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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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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상처로 얼룩진 그녀들의 이야기


BY 이미지 2012-05-07

"묶이는 거지!"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보호사가 검정색 유도복 끈을 들고 C/R로 들어 갔다.
그리고 더 이상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머리가 복잡해 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왜 묶지? 동물도 아닌데 왜 묶냐고? 세상에 이런 일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을 뻔했다.
"하루나 이틀 정도면 진정돼. 처음엔 거의 발광을 하지만 나중엔 얌전한 고양이가 되지."
나는 아무 말 없이 병실로 돌아와 내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지수 너 왜그래? 얼굴이 허연게 어디 아파?"
내 자리 오른쪽에 있는 미순언니가 물었다.
"아니. 그냥....."
"아~ 씨알에서 나는 소리때문이구나? 처음엔 다 그래. 하루가 멀다고 듣다보면 면역이 생겨. 오히려 안들리는 날이 좀 이상한거지."
밖이 소란 스러웠다.
"또 왜 저래? 또 무슨 일이래?"
"아~ 오늘 간식 오는 날이야. 그래서 저 난리지. 나도 간식 받으러 가야지."
나도 그녀를 따라 휴게실로 나가 보았다.
환자 들이 거의 다 휴게실에 나와 있어 정신 없었다.
과자 종류와 음료수,커피, 담배가 와 있었다.
호명된 사람은 과자와 음료수는 받아 갖고 왔지만 커피와 담배는 주지 않고 이름을 써 놓았다.
나는 또 궁금해져 미순언니에게 물었다.
"담배랑 커피는 왜 안줘?"
"담배는 하루 한갑이상은 안되고, 커피는 가끔 담배로 바꿔 먹는 애들이 있거나 밤귀신들 때문에 그래."
"밤귀신?"
"그래. 밤귀신."
"그건 또 뭔데?"
"밤에 잠안자고 귀신마냥 왔다 갔다 하는 애들."
"아 그렇구나....."
"그럼 간식은 어떻게 시키는데?"
"보호자들이 간식비를 원무과에 주면 그걸로 필요한걸 사 먹는거야."
"아~ 그렇구나."
방으로 들어오니 뿌연 얼굴에 돗수 높은 안경을 낀 한미란은 빵을 먹고 있었고 그 옆에 얼굴이 까만 오 은주는 사탕을 까서 오도독 거리며 깨물어 먹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들을 신기한듯 바라 보았다.
미란이란 여자는 빵을 한꺼번에 세개를 다 먹었고, 은주라는 여자는 사탕 한봉지를 앉은 자리에서 다 까 먹어 버렸다.
그녀들은 사물함 박스위에 빈 봉지를 수북히 쌓아놓은 채 바로 누워 잠을 잤다.
" 나참... 기가 막혀서. 쳐 먹은 것도 안 치우고 자빠져 자네....."
밖을 보니 눈이 내렸다.
누군가 나를 찾아주기만 애타게 기다리다가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외롭고 슬펐다.
이 병원에 입원한지도 열흘이 지났다.
6시면 울려 퍼지는 빈센트 교향곡, 환자들은 애국가를 그렇게 불렀다.
보호사의 커다란 음성. " 담배, 커피 받으실분 나오세요~!"
프라스틱 잔에 커피를 타서 마시며 내려 오는데 재영이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속으로"오래 있고 볼일이야."하며 대답했다.
"그래, 잘잤니?"
"네~ "
"커피 한잔 줄까?"
"네. 정말요?"
"얘가 속구만 살았나? 컵 갖고와."
나는 그녀의 머그잔을 받아 커피를 담아다 주었다.
커피를 받아든 그녀는 코끼리 만큼이나 커다란 등치로 신이나서 뛰며 자신의 병실로 들어갔다.
이불에 붙은 머리카락을 한올한올 떼어 내면서 나는 배시시 웃었다.
빠삐용이 바퀴 벌레 잡는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7시, 길게 늘어선 사람들 틈에 섞여  한참을 기다리다 내 아이와 통화 했다.
간단한 안부 전화 였는데 얼마나 서글프던지, 가슴이 미어 지도록 아팠다.
늦은 밤까지 이불속에서 울다가 약기운에 잠이 들었다.
  아침 재영이는 머리를 갑는답시고 웃통을 훌러덩 벗은채 머리를 감았다.
속옷도 입지 않은채 말이다. 한동안 동물원 구경하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오자 윤자 언니가 옆방 할머니 얘기를 했다.
"옆방에 조 순자 할머니 말야, 남녀 호랑계 할머니 인데 자식이 열이나 있다는거야. 그런데 구정후 자식들이 면회를 왔는데 껌한통 안사 왔단다. 자식이 열이면 뭐하냐..... 아이고...."
그녀는 안됐다는듯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밥 세끼 말고는 먹을게 없는데 말이야. 노인네 얼마나 열받았겠니."
  8시 20분  투약시간이 되었다.
다들 컵을 들고 있는데 윤 숙자 할머니만 화장실에서 바가지를 들고 남자들 투약하는데 끼어 들었다.
허 보호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할머니, 막걸리 받으러 오셨어요? 컵을 가지고 오세요."
할머니는 천천히 화장실로 가더니 다시 바가지를 들고 나왔다.
주위 사람들이 말리자 이번에는 발걸레를 집어 들었다.
결국 그 할머니는 그냥 투약 장소에서 정수기 근처에 있는 컵으로 약을 드셨다.
그 할머니는 치매 환자 였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허 보호사가 나를 부르며 말했다.
"민지수님! 남편분 면회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허 보호사가 굳게 잠겨진 자물쇠를 연 후 두터운 쇠창살을 올리고 나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하 1층에 마련된 면회실에 그가 앉아 있었다.
필요한건 없는지, 아픈데는 없는지 그게 전부였다.
눈물이 났지만 꾹 참으며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차라리 오지나 말지. 공연히 마음이나 심란하게 만들고....."
화장실에 갔다가 또다시 경악하고 말았다.
새까만 단발머리의 조그만 여자가 식빵 봉투에 가득  피를 화장실 바닥에 쏟아내고 그 봉투를 헹구어 내고 있었다.
순간 속이 뒤집히고 비위가 상했다. 화장실에 들어갈 틈도 없이 나는 그자리에서 토해버리고 말았다.
오늘도 누군가 C/R에 들어갔다. 아마도 여자인것 같았다.
저녁 투약 시간 허 보호사가 205호 할머니들에게 소리쳤다.
"할머니! 자꾸 누워만 계시니까 상조 회사에서 전화 오잖아요. 오동나무관으로 할건지 참나무로  할건지."
투약을 기다리던 여 환자들이 한참을 웃었다.
머리를 깔끔하게 묶은 유 복순 할머니. 그녀 역시 치매 환자다.
그녀는 는 가끔씩 흡연실에 있는 목용탕 의자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했다.
미순언니가 가서 구경해보라는 말에 불이나게 뛰어가서 구경했다.
빨갛고 파란 의자 다섯개를 종종걸음을 하며 하나씩 올라갔다가 내려 오더니 흡연실 밖으로 나오셨다.
그 모습을 보니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물어 보았다.
"할머니, 그 의자는 왜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 하시는건데요?"
그녀는 귀여운 여자 아이처럼 말했다.
"운동하는거예요."
"아~ 그러시구나.... 참 재미있으시겠네요."
