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029

강영석과 이지민


BY 문해빈 2014-03-05

 

2.강영석과 이지민

 

 



나에겐 오빠가 있다. 이름은 강영석이다.

 

 

나보다 여섯 살이 많고 키도 엄청 크다. 성격도 좋고, 운동도 잘 한다. 또 오빠는 날 잘 데리고 논다. 나이 차가 많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오빠는 언제나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주었으며 거의 화를 내지 않았다.

 

 

 

오빠는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것은 거절하지 않았다. 거의. 오빠가 아주 많이 아프지 않는 이상에는. 나의 오빠는 착했다. 엄마 말도 잘 듣고, 아빠 말도 잘 들었다. 엄마가 힘들면 직접 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다 버리는 편이었다. 빨래도 모아지면 직접 세탁기에 넣어 돌리기도 했다. 바깥일을 하는 엄마를 도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오빠는 나와 엄마를 일순위로 두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보단 엄마를 조금 더 일순위로 두었을 것이다. 오빠는 엄마를 많이 사랑했으니까. 오빠는 언제 봐도 착하고 말을 잘 듣는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지켜 본 나의 오빠모습이었다.

 

 

 

 

 

***

 

 

 

나의 이름은 이지민이다. 아빠의 성을 따라 시작한 나는 이 씨였다. 우리 집엔 이 씨를 가진 두 사람과 강 씨를 가진 한 사람이 있다. 오 씨를 가진 사람도. 엄마는 오연숙이었다. 아빠는 이광현이었고, 나는 이지민이다. 그렇다면 강영석이란 이름을 가진 오빠는 누구일까.

 

 

 

 

왜 오빠는 이 씨가 아니고 강 씨인 것일까.

 

 

 

 

어릴 적엔 몰랐다. 어릴 적에 나는 그냥 오빠라고 불렀다. 영석오빠! 영석오빠라고. 성은 당연히 이 씨라고 생각했다. 엄마를 향해 엄마라고 하였으니까. 우린 엄마를 향해 언제나 같은 눈빛으로 엄마라고 불렀다. 배가 고플 때도, 간식이 필요할 때도. 준비물이 필요할 때도. 엄마! 엄마라고!

 

 

 

 

그러던 어느 날, 난 오빠와 나의 성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영석이 아닌 강영석이었기 때문이다. 아빠에게 물었고, 엄마에게 물었다. 왜 성이 다르냐고?

 

 

 

아빠가 말했다. 엄마는 한 번 결혼을 한 사람이었고 영석은 거기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빠는 다른 아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할 무렵 아빠는 말했다. 그 아빠는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아빠가 영석의 아빠가 되었다고. 또 궁금했다. 그렇다면 왜 같은 성으로 바뀌지 않은 것인지. 거기에 대해선 엄마가 말을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성을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그대로 이름을 가지고 가는 게 서로 간에 좋을 거 같아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거기까지만 얘기하고 식사 준비를 했다. 평일엔 엄마가 힘들고 지쳐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주말이면 가능했다. 주말 오후부터 엄마는 일요일까지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힘을 내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은 가족이 오붓하게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다. 엄마는 지금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스테이크와 청국장이다. 고등어조림과 감자구이까지. 스테이크와 청국장? 어찌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음식일 수도 있지만 우리들은 취향에 맞도록 먹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빠와 오빠를 위해 스테이크는 가득 놓여 졌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청국장도 뚝배기에 담겨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등어조림과 잘 구워진 감자구이도.

 

 

 

아빠와 오빠는 진짜 고기류를 좋아한다. 거기에 반해 엄마와 난 생선 종류를 좋아한다. 물론 고기도 좋아하긴 한다. 그렇지만 두 남자만큼 많이 먹지는 않기 때문에 엄마와 난 우리만의 요리도 필요했다. 아무튼 오늘은 우리들에게 찾아 온 행복한 날이다. 밖에서 대충 먹는 음식들은 한계가 있었다. 역시 깊은 맛은 엄마만이 낼 수 있었다. 지금은 먹는 것에 집중을 하고 싶었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그건 시간이 가르쳐 줄 테니까.

 

 

 

 

***

 

 

명절이면 엄마는 가장 많이 바쁜 사람이었다.

 

 

 

 

1시간 거리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가장 먼저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엄마가 제일 먼저 갔다. 도착한 엄마는 생선을 다듬고 전을 굽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나물을 무치는 것까지.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는 엄마는 명절이 시작되는 날에는 오전까지만 장사를 한다. 할아버지 집에 가지 않는다고 해도 늦게까지 문을 열어 둘 이유는 없었다.

