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오빠는 처음의 패기와는 달리 몇 달째 방구들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몇 군데 취직을 하긴 했으나 며칠을 못 넘기고 바로바로 뛰쳐나와 버렸던 것이다. 작은오빠는 성질이 워낙 불같아서 사장이 싫은 소리를 하면 참고 넘기지를 못하는 게 문제였다. 작은오빠가 낮이나 밤이나 집에만 죽치고 있는 바람에 혜란의 생활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혼자서 자유롭게 일기를 쓴다거나 라디오를 듣는다는 건 꿈도 못 꾸었고, 속옷 한 장을 갈아입으려 해도 마땅치가 않아 어떤 때는 변소에 들어가서 해결하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아버지와 작은오빠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막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던 혜란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우두커니 서서 구경만 했다.
“빨리 이리 와서 안 말리고 뭐 하냐?”
두 남자 사이에서 진땀을 흘리던 엄마는 혜란을 보더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씨팔, 이놈의 집구석, 내 다시는 들어오나 봐라!”
작은오빠는 혜란이 보기가 민망했던지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작은오빠가 떠미는 바람에 맥없이 방바닥에 나앉았던 아버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혜란은 방문 앞에 서서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찢어진 러닝바람으로 퍼질러 앉아 숨고르기를 하던 아버지는 “저 가시나 눈깔 좀 봐라. 뭘 보냐, 이 씨발년아!” 했다. 전에 같았으면 혜란은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작은방으로 기어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혜란은 도시락 가방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부모님의 표정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혜란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다.
“지겨워! 지겨워! 지겨워!”
아, 혜란은 정말이지 지겨웠다. 매번 찍은 것처럼 똑같이 벌어지는 그 상황들이. 한번 터지기 시작한 혜란의 입에선 지금껏 꾹꾹 눌러 참았던 말들이 앞 다투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사는 거 정말 끔찍해요!” “미치겠어요!” “차라리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요!” 그건 말이라기보다 괴성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혜란에게로 오더니 바로 따귀를 날렸다. 안경이 툭, 떨어졌다. 그래도 혜란은 계속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연속으로 혜란을 후려쳤다. 혜란은 물러나지 않고 대들었다.
“왜 때려요? 아버지가 뭔데 날 때려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것이 완전히 돌았구만?”
“맞아요! 나 미쳤어요! 이런 집에서 누가 맨 정신으로 배기겠어요?”
적당히 때려선 안 되겠다 싶었던지 아버지는 이제 발길질을 했다. 배를 정통으로 걷어차인 혜란은 그 자리에 픽 쓰러졌다. 아버지의 발길질은 미친 듯이 이어졌다. 혜란도 지지 않고 발악을 했다. 누가 더 미쳤는지 내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하, 뭐 이런 게 다 있냐?”
결국 아버지가 먼저 멈췄다. 하지만 혜란은 멈출 수 없었다. 감전된 것처럼 끝도 없는 괴성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혜란은 한참 동안 몸을 떨면서 울부짖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혜란은 어느 순간 울음을 뚝 그쳤다. 그리곤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방에 들어가니 엄마는 엄마대로 축 늘어져 있었다. 엄마 옆에 피 묻은 수건이 있어 살펴보니 머리에 상처가 나 있었다. 아버지가 던진 재떨이에 맞은 거라고 했다. 혜란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직 상황은 끝난 게 아니었다. 잠깐 눈을 붙인 아버지가 깨어나면 늘 그랬듯이 다음 라운드가 시작될 것이었다.
온 집안에 기분 나쁜 정적이 흘렀다. 엄마의 앓는 소리마저 없었다면 질식해 버릴 것 같은 고요였다. 혜란은 공포가 잠시 유보된 그 순간이 가장 끔찍했다. 한두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아버지가 행동을 개시했다. 아버지는 장롱 안의 옷들을 몽땅 꺼내 밖으로 내던지고는 라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픈 것도 잊은 채 뛰쳐나와 아버지의 다리에 매달리며 제발 참으라고 싹싹 빌었다.
“여기 있어요.”
혜란은 아버지 손에 라이터를 쥐어 주었다. 아버지가 정말로 옷에 불을 지를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잽싸게 그걸 빼앗아 대문 밖으로 던져 버리는 바람에 혜란의 의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이것이 진짜로 돌았나? 너 지금 제정신이냐?”
다 죽어 가던 엄마는 어디서 기운이 났는지 혜란에게 마구 욕을 퍼부었다.
“됐다 마, 나만 뒈지면 된다. 딸년이라고 하나 있는 게 저래 나오는데 더 살 필요도 없다. 내가 깨끗하게 죽어 주마.”
아버지는 이번엔 부엌으로 가 식칼을 찾았다. 혜란은 칼도 찾아다 아버지 손에 친절하게 쥐어 주고 싶었다. 솔직히 겁은 났지만 차라리 그 칼에 모든 게 끝장나 버렸으면 싶었다. 물론 칼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이 났다 하면 엄마는 맨 먼저 칼부터 숨겼던 것이다. 칼이 안 나오자 아버지는 부엌 살림살이를 있는 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엄마는 아이고, 아이고,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혜란은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들이 귀에 거슬렸지만 한편으로는 같이 거들고 싶을 정도로 속이 시원했다.