"네, 재밌어요."
하더니 방으로 들어 가셨다.
 저녁 8시 30분쯤 투약을 마치면 병원의 하루가 다 끝난다고들 말한다.
휴게실의 조그만 창문을 통해 어둠이 깔린 거리를 내다 보았다.
오늘 따라 유난히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차가와 보였다.
"내일은 또 어떻게 보내야 하나....? 오늘처럼 무의미하게 병원에서 주는 밥이랑 약이나 먹고 멍때리겠지. 이건 치료가 아니야! 그냥 격리일 뿐이야! 약이나 먹여서 재워 버리는....."
 
 어쨌든 하루도 못 버틸것 같았는데 열흘을 지냈으니 앞으로도 별 무리는 없을 거라고 나 자신을 위로 하고 타일렀다.
다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4시, 파도 소리처럼 쏴~아 하고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과 환한 가로등 불빛. 오늘도 날이 추운것 같았다.
갑작스레 판도라의 상자 생각이 났다.
"마지막 남은 희망~! 그것 마저도 내겐 없는것 같다. 아무것도 남은게 없다.
무기력하고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 외엔.....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변해 버린걸까? 예전의 내가 아니다. 시골 작은 마을의 버스 정류소에서 언니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착한 소녀가 아니다. 이젠 세상 살이에 찌들대로 찌든 힘없고 늙은 아줌마일 뿐이다."
한참을 생각하다보니 아침을 알리는 "빈센트 교향곡"이 울렸다.
아침을 대충 먹고나서 은경씨 우는 소리에 나가보니 재영이가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무슨일인데 그래?"
"아유~ 씨~ 저게 바지 걷어 줬더니 그냥 우네~"
나는 울고 있는 은경씨 등을 몇번 다독여 주고 방으로 들어 왔다.
방안이 소란스러워서 보니 어제 씨알에서 울고 불고 난리를 쳤던 여자가 우리 방에 와 있었다.
나와 체격이 비슷했는데 머리가 조금 길고 나보다 몇살은 더 먹은 듯했다.
혜미와 어느새 죽이 맞아 음담 패설에 자질 구레한 얘기까지 떠들어 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다가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푸후~ 나이 오십줄에 다달은 아줌마가 자기 딸벌되는 아가씨와 콘돔이 어쩌구, 저쩌구....아무래도 정상이 아니야. 하긴 그러니까 여기 들어 왔지."
휴게실도 소란스러운건 마찬가지 였다.
전화를 걸기 위해 줄지어 앉은 사람들과 TV앞 중간에 커다란 몸을 떡 버티고 앉아 있는 은경씨.
그녀의 나이는 47세라고 했다.
윤자 언니가 내옆으로 와서 은경에게 얘기 했다.
"요즘 통 못먹더니 3KG이나 빠졌다며?"
하고 묻자 그말이 서러웠는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당혹스러웠다. 어느정도 진정을 시키고 다시 병실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쓰잘데기 없는 소리에 귀가 따가왔다.
슬며시 내 옆으로 미란이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저 지수 언니! 같이 얘기 해도 돼요?"
"응."
"언니는 여기 뭣때문에 들어 오셨어요?"
"나? 알코올이야. 술을 하두 쳐먹어서....."
"난 언니 알코올로 들어온줄 몰랐어요. 그거로 들어 온 사람들  보면 다 얼굴이 거무죽죽하고 그렇던데, 언니는 얼굴도 하얗고, 체구도 작아서...."
"그래?후~"
난 피식 웃었다.
"언니? 전요 미국에서 살다가 왔거든요. 재산 문제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서 잠깐 쉬러 들어 왔어요. 정리 되면 곧 나갈 거예요."
"아~ 그렇구나."
그때 내 담당의가 들어 왔다.
한사람씩 안부를 묻다가 내가 보던 책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책 이해 하면서 읽는 거예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아뇨!  전에 읽던 책인데 심심해서 다시 읽는건데 문제 있나요?"
했더니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곤 나가버렸다.
기분이 묘하다고 해야하나? 아니, 한마디로 더러웠다.
"정신 병원에 입원한 환자라고 , 알코올 중독자라고 프로이트 융의 책은  읽지 못하며 이해도 못한다는건가? 사람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야? 쉬벅 쉐이야~! 그래 니똥 굵다!"하며 중얼 거렸다.
새로 들어온 손영란, 처음 부터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보통 이상한게 아니었다.
잠깐 비누좀 쓰자고 했을때 버럭 화를 내며 쌍심지를 켤때,  우리 병실로 들어온날 하루 종일 자더니 오늘아침부턴 이상한 음담 패설을 하다가 점심 후에 자기 집안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는요, 결혼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남편을 존중해서 <서방님>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말이죠 아직 까지도 아무데서나 뽀뽀도 하고, 화장실에서 사랑도 나눈답니다."
다들 어이 없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윤자 언니의 휘둥그런 눈, 미순언니의 어이없다는 표정과 은주와 미란.
하지만 혜미만은 재밌다는 듯 귀를 쫑끗 세우고 얘기 듣기에 열중했다.
" 전 아들을 제왕 절개로 낳았는데 봉합할때 남편이 뱃속에 어디서든 자길 찾을수 있게 뱃속에 시계를 집어 넣고 꽤맸지 뭐예요.
그래서 배꼽 옆에서 아직도 똑딱 거리는 소리가 나요."
나는 기가 막혀서 되물었다.
"시계요? GPS아니구?"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난 모르는척 넌즈시 물어 보았다.
"일본 다녀오셨다면서 이미그레이션은 어떻게 통과 하셨나요? 시계가 들어 있었음 소리가 났을 텐데....."
"호호~ 작아서 아무도 몰라요."
"거 배터리 방전 안되었나? 어떻게 충전하죠? 흔들면 자동충전되나?"
하고 깔깔 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심각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거 있잖아요. 국가 정보원에서 쓰는 그런거.... 그게 뭐더라...?"
"뭐 GPS나 USB칩 같은거요?"
"아~ 맞다~! 바로 그거예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듣고 있자는 머리가 더 띵해졌다.
미순언니와 함께 흡연실 앞에 앉아 한바탕 웃었다.

"야~! 니 말이 맞았어. 하두 밝히니까 남편이 집어 넣은거야. 미쳐두 보통 미쳤어야지. 하하하~"
  휴게실 한쪽에선 할머니 네분이 화투 짝 맞추기를 하고, 중간는 큰 몸집을 떡 버티고 은경씨가 앉아서 울고 있었다.
"현준이 보고 싶어요. 현준이...."
은경씨가 울음을 그칠때까지 내 가슴도 찢어질 듯 아팠다.
"정신줄은 놨어도  자식이 뭔지....."
한참동안 울던 은경씨가 보호사에 의해 C/R로 끌려 들어 가는걸 보았다.
"안 할게요. 다시는 안 할게요....."
은경씨는 그렇게 애원했지만, 결국 그곳으로 끌려 들어갔다.
생각 같아선 말려 주고 싶었지만, 공연히 말려 들고 싶지 않았고, 나 역시 C/R에 들어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애써 참았다.
그녀가 C/R에 들어간 이유는 보이는 벽시계 마다 음식물이나 물을 부어 망가 뜨렸기 때문이었다.
저녁 식사때 식판을 들고 밥을 받았다.
입맛이 없어 조금만 달라고 했다.
