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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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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2011-09-16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버스는 시내를 빠져나와 들길을 달렸다. 막힘없는 시선이

 

멀리까지 뻗어갔다. 시선이 뻗어간 끝에는 높지 않은 산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다 자란, 그래서 이삭만 목 위로 뽑아내면 될 것 같은 벼의 왕성한 푸른 잎들이 바람에 작은

 

물결을 만들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무더위도 그 위에서는 온순했다. 푸른 빛깔에 머문 나의

 

시선도 고3때 들었던 말을 확인시켜주듯 편안했다. 󰡐공부를 하다보면 눈이 피로한데, 그런

 

때는 고개를 들어 한 번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세요. 이상하게도 푸른 색깔은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작용을 합니다.󰡑 목사님이시면서 학교에서 우리에게 영어를 가르치셨던 선생

 

님이 수업시간에 여름의 한 복판에서 지쳐있던 우리들을 보고 위로 삼아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은 이전에도 여름의 한 복판에서 더위에 지쳐 나무 그늘을 찾아갈 때면 특별한 의미도

 

없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푸른 들판의 출렁임에서 평온함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차안의 잡담에서 벗어나 무심하게 푸른 빛깔에다 시선을 두고 있는 사이에도 여전히

 

토막토막 잘린 말들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런 단어들은 내 의식을

 

건드리지도 않고 스쳐지나갔다.

 

그럼에도 그런 차안의 분위기가 싫지는 않았다. 일상을 탈출하면서 가지고 온 일상이

 

자연스럽게 차안의 분위기를 활기로 채워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도 어느

 

 정도는 위안이 되었다. 게다가 그런 그들의 잡담에 끼어 어딘가로 가는 것도 괜찮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기도원까지 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은 빗나갔다. 빗나갔다기보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는 표현이 옳았다. 그럴 만큼 나는 종교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종교적인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에서조차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