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838

바람의 여자


BY 비단모래 2011-03-21

속편한 내과 의자는 생각보다 푹신했다.

속이 편하지 못한 지현은 봄방학기간동안 내시경이나 해야겠다고 속편한 내과를 들려

수면내시경을 신청하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지현님..이건 목을 마취시키는 거구요..삼키기 말고 물고 계셔요"

간호사는 하얀액체를 내밀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간호사는 다가와서 지금 검사실로 가자고 했다.

"아무일도 없을거야...그냥 건강검진 이라고 생각하면 돼"

남편은 초조하긴 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었다.

:알았어..속이 아픈것도 아니고 그냥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렀을 뿐인데 뭐...

이참에 확 다이어트 한다고 생각할게"

웃으며  검사실로 들어갔다.

 

결혼한지 24년, 다른사람보기엔 참으로 다정한 남편과 살았다.

얼굴도 호남형에다가 목소리도 자근자근했고 어디를 가더라도

꼭 동반해 가려고 하는 남편때문에

다른사람들이 자신을 부러워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부터 25년전  남편을 만났다.

막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임으로 발령받은 초등학교였다.

앞자리에 앉은 남자 선생님은 얼굴이 희고 미남이었다.

그가 총각이라는 것은 그날 오후에 알았다.

 

유난히  신경을 써주었다.

조성기 입니다. 뭐 불편한거 있으면 말해요. 내가 선배니 잘 챙겨줄게요

이가 피아노 건반처럼 쪼르륵 누워있었다.

 

 

교정에 목련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했고

 2학년 담임으로 분주하게 신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첫 봄소풍을 가는 날 1.2.3학년은 보문산으로 소풍을 가게 되었다.

꽃무늬 쉬폰 블라우스에 흰바지를 입은  그날 따라 막 피어난 목련송이처럼 눈부셨다.

3학년 선생님인 총각선생님도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나왔다.

 

보문산 언덕은 싱그러운 봄바람이 불었다.

놀이공원까지는 아래서부터 케이블카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리 높지않은 케이블카인데도 어린이들은 환호를 하는데

 현기증이 났다.

 

괜찮아요..내가 잡아줄게요

슬며시 뿌리쳤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아직은 썰렁한 보문랜드 놀이공원에 어린이들의 웃음이 가득찼고

점심시간이 되어 도사락을 먹었고 간단한 게임후 보물찾기를 끝으로 봄소풍은 끝이났다.

 

엄마들과 온 학생들은 어머니와 함께 돌려보내고

몇몇 어린이들은 학교까지 데리고 와서 집으로 보낸후

교실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는데

교실문이 스르르 열렸다.

 

소풍 무사히 끝났다고 교장선생님께서 저녁 사신다는데요.

 

저녁은 학교앞 갈비집이었다.

오랫만에 산엘 올랐었고 첫 소풍에 신경을 써서인지 피로감이 몰려온 지현은

저녁만 먹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일어섰다.

 

조성기 선생이 따라 일어섰다.

바래다 드릴게요.

 

 

내시경 검사를 하고 며칠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오지현님...결과 나왔는데요..전화로는 좀 그렇고 내일아침 병원으로 나오세요.

무심하게 전화는 끊어졌는데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

이상하게 불길한 예감이 불길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내일아침 병원에서 와보라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고말았다.

침대에 누웠는데도 잠이오지않았다.

곤하게 잠을 자는 남편을 깨울 것 같아 슬며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이 아파트 매일 윤나게 쓸고 닦았다.

넓진 않지만 세아이 기르며 알뜰하게 살아왔다.

한가지 병이라면 지독하게 집착하는 남편때문에 속앓이를 해온 것 뿐 겉으로 보기엔

누가 뭐래도 행복한 가정이었다.

 

남편은 왜그렇게 나에게 집착할까?

그는 사랑한다는 이유였지만..어느땐 숨쉬기 조차 힘든 구속이었다.

 

남편과 결혼하고 얼마 후 서로 다른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부터 남편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내가 눈에 띄이지 않으면 불안해 견디지 못헀다.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해서 어디야...뭐해를 반복해서 물었다.