이말에 황보호사는
"밤이 긴데....."
하고 대답했다.
재영이 옆에서 대충 몇 숟가락 뜨고 일어섰다.
샤워실 앞에서 윤자, 영자 언니와 혜미가 앉아 있었다.
이때 근무 교대를 하러 나온 허 보호사가 들어 오면서 궁시렁 거렸다.
"아니, 옷은 줘야 근무를 하지. 빤쓰 바람에 일하라는거야?"
이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미가말했다.
"숙자이모가 빤건데 때도 안졌어요!"
"변기통에 넣고 물 올렸다 내렸다 했구만...."
하더니 가버렸다.
 미순 언니는 담배 금지 풀린지 하루만에 재영이 담배 줬다가 다시 금지 1주일 연장 되었다.
수간호사와 상담을 마치고 들어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문을 두드리고 영자언니가 고개를 디밀며 들어왔다.
"미순이 뭘 생각해?"
"내가 왜 재영이년 한테 담배를 줬나 해서...."
"인력으로는 안돼!"
그녀 특유의 유모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난 "푸닥거리라도 해야 되는거 아닌가요?"
했더니
"돼지 머린 준비 됐어. 근데 못쓸거 같다. 인상 좋은걸 써야 되는데....."
이말에 혜미가
"재영이 놈요?"
"그래, 콧구멍에 담배 두개 꽂아 놓고 다 탈 때까지 놔둬야 돼.
얘~! 지수야! 하루 밥한끼 먹는 사람을 뭐라고 하는줄 아니? 일식이라고 하지. 두번 벅으면 두식인데, 세끼 다먹는 사람은 말이다...... 삼시 새끼야~!"
해서 한참 웃었다.
11시가 넘어서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은 언니 생일이고, 내일은 내 생일.
늘 아무것도 해주지도 못하고 말로만....
서글픈 생각에 눈물이 났다.
어제 간식주문 할때 담배도 두갑 시켰다.
그랬더니 키가 커다랗고 핸섬한 손보호사가 압수하고 나를 불렀다.
"민지수씨~! 담배 피우고 싶어요?"
"네."
"담배 안피우시던 분이 갑자기 왜죠?"
"원래 피웠었는데, 잠시 끊었던거예요. 답답해서 그래요."
"답답한건 알지만, 어렵게 끊고 다시 피운다는건..... 그럼 보호자랑 상의해 보고 결정합시다. 기분 나빠요?"
"네...."
손 보호사가 나가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욕을 해 버렸다.
"병신 같은것들~~! 별걸 다 갖고 지랄이네~!"
간호사가 다시 나를 찾았다.
"보호자님께 전화 드렸더니 술끊으라고 들여 보냈는데, 담배까지 피우면 어쩌냐고....."
"그래도 피울건데요?"
"그럼 전 모르니까 보호자랑 상의해 보세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이렇게 작은것 하나 내 마음대로 못하나 싶은게 눈물이 났다.
저녁 7시 전화 시간에 그에게 전화 했지만, 받지를 앉았다.
화가 치밀어 올라 머리가 띵하며 터질 것 같았다.
휴게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있는데 다른 환자들 전화 통화 하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엄마! 우리 미남이 잘있어? 고기잘 먹여야돼~! 너무 야위었어.
엄마, 우리 미남이 잘못하면 쓰러져~! 엄마.... 엄마~! 엄마!"
그쪽에서 전화를 끊은 모양이었다.
난 슬그머니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미남이가 뉘신데 그렇게 걱정을....?
"우리 개예요."
해서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내일은 내 생일~! 마흔 네번째 생일을 이런 곳에서 맞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 상태 우울하다. 비참하다. 죽을만큼..... 아~~악~~ 나 미친다~"
하고 중얼거리며 205호쪽으로 내려 오는데 복순 할메 아랫도리를 홀딱 벗고 방에 서 있었다.
영자 언니가 옷입으로고 말리며 문을 닫았고 이곳에온지 오래된  다른 환자들은 다 그러려니 하고 대수럽게 생각지 않았다.
  새벽 3시30분! 깜짝 놀랐다.
은주씨가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게 아닌가.
"은주씨~! 잘잤어요?"
"네...."
"일찍 일어났네요?"
"네..."
잠이 많은 탓에 아침 거르기를 밥 먹듯이 하던 은주씨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 앉아 있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일"이었다.
은주씨와 함께 커피 한잔씩 마시고 났더니 은주씨는 다시 잠이 들었다.
나만 침침한 수면등 아래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 오늘은 내 생일이자 제사가 있는날, 나 없이도 잘 굴러 가겠지 뭐." 하고 집걱정은 더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외박나간 윤자언니를 대신해 허 보호사의 부탁으로 아침 배식을 했다.
빨간 앞치마를 목에 두르고 장조림과 연두부를 나눠 주었다.
아침 약을 먹고 샤워하고 머리 말리느라 휴게실을 한참동안 서성이는데 최수현과 남녀호랑계할머니가 언성을 높여 가며 대판 싸웠다.
"잠잠할 날이 없구먼.... 츳~~츠~"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은주씨는 찬송가를 중얼거리고 다들 아침 잠에 홀딱 빠져있었다.
"아~ 오늘은 또 무슨일이 일어날까...?
오전 10시쯤 휴게실에서 영화를 보고온 은주씨 계속 중얼 거리며 병실을 수없이 들락날락 거렸다.
신경이 거슬렸다.
"은주씨~! 아침약 안먹었어요?"
"먹었는데요."
"근데 왜 그래요? 계속 들락날락 거려서 정신이 없네!"
했더니
"제가 나갈까요?"
"알아서 하세요~!"
은주씨가 휴게실로 나갔다가 잠시후 다시 들어왔다.
10분동안 드나 들기를 12번. 11시25분 부터 나는 그녀가 드나드는 걸 세기 시작했다.
5분동안 수 없이 드나들더니 이젠 펜을 두드린다.
"은주씨~! 시끄러워요~!"
했더니 하던걸 멈추었다.
 회무침, 과일,초밥을 사갖고 면회 오라고 했다던 영란씨가 면회를 마치고 들어오더니 슬며시 눈물을 흘렸다. 무슨 일이 생긴듯 했다.
12시 50분쯤 은주씨가 또 시작인 모양이었다.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병실에 들어와 웬일로 양치질을 할 모양이다.
어라? 칫솔에 치약을 짜서 나가더니 그냥 갖고 들어와 자기가 메모한 노트를 중얼 거리며 읽고 소리내어 웃는다.
"가도 한참 갔구먼...." 하고 모르는척 웃어 버렸다.
영란씨가 초밥과 파인애플을 자랑하며 내 놓았다.
덕분에 맛있게 먹기는 했지만, 토요일에 퇴원한다면서 운 이유는 여전히 궁금했다.
은주,미란등 자기세계로 다시 여행을 떠난 동안 나는 멍하니 앉아서 영란이란 여자에 대해 관심있게 보았다.
"흥~! 내가 사람을 못 고를줄 알아? 다 고르거든."하면서 비스켓 박스를 두들겼다.
"나도 정상은 아니지만 도대체 이게 뭔일인지....과연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두발로 서서 정상적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걸까? "하고 나역시 돌아 버릴 듯 한 느낌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영란씨 이번에는 이것 저것 정리를 하는건지, 어지럽히는건지 알수 없이 여전히 뭔가를 두드리며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남자가 어쩌고 저쩌고.....
