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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사는 방법


BY 문해빈 2014-03-12

 

 

 

                3. 그 남자가 사는 방법

 

 

 

나에겐 형이 있다. 두 살 차이가 나는 형은 장남이다.

 

 

 

장남의 존재는 아직까진 한국사회에선 절대적이다.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장남으로 태어났다는 자체만으로 항상 다 누리고 살았으니까. 장남! 장남은 무엇일까. 장남은 어떤 존재감일까. 장남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남과 차남의 거리감이 너무나 멀고 달랐기 때문이다.

 

 

 

 

***

 

 

형과 나는 모든 것이 달랐다.

 

 

 

우선 장남과 차남이란 것부터 달랐고, 대접받는 것도 차이가 났다. 엄마는 형이 장남으로 태어났다는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해 주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값비싼 물건이라고 해도 당장 사 들고 와 형에게 주었다. 그 예로 장난감을 들 수 있었다. 각종 장난감들은 언제나 형 앞에 놓여 있었으며 형을 웃게 했다. 형은 늘 바뀌어가는 장난감들을 보면서 웃고 있었으니까.

 

 

 

 

이것을 만지다가, 저것을 만지다가. 형은 개구쟁이처럼 들어올리기도 했고, 또 어딘가로 던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발로 밟는 행동도 서슴없이 했으며 또 해부를 하기도 했다. 형은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었다. 지치고 싫증이 날 때까지.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장난감들!

 

 

 

난 그냥 쳐다볼 뿐이었다. 많은 장난감이었지만 난 먼저 만질 수 없었다. 형이 먼저 가지고 논 후에 만질 수가 있었으니까. 그것도 형이 지겨워 질 무렵이나 되어서 만질 수 있었고, 갖고 놀 수 있었다. 형의 허락이 떨어진 후에.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난 언제나 형의 뒤에 서 있었다. 앞에서 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형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누리며.

 

 

 

형은 단 한 번도 거절당하거나 손해 보는 법이 없었다. 형에게 있어 인생은 탄탄대로 그 자체였으니까. 말 한 마디에 다 원하고 살았다.

 

 

 

형은 우월주의자였다. 자신이 가장 잘났고,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보다 잘난 사람은 없었으니까.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집에서든. 더 나아가선 여자들에게도. 형은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고,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사귀는 여자들은 형에게 다양한 선물을 해 주었고, 형은 자랑삼아 얘기들을 했다. 이건 누가 선물한 것이고, 이건 또 누가 선물한 것이라고. 필요하면 가지란 말까지. 난 가지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닌 여자한테 받은 선물을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자존심! 나에게도 자존심은 있었다.

 

 

 

 

***

 

 

대학을 들어간 형은 돈의 씀씀이가 달라졌다.

 

 

 

 어린 시절에는 그나마 작은 것들이 전부였다면 청년이 된 후로는 돈의 크기가 달라져 있었다. 유명 상표가 붙은 옷은 기본이었으며 신발도 유명한 제품만 신었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형이 아니어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유명 회사 제품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최고의 제품은 아니어도 남들이 하고 있는 것은 사용하고 있었다. 그건 보편적이라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형은 지금까지 자라면서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진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형은 거절당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고, 양보하는 법도 몰랐다. 무조건 가져야 했고, 누려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어느 날, 갑자기 형은 엄마에게 코를 성형해 달란 말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축구를 하다가 다친 코는 외관상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였는데 본인이 느끼는 형태는 달라 보였던 것 같았다. 엄마는 얼굴을 왜 손대려 하느냐며 반대를 했지만 이미 자신의 강한 성격대로 자란 형을 이길 수는 없었다.