 

처음엔 관심인줄 알았다.

다른 여선생님들은 오선생은 좋겠다.그렇게 시시때때로 챙기는 남편있으니..했지만

 그때마다 묵직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남편앞에 있을때는 남편은 한없이 순한 양이었다.

 

뭐 먹고 싶어... 내가 설거지할까?

 

학교를 전근가자 남편은 학교앞으로 데리러 오는 날이 많았다.

그러며 학교회식도 은근히 빠지기를 종용했다.

 

뭐 ..회식은 ..나랑같이 저녁먹어...

 

아니면 남편학교의 회식이 있다고 해서 마음놓고 약속을 잡으면 남편은 '

회식하다 말고도 집으로 달려왔고 자신만 회식에서 빠지고 집으로 돌아와  기다렸다.

 

이게 뭘까? 왜 남편은 나를 이렇게 ..혹시 의부증?

 

의심은 되었지만 남들앞에서 더없이 착하고 자상한 남편을 의부증으로 몰기는 그랬다.

 

첫아이가 태어났고

둘째가 태어났고

그리고 세째가 태어났다.

 

아이들을 기르며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그렇듯이

나도 정신을 차릴새가 없이 바빴다.

남편은 여전히 그 바쁜 내 치마꼬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미 학교에서는 회식이나 모임에 빠진다고 왕따가 되어있었고 교감 선생은 은근히 핀잔도 했다.

 

오선생--조직에서 그렇게 혼자 생활하면 안되지요?

다른 선생들도 다 살림하고 애 키우는데 유독 오선생만 칼같이 퇴근하니...

 

남편때문에 그렇다고 말하기도 자존심 상할 일이었다.

이렇게 해도 숱하게 나를 조이는 남편...

 

어느핸가는 아이를 데리고 시동생을 만나러 갔다가 아이가 감기가 들었길래

병원을 들려온 적이 있었다.

감기 환자가 많아 병원에서 한시간 가량 기다렸다.

 

집에 돌아오니 얼굴이 하얗게 된 남편이 서 있었다.

 

 

뭐야? 어디갔었어?

어디가긴 ..세째 작은아빠 만나고 애 병원들렸다가..

그런데 그게 시간이 왜이렇게 오래걸려..

병원에 사람이 많아서 그렇지..

 

그러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남편은 눈빛은 그야말로 헤드라이트 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내몸 구석구석을 훑는 듯해 몸서리가 쳐졌다.

 

당신 병이야..병원에가봐 라고 목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날밤 남편은 내몸을 샅샅이 맛을보고 있었다.

내몸 어디에 다른 조미료가 뭍어있는지 감별하는 듯 했다.

생전 해보지도 않은 ...내 질을 핥으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정말 밥맛없다..개...쉑...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허긴 남편은 내가 의심스러운 날은 더 발광이었다.

눈에 붉은 불을 켜고 달라들었다.

그게 나를 굴복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최상으로 아내을 만족시키는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이튼날 아침은 천사같은 얼굴이되어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 하려고 화장을 하는 내앞에

콘 푸레이크를 탄 유리사발을 내밀었다.

 

아..어젯밤은 정말 잘잤어..당신도 그랬어?

 

욱!! 콘푸레이크게 담긴 사발을 얼굴에 던지고 싶었다.

 

나 오늘 아버지들 초대 학습이 있어서...늦을 지 몰라.

 

뭐? 무슨 아버지들을 학교에 초대해..아니 그 아버지들은 다 실업자야

일은 않하고 학교에 오고..그리고 당신 치마가 너무 짧아..입술도 너무 진하고..

 

그날 수업을 끝내고 교문을 나오다 소스라치고 말았다.

남편이 교문앞에 병정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다.

 

벌건 얼굴로 나를 보자 웃던 남편에게 살기까지 느끼게 되었다.

 

도대체 당신 왜그래..수업은 다 마치고 온거야?

그래 부랴부랴 마치고 급하게 왔지

뭘 급할게 있어

혹시 학생 아버지들하고 저녁먹...