하긴, 멀쩡하면 여기에 들어 올리가 없지.
"하하하~ 이번에 오면 뽀뽀해 버려야지!"하고 중얼거렸다.
미리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중증이라고 생각했다.
섹스중독, 과대망상, 피해망상, 의부증, 남편에 대한 지나친 집착.
하면서 혹시나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혹시.... 남편이 아닌거 아닌가...? 혹 세컨인가?..."
  손 보호사가 내게 좀 미안했던건지, 껄끄러웠던지 담배에 대해서 얘시 하자고 나를 불렀다.
"본인이 피우려고 하는게 아니고 누구 주려고 하는거아녜요?"
"아뇨. 담배에 대한 룰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담배를 주거나 빌려 피우면 안된다는것도요."
"그럼, 가족과 잘 상의해 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손보호사가 간호사실로 돌아가고 흡연실 앞에 앉아 있는데 화장실에서 영자언니의 괴성이 들렸다.
"내가 미쳐~! 난 몰라~! 다 치우고 나오라고 그래~!"
화장실에 가보니 뽀빠이 윤숙자 할머니가 아랫도리를 벗은 채 서 있고 바닥은 온통 똥 투성이였다.
역겨운 냄새가 진동해 나는 코를 막고 병실로 들어 왔다.
저녁 배식을 하고 밥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손 보호사가 내 식판에 야채 크로켓을 담아 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
"너무 많아요~!"
했더니 남자 환자들을 돌봐주는 김씨 아저씨.
"많이 드세요! 빈혈있게 생겼구만."
"어? 저 빈혈 없어요."
손 보호사가 말을 이었다.
"민지수님은 나중에 식당 같은거 하면 잘 하시겠어요.
"헤~ 그렇잖아도 나가면 해 볼 생각인데, 보호사님이 많이 좀 도와 주세요."
그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사람들, 김씨 아저씨, 박숙자(할머니라고 하면 화내므로 미세스 박이라고 부른다.)영자언니, 보호사랑 큭큭대며 웃었다.
"영자님은 함바집에서 돈 받는일 하면 딱이야. 야이 새끼야~! 다 쳐먹었으면 돈내고 빨랑 꺼져~! 이렇게 하면 딱인대"
"나가면 한번 해보지 뭐"
웃음 참느라 혼났다.
혜미는 영란이 먹을것 줄 때만 알랑 거리다가 다 먹고 다면 다른 방에 가서 제 아이 또래랑 놀기에 바빴다.
영란은 혼자 심심한지 중얼 거리며 몸부림 쳤다.
 
 교통 사고로 몇일전 새로 들어온 최씨. 교통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단다.
휠체어를 타고 황보호사에게 수건을 꺼내서 들이대며 따지기 시작했다.
"수건이 이렇게 물이 빠졌잖아요! 이걸 어떻게 써요? 버려야지."
이말이 채 끝나기도 무섭게 영자언니 큰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이리좀 와 보세요."
최씨는 수건을 들고 미자언니 앞으로 갔다.
"아저씨! 수건이 그렇게 많아요? 제가 여기 빨래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개인 빨래를 맡기는 경우는 뭐냐구요? 이번엔 어차피 세탁기에 들어가 있으니까 빨아 주겠지만 다음부턴 못해요!"
환의복을 입으세요!"
"환의복 입으면 병신 같아서....."
"그럼 알아서 하시던지."
"제 옷만 여러벌 모아서 한꺼번에 빨아주시면 사례는 충분히....."
영자언니가 말을 막았다.
"아, 글쎄 안된다구요!"
"아니, 이 얼굴에 제가 아무거나 입을 사람 같아보이세요?"
하더니 재빨리 휠체어 바퀴를 굴려 휭하고 자기 병실로 가버렸다.
"나참 기가 막혀서~ 확!"
들은 나도 기가 막혔다.
"그럼 나나 다른 환자들은 아무거나 입을 사람 이라는걸까? 환의복 입으면 <병신같아 보인다>고 했는데, 병신같아 보이는게 아니라 어쨌건 최씨는 사실 병신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못보던 할머니 한분이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서럽게 울고 계셨다.
다가서서 자세히 보니 아주 작은체구의 할머니였다.
뭐가 그렇게도 서러우신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나는 아마도 "누구에겐가 버려졌다는 사실에 외로움과 서러움이 사무친 것" 이라고 생각했다.
남일 같지 않다. 나도 머지 않아 저렇게 될지도 모르는데.....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고 벽에 달린 조그만 시계를 보니 12시 30분.
호기심이 발동해서 나가본 나는 할말을 잃었다.
복도에 놓아둔 빨래 건조대 아래가 온통 똥 투성이였다.
범인은 바로 뽀빠이 할머니.
황보호사가 화를 내며 닦아냈고 냄새가 진동해 코를 막고 병실로 들어와 다시 잠을 청하는데 다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잠에서 깼다.
나가보니 황보호사는 흡연실앞에 화를 참지 못해 씩씩거리며 서있었고 흡연실 바닥엔 똥과 오줌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저쪽 한구석에서 뽀빠이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쪼그리고 앉아 양치질을 하고 계셨다.
"할머니! 여기가 화장실이예요? 화장실은 저 쪽이라구!"
뽀빠이 할머니는 들은척 만척 양치질에만 열중했다.
뽀빠이 할머니는 아마도 그곳이 화장실인줄 착각하고 볼 일을 보신 모양이었다.
요즘들어 부쩍 환자들 상태가 안 좋아진 듯 했다.
유할머니나 뽀빠이 할머니, 은경,은주, 혜란 등
염보호사는 밤새 똥구경에 혼자 뒷처리를 다해서 지쳤는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새벽녘 설사에 시달리시던 뽀빠이 할머니 얼굴이 헬슥해 지셨다.
작은 체구에 가뜩이나 얼굴까지 하얀분이신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은경씨가 또다시 사고를 쳤다.
환자용 냉장고옆 물받이 통을 화장실로 들고와 커피믹스 두개를 타서 마시겠다고 난리였다.
영자언니와 함께 겨우 말려 놓고 병실로 들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치밀어 견딜수가 없었다.
"내 생일이었던걸 몰랐던걸까? 아님 알면서도 모르는척 한걸까? 그래, 어디한번 해보자.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구!"
점심 배식후 변기에 앉아 힘을 주고 있는데 누군가 노크도 없이 문을 활짝 열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쳐다보니 205호의 천만원, 일명 홍탁이었다.
화장실 문에는 잠금 장치가 없으므로 슬리퍼를 문밖으로 반쯤 내밀어 놓고 문잠금 장치가 있던 작은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 넣고 문이 열리지 않도록 하고 볼일을 보는데 그만....
얼마나 힘이 세던지 손가락이 부러지는줄 알았다.
사과도 없이 가버려서 205호로 쳐들어 갔다.
"아줌마! 화장실 문을 노크도 없이 활짝 열었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하는거 아녜요?"
"그래, 미안하다."
건성으로 대답했다.
"뭐? 이 아줌마가 정말! 그게 사과라고 하는거예요? 눈이랑 손은 폼으로 달고 다녀?
대가리는 장식품이야? 뭐 이딴 아줌마가 다있어?"
이때 옆에있던 재영이까 이빨이 빠져 새는 발음으로 거들었다.
