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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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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2011-10-19

담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영상속의 그 여자를 바라봤다.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달라졌다.

그게 뭔지 찾아내야 할 거 같았다.

 

 

수향은 뇌신에서 빠져나오기 바쁘게 피리를 집어 들었다. 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몰라도 피리에 답이 들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피리 구멍에 입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입김을 불어넣었다.

소리가 은은하게 방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봐 날 좀 데려가.’ 또 사내의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야속한 사람. 나보다 먼저 가면 어쩌라고 그렇게 갔남? 꽃단장하고 마주 절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야속하구려.’

 

사내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혼자서 하소연하듯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피리소리도 흐느적거려 더는 불수가 없었다.

사내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날 원망하고 있어. 꽃단장하고 마주 절했다는 게 뭐지?’

 

그녀는 사내의 말을 곰곰 되새겨 보았다. 하지만 뭐가 뭔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왜 피리를 집요하게 붙들고 있지? 얼굴에 슬픈 표정이 가득한데 저건 뭘까?

어제까지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모습이야. 휴하고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계의 시스템과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렇다면 휴일 수밖에 없었다. 휴와 피리, 그는 둘을 동시에 떠올렸다.

뭔가 둘이 묶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여자가 피리를 사온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 여자도 그게 뭔지 모르고 있는 듯했다. 피리를 놓지

못하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그 여자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기록 일지를 불러왔다.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고 화면 속의 그 여자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폈다. 그 여잔 여전히 피리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그 여자의 모습을

돌이켜 생각하며 기록일지에 기록해 나갔다.

 

 

오늘 그 여자는 복잡한 모습을 보였다. 마루영과 연상놀이방에 다녀온 오전까지만

해도 그 여잔 기분이 한없이 좋아 보였다. 헌데 오후에 돌변했다. 연상놀이방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온 피리를 불면서였다. 그 여자의 표정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나서 그 여자의 얼굴을 갑자기 덮은 듯했다.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그 여자는 서둘러 초원으로 나갔다.

거기에서 그 여잔 그림을 그렸다. 피리를 불면서 초원 위를 날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었다. 잠깐 그 여자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 잠깐이었다.

그 여자는 이내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뭔가 확인할 게 있기라도 한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여잔 피리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제법 길게 피리를 불었다. 피리불기를 멈춘 후에도 그 여잔 피리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마음까지도 피리에 완전히 붙들린 듯했다.’

 

그는 기록을 마친 후 참고용으로 연상놀이방에서 있었던 내용을 핵심만 추려서 다시

기록했다.

 

 

주어진 그림 : 새와 나뭇가지, 피리, 사탕, 총 네 개였음.

주제 : 연애시.

네 개의 그림을 가지고 그 여자가 지은 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너는 가 되어 날 찾아와

내 생각의 나뭇가지에 너는 날개를 접고 앉곤 하지.

내가 피리를 불면 넌 노래를 불러. 부드럽고 아름다운 노래를.

너의 노랫소리가 너무 달콤해서 나는 사탕을 입에 넣고 단맛을 즐기기라도 하듯

너의 노래를 흥얼거리네.‘

 

 

오늘 그 여자가 보여준 복잡한 모습은 연상놀이, 피리 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특히 피리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느낌도 간략하게 적어 넣었다. 그런 다음 그는 내용을 저장한 후

일어섰다. 그 여잘 만나볼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피리에 어떤 곡절이 숨어있는 게 분명했다. 피리를 들고 생각에 잠긴 표정을 띠고

있는 그 여자의 모습을 보는 내내 그는 그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피리를 손에 쥔 채 그녀는 휴의 말을 떠올렸다.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그녀는 그를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애절함과 서글픔을 달래주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을 듯했다. 하지만 어떻게 데려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녀는 길게 끌면서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그가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녀는 그 느낌을 붙들려고 생각을 집중했다. 헌데 이상했다.

생각을 집중할수록 그 느낌은 희미해졌다.

 

그때 뇌신의 연결신호음이 울렸다. 그녀는 우두커니 선 채 고개를 돌려 뇌신을

바라보았다. 이번만은 그 소리가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나중을 위해서 무시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잽싸게 피리를 함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얼굴 표정을 새롭게 꾸몄다.

왠지 심각한 마음을 들키면 안 될 거 같았다.

 

뭐예요? 빨리 열어주지 않고?”

 

미안해요. 잠깐 딴 생각을 했어요.” 수향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미안하긴요? 오히려 내가 미안하죠. 번화가에 함께 가기로 하고 못 와서요.

좀 바빴어요. 화 많이 난 건 아니죠?”

 

화는요? 덕분에 새 친구를 사귀게 됐는걸요.”

 

어떻게요?”

 

저거요. 뇌신이 친구를 사귀게 해줬죠. 다 당신 덕분이에요. 헌데 이름이 뭔가요?

고마운데 고맙다는 표현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거든요.

알았으면 한번 찾아갔을 텐데.”

 

담돌요. 하지만 알았다 해도 만나기 어려웠을 걸요?”

 

왜죠?”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야 쿠폰을 얻을 수 있어서요.

난 잘하는 게 없어서 작업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쿠폰을 얻을 데가 없어요.”

 

그래요? 며칠 사이 난 쿠폰을 꽤 모았는데.”

 

-래요? 어디서 어떻게요?” 그는 놀란 시늉을 했다.

렇지 않으면 그녀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루하고 함께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요. 특히 연상놀이방엘 자주 갔어요.

거기에서 여러 번 쿠폰을 받았거든요. 언젠가는 패션방에서도 쿠폰을 받을 날이

있을 거예요. 한번 볼래요? 내가 만든 옷인데.”

 

그녀는 다시 패션방에 가 있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서툴기는 했지만 여러 색깔의

파장을 재단 위에 올려놓고 나면 뿌듯한 느낌이 다가오는 게 싫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모양을 그려보는 것도 아주 재미있었다.

그래서인지 솜씨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마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며 곧

패션방까지도 접수할 거라고 시샘하듯 말했다. 어제는 푸르밀까지 데리고 와서

그녀가 만든 옷들을 보여주었다.

 

꽤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군요. 즐거웠겠어요?”

 

그럼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 생각은 할 틈도 없었겠네요. 그런 것도 모르고 난 작업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미안하다는 거 취소해도 될 거 같은데요?”

 

그녀가 고소하다는 듯 소리 없이 활짝 웃었다.

 

보세요. 얼마 안 된 거치고는 그런대로 괜찮죠?”

 

정말 그러네요? 이러다간 정말 패션방까지 접수할 거 같은데요?”

 

그녀가 또 다시 웃었다. 언젠가는 그렇게 할 거라는 그런 의미로 보였다.

 

자신 있나보군요?”

 

글쎄요? 두고 봐야죠. 헌데 오늘은 한가한가 봐요? 여기 온 걸 보면.”

 

며칠 동안 열심히 일해서 쿠폰을 좀 모아놨어요. 당분간은 게으름을 피워도 될

것 같아요. 심심할 때 종종 놀러 와도 되죠?”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뭘 할 건가요?”

 

푸르밀이 게임방에 가자고 했어요. 난 연상놀이방이나 패션방에 가고 싶은데

푸르밀이 내일은 게임방에 가야만 한대요. 그래서 거기에 가려고요.

시간 있으면 같이 가요?”

 

내일은 좀 할 일이 있어요. 작업장에서 요청하면 도와줘야 하기도 하고요.

내가 시간 날 때 올게요.”

 

그래요 그럼.”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흔쾌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