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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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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석과 이지민


BY 문해빈 2014-03-05

  ***

 

 

 

 

오빠는 명절이면 집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엄마가 기본적으로 만들어 놓은 음식을 먹기도 하고, 또 라면도 끓여 먹는다. 그러면서 텔레비전에서 하는 영화를 하루 종일 보는 것 같았다. 우리들이 올 때까지. 오빠는 무슨 생각으로 명절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으로 가기도 하고, 또 아니면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오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 있었고, 단순한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오빠는 설날이 어떤 기분인지, 추석이 어떤 기분인지. 알기는 아는 것일까.

 

 

 

텔레비전에서 보여 지는 것이 아닌 가족들이 모여 나누는 기분을 알고는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명절에는 모이는 날이다. 싫든, 좋든. 잠시 만남을 나누는 사이일지라도. 그런데 오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24살이 되는 날까지 오빠는 명절을 모른다. 설날에는 어떻게 해야 하며, 추석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으니까.

 

 

 

 

난 묻고 싶었다. 오빠를 낳아 준 친아빠 집에 가고 싶지 않느냐고?

 

 

 

오빠는 한 번도 친아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묻지 않았으니까. 집을 나간 적도 없었으니까. 있긴 있었다. 군대 때문에 나간 적이 있었으니까. 군대를 가기 위해 집을 비운 시간 말고는 집을 나간 적이 없었다. 오빠는 이 집에서만 머물었다. 혼자가 되어 있을 때도 이 집을 지켰고, 깨끗하게 정리를 했다. 혼자 먹은 밥과 반찬들은 언제나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으니까.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오빠는 깨끗한 상태에서 우리들을 맞이했다.

한국 사회가 다 치르는 행사를 마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으며 오빠가 끓여 준 커피와 코코아를 마셨다. 이젠 나도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해도 오빠는 들어주지 않았다. 아직은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세 사람은 커피를 마셨고, 난 코코아를 마셨다. 코코아의 맛이 좋았다. 오빠가 만들어 준 것은 언제나 맛있었다. 코코아든, 라면이든. 떡볶이든. 오빠는 엄마를 대신해서 음식들을 제법 잘 만들었고 난 남기지 않았다.

 

 

 

“어떻게 지냈어?”

 

 

 

 

명절이 지나고 돌아와선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어떻게 지냈냐고. 이젠 묻지 않아도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난 습관처럼 물었다. 늘 궁금했다.

 

 

 

“밥 먹고, 영화보고.”

“그게 전부야?”

“운동도 하고.”

“무슨 운동?”

 

 

 

“자전거도 타고, 달리기도 하고.”

“오빤 볼링이나 포켓볼을 할 줄 알아?”

“당연하지. 그걸 못하는 남자가 어디 있다고.”

“정말? 그런데 왜 나는 가르쳐 주지 않아?”

“벌써 배워 뭣하게? 조금 있으면 하게 될 거잖아.”

 

 

 

“사촌들과 볼링을 쳤어. 포켓볼까지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어.”

“하고 싶어?”

“하고 싶어.”

“아빠와 엄마가 아시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텐데. 공부에 방해 된다고.”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고 가르쳐 주면 되잖아. 가끔씩.”

“가끔이란 시간이 너한테 나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겠지? 엄마는 너의 하루 시간을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볼링을 치고, 포켓볼을 해? 자전거도 겨우 타고 있는데.”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탔다. 그것도 주말에만. 평일에는 잠 잘 시간도 부족했으니까. 오빠와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공원을 도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사촌 오빠와 했던 볼링이 재미있어 더 하고 싶었다. 포켓볼도.

 

 

 

“뭘 한다고?”

 

 

 

방에서 나온 엄마의 목소리에 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집 전체를 울리도록 했다.

 

 

 

“머리 회전을 위해 볼링이나 포켓볼을 좀 하려고.”

 

 

 

굽히지 않고 바로 말했다. 더듬거리면 안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진짜 배우고 싶었다.

 

 

 

“머리회전? 수학 문제를 풀어. 머리가 잘 돌아갈 테니까.”

“휴식도 있어야지. 내가 기계야? 수학만 풀고 있게.”