 

 

 

 

요즘은 얼굴도 실력이며 높은 점수를 먹고 들어가기 때문에 교정해야 한다고 했다. 말이 좋아 교정이지 형은 결국 성형을 한 것이다. 축구하다가 문제가 생겼다는 코가 핑계거리였는지, 진짜 그 문제로 겹친 것인지. 형은 코 수술을 했고, 예전보다 세련된 코가 되어 있었다. 코는 예전보다 조금 더 높았으며 그로 인해 잘난 얼굴은 더 빛이 나 있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좋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백화점에 가서 좋은 옷을 사 입고. 거기다가 얼굴까지 성형한 형은 빛이 났으니까. 그 형을 바라보는 나는 뒤에 서 있을 뿐이었다.

 

 

 

 

미묘하게 변한 형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저 보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형이 하는 일에 간섭을 한 적도 없었고, 끼어 든 적도 없었다. 형은 우리 집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도 많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큰 아버지를 시작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까지. 어딜 가나 형의 위치는 확고했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이 된 지금까지.

 

 

 

 

***

 

 

 

“차는 안 된다.”

“요즘엔 필수용이란 말이에요.”

 

 

 

 

엄마와 형의 실랑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엄마는 형이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서 반대하는 것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코를 성형할 때도, 유학을 보내달라고 할 때도, 지금처럼 차를 사 달라고 할 때도. 형은 점점 많은 것을 원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큰 것들이었다. 단순히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아닌 비싼 것들이었다. 형은 이미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2학기 등록금 내야 한다. 네 등록금과 네 동생 등록금까지 내려면 빡빡해서 차를 사 줄 여유가 없다.”

“아직 등록금도 준비하지 않았어요? 그건 당연히 준비되어 있는 거 아니에요?”

“네 등록금, 만만치 않다. 그리고 우리 집은 둘이 대학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한 학기 등록금을 내는 것이 쉽지도 않고.”

 

 

 

그 말에 반박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내 등록금에 대해선 같이 취급하지 말라고. 나는 국립대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등록금에 대한 부담감이 적었다. 한 번은 장학금까지 받았으니까. 돈이 전혀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사립대에 다니는 형과 같이 계산되는 것은 싫었다. 나는 전적으로 형과 다르게 살고 있었다.

 

 

 

형이 쓰는 돈의 5분의 1도 쓰지 않고 있으니까. 형은 오토바이도 타고, 좋은 자전거도 타고. 거기다가 유행에 따라 휴대폰도 쉽게 바꾸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 오토바이도 없고, 자전거도 없고. 휴대폰은 형이 쓰던 것을 사용 중이다.

 

 

 

또 나는 시간만 나면 우리 집의 생명을 쥐고 있는 돼지국밥 가게에 와서 일을 도우고 있었다. 아르바이트가 될 수도 있었고, 등록금에 대한 계산법이었다. 드러내진 않아도 이런 식으로 등록금을 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엄마의 허리가 아프다고 할 무렵부터.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를 도우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나는 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쉽게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을. 장사가 쉽지 않다는 말을 간간이 들었다. 막상 직접 경험하면서 느끼고 있었기에 돈을 더 쓸 수가 없었다. 나름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 곳이었지만 한 그릇을 팔기 위해 두 사람은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를 장만하고, 삶고, 맛을 내고. 그 과정들을 보았다.

 

 

 

 

밑반찬까지 만드는 것도. 또한 나이 든 도우미 아줌마들을 관리하는 것까지. 일이 많다보니 아줌마들은 자주 바뀌고 있었다. 이런 저런 과정들을 보고 겪으면서 함부로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이것이 아니어도 나는 돈에 대해선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내가 필요로 한 것을 형이 먼저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같은 남자였다. 형이 자전거를 타고, 오토바이를 타고. 그러다가 싫증이 나서 마당에 처박혀 있으면 내 차지가 되었다. 난 뒷전이었다. 형의 것을 언제나 사용하고 있었다.

 

 

 

옷이든, 가방이든, 휴대폰이든.