"아줌마! 나도 이 언니 한테 혼났어. 아줌마가 제대로 사과해."
"그래,  미안해요...."
"됐어요!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하고 병실로 돌아오자 혜미가 sbs수목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영란씨가 다른 프로를 보자고 했지만 모두가 보고 있었으므로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한편이 끝나고 다음회를 보던 중 모두 잠이 들고 나와 영란씨만 깨어 있었다.
"자꾸 움직이라"는 수 선생님의 말에 조심스레 방안을 서성이기도 하고 스트레칭을 하는데 영란이 갑작스럽게 대들었다.
"왜 자꾸 채널을 바꿔요? TV는 혼자 전세냈나?"
"뭐? 누가 채널을 바꿔? 또 지랄하네....."
그랬더니 혼자 미친년마냥 채널을 돌리고 외부입력에 자동화면조정까지 건들고 한참동안 지랄을 떨더니 TV를 끄고 나가 버렸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책을 꺼내 들고 읽는 척만 했다.
잠시후 다시 들어온 영란은 미순언니에게까지 공연히 시비를 걸었다.
208호에서 미순언니에게 뭘 물어 보러온 애 한테까지 "나가"라고 소리질렀다.
"병신, 지랄 생쑈를 해요!"하고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저녁 배식 준비를 하려는데 허 보호사가 면회 왔다고 했다.
"흥~! 그럼 그렇지, 자기가 날이겨?"
지하1층 면회실이 아닌 1층 로비에서 그를 만났다.
차가운 플라스틱 의자에 케익 박스가 놓여있었고 그가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차가운 의자에 앉아서 병원에 대해서 얘기 했다.
"왜 왔어?"
"자기 생일이었잖아. 어제 오고싶었는데 제사도 있고 바빠서 못왔어. 미안해."
"됐어!"
"어디 아픈데는 없고?"
"내가 지금 정상으로 보여?  미치겠다구!"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세달 금방가."
"뭐?세달? 세달이 장난이야? 난 삼초도 못버틸 지경이야. 알아?"
"그래도 어떻게해. 고치고 잘 살아봐야 할것 아냐."
애써 참으려고 했지만 눈물이 쉴새 없이 흘러 내렸따.
안경을 벗고 옷 소매에 눈물 닦기를 수십번. 참으려고 할수록 눈물은 도무지 마를줄을 몰랐다.
"여기가 어떤덴지 알아? 알코올 환자만 있는게 아니라구. 피토하는여자에, 미친년놈들 가지 각색이라구! 이순재 병원이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돈만 되면 다 받아버리는...."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거짓말만 늘어 놓고 나보구 어쩌라구? 노트북도 안되고 담배도 안돼면 어떻게 하라구? 주는 밥이나 쳐먹고 약기운에 퍼질러 자다 일어나서 하루종일 멍 때리면서 미친년놈들 지랄하고 노인네들 똥싸서 늘어놓는 꼴을 세달 동안이나 보고 살라고? 그래, 내가 얼마나 미치는지 두고 보라구!"
"의사말이 세달 정도는 치료 받아야 하고 노트북은 안된대고, 개고생해봐야 다시는 술 안마신대."
"이제 다신 오지마! 내가 얼마나 미쳤는지 궁금하면 와서 구경하고."
의자에 덩그러니 놓여진 케익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이거 갖고 가서 먹어."
"됐으니까 갖고가!"
"그래도 사온 성의를 생각해서 갖고가. 정 먹기 싫음 간호사 주던지. 뭐 필요 한건 없구?"
"없어!"
그는 나를 한번 훑어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얼굴 색은 전보다 좋아졌네. 근데 내가 사준 양말은 왜 안 신었어?
모자르면 더 사다 줄까?
"아니 됐어!"
추워서 몸이 덜덜 떨렸다.
"추우니까 빨리가! 그리고 오지마!"
나는 그에게서 케잌을 받아 들고 등을 돌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아직까지 그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저녁때 뽀빠이 할머니는 또 실수를 하셨고, 머리카락 한올 빠져 나온것 없이 곱게 빗어 노란 고무밴드로 꼭 묶어 단정해 보이는 유할머니.
가끔 화장실이나 방에서 옷을 벗고 계셔서 이상하다 했더니 여간 깔끔한 분이 아니셨다.
화장실에서 옷을 벗는 이유는 소변이 묻을까봐 지나치게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다.
은주는 저녁 식사후 벽에 대고 절을 두번하더니 다시 한번 하고 거수 경계를 했다.
"충성"
"은주씨! 뭐하는거야?"
"제 남편이 인민 무력 부장이라서....."
"그럼 간첩이야?"
"네...."
은주는 자신이 간첩이라고 했다.
혼잣말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만 자신이 간첩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진짜 그런것 처럼 행동 하기도 했다.
  3분전 6시에 나는 형광등을, 미순언니는 TV를 켰다.
그랬더니만 늙은 독사 같은 영란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버럭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잠도 못자게 하고 단체 생활에 대한 예의도 없고, 뭐하는거야? 더이상 정신병자들 하고 못있겠네!"하며 나를 쳐다보고 다시 말했다.
"네년 죽여버리고 내가 C/R을 간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놀구있네~! 니가 날 죽이면 씨알가냐? 빵에 가지? 병신, 이병원 기상시간 여섯시인거 몰라? 3분전 6시에  불켰거덩~"
완전 돌아벌인 여자 처럼 게거품을 물고 지랄을 떨었다.
밖에선 영자 언니가 빨래 건조대에 널어 놓은 이불이 없어 졌다고 난리치다가 우리 병실로 들어왔다.
"이방에서 이불 걷어 온사람?"
그랬더니 영란은 나를 가리키며
"저년이 이불 걷어 갔어요. 환의복 바지도 걷어다가 놓고 입구요." 하고 고자질했다.
"바지는 방이 건조해서 널어 놨다가 입는다고 얘기해서 알고. 왜 이불이 네개야?"
"하나는 갖고 온거고, 또하나는 있던거고, 두개는 황주임님이 주신거예요."
"CCTV확인해 보면 되니까!"
"CCTV확인해 보세요. 이불을 어떤년이 훔쳐갔는지!"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아무 말없이 듣기만하며 실실 웃었다.
병실 밖으로 나갔던 영자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난 누군지 알아. 이불을 네개씩 갖고 있는년! 내가 그런거 하나 모를줄 알아?"
커피를 마시기 위해 복도로 나가자 영자언니와 수현이가 담배를 피우며 손영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에이~ 씨발~! 왕재수 같은년. 없어진 이불에 담배로 엷게 그을린 자국이 있어서 찾을수 있어. 이불 다 빼앗아 버려야지!"
하고 영자 언니가 재털이에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병실로 들어오자 늦잠을 잔 혜미가 아침부터 웬 소란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고 있었고 영란은 또 게거품을 물며 얘기했다.
"환의복이랑 이불 훔쳐간 년은 따로 있는데 나한테 몰아 붙이는거야.그리고 여기도 단체 생활이니까 서로 배려해가면서 지내자고 조용조용 얘기했어."
어쩜 그렇게 거짓말을 숨쉬듯하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씨발 성질나면 다 밟아 버리고 C/R 들어가 버릴거야.
내가 C/R가서 R/T한두번 당한 년인줄 알아? 나 여러번 해본년이야~!"
하며 혼자서 열을 냈다.
