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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와 패션방에 가다.


BY 이안 2011-11-07

일은 벌어졌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멈출 수도 없었다. 그럴 바에는 이 기회를 이용할 방법을 찾는 게 상책이었다. 그를 단련시킬 수 있는, 그러면서도 그의 생각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가 자신의 자리를 이어받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위원장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가늠해봤다. 아무리 버틴다 해도 2경을 넘길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날이 갈수록 치밀해지고 명료해지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그건 얼핏 보기에 좋은 거 같지만 생명의 기운터로 갈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되기 전에 후임자를 물색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정신을 키워줘야 했다. 그는 담돌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눈을 감고 명상할 때처럼 생각을 비웠다. 그래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생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은 그걸 버림으로써 다가갈 수 있었다. 그게 생각의 한계였다.

담돌이 그 여자를 부여잡고 바람 부는 벌판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 여자가 행여 쓰러지기라도 할까봐 애가 달은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녹초가 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그는 그 여자를 붙든 채 잘 버텨내고 있었다.

- 다행이군. 적어도 쓰러지진 않겠어. 그 여자가 알아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회의장으로 갈 시간이었다.

 

수향은 담돌과의 연결을 시도했다. 그의 말대로 바쁜 모양이었다. 연결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푸르밀은 단말기 게임방으로 가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거의 매일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수향도 휴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단말기방에서 보냈다. 그곳의 단말기들은 집에 내장된 행정용과는 달라서 정보가 무궁무진했다.

마루는 울상을 지었다. 그녀는 재미없는 게임이나 정보 찾기에서 언제 벗어나 패션방에 갈 거냐고 묻고 또 물었다.

오늘은 니 원대로 패션방에 가자!”

수향은 선심이라도 쓰듯 흔쾌하게 말했다. 어차피 담돌과 연결이 쉬 닿을 거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원하는 정보가 띠리릭 하고 나타나 줄 리도 없었다. 그럴 바에는 마루의 욕구도 채워줄 겸 패션방에 가서 옷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듯했다.

패션방에 들어서자 마루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파장의 색깔도 이미 생각해놓은 모양이었는지 망설임도 없이 집어 들고 재단대 앞으로 갔다.

수향은 별 흥이 나지가 않았다. 그래서인지 색깔을 고르는 것부터 신통치 않았다. 들었다 놨다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야 겨우 주황색과 연보라, 연초록을 골라 재단대로 가져갔다. 그녀가 좋아하는 색들이었다.

그녀는 주황색을 펼쳐 놓고 나폴거리는 치마 본을 떴다. 허리 밑 부분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자른 다음 새로운 천을 덧대어 붙였다.

상의는 세 가지 색을 적절히 잘나낸 다음 이어 붙여서 앞판과 뒤판을 따로 만들었다. 치마와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 품은 헐렁하지 않게, 길이는 허리를 살짝 가리도록 했다.

깜찍하고 예쁜데?”

그녀는 옷을 입은 채 한 바퀴 돌아 보였다.

내 옷은 어때?”

마루도 그녀 앞에서 천천히 돌았다.

멋져. 세련된 느낌도 있고. 정말 멋져 너?”

그래? 그럼 무료 이용권을 기대해도 될까?”

마루가 상기된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라 조금 낯설기도 했다. 그녀가 옷 만들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멋지게 만들어낼 줄을 몰랐다. 그녀는 너무 좋아한다고 자신을 핀잔하던 마루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

왜는? 너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신기해서 그렇지. 너도 좋긴 좋은가 보구나?”

그래도 너처럼은 아녀 예. 너는 펄쩍펄쩍 뛰잖아. 거기에 비하면 이건 점잖은 거라고.”

그럼? 내가 점잖지 않았다는 거야?”좀 그렇긴 하지?”

그래서? 니가 보태준 거라도 있어? 내가 펄쩍펄쩍 뛰는 동안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으면서.

그럼~. 같이 뛰어줘야 했어?”

점잖은 마루가 어떻게? 나나 촐싹거려야지.”

새침하게 말하는 게 삐진 거야?”

그녀는 잔뜩 삐진 표정을 짓다가 한꺼번에 탁 터트리며 웃었다. 마루도 미소를 지었다.

마루는 15일치 무료이용권을 받았다. 게다가 옷을 패션판매방으로 보내기로 하고 두 달 치 무료이용권을 더 받았다.

기분이 좋은지 그녀는 푸르밀에게 가보자고 했다. 푸르밀은 게임 삼매경에 빠져서 그들의 존재도 의식하지 못했다.

하루의 시간이 아무런 소득도 없이 자나갔다는 생각에 허탈했다. 혼자서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때만 해도 그런 느낌은 다가오지 않았다. 게다가 기다리는 담돌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