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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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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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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으로


BY 이안 2011-10-07

담돌은 서둘러 교육국을 빠져나왔다. 그는 추적기를 꺼내 영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들은 대부분이 오피스텔촌 근처의 번화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는 추적기의 위성영상수신장치를 통해 그들이 있는 위치를 모두 연결했다.

그런 다음 작동 스위치를 눌렀다.

 

영화의 필름이 돌아가듯 그들의 모습이 하나로 연결되어 화면에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큰 문제가 없는 거 같군. 잘 하고 있어.’

 

그는 영상장치를 통해 수신된 영들의 모습을 보고 나름 흡족하게 여겼다.

사실 흡족할 것도 없었다. 그게 정상이었고, 그게 그가 늘 확인해왔던 모습들이었다.

그때까지 수없이 많은 영들을 영계로 안내했지만 그들은 지루할 정도로 한결같은

과정을 밟으며 영계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영상장치에 마지막으로 수신된 수향의 모습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기계 속에 수신된 그 여자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가 봐야할 거 같군. 내버려 두면 생각 속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어.

그렇게 되면 저 여잔 영영 폐인이 되고 말지도 몰라.’

 

그는 서둘러 그 여자의 수신기에 뇌파를 연결했다. 그의 몸이 기화되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그는 어느새 그 여자의 뇌신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 여자가 보였다. 영상 속의 자세 그대로였다. 그는 천천히 손가락으로 스위치를

눌렀다. 뇌신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고개가 뇌신을 향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또 울리잖아?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도 소용이 없는걸.’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일어나서 뇌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손을 뻗어 물건을 집어 올렸다. 그리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리저리

돌리며 살피기 시작했다.

 

뇌신의 차단 장치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오늘의 시도는

물거품이 되는데. 제발, 여기저기 만지지 말고 한 번 써 봐요. 그래야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가 있어요.’

 

그는 잔뜩 긴장한 채 그 여자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누르거나 불거나 문지르거나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대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시간 초과로 연결장치는 저절로 차단이 되었다.

 

그는 또 다시 수향과의 연결을 시도했다. 이번에도 뇌신을 이리저리 돌리며

살피기만 했다. 연결차단 장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 써 봐요. 써보면 알아요.’

 

소용이 없었다. 시간은 재깍재깍 흘렀다. 그리고 연결이 자동으로 차단됐다.

 

뭐가 이래?’

 

그녀는 물건을 제자리에 놓으면서 투덜거렸다. 짜증이 났다. 이런 저런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번번이 신호음은 울리다가 꺼져버렸다.

 

신호음이 다시 울렸다. 그녀는 다시 물건을 집어들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왠지

그 소리가 집안을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신호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물론 소용은 없었다.

 

한번 머리에 써 봐요, 제발. 그냥 갖고 있지만 말고 머리에 얼른 써요.’

 

에이 모르겠다. 머리에 한번 써볼까?’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물건을 머리에 올렸다.

 

담돌은 뇌신 속에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다행이었다.

 

그냥 머리에 얹기만 하면 돼요. 망설이지 말고 써보세요. 어서요.’

 

그래 한번 써보자. 그러면 알 수 있겠지. 응 잘 맞는데? 하긴 내 거였으니 내 머리에

맞는 것은 당연하겠지. 어 지금 뭐야. 왜 머릿속이 이러지? 돌기들이 뻗어오고 있어.

어 내 머리의 일부분이 되고 있어?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놀라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담돌은 안도감에 심호흡을 하면서 뇌신에서 몸을 빼냈다.

 

잘 지냈어요?”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아무도 들어온 적이 없는데.’

수향은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두리번거렸다.

 

나예요. 얼마 전 여기까지 바래다주었던.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언제 여기에 들어온 거죠? 난 문을 열어준 적이 없는데.”

 

저 문 말입니까?”

 

그는 출입문을 가리키면서 웃었다.

 

저 문으로 들어온 게 아닌가요?”

