 우리가 지금부터 뭘 해야 해?”
거듭 묻지만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때 언젠가 소멸할 거라는 자료의 말이 퍼뜩 떠오른다.
“소멸됐나봐.”
뫼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그런 거 같아. 이제부턴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거지?”
“ 혼자 남겨 두진 않을 거라는 게 이거였나 봐. 너와 나의 만남.”
둘 다 더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다. 눈물이 쏟아질 거 같다. 생각 같아선 주저앉아 눈물이라도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후련할 거 같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후련함 다음이 말끔하지 않다. 왠지 끝일 거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그렇게 허무하게 끝내버릴 수가 없다. 막막해도 일어나야 하는 이유다.
“우선 밥부터 먹자! 움직이는 생명체는 뭔가를 먹어서 힘을 저장해야 살 수 있다고 했어. 난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어.”
들이 마음을 수습하고 말한다. 그녀는 삶에 대한 끈을 잡는 게 방법일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그래.”
뫼가 힘없이 응한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배고프다는 게 어떤 건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들이 그렇다니 배고픔을 면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한다. 자료도 말했다. 움직이는 것들은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 살 수 있다고.
“뭘 먹어야 하지? 안에 먹을 게 있을까?”
뫼가 혹시 해서 묻는다. 들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녀도 뭘 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한 번 찾아보자!”
“그래.”
둘은 집안을 샅샅이 뒤진다. 낯선 것을 찾아내면 깨물어보기도 하고, 입에 넣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지 못한다.
“이 안에는 먹을 게 없어.”
들이 둘러보고 나서 실망한 낯빛으로 말한다. 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이미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들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그녀가 주저앉아 배를 움켜쥔다. 뫼도 들 앞에 쪼그려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