 

 

 

전부 형의 것을 사용했기 때문에 굳이 새 것을 사 달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필요로 하는 것이 생겨 엄마에게 얘기를 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형이 쓰던 거 쓰면 되잖아. 형이 입던 거 입어. 아직 새 것이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포기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절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포기란 단어에 익숙해 져 있는데 형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형은 겪은 적이 없었으니까. 형은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

 

 

형은 모른다. 포기한다는 것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런 방법을 형은 모르는 것 같았다. 한 번 마음먹으면 무조건 가져야 하니까.

차를 사 달라고 한다. 차의 가격이 얼마인데?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마음 같아선 주먹으로 한 대 때려 주고 싶었다. 내 눈에 형은 잘못 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큰 부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집도 아니다. 적당히 사는 집이다. 그런데 형은 부자로 살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부자로 사는 사람은 형 뿐이었다. 형은 각종 종류대로 다 가지며 살았다.

원하는 물건들은 기본이었고, 어학연수도 갔다 왔다.

 

 

 

기분에 따라 여행도 다니고, 자전거도 바꾸고. 형의 부자 인생으로 인해 나머지 사람들은 서민층으로 살아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계절이 바뀌어도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신발조차도 바뀌지 않았다. 찢어지거나 앞창이 벌어질 정도가 되면 겨우 살 뿐이다. 그것도 시장에서 싼 것으로.

 

 

 

 

내 눈에는 보였다. 두 분이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오직 자식만 위한다는 것을. 자식은 최고로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두 분은 형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 놓을 사람이었다. 형이 원하는 것은 다 해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형은 모른다. 엄마와 아버지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얼마나 피곤해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가게에 나와서 도운 적이 없으니까. 형은 가게에 나오는 것을 싫어했다.

 

 

 

방학이 되어도, 주말이 되어도 가게엔 나오지 않았으며 다른 계획을 짤 뿐이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어학원을 다니거나. 또 아니면 음악을 들었다. 형은 음악을 좋아했으며 즐기었으니까. 형은 가장 멋진 인생을 살고 있었다. 세 사람의 희생을 밟고서. 거기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같은 자식이었음에도 나는 누릴 수 없었으며 감히 앞에 서지를 못했다. 모든 것은 형의 것이었으니까. 그 부분에 있어선 화가 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화가 났고, 답답함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왜 나만 참아야 하는 것인지, 누리지 못해야 하는지. 왜 형만 생각해야 하는지. 장남!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현대사회에서 장남이 하는 게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었다.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의식들이 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집은 그 틀에 묶여 있었다. 오직 장남이 전부였다. 2년 먼저 태어난 형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버지보다 엄마는 유독 형을 사랑하고 있었다.

 

 

 

깊고도 무조건 적인 사랑에 질투조차 할 수 없었다. 감히! 엄마만의 사랑을.

 

 

엄마는 형을 너무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마음 같아선 자동차도 사주고, 유학도 보내 주고 싶을 것이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버는 돈은 대부분 형이 다 사용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엄마도. 형은 한 달에 자신이 쓰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는 하는 것일까. 형은 진짜 돈을 많이 썼다. 계산이 안 될 정도로. 아무튼 많은 돈을 썼으니까.

 

 

 

그런 형에게 엄마가 천천히 하나씩 얘기를 하고 있었다. 차는 안 된다고 했으며 등록금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 학기 들어가는 등록금이 만만치 않다고……. 순간 난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맞는 말이다. 한 학기 등록금이 장난은 아니니까. 그것도 사립대학의 등록금이라면 엄청났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 안 된다, 형편이 어렵다, 빡빡하다는 말도.

 

 

 

진작 말해야 했고, 진작 가르쳐야 했다. 경제부분을, 남을 생각하는 부분까지.

 

 

 

***

 

 

 

늦었다. 많이 늦었다.

 

 

몸이 성장해 어른이 된 남자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엄마는 건강하고 잘생긴 젊은 남자를 잘못 가르친 것이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형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엄마였다. 아버지의 책임도 있지만 전적으로 형을 철없는 남자로 만든 것은 엄마였으니까.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형을 어린 남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형은 몸만 자랐을 뿐 마음은 어린 아이로 머물러 있었다. 늘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고.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무조건 사달라고 한다. 가정경제가 어떠한지도 모른 체.

