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히 본 모양이다. 난 화려한 것이 좋다. 어릴 적부터 어둡게 자란 탓인지 성인이 된 이후론 뭐든지 화려하고 예쁜 것을 좋아했다. 더 이상 내 인생이 어둡지 말라고.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두 딸에 대한 것을 같은 감정으로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르게는 그 딸에 대한 감정이 더 있어 보였다. 그 딸하고는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 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친엄마는 말이 길어졌다.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몇 학년이에요?”
“어학연수를 다녀 온 탓에 1년을 더 공부해야 졸업할 수 있어. 전공은 광고학과이고.”
진짜 기분이 이상했다. 대학을 다닌다, 어학연수를 갔다 왔다, 전공이 멋있어 보였다. 나는……아닌데. 또 다시 밀리는 기분이었다. 대학이 전부일 순 없지만 가보지 못한 자는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가고 싶었으니까. 그 딸은 다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나의 친엄마까지. 거기다가 친엄마는 그 딸에 관해 많이 알고 있었다.
“다 가지고 있네요.”
“엄마가 없어. 암으로 돌아가셨거든.”
“엄마가 엄마잖아요.”
“그……렇지. 내가 엄마 노릇을 하고 있지.”
엄마이면서 진짜 엄마는 아닌 모양이었다. 표정이나 말투가 확신에 차 있지 않았다.
“딸이 엄마를 좋아하지 않나요?”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넌 네 엄마와 어떠니?”
“나도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요. 어릴 적엔 많은 미움을 받았는데 지금은 잘 지내는 편이에요.”
“구박이 심했니?”
“예뻐 보일 수는 없었겠죠. 혹이잖아요.”
“널 끝까지 지켜야했는데 네 아빠가 날 낭떠러지도 밀었어. 네 아빠는 무능했고, 또 여자 문제로 날 힘들게 했다.”
역시 고모의 말과는 반대였다. 어릴 적엔 고모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생활을 보면서 거짓이 많이 섞여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고 친엄마에 대한 미움이 풀릴 수는 없었다. 결국 버린 것은 사실이니까. 어떤 경우라도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런 점에서 난 친엄마를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도 밉고, 친엄마도 밉고. 다 미운 사람들뿐이었다. 지금 엄마는 지난 시절을 얘기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잘못까지 지적하면서. 맞는 말이란 것을 알지만 마음으로 와 닿진 않았다. 다르지 않았으니까. 난 외롭게 성장했고, 많은 것을 누리지 못했다.
지금의 친엄마가 키우고 있는 딸처럼 살지 못하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월급의 반 이상은 엄마가 다 가져간다. 난 당연한 듯이 주고 있다. 지금까지. 구박이 심했느냔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기 자식도 부담스럽다고 버리는데 남의 자식을 누가 예쁘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친엄마도 버리는데. 친엄마도.
미움이 또다시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이해는 하고 싶었다. 이미 이해란 것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 친엄마의 인생도 무한정 행복해 보이진 않았으니까.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엄마가 쓰고 있는 그럭저럭이란 말처럼. 아버지의 무능함과 여자문제로 떠났지만 지금의 엄마도 편한 인생 같지는 않았다.
***
“밥 먹지 않을래? 20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는데.”
엄마는 접시에 있는 고기를 다시 올려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다. 엄마에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의 다른 감정으로 인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것인지. 우리들의 대화는 복잡하게 이어져갔다. 서론, 본론, 결론이 없었다.
서론으로 시작하다가 결론이 되어 있었고, 또 어떤 대화는 바로 결론부터 되어 있었다.
지금의 대화는 결론이었다. 20분밖에 없다는 것은 끝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분이 지나면 우리는 헤어진다. 궁금한 것이 생겼다.
만약에 20분 후에 여기서 나가 인사를 하고 헤어지면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또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오늘보다는 대화가 잘 될 것 같았다.
