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반도체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165

K대 나온 여자야~


BY 조 양희 2015-01-06

차가운 눈매를 가진 그녀는 굳은각오를 한듯 내게 질문을 던졌다.

 

한달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앞뒤 설명없이 5백정도의 수입을 보장받을수 있냐며 당차게 물어왔다.

 

눈에 힘을 주고 대뜸 묻는 그녀의 당참에 내가 머뭇거려졌다.

 

그만큼 그녀는 돈이 절실했고 다부진 각오로 온 모양이였다.

 

그녀의 나이는 그 당시 40세...이름은 민정이라 불리었다.

 

대연동에 있는 모대학 영문과를 나온 재원이였다.

 

그녀는 전처 딸들이 둘이나 있는집에 엄마를 따라 합가를 했다.

 

그녀는 성도다른 의붓 아버지밑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공부만을 고집하며

 

앞날의 미래를 꿈꾸며 살아왔다.

 

부유한 가정도 아닌 가정에서 전처 자식들도 못간 대학을 다니면서 주위의 혹독한

 

눈치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버티었다.

 

그녀의모친은 허드렛일들을 해가면서도 그녀를 뒷받침해주었다.

 

죽을 각오로 열심히해서 장학금도 받고 때론 아르바이트도 해 가면서 그녀는 대학을 다녔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고 모친처럼 살지 않으려 오직 학업에만 매달렸다.

 

그녀는 대학동아리에서 선배인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원양어선을 탔다.

 

배에서 내리는 날엔 그녀에게 각종 보약과 옷들과가방등도 모자라서 용돈까지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런 남편이 그녀에겐 등대였으며 아버지 같은 보호자 역활을 해 주었다.

 

성격이 좀 외골수이고 나이에 비해 보수적인 남편이였지만 그녀에겐 첫남자다.

 

대학졸업을 할무렵 남편은 배를 다시 타기위해 준비하던중 시어머니가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에 점을 보러 가셨다.

 

점괘엔 남편이 이번에 배를 타고나가면 다시는 살아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왔고,

 

남편은 그말을 듣고 찝찝해하며 몇일을 고민하더니 배를 타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예민한 부분이였다.

 

죽는다는데....

 

그리고 남편이 그동안 배를 타며 벌어들인 돈들을 시아버님이 관리를 하셨고,

 

시아버님은 그 돈으로 주식을 하셨다는데 다 잃어버리신건지 어쩐건지 정확한 해명없이

 

사업이라도 해 보겠다는 남편에게 그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남편은 시아버지와 크게 다툼을 했고 죽을때까지 보지 않겠다며 짐을 싸서 나와버렸다.

 

그 이유로 아버지를 원망하며 집으로 들어가질않았고 본의아니게 그녀의 자취방에서

 

동거아닌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아버지는 성격이 괴팍하신편이다.

 

시어머니도 쩔쩔매신다.간혹 폭력도 쓰시는것 같았다.

 

그녀는 그러다말겠지했던 남편의 가출이 연속되자 졸업과 동시에 영어학원에 취업을 했고,

 

영어강사로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 와중에 첫아이를 임신했고 임신을 한 몸으로도 일은 계속해야만했다.

 

남편은 슬럼프에서 쉽게 벗어나질 못했고 아무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듯 그렇게

 

백수생활을 시작했다.

 

출산을 했고 아이는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다시금 학원강사일을 계속했다.

 

남편은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이일저일을 손을 댔지만 꾸준하게 해내질 못했다.

 

사회생활 적응을 못했다.

 

남편이 시아버지와 화해를 하지않으니 그녀 혼자서 시댁방문을 해가며 화해의 고리를 찾아보려

 

애를 썼지만 헛된 노력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두아이를 낳을때까지도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살수밖에...

 

둘째아이는 시어머님께 맡기고,큰아이는 친모에게 맡겨놓고서도 그녀는 열심히 일을 했지만

 

두아이들의 양육비와 생활비를 책임지다보니 생활은 변함이 없이 하루하루를 살 정도다.