 

 

 

 

아줌마들을 상대로 하는 옷가게이다 보니까 명절을 앞두고선 오는 손님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쉬지도 않고 바로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엄마는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착한 며느리라고.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말을 가장 잘 들었으니까. 시키는 것이 있으면 그대로 하는 엄마였다.

가끔은 싫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인데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조건 시키는 대로 따랐고,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엄마는 요즘 며느리치곤 착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엄마는 진짜 착했으니까.

 

 

 

 

요즘 세상에도 저런 며느리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 사람은 우리 엄마라고. 우리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한테도 잘하고, 가족들에게도 잘 한다고.

 

 

 

 

 

그러나 거기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엄마가 일찍 간 이유도, 열심히 일을 한 이유도. 다른 곳에 사는 큰 아빠와 막내 삼촌 가족이 늦게 오는 이유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수고가 두 사람에 비해 더 많다는 것을 어느 날 알아버렸으니까.

 

 

 

 

어른이 되면 때론 아이들보다 더 치사해지는 것 같았다. 남의 약점을 가지고 이용하기도 했고, 또 상처를 주기도 했다. 엄마의 큰 약점이라면 약점이 될 수 있는 오빠의 문제를 가지고 두 집은 조금은 편하게 사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아플 때도 엄마가 전적으로 병원에 많이 갔고, 할머니 생신 때도 엄마의 두 손이 더 많이 움직였다. 엄마는 이 씨 집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고 있었다. 큰 엄마와 막내 숙모는 엄마만큼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늦게 와서 엄마가 차려 놓은 밥을 먹고 설거지를 시작하는 것으로 일은 시작되었으니까. 이미 하루란 시간을 두 사람은 일에서 벗어나고 있었는지 모른다.

 

 

 

 

 

엄마는 두 사람의 몫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으니까.

 

 

 

 

 물론 할머니도 쉬진 않았다.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끌어 가는 분은 할머니였다. 그렇다고 하지만 몸으로 움직이면서 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엄마였다.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는 사람은 엄마였고,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묵묵히 일을 할 뿐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난 알았다. 엄마는 나와 오빠 때문이란 것을. 또 아빠 때문이란 것을. 엄마는 더 이상 실패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시끄러워 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이혼녀와 결혼을 하겠다는 아들을 할머니가 말렸고, 옆에 있는 형제들도 말렸을 테니까. 그들은 아빠의 강한 고집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탐탐치 않게 여긴 것 같았다. 아들까지 데리고 온다는 것은. 세상이 바뀌어 재혼 가정도 많고, 아이가 끼여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막상 한 가정의 문제가 되면 하나같이 보수적으로 변하는 모양이었다.

 

 

 

 

아빠의 경우도 다르진 않은 것 같았다. 아빠의 고집으로 가정을 이루고 있었지만 진작 아들 문제는 아직까지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다. 오빠는 명절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 한 번도 참석 한 적이 없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한테는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을 해야지 하면서도 지금까지 말을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너무 늦은 것 같았다. 시간이 너무 지났고, 할아버지의 건강은 더욱 나쁘게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오빠 문제로 인해 할아버지가 쓰러지거나 최악의 상황이 되면 모든 결과는 아빠와 엄마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건 진짜 나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문제로 인해 할아버지한테 나쁜 일이 생기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단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왕따가 된 엄마, 스스로 소심해 진 엄마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었다. 엄마는 진짜 열심히 일을 했다. 명절에는 명절대로,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면 수발까지. 엄마는 무슨 일이든 다 했고,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지금도 엄마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하라고 한 수정과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명절마다 만들어 온 수정과는 엄마에게 넘어 가 있었고, 맛은 엄마가 잘 맞추었다. 그래서 하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맛을 잘 내니까.

 

 

 

 

***

 

 

 

“왜 엄마만 설거지를 하고 있어?”

“막내 숙모는 과일을 깎고 있잖아.”

“그렇다면 둘째 숙모는 뭘 하는데?”

“둘째 숙모? 그러고 보니 보이지 않네.”

“둘째 숙모는 왜 일을 하지 않아? 엄마만 설거지를 하고 가스렌즈 청소까지 해야 하는 건데?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둘째 숙모는 언제나 설거지를 하지 않고 있어. 엄마한테 다 넘기고. 진짜 얄미워.”

 

 

 

 

 

사촌 언니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난 참았을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다고? 설거지는 제 엄마만 한다고? 진짜 설거지는 누가 더 많이 하는데? 저녁 무렵에 와서 겨우 설거지만 할 뿐이었다. 갖은 일은 엄마가 다 했다. 나물을 다듬고 데치는 게 쉬운 일인가. 생선을 종류대로 굽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인가. 수정과를 입에 맞도록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인가. 다 만들어 놓은 음식을 접시에 담을 뿐인데. 그리고 설거지를 할 뿐인데. 아침은 큰엄마와 함께 설거지를 했다. 점심 때 엄마는 설거지 대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다 보니 더러워진 것을 본 엄마는 주방 일을 두 사람에게 맡기고 화장실로 간 것이다. 다 보고 있었기에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언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 언제나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고? 우리 엄마는 어제부터 여기 와서 일을 다 했어. 나물을 다듬고, 전을 부치고. 생선을 굽고. 국을 끓이고. 거기다가 수정과도 만들고.”

