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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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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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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2011-09-14

좀 이른 시간이기는 했지만 나는 30여분 전에 집을 나섰다. 교회는 걸어가도 좋을 만큼의

 

거리에 있었다. 여름이라 더워서 좀 멀게 느껴지기는 하겠지만 늘상 걸어서 가는 길이라

 

새삼스레 버스를 탄다든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서기 무섭게 7월의 햇살이 따갑게 엉겨붙었다. 오전이라지만 햇살의 강도는

 

한낮과 다를 게 없었다. 길 한쪽에 은행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잽싸게 햇살을 피해서 은행나무가로수 그늘로 몸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햇살만

 

피했다 뿐 온몸을 감싸오는 더위까지는 어쩌지 못해서 금새 몸이 땀으로 끈끈해왔다.

 

 

 

좁은 골목을 지나서 교회에 들어서자 오래되어 망가진 돌계단이 나타났다. 그곳으로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낯선 느낌이 다가왔다. 처음 오르는 계단도 아닌데 처음처럼 그렇게

 

어색했다.

 

 

 

 

생각해보니 늘 그랬었다. 그곳을 오를 때마다 나는 한 번도 그 낯선 느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히려 예배실에 들어서면 그러한 느낌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그러다가 예배가

 

끝나고 되돌아 나올 때쯤이면 희미해져서 별다른 느낌 없이 계단을 내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계단을 다 올라가자 버스 한 대가 눈에 띄었다. 나무그늘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햇빛 속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시동도 꺼진 채였다. 버스를 보자 불가마

 

생각이 났다. 숨이 막힐 거 같았다. 그래서인지 감히 그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햇살을 피해 근처에 있는 나무그늘로 숨어들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가사 아저씨가 햇살을 가로질러 버스로 향하는 게 보였다. 그가 시동을

 

걸자 여기저기 나무그늘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이 하나 둘 차문으로 모여들었다. 나도 그들의

 

틈새에 끼어서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머릿속으로는 계산을 하면서 뒤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젊은 여자가

 

다가오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재빨리 그 여자를 훑어보았다. 낯선 타인에 대한

 

본능적인 탐색은 복잡하지 않았다. 여자는 자리에 앉은 후 성경책이 들어 있음직한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더니, 두 손을 무릎 위에서 모아잡고 눈을 감았다. 요란이나 수선을 떨지는

 

않았다. 그냥 조용히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할 뿐이었다. 앉으면서 나를 살피는 것

 

같지도 않았다. 헌데도 이상했다. 갑자기 돌계단을 오를 때의 그 낯선 느낌이 다시 다가왔다.

 

 

 

 

여자가 기도를 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들어왔다. 할머니 한 분이 사람들 틈에

 

끼어 자리를 찾지 못하고 뒤쪽으로 오고 있었다. 행여나 하는 기대감으로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통로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걸로 미루어 빈자리는 없는 듯했다. 안전지대라고

 

생각했던 내 계산이 어긋날 모양이었다. 나는 일어날 마음의 준비를 한 채 그 여자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기도를 끝낸 그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신은 공평했다. 인간에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여자가 기도를 마치고 고개를 드는 그때 할머니는 그 여자의

 

한두 발짝 앞에까지 와 있었다. 그리고 여자가 일어났다. 여자가 일어나면서 만들어진 좁은

 

공간으로 할머니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앉았다. 잠시 폐부 깊숙이를 뭔가가 꽉 막고

 

있었기라도 한 것처럼 긴 숨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