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녀는 낮에는 친구들을 만나
여기저기 드나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 여자의 얼굴은 웃음꽃으로 활기가 넘쳐 보였다.
누군가가 옆에 있기만 하면 그녀의 얼굴은 자동적으로 웃음이 떠올랐다.
마치 휴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하지만 집에 혼자 있는 시간만 주어지면 그녀는 함에서 피리를 꺼내 들었다.
아직 구체적인 방법까지는 못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단말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수향은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피리를 불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그치면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이 생각 속에서 맴맴 돌았다. 혼자서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리를 불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소리를 듣기만 할 뿐 자신의 목소리를 전해줄 수가
없었다. 초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그림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듣는 것만이
가능했다. 피리를 불어줄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그녀는 친구들의 얼굴을 차례대로 떠올려 보았다. 담돌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루나 푸르밀은 함께 어울려 놀기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부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게 여겨졌다. 반면 담돌은 노는 일에는
젬병이었지만 왠지 믿음이 갔다. 게다가 휴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는 것도
부탁하기가 편할 거 같았다.
그녀는 마음을 정했다. 담돌에게 부탁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부탁할 수는
없었다. 신중해야 했다. 그가 아무리 휴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막연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믿고 말해도 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마음을 내비치지 않기로 했다.
담돌은 여전히 실마리를 찾지 못해서 애가 달았다. 잠자는 시간을 뺀 거의 모든
시간을 화면 앞에 앉아있었지만 찾아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나?”
위원장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서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시선을
떨구었다.
“있었군. 없었으면 했는데 말이네.”
그에게 더는 숨기거나 거짓을 말할 수가 없었다. 사실을 말했을 때 그가 느낄 무게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말로 뱉어낼 수도 없었다.
“자네 심정은 알고 있네. 그렇다고 사실을 기록하는 것까지 피하진 말게.”
역시 그는 또 꿰뚫어보고 있었다. 위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록을 했는데 그는 걸려들지 않았다. 그가 빠트리고 있는 내용도 미미했는데
그것까지도 잡아내는 걸 보면 그랬다.
“알겠습니다.”
그는 의기소침해서 말했다. 위원장 역시 시무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육계의 감각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네. 언젠가는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의 소리를 파장을
통해서 들을 수도 있을 거라는 것도.”
위원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위원장을 빤히 쳐다봤다.
‘그랬었군. 이미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서 댓글을 달지 않았던 거야.’
“이미 남편을 목소리를 듣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럴 거라 예상은 했네. 하지만 진행되는 속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군. 육계의
감각을 깨우는 매개가 빠르게 작용하고 있다는 건데 그게 뭔지는 알아냈나?”
“아직요. 알아보기 위해 늘 영상수신장치를 열어놓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급하네. 그 여자의 육계의 감각은 수면상태로 전환되었던 거네. 육안이 닫혀서
우리가 그걸 생각하지 못한 거네. 그리고 지금은 그게 깨어나고 있는 거라네. 분명히
육계의 감각을 깨우는 매개가 있을 거네. 가능한 한 빨리 그걸 알아내야 하네.”
“최대한 알아보겠지만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쉽지 않아도 꼭 찾아내야 하네. 육계의 감각이 모두 깨어나기 전에 찾아내야만
한다네. 찾아내서 그 매개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해야만 하네. 그 여잘 이곳으로
데려오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네.”
“만약 육계의 감각이 모두 깨어난다면 그 파장은 어느 정도로 예상할 수 있나요?”
“육계에서 있었던 일들이 현실처럼 보이겠지. 아마 가족들이나 이웃들 정도가 될
거네만. 그 상황까지 가면 위원들은 물론 시스템에서도 뭔가 눈치를 챌 수밖에 없어.
뿐만 아니라 육계의 가족들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을 거네. 이건 단순히 영계
차원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거지.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회의를
소집해야만 하네.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어. 우리 선에서 어떻게
하기에는 일이 너무 빨리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어야 할 게야. 그 말을 하러 왔네. 며칠 후에 보게나.”
위원회가 소집되기 전에 찾아내야만 했다. 시간은 며칠뿐이었다. 만약 그 안에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여자를 시스템에 넘겨야 할지도 몰랐다. 그건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는 그동안 저장해놓은 영상자료들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행동에 변화가
온 시점을 찾아야 했다. 그것을 찾다보니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집에만 머물러
있던 때와 친구들과 바깥세계를 즐기던 때,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피리에 뭔가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때. 그는 그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연관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세 부분을 따로 떼어서 연관성을 찾으려 했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저장해 놓은 영상자료를 처음부터 샅샅이 훑어갔다.
연상놀이방, 생명의 기운터, 패션방, 단말기 놀이방, 피리 연주방. 뭔가 찾아질 것도
같았다.
소집은 이틀 후로 다가와 있었다. 그 안에 매개를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잠도 잘 수가 없었다. 그는 수면클을 이틀 후까지 잠금 처리 해 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수면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밀어내기 힘들 거 같았다.
그는 다시 처음부터 영상자료를 살폈다. 몸 여기저기서 피곤하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생명의 기운을 쐬는 걸로 버텨냈다. 뭔가 가닥이 잡힐 거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쉽게 잡혀주지 않았다. 잠을 못잔 때문인지 생각은 가물가물해지려고 했다.
의식마저도 몽롱해지는 게 느껴졌다.
화면 속에서 그 여자가 뛰고 있었다.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띤 채 여기저기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났다. 바로 그거였다. 그 여자의 반응은 모두
육계의 시스템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 여자의 얼굴에 번졌던 미소도 감각이
흥분해서 짓는 미소였다. 그 여자의 감각이 흥분해서 가만히 있지를 못해 펄쩍펄쩍
뛰었던 것이다. 육계의 시스템을 지닌 채 영계를 배워가고 있었다. 영계의 시스템이
작용했다면 특별한 관심과 흥미가 있는 것에서만 반응해야 했다. 그것도
그 여자처럼이 아니라 생각을 키우는 쪽으로. 그래서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헌데 그 여잔 새로운 것을 익힐 때마다 반응하고 있었다.
생각은 이미 자랄 대로 자라 있었다.
이젠 감추려 해도 감출 수가 없었다. 위원장의 가늠은 정확했다. 댓글을 달지 않고
기다린 시간, 자신을 찾아와서 귀띔을 해준 시점, 그런 모든 것들을 그는 치밀하게
계산해내고 반응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이다. 어쩜 자신이 매개물을 찾아낼
시점까지도 이미 계산해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위원회를 소집하는 것도 그의 계산이 작용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위원회를 통해서 얻어내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었다.
그게 무엇일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