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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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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Y 하윤 2013-05-11

*티파니에서 커피를

 

-프롤로그

 

나는 원래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이십대 초반에 직장 다니며 이런저런 사보에 글이 실리는 재미를 조금씩 느끼다가 결혼과 출산으로 손을 놓은 뒤 다시 펜을 잡은 것은 서른 중반 무렵이었다. 수필을 써서 여기저기 투고도 하고 나름대로 성과도 거두다 보니 글 쓰는 즐거움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런데 나이 마흔을 앞두면서 나는 괜히 초조해졌다. 생활글만 쓰고 있자니 갈증이 많이 났던 것이다.

마흔에 등단했다는 박완서 님을 거울삼아 장편소설을 하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여고시절 차곡차곡 모아 둔 일기장을 바탕으로 천이백 매의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자전적인 요소는 강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이라는 주문을 외며 셀 수도 없는 퇴고를 반복했다. 시점만 세 번을 바꾸어 봤고, 문장을 다듬은 것은 멀미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드디어 소설을 완성했을 때는 어느새 4~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고, 목표로 했던 장편소설 공모전도 사라지고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마침 마감 날짜가 맞아떨어진 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봤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된 듯 망연해졌다.

 

이 소설은 1980년대 중반에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닌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내가 몇 년째 이 소설에만 매달려 있다고 하자 다들 이렇게 물었다.

“아니, 도대체, 왜?”

광주 민주화 같은 역사적인 소재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특별대우를 해 주는 고3 입시생의 이야기도 아닌, 한낱 상고생의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가질 것인가 하는 염려였다. 그것도 이십여 년이나 훌쩍 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왜 지금 새삼 끄집어내느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싶어서 쓴다.’는 답변을 나는 당당하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묵묵히 써 나가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시간 낭비 아닐까? 하는 온갖 불안과 의심과 회의가 수시로 나를 뒤흔들었지만 어쨌든 꿋꿋이 써 나갔다. 앞으로 내가 계속 소설을 쓰려면 그 과정은 꼭 거쳐야 할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남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이 소설을 어째야 하나, 고민하느라 또 몇 개월이 흘렀다. 그냥 묵히기는 억울하고, 여기저기 마구 투고해 보기엔 인쇄비가 부담스러웠다. 그때 아컴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지 벌써 오년이나 지났지만, 사이버작가는 여전히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있었다. 부족하고 부끄러운 글이지만 이곳에 내 순결한 첫 작품을 공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용기를 내고 보니 이제야 비로소, 왜 하필 그 시절의 이야기를 쓰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그냥 내 인생의 중요한 한 시기가 그때 그 시절이기 때문이다.

특별하거나 대단하지 않은 인생일지라도 누구나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 현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물론 한 단계 성숙하기까지 했으니 그걸로 의미나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다만 그 효용성이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미칠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소설을 읽은 이가 시간이 아까웠다는 생각만 하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그리고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방법은 앞으로 내가 더 좋은 소설을 쓰는 것뿐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싶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