"C/T들어가서 R/T당한게 무슨벼슬이나 훈장쯤으로 아나,창피한줄도 모르고, 그러니까 왕따나 당하지. 뭔가 퍼줄때만 헤헤거리고 놀아주다가 아무것도 없으면 다들 훽하고 돌아선다.
자기 스스로도 알고 있겠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어하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그게 안되니 개지랄을 떠는거야." 하고 속으로 중얼 거렸다.
자기 주치의가 왔을때도 이불에 대해 떠들었다.
"한소리 또하고, 되새김질 하고.... 미쳐도 정도껏 미쳐야지. 미친년이 안미친척 하려니 힘도 들겠지. 나야 뭐 술에 미친년이니까. 참 딱하다. 관심받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가상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 전까지 영란은 환기를 시킨답시고 작은 창문을 두번씩 활짝 열었다.
자기는 이불이 네개나 있으니 푹 뒤집어 쓰고 벽에 두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이불을 몸에 감고 기침을 하며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닫았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방에 들어오자 연세가 가장 많으신 이 정희님과 미순언니가 병실에 있었다.
창문은 열려진 채고 있었고 이정희님은 추우셨는지 이불을 목까지 끌어다 덮고 벽에 기대어 계셨다.
병실안이 썰렁하기에 창문을 닫으며 혼잣말로
"바람도 찬데 창문은 왜자꾸열어? 이불 네개씩 덮는 년이야 추운줄 모르겠지만!"했는데
영란이 듣고 말았다.
"뭐라고? 다시말해봐!"
"들은 그대로!"
"이게 미쳤나! 환기도 못시켜? 문 열렸으면 닫으면 되지 단체 생활에 대한 예의도 몰라?"
"아~ 그렇게 예의를 잘 아시는 분이 주윗분들 양해도 안 구하고 문을 막열어?"
"이거 미친년아냐?"
이말에 미순언니가 거들었다.
"뭐 미친년? 니가 미친년이다~!"
"이주 두년들이 쌍으로 개지랄떠네. 니 두년들 C/R한번 가볼래?
"하이고~ 세트로 C/R가게 생겼네~ 언니! 우리C/R가기 전에 커피나 한잔 마시자!"
잠시 화를 가라앉히고
"나야 미쳤으니까 이병원에 들어 왔지만....."
했더니
"뭐? 나보구 미쳤다구? 이런 씨발년이!"
"귀를 쳐 잡수셨나, 내가 미쳤다구!"
미순 언니가 다시 끼어 들었다.
"야, 그만해 저런년 상대도 하지마!"
점심 식사를 마친 은주, 미란이 들어 오면서 잠시 잠잠해졌다.
미친것 처럼 쓰레 받이를 들어 바닥을 쓸던 영란이 들으라고 일부러 이정희님께 물었다.
"이방 청소나 해요?"
"아침이나 낮에 자주해요."
"자기 자리만요?"
"자기 자리만 하는 사람도 있고, 다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웃음을 꾹 참았다.
자기 자리만 치우는 사람은 영란이었기 때문이었다.
방바닥을 엉성하게 쓸어내며 말했다.
"어떻게 C/R보다 더 더러워? 씻지도 않는 더러운년들!"
어이가 없었다.
"년들!"이라니....
정희님은 60세이시고, 미순언니는 53세면 한참 윗 사람이건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뭐?년들? 아주 지랄을 하세요!"
미순언니가 말렸다.
"에이 씨발~ 저 미친년이랑 말 섞지마!"
"니 두년들 나한테 욕했어? 당장 보호사 불러서 C/R보낼테니 두고 봐. 씨발년들!
"그래주면 감사~ 잘됐네, C/R에서 조용하게 하룻밤 쉬고 오지 뭐."
난 책을 읽으며 그렇게 말했다.
잠시후 씩씩 거리며 돌아온 영란
"보호사 불렀으니까 니 두년들 C/R에 갈줄 알아. 내가 다 말했어!"
미순언니가 비웃으며 말했다.
"C/R은 아무나 가나?"
나는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고 미순언니 역시 커피만 마시고 있었다.
"아휴~ 왜 보호사 안와? 빨랑 C/R좀 가게."
10분이 지나도 보호사는 오지 않았다.
30여분이 지나 수간호사가 나를 스테이션으로 불렀다.
나는 어제 TV채널 사건과 새벽녘에 벌어진 이불, 환기문제, 다 싸잡아서 욕한점 등을 차근차근 얘기했다.
잠시후 미순 언니가 불려 들어오고 수간호사가 미순언니에게 사건 내용을 물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서 잘 조정 하시고, 영란씨 불러서 자초 지정을 물어 볼테니 지수씨랑 미순씨가 이해좀 해줘요!"
"저도 이렇게 까지 될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 후 병실로 돌아오는데 허 보호사가 말했다.
"영란님이 시비걸면 안걸린 다른 한분이 꼭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영란은 간호사실로 불려 가더니 가자 마자 고개를 숙이고 금방 돌아 왔다.
 나와 미순언니를 C/R로 보내 R/T시킨다더니만 이불만 홀딱 빼앗기고 망신만 당했다.
윤자 언니가 미순언니와 날보고
"오죽 했으면....."하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윤자 언니의 중재로 미순언니와 영란이 화해 비스므레 한걸 했다.
"제가 먼저 사과 드릴께요. 앞으로 깍듯이 예의 지킬테니 잘 지내봐요.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미순 언니는 마지 못해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엉성하게 대답했다.
"그래, 나도 미안하다."
윤자 언니가 말했다.
"지수씨도~"
"사과 하고 말게 어딨어요. 그냥 잘 지내면 되지....."
그리고 병실안은 조용해 졌다.
영란이 리모콘을 미순언니에게 양보했고, 미순언니는 슬며시 웃어 보이며 내게 신호를 보냈다.
"야~ 꼬랑지 내렸다~"하고
영란은 수간호사에게 별 말도 못하고 주의만 듣고 나온 모양이었다.
꼼짝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는 꼴이 얼마나 고소하던지.
나도 참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년이라는건 알았지만, 이럴줄은 나 잔신도 전에는 알지 못했고, 이병원에 와서야 비로소 깨닫고 느꼈다.
   다들 가슴 아프고 슬프고, 괴롭고 힘겨운 사연들이 많았다.
알코올, 자살미수, 우울증에서 조울증, 치매, 정신 분열등...
삶에 지쳐 모든걸 잊고 싶어 자포자기 상태로 긴 잠에 들고 싶은.
눈을 뜨는 것, 숨을 쉬는 것 조차도 포기하고픈 심정을 알까?

  저녁  투약전 수현이 우리 병실을 방문했다.
영란이 수현에게 파인애플을 주며 오늘 아침 얘기를 떠들어 댔다.
"수현아! 오늘 아침에 있잖아, 나를 이불 도둑년으로 모는거야. 처음에 한개는 내가 갖고 왔고, 또한개는 여기 있었고, 나머지 두개는 내가 춥다고 하니까 황보호사가 준 건데 나보고 이불 도둑년이래.
황보호사오면 확인시켜 줄려고. 억울하잖아!"
정말 어이가 없었다. 단지 물어 봤을 뿐 누구도 그녀를 이불 도둑 년 이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간신히 참고 넘어 가 있는 동안이라도 사이좋게 조용히 지내보려 했는데 잘 안될것 같았다.