 

남편의 용돈까지도 그녀의 몫이였다.

 

남편은 여전히 올바른 직장을 구하지못하고 느는것은 술과 담배뿐이였다.

 

안타까운 마음과 힘들어서 한마디를 할려고하면 돈번다고 유세떤다며 몰아부쳤다.

 

그녀는 모친처럼은 살지 않으려고 그 가정이라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성질만 있는것도 모자라서 외도까지 하는것이다.

 

그녀의 하루일상은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 밥수발을 해놓고 지하철을 타고 학원엘 가서

 

하루 웬종일 서서 강의하고 저녁10시쯤 마치면 근처 시댁에 들러 작은애를 보고서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오면 거의 새벽 한시를 넘긴다.

 

주말엔 시댁에 들러 둘째를 데리고 친정에 있는 큰아들을 보러 가야했다.

 

돌아서서 올때는 큰아들이 가지말라며 붙잡고 울고,한바탕 울고나면 시댁에선 둘째가

 

옷자락을 붙들고 울음보를 터트렸다.

 

그녀는 주말엔 내내 울면서 보낸다.

 

가지말라며....따라나서는 아이들을 하나씩 떼놓고 돌아서는 그 발걸음은 누가 알리요~

 

남편은 천성적으로 게을렸다.

 

집으로 돌아와보면 하루종일 먹고난 식기류나 반찬들을 씻어놓거나 냉장고에 넣어두는것조차도

 

해 주지 않았다.

 

빨래한번 청소 한번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 생활이 십년넘는동안 지속되니 그녀는 점점 지쳐갔고 학원 경력은 많았지만 해외연수자들의

 

젊음과 능력에 밀려나서 학원도 더이상 버틸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살아볼려고 과외도 해보았지만 역시 그녀의 능력을 인정해주기보다는 어학연수에

 

비중을 더 두는 부모님들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런와중에 남편의외도를 알게 되었고 그녀는 그동안 악착같이 붙잡고 있던 가정이란 끈을

 

놓아버렸다.

 

그녀는 여전히 큰아이는 친정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고 둘째아이는 시댁에서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그녀가 내게 온 목적은 단 하나! 돈을 위해서다.

 

살아가면서 생각지도.....아니 하류급이라 스스로 느끼고 취급조차하지 못했던 일을 그녀는

 

아이들과 살아갈려면 학원이라도 하나 차려야 먹고 살수있겠다란 생각만으로 선택했다.

 

그녀에겐 시댁도 친정도 비빌 언덕이 되어주질 못한다.

 

낮에는 과외를 하고 저녁이면 출근을 하고 배운 여성이라 그런건지 센스가 있는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아주 능수능란하게 일을 잘했다.

 

속칭 진상이라 불리는 손님들도 그녀가 들어가면 아주 온순한 손님이 되었다고 한다.

 

술을 버리는건지 주당인지는 모르겠지만 술한번 취해서 비틀거리는 모습한번 없었다.

 

인간미가 없어보일만큼 동료들과도 말을 아꼈고 그녀속을 보이지 않았다.

 

엄마여서인지 그녀는 목표가 뚜렷했고 5년을 일을 하고 지금은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학원을

 

차렸고 두 아이들을 데려와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들려주었다.

 

개원식때 화분도 보내고 금일봉도 보냈다.

 

아마도 그녀는 이 생활을 잠시 활용했을뿐 절대로 젖어들지 않았고 안주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오래토록 기억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생활에 젖어들어 문란한 생활을 예사로이 여기며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또 그런 여성들은 발전도 없이 대충대충 삶을 좀먹고 있다.

 

나는 이런 여성들을 보면 답답해진다.

 

아무리 좋은말을 해 주어도 의식이 개화되지 않으니 소귀에 경읽기가 되어버린다.

 

비록 음지의 생활이지만 발을 담그지 않으면 더 좋을테지만 또 비록 사지에 몰려 어쩔수없이

 

선택한 길이라 할지라도 하루빨리 발을 빼는 의지가 있어야한다. 이 여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