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언제 방문해도 항상 낯설다.
지금처럼 무거운 숙제를 가져오는 날은 더욱 더…….
소영은 엄마에게 당분간이란 말로 입원을 권유했다.
정말 당분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하지만 당분간이 될 수 없다는 걸 소영은 직감으로 알고 있다.
엄마를 휠체어 태운 전담간호사는 소변검사, 혈액검사, 혈압체크 등 기본검사부터
가슴통증을 호소하는 유방정밀검사까지 환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친절을 베풀고 있다.
덕분에 엄마의 검사는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다.
아마도 이 곳이 소영의 회사 지정병원인데다 그녀의 편집장이라는 직함이 한몫 했으리라.
그 동안 소영은 병실에서 엄마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
소영의 손길이 정성스럽다.
검사를 마친 엄마가 전담간호사가 밀고 오는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병실로 들어오고 있다.
소영은 안면 있는 간호사에게 감사하다는 무언의 목례를 하곤 엄마를 침대에 눕힌다.
엄마는 검사만으로도 힘에 부치셨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어 버린다.
잠든 엄마를 한참 보던 소영이 또 한번 눈물샘을 찍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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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은 힘든 숙제검사를 받는 아이마냥 초조한 마음으로 담당의사 앞에 단정히 앉아있다.
엄마의 담당의사는, 소영이 여성주간 즈음에 늘어나는 여성유방암 초기발견이라는 테마로
인터뷰를 했던 선생님 이다. 그게 연이 되어 그 이후로도 가끔 만나 저녁식사나 술 한잔으로
의기투합하던 사이라, 숙제검사의 무게는 배가 되는 것 같았다.
소영은 준비됐다는 듯 의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가슴이 빠른 속도로 두 방망이질을 한다. 심장이 바깥으로 튀어 나올 것 같다.
"어머님께 빨리 말씀 드려야겠네. 한시가 급해.
어머니는 지금 유방암 말기에다 폐와 뼈까지 전이 된 상태야…….
정편집장. 자네한테 정말 실망했네. 어떻게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보고만 있었나.
똑 부러지게 일도 잘하고 알만한 사람이……. 저 정도면 통증도 만만치 않으셨을 텐데."
담당의사는 자신의 일인 냥 힘들어하며 빵점 짜리 답안지로 소영을 질책한다.
소영은 담당의사의 얼굴을 차마 쳐다 볼 수 없어 애먼 책상만 뚫어지게 보다 겨우 힘든 입을 땐다.
"그럼……. 엄마는……. 수술…… 하면……사실 수는……있으신 거죠? 흑."
소영은 참으려 했으나 결국은 울음으로 마무리를 해버린다.
"글쎄……. 일단 열어봐야 알겠지만…….
자네가 남 같지 않아서 솔직히 얘기하는데……
실은 어머님 같은 경우 좋은 예우가 없었네…….
그래서 내가 더 화가 난단 말이야.
청상에 과부가 돼 자네만을 위해 사신 엄마라고 그 사랑을 다 갚으려면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삶아드려도 못다한다고 했던 정편집장이 아니었나 말이야.
그게 말 뿐이었나? 일년에 한번씩 정기검진이라도 받게 해 드렸으면
이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 아냐……. 휴……. 어쨌든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해 봐야지.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일단 열어보고 해보는데 까지 해보자고. 힘내."
"저, 선생님 엄마께는 아직 말씀 드리지 말아 주세요. 조금만…… 시간을…… 흑흑흑."
소영은 자신이 한심스럽고 엄마가 불쌍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가시방석 같은 자리를 뒤로하고 도망치듯 방을 뛰쳐나온다.
병원 마당은 마지막 여름을 붙잡고 싶은 뜨거운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몸부림 치고 있다.
소영은 발가벗겨진 채 광장에 내 몰린 아이마냥 창피함에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래도 견뎌야 한다. 엄마를 위해서. 소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닦으며 생각을 가다듬는다.
그리곤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한 채 힘없는 발걸음을 엄마가 있는 병실 쪽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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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언제부터 그렇게 서 계셨는지 문을 등지고 창가에 서서
엄마는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의 사랑 클레멘타인을 부르고 계신다.
신기하게도 엄마의 클레멘타인엔 사투리가 섞여있지 않았다.
소영은 문 밖에서 흐느끼는 듯 슬프게 들려오는 엄마의 노래를 듣고 있다.
엄마의 클레멘타인은 끝이 없는 도돌이표를 찍고 있고
그 도돌이표를 따라 문 밖의 소영도 슬픈 듯 흐느끼는 작은 목소리로
엄마의 클레멘타인을 따라 부르고 있다.
노랫소리 따라 소영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
살며시 감은 눈 너머로 바닷가 노을 속에 세 사람의 희뿌연 실루엣이 점점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