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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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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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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네 제비


BY 조 양희 2014-12-27

아침에 일찍 광고문의를 받았다.

 

대구에 사는 아가씨였다.나이는 21세라고 밝히며 초보자라고 했다.

 

기차를 타고 오겠다며 해운대역에 마중을 나와줄수 있냐고 물었다.

 

아가씨라는데....무조건 달려갈거라고 했다.

 

차를 해운대역 입구에 주차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접촉사고로 실랑이를 벌였다.

 

기차도착 시간이 임박하여서 보험처리를 않고서 10만원을 물러줬다.

 

표시하나 없거늘 그는 백밀러가 휘어졌다며 우겼다.

 

기분이 완전 꽝이엿다.

 

혹시나 오는 아가씨조차 아담상 펑상이면 오늘 일진이 더러울것 같았다.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애를 태우는데 기차는 도착을 했고 많은 사람중에

 

누구인지를 몰라 전화를 하여 나의 인상착의를 말해주며 손을 흔들었다.

 

오호!!!!

 

먼발치에서이지만 광을 발하는 늘씬한 미모의아가씨들이였다.

 

한명도 아니고 두명씩이나....

 

대어를 낚은 셈이다.

 

좀전의 기분은 다 풀어지고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들뜬 기분은 애써 감추며 밥을 사먹이며 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궁금한점을 묻고 답하고...

 

이렇게 이쁜 어린 아가씨들이 무슨사연으로 이곳 까지 오게 되었나 궁금했다.

 

우선 예슬이라고 하는 아이만 일을 할거며 친구는 갔다가 다시 올거라 했다.

 

아마도 탐색 작전인듯....

 

예슬이는 외모가 미스코리아감이였다.

 

키도 크고 얼굴이 예쁘며 스타일 자체가 고급스러웠다.

 

그녀는 일찍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으며 엄마는 횟집에서

 

서빙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대학을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 목적이라고 했다.

 

외모랑 어울리게 예술대학을 다녔다했다.

 

나름 어린 나이에 주위에 오빠라는 사람들을 잘못만나 대구 외곽의 티켓다방에서

 

일을 하면서 온갖 곤혹을 다 치뤄본듯했다.

 

다방업주라는 여자는 식사때 나오는 콩나물국을 일주일 내내 물만 다시 부어 소금으로

 

간만 맞춰 내놓을 정도였으니 두말을 들을 필요도 없는 일이였다.

 

아침 6시에 기상을 해서 저녁 10시까지 잠시 잠깐도 쉴사이없이 비닐하우스며

 

여관.사무실.노름방등지에 배달을 다니며 온갖 희롱과 수모를 겪었다한다.

 

그런일들을 해봤기에 노래방도우미라는 직업도 알게 됐고 각오도 할수있었다한다.

 

지방에서 일하러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거래를 하게된 모텔로 데려가서 여장을

 

풀게 하고선 오늘은 푹쉬고 낼부터하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그래도 돼요? 라며 놀란다.

 

아무래도 지독한 업주밑에서 고생을 한 모양이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두고온게 맘에 걸렸다.

 

어린 아가씨들을 모텔방에 두고 온게....

 

나는 그 길로 단기 렌탈 원룸을 알아봤다.

 

보통은 일주일 정도를 지내봐야 서로간에 결정을 하게된다.

 

일을 계속 할지 말지를....

 

이튼날 나는 작은 도시락을 싸서 예슬이 방을 찾았다.

 

친구는 아침에 올라갔다며 혼자 잇었다.

 

싸들고 온 도시락을 보며 감동을 했다.

 

모텔이란곳이 밥을 해먹을수는 없는곳이며 혼자서 시켜먹기도 그러리라는 생각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을 보며 예슬인 마음이 동했나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착같이 일을 했으며 나도 일주일이 되기전에

 

원룸을 구해 주었고 집기들을 준비해 주었더니 이런저런일들에 감동을 하고선 흥부네집

 

제비처럼 그 후로 그녀 친구들을 7명이나 더 데려 왔었다.

 

그녀는 그렇게 내곁에 4년이나 있었고 나를 사회에서의 엄마라며 지금은 그녀들은 나를

 

왕언니라 칭한다.

 

예슬인 대학교를 다시 복학했고 졸업도 했다.

 

가끔은 레이싱걸도 했고 해운대에서 행사가 있을때면 행사도우미도 한다.

 

지금은 디자인업에 종사하며 해운대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매년 어버이날이면

 

그녀들의 친구와 케익과 선물을 준비해 온다.

 

그녀들의 친구중엔 결혼한 친구들도 있으며 나는 축하금만 보냈다.

 

그녀들의 숨기고 싶은 과거의 한사람이였으니....

 

예슬이를 포함해서 총 8명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목표가 분명하고

 

얼굴만큼이나 마음이 고운 아이였다.

 

단 한번도 내가 인상 쓸일을 만들지 않았으며 호기심에 친구들과 어울려 클럽이나 호스트바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여자로서는 오지말아야할곳을 왔으며 이렇게 더러운 돈을 벌어서

 

그런곳에가서 낭비할거면 당장 그만두라고 타이르면 이내 말귀를 알아듣고 자제를 했다.

 

나는 그녀의 돈 관리를 해주었으며 적금통장을 만들어 그녀에게 목돈을 만들어주었다.

 

그녀는 복학을 하기위해 떠나는날 나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여러개의 적금통장을 건네주었더니 그녀는 대성통곡을 했었다.

 

그 8명중 두명은 내손을 벗어나서 더이상 통제할수없는 나락으로 빠져버렸고 나머지는

 

다들 나름 자기직업을 갖고 명분있는 삶들을 살아간다.

 

비록 나도 생계수단때문에 이런일을 했었지만 내곁을 스쳐간 수 많은 여인들을 지켜보며

 

또 그녀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많은 공감과 내자신을 다시 한번 다잡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게도 딸들이 있으니....

 

결손가정을 만들어버린 그 부모들과 나역시도 똑같은 부모였으니...

 

이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지금은 다들 삼십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부모라는 그늘이 참으로 큰것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을 해줬다.

 

주위가...

 

환경이 얼마나 인생의 갈림길에서 큰 자리를 잡고 있는지를...

 

진흙속에도 진주가 분명히 있다.

 

흔하지 않을 뿐이고 찾기가 어려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