자신의 태도가 아버지를 더 자극하고 있다는 걸, 혜란은 알고 있었다. 엄마처럼 혜란도 싹싹 빌며 매달려야 아버지는 마지못한 듯 그 짓을 멈출 터였다. 하지만 혜란은, 이래도 네가 그냥 보고만 있을 거야? 이래도! 하는 아버지의 유치한 쇼에 동참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오직 엄마만이 충실한 개처럼 울며불며 애원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진이 다 빠졌는지 큰방 문지방에 털썩 걸터앉았다. 엄마가 얼른 물을 떠다 바쳤다. 혜란은 거의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뚫어져라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같이 노려보던 아버지는, 확 눈깔을 빼버릴라 마, 하면서도 먼저 시선을 돌렸다.
“야 이년아, 뭐 하고 있니? 빨리 안 치우고?”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고 한고비 넘겼다 싶으니까 이번에는 엄마의 목청이 커졌다. 하지만 혜란은 이제 아무 것도 무섭지 않았다. 전에 같으면 그것 역시 시키기도 전에 알아서 치우고 있었을 테지만 이젠 싫었다. 혜란은 그냥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뒤에서 소리쳤다.
“이거 치우라는 소리 안 들려?”
“왜 내가 치워야 돼요? 어지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하!.......”
엄마는 기가 막힌 듯 일단 물러났다. 혜란은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최후의 한 방울까지 온몸의 기운을 다 써 버린 기분이었다.
혜란은 동수엄마한테 잔업을 신청했다.
잔업은 동수엄마가 일할 사람을 지명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원하는 사람들 위주로 참여했다. 혜란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갈 일이 겁나서 그동안 잔업은 안 했었다. 그런데 아버지한테 대들고 난 뒤로 집에 일찍 가기가 싫어지면서 잔업이나 해 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혜란이 잔업을 하겠다고 나서자 동수엄마는 시다 일손이 제일 딸렸는데 마침 잘 됐다며 아주 기뻐했다.
잔업은 북적대던 낮에 비하면 한결 여유가 있어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혜란은 며칠 전의 사건을 두고두고 되씹어야 했다.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차례대로 사고를 치고 반항하는 모습을 봐 오긴 했어도 자신이 그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자기는 여자고 겁도 많고 또 어쨌든 부모한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은 혜란도 오빠들의 전철을 밟아 버렸다.
그 순간 자신이 왜 그랬는지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수연이의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이젠 스스로 돈을 벌고 있다는 자신감도 한몫했던 것 같았다. 어쨌든 열여덟 살이 되도록 숨만 죽이고 살다가 처음으로 목청을 높인 셈인데 결과는 비참했다. 솔직히 아버지가 자신의 시선을 먼저 외면하고 엄마가 주춤하던 순간에는 통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잠깐이고 시간이 갈수록 찜찜하고 불쾌한 기분만 커져 갔다. 이젠 자기도 큰오빠 작은오빠와 다를 게 없다는 점, 다시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처음 반항하기까지가 두렵고 어려울 뿐 다음부턴 쉬울 것 같은 예감, 그런 것들이 내내 혜란을 우울하게 했다.
그 와중에 놀라운 일이 생겼다. 하루도 술 없이는 못 사는 아버지가 사흘을 곱게 넘기는가 싶더니 일주일이 되도록 술을 입에 대지 않았던 것이다.
“진짜로,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너희 아버지가 저래 맨 정신으로 들어오다니. 너 땜에 충격을 받기는 단단히 받은 모양이다.”
엄마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혜란은 시큰둥했다. 그래 봤자 술꾼 아버지가 어디 가겠냐 싶었다. 그런데 보름이 지나고 스무날이 될 때까지도 아버지는 말짱한 정신으로 귀가했다. 정말 술을 끊기로 한 건가, 혜란은 그제야 솔깃해졌다. 지난 수년 동안 엄마가 아무리 애원하고 몸부림쳐도 고칠 수 없었던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혜란은 벌거벗고 춤이라도 출 수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술을 안 먹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술을 안 먹는 대신 짜증과 신경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난 것이었다. 술을 먹을 때는 그 순간만 고생하면 되는데 이제는 맨 정신인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니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혜란이야 잔업하고 늦게 오면 그만이지만 옆에서 고스란히 당해야 하는 엄마는 피가 말랐다. 아버지는 사사건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었는데, 그런 모습들이 어찌나 유치하고 졸렬한지 술 먹고 미쳐 날뛸 때보다 더 가관이었다.
그런 어느 늦은 밤, 골목 끝에서 아버지의 고성방가가 들려왔을 때 혜란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면서도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대문을 발로 뻥 찬 뒤 허청허청 걸어 들어왔다.
“하이고, 웬일로 좀 달라진다 싶더니만 역시나!”
“왜? 그럼 내가 저 가시나 눈치나 보고 살아야 속이 시원하겠어?”
엄마의 야유에 아버지는 수돗가의 세숫대야를 발로 뻥 차며 대꾸했다. 혜란은 여차하면 튀어 나갈 준비 자세로 밖에서 벌어지는 싸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한편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뼛속까지 거기에 익숙해져 버린 자신이 섬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