하지도 않은 소리를 했다고 몰아 붙이고 CCTV를 피해 창문 아래 대리석 턱 밑으로 쏙 파고 들어 벽쪽으로 바짝 붙었다.
  재영은 내일 퇴원한다고 들떠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퇴원하지 못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허 보호사는 우리 병실로 들어와 은주를 놀렸다.
"오~우~ 은주~!  우리 베트콩 은주님,아침 식사후 퇴원~! 이제 난 뭔 낙으로 사나~"
하고 가버렸다.
은주는 벌떡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스러워 은주를 타일르며 얘기했다.
"은주야~! 허 보호사님이 장난 치신거야. 퇴원아니야~!"
하고 말려도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뛰어나가 허보호사를 불러왔다.
"오~은주님! 베트남에 눈이 너무 와서 비행기가 못떠~! 그리고 눈썰매장 때문에 비자가 밀려서 못나온대. 그래서 못가니까 좀 기다려.~"
그제서야 은주는 허보호사에게 속은 줄 알았다.
많이 집에 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엔젤 교향곡이 울리고 창문을 열고 바닥을 청소했다.
오늘은 햇살이 제법 따스해 보인다.
복도에서 걷기 운동을 하던 재영을 보고 나는 영구 흉내를 냈다.
"안~ 뚜우~ 안 뚜우 뜨리 뽀~ 띠리리 리리리~ ~ 영구 엄따~"
했더니 좋아 죽는단다.
점심식사후 일주일에 2번 있는 알코올 교육이 있었지만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다 알고 있는 뻔한 얘기가 분명할 테니까.
빈둥 거리다 휴게실을 돌고 있는데 미란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언니는 참 친절하신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요."
"잉? 얘가, 얘가.... 난 안 친절해. 시한폭탄이야!"
"아닌것 같은데~"
"한번 폭발하면 무서워~!"하고 웃어 보였다.
재영이가 또 C/R에 갔다.
수현가 몰래 갖고 들어온 BB크림을 훔쳐 강시처럼 허옇게 다 짜 발랐단다.
상상만 해도 웃음이 저절로 났다. 그 등치에, 그래도 여자라고....
그녀는 한때 잘 나가는 유도부 유망주 였는데, 선배들에게 된통 얻어 맞아서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군데군데 땜통자국과 기다란 흉터자국이 그녀가 얼마나 상처 받았는가는궂이 말로 듣지 않아도 알고 남았다.
알코올 교육에서 돌아온 윤자 언니와 한참을 얘기 했다.
그러다 보니 통하는 부분도 많았다.
내가 보고있던 매닝거의 <인간의 마음 무엇이 문제인가?>와 프로이트에 대해서 얘기 했고 점점 발전해 알코올과 집안 얘기 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병실 식구들이 모두 합세해 자신들의 이야기 보따리를 조금씩 풀어 놓기 시작했다.
병실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특히 은주는 저녁 식사 후까지 끊임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남편과의 나이차이, 두 아이들과 어렸을적 고향.
학교 시절 얘기를 하다가 들으니 은주는 내 고등학교 3년 후배였다.
왠지 모르게 그런 은주가 측은해서 무엇이든 도와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약시간, 늘 느끼한 시선으로 여자들을 훑어 보는 장씨 영감이 은주에게 수작을 걸었다.
"베트콩~!"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하고 은주가 따끔하게 얘기했다.
난 은주의 등을 치며 응원했다.
"잘했어~! 바로 그거야!"
남에게 싫은말을 전혀 못하던 그녀가 오늘은 의사 표현을 분명하게 했다.
난 그 영감을 보고 쬐려 보며 뒤에 있는 미순언니에게 말했다.
"그저 수컷들이란.... 갖은 꼴값을 다 떨어요~"
"으유~ 병신~"
다시 장영감이 은주에게 말을 걸었다.
"아~ 오 은주씨~?"
그러자 옆에 있던 틀이 낀 김 영감이 거들었다.
"병신 지랄하지 말라고 예기해~!"
속이 다 시원했다.
투약후 은주 때문에 병실은 웃음 바다가 되었다.
은주가 배에 난 까만 사마귀를 보여주며 <복점>이라고 했다.
나는 <수박씨>같다고 했고, 윤자언니는<서리태>인줄 알았다고 했다.
병실 안에서 다들 뒹굴며 웃었다.

  아침, 알코올로 들어 왔다가 재활 치료 병원으로 옮긴다며 체어맨(최씨)이 퇴원을 했다.
전화를 걸기 위해 쪼그리고 있던 유할머니가 뭐라고 하셨는지 모르지만 재영이가 할머니 입을 손바닥으로 톡톡 때렸다.
순간 화가 나서 재영이를 불러 세웠다.
"야! 재영이 이리와~!"
"언니, 왜요?"
가까이온 재영이를 유할머니에게 한것 처럼 나도 똑 같이 재영이 입을 때리며 말했다.
"야! 너 이렇게 맞으니까 좋냐? 응? 감히 어디 할머니한테 버릇없이....
한 번만 이딴짓 더 하면 나한테 죽는다. 알았어?"
재영이는 고개를 조금 숙이면서 대답했다.
"네~"
 윤자 언니가 수요 예배를 보러 간후 휴게실로 나갔다.
은경씨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유할머니는 빨간 수건에 싼 물건을 옆에 놓고 소파에 앉아 계셨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
"빤스랑 비누예요."
"어디가시게요?"
"집에 가요. "
"아~ 할머니 퇴원하시는구나? 좋으시겠어요."
난 할머니가 퇴원 못할줄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소녀처럼 환한 미소로 웃었다.
뽀빠이 할머니가 부러웠던지 쇼핑백에 뭔가를 잔뜩 담아서 두꺼운 철창이 쳐진 엘리베이터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할머니~! 어디가세요?"
하고 묻자 뽀빠이 할머니 대답하셨다.
"퇴원해요~"
이때 황 보호사가 뽀빠이 할머니의 쇼핑백을 잡으며 말했다.
"어디 가시게? 이건 내건데"
"집아 가게."
"할머니, 이리로 오세요."
뽀빠이 할머니를 병실에 모셔다 드린 황보호사가 유할머니 옆으로 왔다.
"할머니, 이건 또 뭐야?"
"빤스랑 비누요. 엄마 아빠가 데릴러 온댔어."
황보호사에 이끌려 병실로 들어갔던 유 할머니는 잠시후 아기처럼 기어서 휴게실로 나오셨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유할머니께로 향했다.
유할머니는 어린 아기로 되 돌아 갔다.
"할머니, 일어나세요. 기어다니시면 무릎아파요."
나는 할머니를 부축해 소파에 앉혀 드렸다.
뭔지모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마음속 한구석이 텅 빈 듯 허전하면서 허무하기도 하고.
어린 아이 같은 유할머니의 모습을 잊어 버리기 위해 종이학을 접다가 책을 읽었다.
점심 식사후 언니와 엄마의 면회가 있었다.
나를 본 엄마와 언니는 자꾸만 우셨다.
"아이고~ 내동생 머리가 언제 이렇게 쉬었니...."
하며 커다란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 역시 안경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시며 눈물을 닦으셨다.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쉴새 없이 흘러 내려서 견딜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 얼굴을 어루 만지시고 꼭 안아주면서 말씀하셨다.
