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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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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2011-09-15

차가 몇 번 출렁출렁 하더니 출발하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교회를 빠져 나오자 차는

 

좁은 골목으로 기우뚱기우뚱하며 들어섰다. 골목길에 바짝 붙어서 길게 이어져있는 구멍-

 

가게들은 낮고 칙칙한 분위기 때문에 더 초라하게 여겨졌다. 골목길을 빠져 나와서야 차는

 

비로소 제 속도를 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차안은 교인들이 올라타자마자 집사님, 권사님 하며 오가는 이야기들로 가득 찼다. 이야기

 

들은 끊임없이 시작되고 끝나고 다시 시작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이야기가 진행 중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이 시작되고 있기도 했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뒤엉켜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구태여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나 역시 그랬다.

 

 

 

……얘가 말이야기도하…… 저도 ……, …… 정말?’  가끔씩은 잡담들 사이사이에서 불거  

 

져나온 토막토막 잘린 말들이 내 귀에 몇 마디 정확하게 와 박히기도 했다. 나는 그런 말들을

 

붙잡으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말들은 나에게 묘한

 

여운을 던져주고 흩어져 갔다. 가끔은 토막토막 잘려 나온 말들이 앞뒤 없이 들어와 한편의

 

온전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후 사라지기도 했다.

 

 

 

차안은 서로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들로 북적이고 있어서, 마치 삶을 나누기 위해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를, 아니 내 옆에 앉아있는 할머니와 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할머니는 내 옆에서 말 한마디 없이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아마도 나처럼 일행은커녕

 

아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자리에 앉은 이후로 단 한 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가끔 탐색하듯 던지는 내 시선만이 할머니의 망부석같이 앉아있는 옆모습을 훑다가 제자리

 

로 돌아오곤 했다. 몇 번을 쳐다봐도 할머니의 자세는 한결 같았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이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고단한 느낌이 전해져올 뿐이었다. 애써 살핀 것도 아닌데 할머니에게서 전해오는 그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어쩌면 힘에 겨운 짐을 지고 정신적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고 있는 할머니를 주위 누군가가

 

권유하여 기도원으로 이끌었을지도 몰랐다. 일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몇 번쯤은 교회에

 

나왔을 테고, 기도원을 권유한 누군가는 주인 여자처럼 음식준비를 위해 일찍 기도원으로

 

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최근에야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초신자일 거라는 생각은

 

내 마음속에서 확신처럼 굳어져 갔다. 자신의 아픔을 하나님한테 맡길 줄도, 하소연 할 줄도

 

모를 것 같은 모습이 그러한 확신을 더욱 더 확고하게 해주었다.

 

 

 

기적이라도 기대하고 있을까? 기적적인 체험을 통해서 삶의 우여곡절을 다 풀어내고 하나-

 

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고 있을까? 무수한 체험들로 인해서 자신이 신자가 되었-

 

다고 자부하며, 거듭되는 체험으로 다시 한 번 신자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달리고 있는

 

차안의 다른 사람들처럼, 그네도 그것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까? 현실과 믿음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 내심으로 힘겹게 노력하고 있을까?

 

 

 

그런 흔적들까지는 수심의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존재는 나를

 

평온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