 

열어준 적이 없잖아요. 헌데 내가 어떻게 그쪽으로 들어올 수 있었겠어요.”

 

그럼 이거요?”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이게 그런 거였어요? 나는 뭔가 했어요.

신호음이 여러 번 울렸었는데 당신이었나요?”

 

오늘은요.”

 

그럼 전에는 아니었단 말인가요?”

 

. 아마 이웃의 영들이었을 겁니다.”

 

그래요? 눌러도 문질러도 불어도 끊어지기만 하더라구요.

이렇게 써야 하는 건 줄 몰랐어요.”

 

여기 이걸 건드리면 끊겨요. 그래서 상대를 집으로 들이고 싶으면 이걸 건드리면

안 돼요. 헌데 뭐하고 지냈어요? 아무 것도 안 한 거 같은데.”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에요. 휴 생각을 했어요.”

 

휴에 대해 생각난 거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솔직히 나도 가 누구인지 몰라요. 헌데 내 머릿속에서 그가 떠나지

않아요.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없어요. 그렇다고 그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어요.

그가 누구죠?”

 

글쎄요. 나야 당연히 그가 누군지 모르죠.”

 

그를 내 머릿속에서 꺼낼 수 있을까요?”

 

때가 되면 알아서 나오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어요. 되도록이면 빨리 꺼내고 싶어요.”

 

그를 만나고 싶은 건가요?”

 

모르겠어요. 그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난 자유롭고 싶은데 그에게 묶여서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려면 그를 꺼내야 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정말 여기 살고 있었나요?”

 

시스템에 입력된 정보에 의하면 그래요.”

 

여기가 아닌 다른 공간에 살았을 가능성은 없나요? 왠지 자꾸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 느낌 속의 난 혼자가 아니에요.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요. 아마 휴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담돌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의 상황을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그녀가

안쓰러우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왠지 육계의 잔상이 구체적인 형체를 띨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육안이 닫혀있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까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주 가혹한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었다.

 

그를 붙들고 있지 말고 떠나 보내주면 어때요?”

 

어떻게요? 나도 그럴 수 있으면 그러고 싶어요.”

 

글쎄요.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죠?”

 

그게 가능할까요? 떠나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떠나보내면 안 될

거 같은데.”

 

이건 어때요? 바깥 세상에 나가서 여기저기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의외로 재밌어요. 재미있는 게 생기면 휴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나도 그래볼 생각이에요. 그렇게라도 해서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건 떠나보내는 것과는 다른 것이죠.”

 

. 떠나보내는 것과는 다른 겁니다. 어디로 갈까요?”

 

글쎄요. 어디로 가야 하죠?”

 

뭐 생각나는 곳이 있으면 떠올려보세요.”

 

생각나는 곳. 어디가 있지? 기억나는 게 없는데? 그래도 계속 찾아보면 생각나는

게 있을지 몰라.’

 

수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나는 곳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런 그녀를 담돌은 한 가닥 기대를 가지고 지켜봤다.

그녀가 생각해내는 게 있으면 희망을 가져도 좋다는 의미였다.

 

생각나는 게 없어요.”

 

그녀가 맥 빠진 표정으로 그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담돌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떠오르는 곳이 한 곳도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말 영안만 트였다면, 영계가 전혀

입력되지 않았다면, 그 여자가 영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너무도 뜻밖이었다. 뜻밖의 상황이라서 어둠으로 만들어진 망치로 실컷 두들겨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밤새 고민할 때 이러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영계를 경험하게 해주자는 생각같은 건 떠올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안만 트였을 수 있다는 말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담 없이

한 말이었다. 헌데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모든 게 난감했다. 기억장치에서 꺼낼 수 있는 곳이 없다면

뇌신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뇌신을 사용할 수 없다면 영계에서의

경험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수향이 미소를 띠고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난감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차마 그 여자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그 여자는 미소로 그 난관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냉정해지자. 내가 흔들리면 안 돼!’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애써 수향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난 도와줄 수가 없어요. 수향영이 생각해내야 해요.”

