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많은 어머니 ...
둘째 아들이 5살이 되던해 아버지가 바람을 폈다 여군이였다 여자에게 워지지 않는 상처 바람....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군인이였던 아버지가 직업 군인을 정리하고 떠나기란 쉽지 않았을터 어머니는 날이면 날마다 아버지를 졸라뎄다
1977년 봄 명동에서 제일 잘나가는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고 한국을 미련없이 떠났다
부잣집의 5형제중 맞딸로 때어난 어머니 부러울것 없이 공주처럼 자랐다
옷은 항상 명동 양장점에서 최고로 맞춰입고 그시절 피아노도 배웠다 모 대학의 가정과를 나올만큼 머리도 좋았다 눈설미가 좋아 한번 절대 놓치는 법이 없었다 말솜씨 또한 특출랏던 터 말싸움에선 져본적이 없다 지금도 며느리들은 말로는 어머닐 당해내질 못한다
어머닌 부잣집 딸이였고 아버진 그집의 회계를 맡은 고아였다 전쟁통에 부모를 여인 아버지는 장인어른이 운영하는 고와원에서 형과함께 자랐고 성품이 곧고 성실헸던 아버지는 장인에 맘에들어 사위로 맞이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바람후 점점 망가져갔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커질 수록 쇼핑에 전화도 식욕도 조절하지못하는 상태가 되어 갔다 그런상태로 며느리들을 하나씩 맞이 할때 마다 아들들도 며느리들과 함께 멀어져 갔다
그녀의 남편.. 아들은 더 이상 어머니의 아들이 아니였다 그녀 며느리의 남편이였다 .. 어머니를 이해하고 가엾게 생각하던 며느리들도 하나둘 어머니와 멀어져 가고 어머니는 점점 혼자가 되어 가고있었다
길게는 5년 짧게는 3년의 보금자리의 이동때마다 어머니는 식구들의 속을 뒤집어놔야 했다 새차와 새집 그리고 그에 따른 생활비까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그것들로 채워나갔다 아버지가 대장암을 치료받을즘 둘째가 이혼을 했다 변호사 며느리 부잣집딸 어머니의 로망 며느리와 둘째는 이혼도장을 찍었다 .. 그리고 2년후 둘째는 지금의 지영을 만났다 ..J는 여자를 다시 만나기가 두려웠다 이혼의 아픔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머니로 부터 받은 상처때문 이기도했다
어머니는 형을 좋아했다 성격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일이 터지면 능사처리로 처리하는 형의 능력또한 어머닌 시원해했다 형과 다른 J 조용하고 행동도 느리고 표현이 없었다 있는듯 없는듯 표시가 나지 않는 아이였다
미국에 상경한 지영은 맘의 안전을 찾기 위헤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도심에 있는 작은 교회였다 J를 처음본건 그교회에서였다 사실 J를 먼저 만난 사람은 지영의 엄마였다 엄마는 사윗감이 맘에 들어 지영을 졸랐다 결혼을 앞두고 맘이 급해진 엄마 남자도 없는 딸을 두고 시집을 가기가 힘들었나보다
둘은 자연스럽게 만났다 나이가 찬 두 사람이 만남을 갖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이 없는 수요일이면 J는 어김없이 지영을 만나러 왔다 석양이 지는 바닷가에서 둘을 첫 키스를 나누었거고 비가 오던 어느 수요일엔 거리에서 두번쩨 키스를 나누었다 장미빛 사랑이 짙어갈쯤 둘은 결혼을 했다 작은 교회에서 간단히 치른 결혼식 ..... 신혼여행도 미룬채 둘은 신혼집으로 서둘러 내려왔다
9 11 사태가 일어났다 J와 지영이 결혼한지 정확히 5일째 돠는 날이였다 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정된 여행이 뉴욕이였지만 지영이 몸이 좋지 않아 취소하고 온터..
아버지와 어머니는 형을 따라 일본에서 몇년을 지냈다 지영이 첫애를 낳고 아이가 돌이지날쯤 아이를 보고 샆어하는 시아버지를 위해 지영과 J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한다는 기쁨에 지영은 비행내내 힘든줄 몰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 지영은 해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만난 시부모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오기로한 형내외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지영은 뭔가 불안함을 느꼈다 고국에서 마지막 한주를 보낼쯤 형내외에게서 연락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