“잠을 자던지. 대학부터 가. 이왕이면 좋은 대학으로. 그러고 나서 해.”

“대학도 갈 거야. 그렇지만 할 건 하고 싶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

 

 

 

엄마의 목표는 내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서 열심히 공부를 해 좋은 직장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인생이 꼬여 있었기 때문에 나를 두고선 철저히 교육시키고 싶어 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엄마는 나를 통해 보상을 받고자 하는 것 같았다. 이미 오빠는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 가 있었다. 그렇지만 성이 강 씨였기 때문에 나와 분리된다는 것을 알았다.

 

 

 강영석은 강영석이고, 이지민은 이지민이었다.

 

 

 

엄마는 두 자식을 두고 있었지만 연관되는 것이 달랐기 때문에 어느 쪽도 포기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두 잘 키우고 싶었으니까. 그 방법이 대학이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잘 산다고 믿고 있는 엄마였다. 엄마는 자신의 방식으로 교육을 시킬 뿐이었다.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와 달리 난 불만이었다.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전부 성공하고 잘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것도 엄마가 생각하는 교육계, 법학계란 곳도.

 

 

 

이미 그쪽도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자로서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난 아닌데. 난 전혀 생각이 없는데. 엄마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 같았다. 멋지게 나오는 여자들의 포장된 모습만 보았을 것이다. 엄마는 그 속에 날 넣고 있었을 테니까. 엄마는 엄마가 만든 그림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고정된 것! 일반적인 것이 아니어도 할 것은 많았다. 엄마만 인정하지 않았다. 엄마는 오래도록 이어져 온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난 그 방식에서 나오고 싶어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른들이 일반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닌 창작적인 것이었다. 연극영화과를 지원할 계획이다.

 

 

 

대학! 가긴 가야 할 것이다. 다만 엄마가 원하는 직업과는 먼 것이었다. 내 꿈은 무대에 서는 것이었고, 열정적으로 연기를 하고 싶었다. 어느 날 그러고 싶었다. 아무도 모른다. 언제나 가까이에 있는 오빠까지. 오빤 착하기 때문에 엄마에게 이야기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말하지 않았다.

 

 

착한 오빠는 착한 효자일 테니까.

 

 

 

 

아직은 나 혼자 꿈을 꾸고 있는 중이었다. 속박, 구속으로 인해 난 더 많은 꿈을 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정해진 시간과 규칙으로 인해 자유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자유는 더 커져갈 뿐이었다.

 

 

 

“들어가서 공부해. 많이 놀았지?”

 

 

 

엄마는 혼자 머리를 굴리고 있는 딸의 눈동자를 본 모양이다. 더 이상 다른 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 같았다. 들어가서 공부를 하라고 한다. 공부! 공부! 들을수록 머리가 아프다. 하기는 해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한 시간이라도 다른 것들이 하고 싶었다.

 

 

 

 

***

 

 

 

영화 제목은 ‘수상한 그녀!’

 

 

 

수상한 그녀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명절의 기분을 느끼고 싶은데 무턱대고 들어가 공부를 하라고 한다. 의자에 앉아 있는 다고 공부가 될 수는 없었다. 어른들에게 받은 돈으로 무엇인가 사고도 싶었고, 계속 그 놀이가 하고 싶었다. 볼링과 포켓볼을. 공들이 자꾸 눈앞을 아른거리게 하고 있을 때 오빠가 나가자고 했다. 영화를 보자고. 오빠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일 것이다. 가장 좋은 시간에 오빠는 영화란 것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무대에 서고 싶단 생각도 영화 때문일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또 시간이 맞으면 오빠와 난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참 좋은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을 마음껏 휘어잡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사촌 오빠와 언니와도 영화를 봤지만 지금 보는 영화의 재미는 한층 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어찌 보면 내 나이와 맞지 않는 영화이기도 했지만 뭔가 확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슬프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어른들의 생각은 언제나 이해불가인 것이 많았다. 말과 행동이 가끔 빗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것도 빗대서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 눈물을 먼저 보이고 있었다. 슬픈데 웃고 있었고, 웃기는데 울고 있었으니까.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어머니의 삶이란 것은 비슷해 보였다. 우리 엄마랑. 우리 엄마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산다. 그건 똑같았다. 하지만 자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싫었다. 그건 구속이니까. 속박이니까. 자식을 잘 키워 교수란 자리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후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엄마란 존재는 나이를 먹어 갔을 뿐이고, 집에서 소외된 존재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은 다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데 본인만 잘 모르고 있단 사실이었다. 저게 과연 좋은 인생인 것일까. 살짝 오빠에게 묻고 싶었다. 오빠와 영화를 볼 때 최고의 장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 궁금한 점은 언제나 물어볼 수 있단 사실이었다.