 

그 여자가 흔들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요? 그럼 기다려 봐요.”

 

생각보다 그 여자는 강인했다. 표정에 배어있는 나약함으로는 비틀거리거나

주저앉을 거 같았는데 그 여자는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영계로 오던 그날도 그랬다. 나약해 보였다. 불안해보이긴 했지만 감각기관을

차단하고 버텨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만큼 나약해 보였다.

 

! 그곳에 가고 싶어요. 며칠 전에 우리가 있었던 그 번화가.”

 

어 이게 뭐야. 몸이 작은 덩어리로 압축되고 있어. 어 돌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네.

어 그도 들어와 있잖아.’

 

어떻게 된 거죠? 그리고 언제 들어온 건가요?”

 

번화가에 가고 싶다면서요. 뇌신이 우리를 번화가로 데려가고 있는 겁니다.”

 

내 몸이 줄었어요.”

 

줄어든 게 아니라 잠시 이동 상태로 변했을 뿐예요.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니까

걱정 마세요.”

 

아 그런 거예요. 그냥 이렇게 있으면 되나요?”

 

. 그렇게 있으면 돼요.”

 

움직이고 있는 거 맞죠?”

 

움직임이 느껴지나요?”

 

당연하죠?"

 

영계의 시스템을 느끼고 있는 건가? 움직임을 느낀다는 것은 좋은 징조야.

어쩜 입력이 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다 왔습니다. 기억나세요? 지난 번 봤던 건물들인데.”

 

예 기억나요. 거대한 상자 속에 가지런히 놓인 색색의 거대한 크레파스 같은

건물들. 헌데 그 거대하고 단단한 벽으로 된 건물은 어딨죠? 난 그게 보고 싶은데.”

 

그녀가 바닥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단단한 벽으로 된 건물이라고 했나요?”

 

담돌의 귀에 그녀의 말이 송곳처럼 후비고 들어왔다.

 

. 거 있잖아요. 단단한 벽처럼 생겼는데 중앙시스템이 조정하니까 열렸던

그 신비한 문이 있는 건물 말예요? 그 건물은 어디 있냐고요?”

 

지워지지가 않았어. 그날 밤 잠자는 동안 지워졌어야 하는데 왜 지워지지가 않은

거지? 영계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인데. 영계의 시스템이 걸러내지 못한 거야.

시스템이 입력이 되지 않아서군. 그렇다면 시스템이 그 여자의 육계의 잔상도

잡아내지 못한다는 말이 돼. 어쨌건 지금은 냉정하자. 그녀가 옆에 있으니까.’

 

그건 아무 때나 드러나는 게 아닙니다. 투명막이 감싸고 있거든요.

이 영계의 심장부라서. 훼손되면 안 돼서요.

래서 아무도 찾을 수 없게 보호막으로 덮여있죠.”

 

이것도 위원회에 알려야 하나?’

 

중요한 곳인가 보군요?”

 

.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위원회에 이 사실을 알리면 뭐라 할까?’

 

물이나 공기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고 정화시켜주는 뭐 그런 기능을 하는

곳인가 보죠?”

 

그렇다고 들은 거 같습니다.”

 

영계의 시스템이 하나도 입력되지 않은 게 확실해. 일말의 기대도 해볼 수

없게 됐군.’

 

당신도 잘 모르나 봐요?”

 

당연히 저도 잘 몰라요. 어쩌다 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의 눈에만 잠시 띄었다가

사라진다고 들어서 알고 있거든요. 우리처럼요.”

 

그럼 당신도 그때 그곳에서 길을 잃었던 건가요?”

 

. 중앙시스템망에 걸렸기 때문에 그나마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전 아무 것도 생각나지가 않아서요.”

 

저도 생각나는 게 별로 없어요. 안개가 자욱한 강가를 헤매고 있었다는 것만

확실하게 기억할 뿐입니다.”

 

그래도 나처럼 기억을 잃지는 않았잖아요? 얼마나 다행입니까?”

