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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밤


BY 망팬 2013-02-18

내 차의 꽁무니를 따라오는 차는 영업용 택시다
난 의도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몇 번 밟았다.
따라오지 말라는 경고성이기도 하고 차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였다.

“혹시 호텔에서......?”

그러나 택시는 내가 돌아갈 바로 앞골목으로 방향을 틀어 사라져 버린다

<괜히 고민하지 마셔....따라오긴 누가 따라와>

한편으로 시원하기도하지만 좀 아쉽기도 하다.
좋든 싫든 혼자 사는 여자에겐 사람의 관심이 늘 아쉬운 것이다

세월이 지날 수록 배워가는 마흔 넘은 소위 과부의 허무함
남편 없는 여자 혼자 굳세게 살기는 그리 쉽지 않다.
헤프게 웃어도 안되고 조금만 빈틈을 보여도 안된다.
살짝 미소만 지어도 굶주린 여자의 추파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대다수의 남자는 많은 여자를 정복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나보다
제 마누라 간수나 잘하면 될일인데 어찌하여 남의 여자를 넘보는지 모르겠다
남의 여자를 좋아하면 제 여자도 남의 밥(?)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모르는가

남자들의 꿍심은 욕심이겠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는 우리 엄마가 되뇌이던 말씀은 아마도 성경에 있는구절인 것 같다

남자들의 하릴없는 욕심으로 많은 여자들이 구렁으로 빠져간 경우가 많았다.

20여년전 부사동에서 셋방살 때 옆방에 해외로 남편을 보내고 열심히 살아가던 이쁘장한 아이 엄마가 있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성실하게 살던 그녀에게 송금되어 오는 남편의 월급이 몫돈이 되면서부터 낯선 남자들이 들락거리더니

“아무래도 바람났나벼”
“저걸 어째, 박씨 불쌍해 큰일 났네.....”

온몸을 다바쳐 봉사(?)하는 남자들의 극진한 서비스에 몰락한 그녀는 아이들마져 버리고 돈을 챙겨 야반도주하고 시골의 할머니가 슬픈 아이들을 키우는 불행을 낳고 말았던 한 시대의 슬픈 자화상

뒤늦게 귀국한 박씨(준영)의 울부짖음
날마다 술을 퍼먹고 울분을 토하는걸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의 안타까웠던 공분

자정이 넘어 들려오는 괴성에 놀라 문틈으로 내다보면
속이 뒤집힌 박씨가 대문을 열고 미쳐버린 마음을 가누지 못해
골목골목 헤메며 소리를 지르던 애통함, 그 발자국 소리에 박힌 원망과 분노....

지금도 가끔씩 떠오르는 그 애석한 날들의 기억....

도망간 여자보다는 열심히 사는 여자를 꼬드겨 가정을 파탄시킨 그 코큰(?)남자에 대한 적개심이 요즘 와서는 그리 분노할 수 없는 감정으로 누그러져 가는 내 맘의 진실은 어디서 자라난 잡초일까....

왜 지금 순간 그 생각을 하는것인지 모르지만...
참으로 남녀 관계란 알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아무리 조신한 여자라도 간을 빼줄것처럼 꼬셔대는 남자의 서비스(?)에는 함몰되지 않을 수 없는 본능이 있지 않을까.....

만져줄 남자가 없고부터 나도모르게 나신을 거울앞에 비춰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리 곱게핀 꽃이라도 향기를 맡아줄 나비의 방문이 없는 꽃이라면
잡초처럼 보일지라도 꿀을 먹어주는 이름없는 들꽃보다 무엇이 나으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세상에는 짝없는 것이 없지 않은가
생명력의 근원이 암수의 결합이고 번성하고 생육하는 이치가 그러하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은 마이웨이를 남편의 망혼과 함께하며 살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키워오면서 가끔씩 일어나는 여체의 요동을 가눌길 없었던 성숙한 여자의 밤이 오늘따라 내게로 진하게 오나보다

청소년 수련관을 돌아서면 우리 집이다. 구봉 약수터가 있는 어린이 공원은 밤이 이슥해서인지 불빛만 초연하게 보인다.

아파트를 싫어했던 남편은 불편해 하는 여자의 희망을 달래며 늘 단독주택에 살기를 고집했다. 이층에는 세를 놓고 아래층에 살아왔는데 요즈음은 아파트 때문에 세를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비어 있다.

오늘따라 차를 세울곳이 만만치 않다. 한참을 돌다가 간신히 한군데를 찾아 주차를 하고 차문을 닫는다

<이사 가야지>

아파트로 이사 가야한다고 많은 사람들의 권유가 있었지만 남편 1주기도 안지나 집을 팔고 이사 가기는 마음이 편치 않아 지금껏 지내 왔지만 아무래도 가긴가야 할것같다

보안등이 환한 골목을 돌아 집앞으로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소리가 너무 크게 딸깍거린다.

아침마다 남편과 나는 저기 보이는 어린이 공원에서 베드민턴을 쳤었다. 때론 밤에도 나와 운동을 했다. 그리고 벤취에 앉아 히히덕거리기도 하고 어떤 깊은 밤엔 교목 숲안으로 들어가 맹랑한 짓거리를 하기도 했던 곱다면 고운 원초적 본능들이 일어 난다

남편은 늘 적극적이었다. 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유두를 빙빙 돌리고 서서히 아래쪽으로… 허벅지나 배꼽을 어지럽히기도 하고 귓밥을 간지럽힌다

<어쩔려고 그래!!! 누가봐>
<보긴 누가봐.....보면 어때^^^ 우리가 뭐 불륜이야 뭐야^^>
<이이는....미쳤나봐ㅎㅎ>

야합을 묵과하면서 체면치례로 하는 나의 거부를 아랑곳 않고 공략(?)하던 남편
금새 나를 무너뜨리거나 심하면 무아지경으로 몰아넣던 남사스러운 기억들은 이제 재생될 수 없는 나라의 것이 되버렸다니.....

혼란스러운 봄날 저녁의 귀가길....혼자사는 여자의 혼돈....
그래, 여체도 어떤날은 섹시한 바이오리듬에 사로잡힌다더니......
주체할 수 없는 세상의 훈기가 모여드는 밤거리는 왜이리 조용하지.....

왠지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한없이 걷고 싶다. 다리가 불어트도록 걸어가고 싶다. 그러나 내 발길은 결국 점점 집앞으로 향해 걸어가고 저만치 헬랭이라는 야식집의 배달 오토바이가 거리의 침묵을 깨고 내옆을 쌩 지나간다.

근데.....순간
연속극에서처럼 저만치 한 사람이 대분앞에 서 있다.

재범이다 분명히.....
언제부터 서 있었을까......
때를 따라 오던 남자이지만 이렇게 늦은밤에 온적은 없는데......

“이제오세요”

바닥에 깔린 재범의 목소리.
이럴땐 뭐라고 말해야 하는거지........
난 내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