 

 

 

“오빤 저 할머니 인생이 마음에 들어?”

 

 

그 순간, 난 보았다. 오빠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함께 살면서 오빠가 우는 것은 보지 못했다. 어둠 속이었지만 볼을 타고 흘러내린 것은 눈물이었다. 오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불쌍한 엄마 생각, 자신을 낳아 준 친아빠 생각. 누구인 것일까. 나이에 비해 의젓한 오빠, 말이 별로 없는 오빠였다. 그 오빠가 울고 있었다.

 

 

 

오빠는 영화를 통해 많이 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인생을 배우고 있는 오빠는 다 풀 수 있단 생각도 들었으니까. 세상에 태어났지만 어느 날 친아빠로부터 버림을 받고, 또 다른 아빠로부터는 선택을 받았지만 완전한 선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고는 있지만 연결되어 있는 가족들로부터는 소외를 당하고 있는 자신이란 존재가 가여웠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었다. 성이 다른 오빠는 한 번도 우리가 모이는 곳에 참석한 적이 없었다. 난 아빠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할아버지한테 얘기를 해서 정식으로 가족이란 이름을 가지게 하면 안 되냐고. 아빠는 그렇게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아빠는 이대로 살자고 했다. 지금처럼.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그건 아니었다. 오빠는 아니니까. 한 번 더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오빠가 조용히 불러 하지 말라고 했다. 거두어 주고 공부시켜 주는 것만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인데 다른 짐까지 줄 순 없다고 했다. 무슨 짐이냐고 했다.

 

 

 

어른들의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단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이 후론 말을 하지 못하게 했고, 난 꺼내지 않았다.

 

 

 

지금 오빠가 울고 있었다.

 

 

 이 영화, 웃기면서도 슬펐으니까.

 

 

젊은 여자 연기자가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 들었는지 모른다. 어른들의 세상과 젊은 사람들의 세상을 잘 비추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이 든 할머니 인생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시대가 그랬을 테니까.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테니까. 엄마는 시대를 떠나 마음대로 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테니까.”

 

 

 

엄마 얘기다. 오빠도 엄마란 존재는 영원히 비켜갈 수 없는 모양이다.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엄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때론 불편하고, 때론 부담스럽고, 때론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렇다고 도망갈 자신은 없었다.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을 아니까.

 

 

 

“나중에 오빠 아내가 저렇게 되면 오빠는 누구를 선택할 건데?”

 

 

 

참으로 잔혹한 질문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질문을 하다니. 그러나 이미 말은 입에서 나와 오빠의 귀에 들어갔다.

 

 

 

“어려운 질문이네.”

 

 

 

오빤 거기까지만 대답을 했다. 더 이상 말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귀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오빠의 눈물을 모르는 척 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오빠와 얘기를 하면서도 고개를 많이 돌리지는 않았다. 오빠가 울었다는 것을 알면 오빠가 더 난감해 할 것 같았다. 눈물은 혼자만의 것이다. 오빠에게 있어선.

 

 

 

 

***

 

 

 

 

“영화는 재미있었어?”

“진짜 재미있었어. 엄마도 아빠와 함께 보러 가. 절대 후회하지 않아.”

“돈 아까워. 그리고 그럴 시간 있으면 잠이나 자겠다.”

 

 

 

영양가 없는 대답을 하는 엄마다. 거기다가 계속 밀려오는 피곤으로 인해 하품을 하고 있었다.

 

 

 

 

“엄마, 하품을 할 때엔 손으로 좀 가려.”

“너도 나이 먹어 봐. 뭐가 먼저인지 알게 될 테니까. 편한 게 최고야.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한다고 해서 창피하단 생각도 들지 않아.”

