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가르치는 것은 사진이었다
바로 그 사진.
독일어 교수였다던 그 남자와 젊은 날에 찍은 그 사진
제주도 유채밭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속의 남자와 여자
나보다 훨씬 잘 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아까 그녀가 슈퍼에 갔을 때 나를 향해 눈을 부라리는 것같았던 사진 속의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역시 내려다 본다
“선생님, 이 사진을 선생님이 내려 주세요”
“......................”
난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 턱 아래서 사진을 가리키며 내 손으로 사진틀을 내려 달라는 그녀의 요구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알것같았다.
난 그녀의 눈을 한동안 들여다 보았다.
이슬이 맺흰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은 눈망울....
촉촉이 젖은 그녀의 눈망울 호수는 내게 무엇을 고백하고 있는가
여자가.....
한 남자의 품에서 떠나 새로운 남자의 품으로 안겨 갈 때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어쩔 수 없이 떠나버린 운명의 남자
그와의 인연을 뿌리치지 못해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한 여자가 새 남자로의 여행(?)을 시작하려 할 때.....
그 여자의 가슴은 어떤 감정에 몰입되어 있을까....
그녀가 나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려나보다
“선생님! 죄송해요.....제가 이런 부탁을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제 키가 너무 작거든요...”
꼭 키가 작아서일까....
그녀가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꼬옥 안아오는 그녀는 떨고 있었다~
“내려줄께요~~!!!”
난 양손을 들어 사진틀을 붙잡았다.
“선생님! 고마워요”
그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사진틀을 떼고 있는 내게 속삭이고 있다.
따스한 체온이 내게로 전해 온다.
“여기다 놓은세요....”
식탁위에 놓여진 사진틀을 그녀와 내가 물끄러미 바라 본다
굳은 그녀의 표정이 나를 어정쩡하게 한다
“선생님! 이제 됐어요......”
이럴때는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 그녀의 감정이 다치지 않을까.......
그래, 아프기도 하겠지....
따스하고 아프지 않게 안아주어야 하는데.......
난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술 남은거 먹죠.....”
내가 그렇게 말했을때 그녀는 내게로 왈칵 달려들어 내 허리를 더욱 세차게 부둥켜 안는다
“진정해요.....내가 있잖아....”
난 그를 달랠량으로 그렇게 말했다
“선생님........”
“..........”
“선생님만 의지하며 살래요.....전 이제 선생님거에요....흑흑흑...”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이다.
왜 울까?
기뻐서 울겠지....내가 좋아서 울겠지....
아니면.......
고이 간직한 한 남자의 사랑을 망각해야하는 현실의 슬픔....?
“선생님, 저는 됐어요 이제......”
저는 됐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선언...
그녀가 나와 사랑을 할 준비를 모두 갖추었다는 말이리라
“선생님.........사랑해요.....그런데 한가지 부탁이......”
“부탁,,,?”
“네......선생님도 정리하셔야 돼요.....”
“정리..............?”
“네.....정리요........”
무슨 말일까?
나도 정리해야 하다니.......?
“뭐? 원하는게...?”
“선생님 가슴에 남아 있는걸 다 씻어 주세요...”
내 가슴에 남아 있는게 뭘까?
그녀가 원하는게 뭘까?
우리 가게의 여자들 때문일까?
아니면......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선생님, 앉으세요”
“그래요....”
그녀가 내 허리에 감은 그녀의 팔을 풀고 아직 남아 있는 술상 앞에 마주보고 앉았다.
남은 술병도 있고 먹다 남은 술도 아직 몇잔은 될것같다
“자~”
난 술잔을 채웠다.
폭탄주 말고 그냘 맥주로 잔을 채워 본다
그리고 둘이 약속이나 한 듯이 술잔을 부딪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열기 때문인지 몸이 맥주를 열심히 빨리 흡수한다
“선생님!”
“왜요...”
“저는 이제부터 선생님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거에요....”
“.............”
“그런데, 아직도 선생님은 모두를 저에게 줄것같지 않네요”
“무...슨?”
순간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거실 구석에 놓인 컴퓨터 책상앞으로 걸어 갔다.
뭐하는거지?
그녀가 책상위에 놓였던 하얀 백지 뭉치 하나를 들고 앉아있는 내게로 온다
“선생님, 첫사랑 누구예요?”
“................”
갑자기 왠 첫사랑을 묻는걸까?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의 드라마 같은 첫사랑 그림이 있는 법인데...
그녀는 나를 알고 있지 않은가
나의 첫사랑은 고은아 그녀를 소개 시켜준 문희가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감정이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여자
남자는 왜 첫사랑을 그리도 고이 간직할까.....?
나만이 그런걸까?
“선생님, 이거 받으세요...”
“이게......?”
그녀가 나를 쳐다본다
“이걸 보시고.....선생님도.....”
“이게.....?”
난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의 얼굴이 아까보다 차갑기 그지 없다.
“은아씨....?”
갑자기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안색을 바꿔버린 그녀의 차가움은 무엇을 의미할까?
“선생님, 저 혼자만 목숨을 걸 수는 없어서 이걸 드리는거에요....”
“목숨을.......?”
“네에.......여자는 새 남자를 만날 때 목숨을 걸 수 밖에 없거든요....”
“..................”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갑자기 왜.....?
“선생님, 이걸 다 읽으시고 마음이 결정되시면 제게 전화해 주세요.....그러면 그때부터 선생님께 모든걸 다 바칠거에요....”
알 수 없는 말에 술기운이 싹 가신다.
난 그 에이포 용지 한 묶음을 받아 들었다
레포트 같기도 하고.......편지는 아닌데..........
갑자기 다운된 그녀의 기분에 대한 의문 때문에 난 더 이상 그 밤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갈께요.....”
“그러세요.....선생님,,,,,이제 가셔도 돼요.....”
갑자기 그녀가 돌변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 해답은 이 페이퍼 뭉치 속에.....?
아니면 갑자기 전남편의 사진을 술기운에 내리고보니......마음이 영 편하지 않아서일까....?
미궁이다.
그래, 어쩐지.....쉽게...마음을 준다 싶더니.......
난 한잔을 더 비우고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아파트 아래에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
“선생님, 죄송해요........그러나 꼭 이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녀가 택시를 타는 내 뒤통수에다 소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