 

 

 

 

 

자신 있게 말을 했다. 엄마를 위해서. 실컷 일을 하고도 낮은 점수를 받고 있는 엄마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 온 대답은 또 다시 상처가 되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 일은 할머니하고 같이 했을 거잖아. 하지만 지금 우리 엄마는 혼자 설거지를 하고 있어. 이 많은 그릇들을 혼자 씻고 정리하고 있다고.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엄마는 지금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어. 더러워진 화장실 청소를.”

“화장실 청소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 지금 급한 것은 설거지라고 생각해.”

 

 

 

 

사촌 언니의 입은 야무졌다. 나보다 한 살 많았음에도 똑똑 부러지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똑똑 부러지는 소리에서 19살의 여고생은 자신의 엄마만 챙기는 이기심을 보일 뿐이었다. 진짜 모르는 것일까. 일 년에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사촌 언니는 공부 한다는 핑계로 두 번만 왔다. 설날과 추석에만. 나머지 행사에는 오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생신날에도, 할아버지가 병원에 있는 날에도. 그 날에는 돈으로 인사를 할 뿐이었다.

 

 

 

 

그 방식도 성장하면서 알았다. 큰엄마의 사는 방식을. 큰 회사에 다니고 있는 큰아빠의 경제를 큰엄마도 함께 응용하고 있었다. 회사일로, 자식들 교육 문제로 오지 못함을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돈이 왔으니까. 또 선물도.

 

 

 

 

 

그들은 언제나 큰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일 년에 두 번을 오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당당함을 보였다. 지금처럼. 미안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돈의 힘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많은 월급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할머니한테 많은 돈을 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돈의 힘은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엄마는 몸으로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혼자였다. 아무도 엄마 편을 들지 않았다. 주방에서 나는 소리를 그들은 듣고 있었을 것이다.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남자들이나, 설거지가 하기 싫어 대충 치우는 척 하다가 과일을 깎고 있는 막내 숙모나.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어느 한 사람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막내 삼촌 입에서 나온 소리로 인해 난 입을 닫아야 했다.

 

 

 

 

“몇 시간 운전해서 오는 거 쉬운 일 아니다. 서로가 이해를 해야지.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주방 일인 거 같다. 먹고 치우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니까.”

 

 

 

 

사촌 언니와 큰엄마의 표정이 밝아짐이 보였다. 반대로 나와 엄마의 표정은 어두움이었다. 어중간한 표정. 웃을 수도 없고, 찡그릴 수도 없고. 엄마와 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빠는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으며 가족들과 함께 카드놀이를 할 뿐이었다.

 

 

 

 

 

“네 삼촌 말이 맞다. 장거리 운전이 쉬운 것은 아니지. 화장실 청소는 나중에 하고 설거지를 마무리 짓는 게 좋을 거 같구나. 수정과와 약과도 가져 오고.”

할머니까지 우리 편을 들지 않았다. 할머니는 엄마의 약점을 이런 식으로 공격했다. 실컷 일을 했는데. 실컷 며느리답게 다 했는데. 할머니는 큰엄마 편이었다.

 

 

 

 

“할머니, 엄마는…….”

 

 

 

 

누구보다 일을 많이 했잖아요. 그 말을 하려는 순간, 엄마는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 입 다물라고. 조용히 하라고.

 

 

“어찌 계집애 입이 저리도 시끄러운지 모르겠구나.”

“죄송합니다.”

 

 

 

 

엄마는 할머니를 향해 죄송하다고 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힘을 실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고개를 숙이는 것 같았다. 그 문제가 없었다면 무조건 이런 식으로 고개를 숙이진 않았을 것이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이니까. 아니면? 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해도 엄마는 어쩌면 이대로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엄마니까. 가족으로 인해 시끄러워 지는 것은 싫을 것이니까. 거기다가 물질적인 힘을 얻고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로부터.

 

 

 

 

할머니는 앞에선 이렇게 표현을 해도 뒤에선 물질적인 힘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나름 할머니만의 방식이었다. 어찌 되었던 큰아들 편을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큰아들이니까.