"지수야~!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이번엔 다 고쳐서 나와~! "
30분 면회 시간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러 눈물을 닦고 병실로 들어 오자 영란이 물었다.
"아무것도 안사왔어요?"
"병신같은년!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하고 속으로 중얼 거렸다.
아픈 마음을 진정 시키려고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면회를 마친 종순언니와 휴게실 소파에 갔더니 뱀과 대화를 나눈다는 미정씨가 내게 관심을 보였다.
"이름이 뭐예요?"
"민 지수예요."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고 해서 종이컵에 커피를 타다가 건냈다.
자신의 나이도 나와 같다며 친구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유난히 새까만 피부를 가진 그녀는 하얀 내 얼굴이 부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병실로 들어오니 영란혼자서 중얼거리며 방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롯데, 애경, 서울대공원, 타이거즈가 호랑인가? 고려대가 뭐지? 이글스가 뭐지? 서울대공원이 어딨더라...?"
<닥터하우스>를 보던중 잠시 광고를 보며 내가 윤자 언니에게 말했다.
"보험이나 대부업체 광고 밖에는 없네요. 월마트나 까루푸같은 외국 기업은 망해서 나갔어도 산와 머니는 돈 벌어 갔다네요."
이말에 영란이 끼어 들었다.
"러쉬앤 캐쉬도 외국거 잖아요."
다시 하우스를 시청하던중 솔로몬 얘기가 나왔다.
그랬더니 영란이말하길.
"솔로몬도 대부업체 잖아요."
"여기서 솔로몬은 왕요, 진짜 아기 엄마가 누군지 가려낸 지혜의 왕요~!"
영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아~ 맞다. 솔로몬."
정말 어이가 없었다. 도저히 말도 안통하고 하는 행동 역시 엉망 진창이었다.
영란이 밖으로 나가자 윤자 언니가 기가 막히다는듯 웃었다.
영란은 창가에 포도나 파인애플등 먹을 것을 올려 놓는다.
다들 보라는듯이 냉장고에 넣어둔 마트 쇼핑백을 꺼내서 들고 다니다가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한심하기도 하고 안됐다는 생각, 재수없다는, 병이라고 생각하면 불쌍했다.
자기는 정상이라고 벅벅 우기던 영란에게 주치의는 퇴원을 하더라도 치료는 계속 받아야 한다고 심각하게 말했다.
정상이라더니.
오늘 은주는 몸이 안좋은지 하루종일 앉아 있지도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며 잠만 잤다.
간호사에게 말했더니만와서 혈압과 맥박 재고
"이불 덮지 마세요."
하고 나갔다.
한참만에 원장이란 영감이 들여다 보곤 "좀 쉬면 나아질것"이라고 말하며 나갔다.
"그걸 말이라고 내 뱉는건가? 날마다 주는 밥에 이름모를 약이나 쳐 먹으며 하루종이 자빠져 자고 뭘 더 쉬니? 븅딱아~! 그걸 말이라고 하고 겨나가는거야?"
무책임한 원장 영감의 말에 화가 났다.
저녁 전화시간에 공중전화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내 차례를 기다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 내내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혼났다.
나중엔 조금 울먹였는데 엄마가 눈치 채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내 울먹임이 엄마에게 들리지 않았기를....
"엄마,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너무 마음아파하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죄송해요~!"
하고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양말을 빨기 위해 화장실에 갔더니 전에 식빵 봉투에 피를 쏟아내던 박씨 아줌마가 이번엔 식빵 봉투에 똥을 싸고 세숫대야에 뒷물을 했다.
빵 봉지를 화장실 바닥에서 헹궈 내서 영자 언니가 말렸다.
 오늘은 알코올 교육이 있었지만 참가하지 않았다.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가고 싶지도 않고.
"밥은 왜 먹고 있는거지? 육체적  고통인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 인가? 아님 살기위해서인가?
정신적 고통을 지우고 잠시나마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과 다를게 뭐가 있지?
먹는건 누구나 다 하는 당연한거고 살수 없기 때문이며 술을 마시는건 아무나 못하고 안 마셔도 살수 있기 때문인가?
답답해서 정말 미칠것 같다. 이게 뭐야?
시간,돈낭비하고 내마음은 자꾸만 병들어 가는데...."
  저녁 투약이 끝나고 다들 모여 낮에 나누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스물두살이 된 혜미는 열일곱에 집을 나와 곱창집, 호프집, 노래방등 안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웨이터 한놈을 만나 동거를 하고 잘 살려고 했더니만 때리고 돈벌어 오란 통에 견딜수가 없었다는것이었다.
오죽하면 앞니가 다 부러져 해 넣은 거라고.....
말은 안했지만 혜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그랬으려니 하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게다가 혜미는 이 병원에서도 사고를 쳤단다.
장난삼아 흡연실에서 라이터로 불을 살짝 붙인게 화근이 되어 손 보호사님 아녔으면 큰일 났을 거라고 했다.
"아~ 씨발~ 원래 생각은 그게 아녔어. 조금 화상 입으면 다른 병원으로 보내질줄 알았지. 그때 도망 가려고 했었는데.....하필 그날따라 옆에 있는 욕실 문은 왜 잠겨서......"
다들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 했다.
사실 혜미는 여기 온지 한달정도 지나서 도망 갔었다고 했다.
하루만에 다시 잡혀오긴 했지만.
이번엔 영란씨가 입을 열었다.
이번 남자는 가정이 있는 남자고 자기를 구속하고 때린다고 했다.
몇번이고 그남자에게서 도망 가려고 했지만,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이번에 작정을 하고 공항에 갔다가 아예 이 병원으로 들어 오게 됐다고 했다.
그녀 역시 그런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봐더 정상은 아니었다.
자긴 납치 당해 왔으며 이곳에 올 사람이 아니라 정상이라고 했다.
거짓으로 꾸며 자신을 이병원에 강제로 집어 넣었다고 했다.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뭔가 빌미를 줬거나 남들의 기준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았으므로 자발적이든 타의적으로든 들어오게 된거라고 생각했다.
왜 강제로 진정제를 맞고 R/T까지 당했을까?
흥분상태 였거나 과격한 행동을 보였겠지.
자신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했지만 여러가지 종합해 볼때 말의 앞뒤가 안맞고 정신분열로 입원한 은주나 미란등과 비슷한 행동들을 보였다.
내가 봐 온 정신 분열증환자들은 그랬다.
하루종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혼자 중얼 중얼거리며 제대로 씻지를 않고 쓰레기를 곧잘 모았으며 몸을 흔든다거나 한가지에 오랫동안 몰입하거나 집착을 했다.
예를 들면 208호의 미애가 담배때문에 하루종일 불안하고 초조해 하며 담배 연기라도 맡으려들었고,은주와 205호의 은영씨역시 하루 종일 혼자 중얼 거리며 다녔다.
그녀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와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던 것이었다.
어떤 날에는 기분좋은 대화를, 또 어떤 날에는 그와 싸우고 울기까지 했다.
그곳에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씻는것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었다.
나는 이런 그녀들의 행동이 병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답답한건 그녀들은 자신의 이 괴이한 행동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이란걸 알고 인정해야 치료가 빨라질텐데, 도무지 자신을 가두어 놓은 틀안에서 나오려고 들지 않았다.
"나와~! 거긴 너무 외롭잖아. 그 문만 열고 조금만 나오면 되는데.....이젠 나오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