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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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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화해의 시간~~


BY 날개내린 백조 2014-11-01

'띠띠띠띠띠. 띠롱. 삐리링. 철컥'


그때 오피스텔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엄마는

소영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킬까봐 바닥을 훔치던 걸레를 들고 욕실로 숨어 들어간다.


"엄마, 엄마. 엄마……. 방에 계시나?"


 소영이 안방 문을 열려는 순간 막 세수를 마친 듯한 모습으로 수건을 목에 두른 엄마가
깨끗하게 빤 걸레를 들고 욕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고 있다.


"무땀새 어매를 그라고 찾아쌌냐. 꼬라지 부리고 나갈적인 언제고.

느그 어매 안 디지고 여그 살아있응께 그만 불렀싸야.

글고 가시나 혼차 사는 집구석이 이게 뭐시여.

구석구석 뭔 놈의 때꼬장물이 이라고 허벌난겨……. 쯧쯧쯧."


불과 몇 시간 전에 악다구니를 퍼붓던 소영이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의 친근한 채근에도 겸연쩍은 미소만 띠고 아이스크림 한 통을 건넨다.

차마 미안하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 탓이리라.


"자, 여기."


"요거이 무다냐?"


"분명 온 집안을 뒤집어 엎고, 쓸고 닦고 했을 텐데 더울 것 아냐. 엄마 좋아하는 딸기 맛이야."


"썩을년. 아까맹키로 꼬라지 부렸쌈사롱 소락대기 질렀쌀땐 꼴도 배기실트만,

그려도 어매 헌티 미안은 혔는갑네.

어디, 우리 소영이가 사가온 거이 월매나 맛난지 한번 먹어 볼까나?"


엄마는 선물 받고 기뻐하는 어린아이 마냥

크고 환한 미소와 한껏 달뜬 얼굴을 해선 다리를 쭉 펴고 철푸덕 앉아서

소영이 사온 딸기 맛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술 떠 입으로 가져간다.


"워매, 맛난거. 징하게 맛나네, 오사게 맛나. 히히히.

느그 아부지가 사다준 아시깨기는 허고는 쩨비도 안된당께.

아야 니도 한 숟갈 떠봐야. 거짓부렁 아니랑께."


엄마는 조금 전 자신의 몸뚱어리를 옭아매던 고통을 모두 잊은 듯

소영이 사온 아이스크림을 생전 처음 먹어본 사람처럼 감탄을 하며 맛을 음미 하고 있다.

소영은 예순다섯 나이에 흰머리 성성한 노인네가 서른일곱의 노처녀 딸내미 앞에서

간살스런 웃음을 흘리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어쩜 저리 귀여울까 생각하며

엄마의 입 속으로 자맥질하는 숟가락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엄마는 아직도 아버지가 생각나? 벌써 30년인데……. 노인네가 기억력 하나는 알아 줘야 돼."

 

"아따. 금메 느그 어매 대그빡이 보통 대그빡이 아니여.

공부를 했으믄 판사, 검사도 문제 없었을 것이랑께.

소싯적이 핵개 선상님도 어매 갈킬적이 한개를 갈캐주믄 열개를 알아묵는다고

야물고 다구지다고 했쌌었당께.

아야, 소영아잉? 글고봉께 니가 어매 대그빡 닮아 그라고 야물딱지게 공부도 잘혔는갑다.

안그냐? 기여 아니여. 어매 숨 넘어강께 싸게까게 말해 보드라고, 그라제? 맞제?"


엄마는 칭찬받고 싶은 아이 마냥 쇼파에 앉아있는 소영의 무릎을 흔들며 대답을 재촉한다.


"어휴, 노인네 자랑 질 또 시작됐네, 또 시작됐어.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네요. 항복, 항복.
호호호. 지당하십니다, 양말숙 여사님. 호호호 호호호."


두 모녀는 아침의 전쟁을 잊은 듯 즐거운 수다로 기분 좋은 오후를 지나고 있다.


"근디 소영아. 니는 시방도 겔혼생각이 읎는것이여? 어메가 언적꺼정 니 저태 있는것도 아니고.
숭한 시상 기집 혼차 사는거이 보통일이 아니랑께."


"엄마는 별……. 엄마가 80이유, 90이유. 이제 예순다섯이야.

요즘은 예순다섯은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해.

아마 하느님도 엄마처럼 시끄러운 노인네는 귀찮아서 늦게 늦게 오라고 하실걸?
호호호 호호호."


"워매, 속창시 읎는 것. 어매가 80, 90꺼정 니 뒤치닥거리나 하고 있을성 싶냐? 아나 떡이다."


엄마는 바닥에 있던 걸레를 들어 소영에게 던진다.

엄마 손을 떠난 걸레는 정통으로 소영의 얼굴에 날아 꽂힌다.


"엄맛!"


소영은 쇼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마디 고함을 지른다.


"아야, 속 시끄럽다잉. 니 일잉께 니가 알아서하겄제. 인자 나 일은 끝났응께 집에 갈란다."


"벌써? 내가 차로 모셔다 드릴 테니까 저녁이나 먹고가.

노인네 혼자라 분명히 제대로 챙겨 드시지도 않을 텐데.

오늘은 고생하셨으니까 내가 몸보신 시켜 드릴께."


"씨알머리도 안맥히는 소리 허덜말고 앙거 있어라잉. 지름은 땅에서 거져 솟는다냐? 다 돈이여.
그라고 어매는 혼차 싸드락싸드락 꼼작거리는 것이 속창시 편탕께. 헛지꺼리 말아라잉?"


소영의 말에 정색을 하시며 엄마는 꾸역꾸역 반찬 보따리를 챙긴다.

소영은 아무 말 없이 조용하게 움직이는 작고 여린 늙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짠한 생각에 가슴이 뭉클 한다.
그렇게 조용히 보따리를 챙기신 엄마가 일어 나시다 휘청 하더니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