“나이를 먹어도 여자는 여자의 존재를 지켜야지.”

 

 

 

“그래서 목욕 가잖아. 피부를 광나게 하려고.”

“그건 보이는 것이고, 내면적인 것도 가꿔.”

“돈이 내면이야. 돈이 피부이기도 하고.”

“진짜 속물이네.”

 

 

“속물? 그래. 난 속물이다. 등록금을 준비해야 하고, 집을 옮기면서 빌린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네 학원비도 준비해야 하고. 생활비도 준비해야 하고. 계절이 바뀌면서 옷을 하기 위해 목돈도 준비해야 하고. 더 할까?”

“아니. 내가 졌어.”

 

 

 

 

엄마 말은 다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들어가는 돈이니까. 이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엄마의 모든 것은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날 것 같았다. 내면도 돈이고, 피부도 돈이고.

 

 

 

그렇지만 목욕 갈 때 하품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것도 입을 벌린 상태라면. 머리도 좀 야무지게 묶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무리 피부에 광을 내기 위해 가는 것이지만 자다 일어난 얼굴로 가는 것은 모두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너도 나이 먹어보라고 했다. 나이 먹은 여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란 말까지 하는 엄마는 중년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화장하지 않은 엄마의 얼굴, 자다 일어난 채로 걸어가고 있는 엄마의 얼굴은 싱싱하지 않았으니까. 화장하지 않은 엄마의 얼굴은 초라했고, 겉늙어 있었다. 밖에서 본 엄마의 지금 얼굴은 금방이라도 나이를 더 먹을 것 같았다.

 

 

 

“엄마, 늙지 마. 늙는 것은 진짜 슬퍼. 눈물이 날 정도로.”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사람은 다 늙게 되어 있어.”

“그래도 엄마는 늙지 마. 늙어 간다는 것은 비극인 거 같아.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화장하지 않은 엄마의 초라한 얼굴을 보면서 영화 속 화면들이 떠올랐다. 주름 진 얼굴, 볼품없는 몸까지. 엄마에게서 그런 모습들이 조금씩 보였다.

 

 

 

 

“자세히 보니까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게 보이는 모양이네. 빨리 들어가서 씻어야겠네. 얼굴에서 광이 날 정도로. 빨리 들어가자. 자, 시간은 1시간 30분입니다.”

“우린 1시간이면 되는데.”

 

 

 

아빠는 긴 시간이 불편했는지 시간에 대한 얘기를 했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씻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줄일 수는 없어요. 동네 한 바퀴를 돌던지, 아니면.”

“포켓볼을 치고 있을 게.”

“아빠도 포켓볼을 할 줄 아는 거야?”

“남자라면 다 하게 되어 있어.”

 

 

 

오빠의 말이 빨랐다.

 

 

 

“두 사람, 자주 치는 거야?”

“자주 치는 편이지. 목욕이 끝나면 항상.”

 

 

 

 

그런 모양이었다. 목욕이 끝나면 두 사람은 기다리는 시간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난 몰랐다.

 

 

 

“누가 더 잘하는데?”

“당연히 아빠지. 아빠는 고수다. 난 아직 초보수준이고.”

“아빠한테 배운 거야?”

“당연하지.”

 

 

 

당연하지란 말을 하는 오빠의 눈빛에서 사랑받고 있음이 보였다.

 

 

 

 

서로 간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은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종알거릴 정도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아빠는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서 살았는지 모른다. 남자로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오빠는 그 방법을 받아들이면서 사랑이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들어가자. 시간 잘 지켜요.”

“알았어.”

 

 

 

우리 네 사람은 목욕탕 앞에서 헤어졌다. 만나야 하는 시간을 정해 놓은 채.

 

 

 

 그 시간은 길 것이다. 엄마는 한 번도 1시간 30분 안에 끝난 적이 없었다. 적어도 2시간은 씻어야 했으니까. 2시간동안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 시간동안 두 사람은 계속 놀고 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을 난 몰랐다. 그 시간동안 두 사람은 공놀이에 빠져 있다는 것을. 빨리 20살이 되어 저 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두 남자가 즐기면서 놀고 있는 공의 세계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