 

 

 

 

등록금은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끼어들려고 하다가 참았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난 동생이니까. 두 사람도 야단이란 것을 치지 않는데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엄마, 요즘 와서 자꾸 궁상맞아 지는 소리만 하는 거 알고 있죠?”

 

 

 

느닷없는 형의 말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엄마를 향해 궁상맞아 진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궁상이라니! 뭔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은 다물고 있었다. 그 다음말만 나오지 않았다면 난 끝까지 참았을 것이다.

 

 

 

 

“차는 할부로 사면 큰 부담은 없을 것이고, 등록금은 당연히 엄마가 해 줘야 하는 거잖아요. 지금까지 등록금에 대해선 말이 없다가 이제 와서 왜 생색인지 모르겠네요.”

 

 

 

생색이라는 말까지 한다. 생색이라니! 한 학기 등록금이 얼마인데? 차가 얼마나 비싼데?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차를 할부로 산다고? 그러면 부담이 없다고? 차의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는 있어?”

“대충 알아봤는데 중형 정도로 해서 할부 기간을 잘 정하면 부담 없이 살 수 있을 거 같아.”

 

 

 

어린 소년처럼 말하는 형의 눈빛은 걱정이나 고민 따윈 없었다. 단순한 눈동자는 그저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 했다.

 

 

 

“할부 기간을 길게 잡으면 부담이 없다고?”

“그럴 거 같아.”

“그렇다면 형이 벌어서 사.”

 

 

 

“뭐?”

“이젠 어른이잖아. 그러니까 형이 벌어서 사라고. 엄마한테 그만 의지하고. 엄마도 살아야지. 언제까지 아들 뒷바라지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거잖아. 병원에도 다니고…….”

“엄마, 어디 아픈 거야?”

 

 

 

말이 끊어졌다. 형이 말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또 심장도 좋지 않고.”

“그건 이미 만성이 되어 있는 거잖아. 약 먹고 있는 걸로 아는데. 엄마, 약은 계속 먹고 있는 거죠?”

 

 

 

형의 말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은 먹고 있으니까. 그리고 형의 말처럼 만성적인 병이니까. 하지만 형의 눈빛이나 말투는 너무나 사무적이었고 딱딱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다니! 점점 화가 치밀었다.

 

 

 

 

효! 그게 어떤 것인지 나도 잘 모른다.

 

 

 

어떻게 하면 부모를 위하고 부모한테 잘 하는 것인지. 내가 아는 효란 것은 기본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큰 것을 생각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면 그것도 하고, 가족 중 누군가 아프면 관심 있게 살펴볼 줄도 알고. 가정 경제가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눈으로 보고. 내가 생각하는 효는 이 정도였다. 아직까진 난 이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더 나아가선 부모한테 큰 도움을 바라지 않은 채 대학과정을 끝내고 직장을 잡는 것이다. 그건 시간이 흘러야 한다. 졸업장을 받아야 하는 거니까.

 

 

 

 

내가 생각하는 효는 그런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모두 맞는 것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형의 방법은 틀렸다. 형의 가족사랑은 잘못된 것이다. 형은 가족을 몰랐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약을 잘 먹고 있느냐고? 이미 만성이 되어 있지 않느냐고?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는 아니지? 병원에 엄마를 모시고 간 적이 없지? 엄마의 다리가 얼마나 아픈지 모르지?”

 

 

 

 

난 가끔 따라갔다. 다리가 너무 아파 혼자 걷지 못할 때, 또는 정기검사를 받을 때.

 

 

 

“너, 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왜 갑자기 잘난 척을 하는 건데?”

 

 

 

 

점점 말이 이상하게 나오자 형은 양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그렸다. 누군가로부터 훈계가 되고 있었으니까. 그 누군가는 동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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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으로 이어지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