 

 

 

또 막내아들이 한 말이 맞지 않아도 인정했다. 함께 설거지를 하지 않은 막내며느리의 얄미운 점이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시간과 함께 얼굴빛이 변해가는 둘째 아들을 보면서 얼른 정리를 했다. 할머니의 매서운 눈빛까지 보면서 난 입을 다물었다. 18살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잘못을 따질 수도 없었고, 잘한 것을 우길 수도 없었다. 어른들의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이론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

19살의 사촌 언니는 여전히 얄미웠다. 방에서 만난 우리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는 짓이 진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을 화해하도록 도운 사람은 22살의 사촌 오빠였다. 자신의 엄마만 설거지를 한다고 먼저 시비를 건 언니의 오빠였다. 같은 피를 가진 남매였음에도 다른 두 사람이었다. 한 살 많은 언니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표현해야 했지만 오빠는 나이와 달리 의젓했고, 상대방을 배려했다.

 

 

 

 

오빠는 명절 때 마다 만나지만 정을 많이 주었다. 이 세상에서 젊은 두 남자 중 괜찮은 남자를 찾는다면 집에서 혼자 라면이나 끓여 먹고, 대충 밥을 챙겨 먹고 있는 오빠와 사촌 오빠였다. 비슷한 나이를 지닌 두 남자는 제법 괜찮은 남자였다.

 

 

 

 

 

 대학에 들어가 누군가를 사귄다면 이런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두 남자는 매력이 있는 남자들이었으니까. 그 오빠가 말을 했다. 찡그리면 얼굴이 미워진다고. 독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 병이 오고, 빨리 죽는다고. 예쁜 여고생은 웃어야 한다고 했다. 싸움을 했으면 빨리 화해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까지.

 

 

 

 

속에 담는 것은 어른들의 것일 뿐 우리는 날려 보내야 한다고 하는 말투가 오늘따라 더 멋있어 보였다.

 

 

 

 

 

***

볼링을 치고 영화를 봤다.

 

 

 

포켓볼까지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했지만 하루 동안 다 할 수는 없었다. 두 가지 운동을 한꺼번에 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두 가지를 했다. 볼링을 치고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나와 사촌 언니는 볼링을 하면서 함께 웃기도 했고, 함께 떠들기도 했다. 오빠의 말대로 우리들은 금방 화해를 했다. 우린 젊으니까. 우린 건강하니까. 하지만 집에 함께 있는 세 여자는 우리처럼 밝은 표정들은 아닐 것이다.

 

 

 

 

가족이란 공동체로 모여 어쩔 수없이 만나고 있지만 각자 생각하는 게 같을 수 없었는지 모른다. 명절이란 자체가 여자들에게 있어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짜증 아닌 짜증을 만들어 주고 있었을 테니까. 거기다가 대화를 나눈다고 해도 대충 할 것이다. 그녀들은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데 익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잠시 만나 가족이란 이름아래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지만 곧 떠나갔고, 그 후론 연락 없이 살아갔다. 각자의 삶에만 충실했다. 모두 다.

 

 

 

 

그러면서 흘러가는 시간을 볼 것이다. 다가오는 큰 행사가 있는 날을. 그 날에 또 가족이란 이름으로 만날 테니까. 오늘처럼. 끝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 시간 속에서 이렇게 성장했다.

 

 

 

 

난 18살이 되었고, 언니와 오빠는 19살과 22살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생이었고, 중학생이기도 했다. 고등학생이기도 했고. 지금 오빤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나도 곧 대학생이 될 것이다. 2년 후에는. 어른들과 달리 우리들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얌체처럼 행동하는 막내숙모의 중학생 자식도 건강한 정신은 가지고 있었으니까.

 

 

 

 

 

모여서 대화를 하고 놀 때에는 온전히 같은 마음을 보였다. 건강하면서 옳은 마음만. 곧 외가에 가야 할 것 같아 함께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다. 함께 있고 싶다며 환하게 웃던 모습은 싫지 않았다. 싫은 것은 막내 숙모였다. 얌체 짓을 하니까. 그러나 그것도 잊었다. 사촌 오빠의 말대로 어른들의 세상에 우리까지 끼여 나쁜 감정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어른들의 세상은 어른들의 세상일 뿐이니까.

 

 

 

 

이론과 실제가 달라도 무작정 따질 수는 없었다. 어른들의 세상은 알다가도 모를 때가 진짜 많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게 흐르기도 했다. 그것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오늘처럼. 이론적으론 내가 한 말이 다 맞았다. 그러나 가족의 평화를 위해선 누군가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억울했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사는 방법이 달랐으니까.

 

 

 

우리들의 방법도 좋았다. 볼링을 치고, 함께 영화를 보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빠가 사 준 돈가스는 진짜 맛이 좋았다. 오빠는 오늘 들어간 돈을 전부 지불했고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었다. 오빠로 인해 볼링도 배우고, 영화도 봤으니까. 다음에는 포켓볼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포켓볼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볼링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