 

맞아요. 그건 정말 다행입니다. 안 그랬으면 여기에 오지도 못했겠죠.”

 

그녀가 부러운 듯이 쳐다봤다.

 

빨리 기억이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휴에 대한 기억도.”

 

그녀의 눈빛에서 간절함이 묻어났다. 담돌은 애써 그걸 외면했다.

 

곧 돌아올 겁니다.”

 

그는 그녀를 외면한 채 별 일 없을 것처럼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겠죠? 곧 돌아오겠죠? 그러면 안개가 잔뜩 낀 거 같은 이 느낌은

사라지겠죠?”

 

그의 확신에 찬 대답이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집요하게 그의 눈빛을 따라가며

물었다.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보세요.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요.

집안에 있을 때와는 다르지 않나요?”

 

화제를 돌려야 했다. 그녀의 집요함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녀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달라요. 밖에 나오니까 날아갈 거 같아요. 집에선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갇혀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낯설지도 않아요. 모든 게 너무 낯이 익어요.

꼭 예전부터 이곳을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요.”

 

낯이 익은 게 당연합니다. 이곳은 당신의 세계거든요. 자신의 현실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 그냥 당신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세요. 그러다보면 기억도 되살아날 겁니다.“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어딘지 좀 쓸쓸했다. 자신의 세계가 아니었다는 느낌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현실이 부딪치면서 빚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게 좋겠죠?”

 

그럼요. 그렇게 웃어요. 웃으니까 훨씬 좋아 보여요.”

 

거리에 우리 말고 아무도 없어요. 왜죠? 지난번에도 그렇고요.”

 

다들 건물 안에 있어서 그래요.”

 

그럼 우리도 들어가요?”

 

어디에 가고 싶은데요?”

 

그녀는 그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냥 들어가면 안 되나요?”

 

. 가고 싶은 곳을 정확히 알아야 들어갈 수 있어요.”

 

가고 싶은 곳을 떠올려보세요. 그러면 뇌신이 알아서 작동을 할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막연하게 어딘가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체적으로는 떠오르지는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안개같은 것만이 꾸물꾸물했다.

 

그냥 걸어야겠어요. 떠오르지가 않아요.”

 

그녀가 체념 섞인 투로 말했다.

 

그래요.”

 

들여다보는 것도 안 되나요?”

 

아니? 괜찮아요.”

 

수향은 눈을 투명벽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영들의 모습이 아주 희미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너무 흐릿해서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영들의 기는 투명막을 투과하지 못하게 돼 있거든요. 그래서 잘 보이지가 않아요.

건물 내부는 훤히 보여도 영들의 움직임은 잘 잡히지 않죠.

저 안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안에 있는 영들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도 지금 모르고 있어요.”

 

그런가요? 살짝 엿보려고 했는데 도움이 안 되는군요.”

 

담돌은 수향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어디로 가죠? 난 생각나는 곳이 없는데.”

 

그녀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죠. 내일 다시 나오면 되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담돌은 난감했다. 내일 다시 나온다 해도 달라질 게 없었다.

그녀가 꺼내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 입력되지 않은 시스템을 그녀가 꺼내주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돌아가자. 일단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하자.’

 

다시 돌아가야 하는군요.”

 

그녀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잔뜩 기대하고 나왔다가 크게 실망한 모양이었다.

 

내일 다시 나올 수 있어요.”

 

알아요. 나올 수는 있겠죠. 하지만 나와서 뭘 할 수 있죠?”

 

찾아봐야죠.”

누가요? 내가요? 난 떠올릴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헌데 어떻게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방법이 있을 겁니다.”

 

. 방법은 있겠죠.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죠.”

 

절망적인 건 아닙니다. 그러니 희망을 가져요.”

 

희망을 가지라는 그의 말이 공허하게 울렸다. 그래도 수향은 그 말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말을 버리면 자신에게 남는 것은 휴 하나뿐이었다. 오로지 휴 하나만을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그가 아무리 중요한 존재라 해도 그만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