감정 조절도 훨씬 잘 할 것도 같았고, 또 눈도 오래도록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처음이라서 많이 힘들었지만. 내 감정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시 만나면 잘 할 자신이 있었다.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한 엄마란 말도 할 자신이 있었고, 또 진짜 진주목걸이도 선물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의 꿈을 무너뜨리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큰돈은 아니야. 살면서 필요한 곳에 사용해라.”
친엄마는 봉투를 내밀었다. 하얀 봉투였다.
“저도 돈은 벌어요. 돈이 진짜 필요할 땐 지금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였으니까요. 주려면 그때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땐 널 만날 상황이 되지 못했다. 나도 힘든 시기였으니까. 돈은 앞으로도 잘 쓰게 될 것이다.”
친엄마는 그 말만 하고선 계속 고기를 데우고 있었다. 난 봉투를 받아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어쩌면 이 돈으로 엄마노릇을 끝낼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들어 왔기 때문이다.
천 만 원! 봉투 속엔 수표로 천 만 원이 들어있었다.
“전화하면 받아 주실 건가요?”
본능이었다. 냉정함과 차가움으로 행동했지만 싫지 않았다. 엄마를 만났으니까. 미움의 감정이 앞서 있었기 때문에 뭐하나 한 것이 없었다. 상처를 가지고 알게 모르게 헤집는 것 말고는. 감정이 복잡했으니까. 지금은 더 복잡했다. 이 돈! 크다면 큰돈이고, 작다면 작은 돈이다. 분명한 것은 의미가 있는 돈이었다. 진짜 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힘들 것 같구나.”
“이 돈으로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절 만나는 거군요.”
“나도 살아야지. 너도 작은 나이가 아니니까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또 이해를 해 달라는 건가요?”
“이제 겨우 사람처럼 살고 있어.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거든. 여기에서 더 이상 내려가고 싶지 않다. 내리막은 정말이지 무서우니까.”
솔직함으로 얘기하는 친엄마의 눈빛이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조금 전, 그럭저럭이라고 말할 때와는 다른 눈빛이었다.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눈 속에 있었다.
꼭 한 번만 더 만나자고 했다. 오늘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으니까. 모든 게 정신없다보니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 편하게 밥을 한 번 더 먹고 싶었다. 구워진 고기를 데워 먹는 것이 아닌 금방 만들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일상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인지. 취미는 무엇인지,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떤 색깔을 좋아하세요?”
“예전에는 파란 색이 좋았는데 지금은 분홍색이 좋아.”
“취미는 어떤 것을 하세요?”
“별 다른 것은 없고, 가끔 등산을 다녀.”
“음식은 어떤 것을 좋아하세요?”
빠른 말투로 물었다. 시간이 없으니까.
“다 잘 먹어. 살기 위해서.”
“저도 다 잘 먹어요. 다 잘 먹지만 특히 좋아하는 음식은 생선 종류를 좋아해요. 좋아하는 색깔은 분홍색이고 취미이자 특기는 액세서리를 만드는 거예요. 직접 재료들을 주문해서 만들어 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거든요. 선……물을 하고 싶은데…….”
“만나는 것은 힘들 거 같구나.”
냉정한 결론이었다. 잔인할 정도로.
우린 20분이 되어갈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잠시 머뭇거리면서 가벼운 인사를 했다. 별다른 방법의 인사는 없었다. 그냥 얼굴을 쳐다본 채 눈만 깜박이는 게 인사가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엄마의 눈과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지금 각자 살고 있는 집으로. 난 봉투를 돌려주지 않았고, 시간이 되면 한 번만 더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친엄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의 친엄마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떠나갔다. 가짜 진주목걸이를 반짝거리면서.
***
한 달, 두 달, 석 달이 흘렀지만 나의 친엄마에게선 전화가 없었다.
나는 늘 전화를 기다릴 뿐이었다. 내가 먼저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단 엄마의 결혼 생활을 망가뜨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릴 뿐이다. 엄마의 전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