 

여기까지 나오려는 입을 뭉개고 싶었다.

 

당신 내가 학교 그만두면 좋을것 같아?

그래 당신 학교 그만두고 집에만 있으면 좋겠다.

아니 ,..아내가 건강해서 이렇게 나오게 좋지..집에만 있어봐 ..아프기나 하고..

차라리 아파서 집에 있는게 나을것 같다..

 

결과를 보러 속편한 내과에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속이 편하지가 않았다.

어젯밤 내내 불안감으로 뒤척이기도 하다가..아니겠지 아니겠지

위로하기도 하다가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병원에서 오라고 했다는 말을 남편에게 하지 않은게 걸렸다.

의사는 내시경 결과지를 벽에 걸고 불을 켰다.

 

음-----------------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왜...나쁜가요?

음.................혼자 오셨나요? 보호자는 ..

혼자왔어요.

 

음.................여기를 보세요. 여기가 식도고 여기는 위인데..

 위 입구에 뭔가 보여요...더 정밀검사를 해봐야 하겠지만

위암 인것 같은데....초기는 지난 것 같아요..소견서를 써 드릴테니..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세요.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다리가 휘청했다.

헛웃음이 나왔다가 눈물이 고였다.

 

의사가 써준 소견서를 들고 간호사들의 안쓰러워 하는 눈빛을 뒤로하고

나온 거리에 막 목련이 피어나고 있었다.

 

하얀 목련이 필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 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지현은 10년을 근무한 학교에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쇼윈도우 부부처럼 남보기에 너무도 행복한 부부로 살아왔지만

더이상 남편의 의부증을 잠재우기 어려웠다.

급기야 남편이 학교에서 사표를 내야 할 지경이 되었다.

학교에서 가는 출장이나 수학여행도 남편은 가지 않으려 온갖 머리를 썼고

내 핸드폰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는 장치까지 해놓고 내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썼다.

 

이러다가는 정말 남편을 정신병자로 만들고 말것 같았고

차라리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들어앉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학교 사표쓸래...

그래? 정말이야?

 

정말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꿈이었다.

어릴때 페스탈로찌 위인전을 읽고 나도 운동장에 유리조각까지 줍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어 교대에 들어갔고 선생님이 되었다.

그러며 10년 페스탈로찌같은 선생님은 커녕 남편눈치에 다른 선생님들 눈치까지 지옥같은

세월을 버텨왔다.

 

다른선생님들은 속도 모르고 남편이 그렇게 자상하고 좋은데..

나는 그런 남편하고 살면 소원이 없겠다 라고 말할때마다 속으로 삼키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아니어요..그는 자상한게 아니라 집착이여요. 라고.

 

어느날 하도 견디다 못해 부부관계 상담을 하는 상담선생님을 찾아간적이 있다.

집착...이것도 병이라고 했고

집착하는 이유는 어린시절 부모님께 충분한 사랑을 받지못해 분리 불안증을 겪은 두려움이

변해서 집착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내게 그림은 다른 무엇보다 훌륭한 기분전환이 된다.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두렵다.”

화가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남긴 말이다.
뭐가 그리도 두려웠을까.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는 화가 반 고흐는 생전에 정신병에

 시달렸다. 그 병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귀를 잘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빅톨 위고(1802 년 2 월 26 일 -1885 년 5 월 22 일)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집착은 정신병이나 영웅적 행위로
끝난다. "

"집착 (执着)"이란 ...
"마음이 늘 그리로 쏠려서 잊혀지지 아니함 "을 뜻한다.
그렇다 ...
집착한다는 것은 어느 한곳에 "머문다"는 뜻이다. "머문다"는 것은 마음이 한곳에 머물러
정된다는 뜻이다 ."미혹"과 "미몽"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된다.

결국 ...우리의 마음은
어느 곳에든 머무는 데에서 애착과 번민이 생긴다. 마음이 머무는
그곳 ...그곳이 바로 고통의 씨앗이 움트는 곳이
다 ...

 
그럼 내 남편도 그의 마음이 내게 머물러 그런것일까?
불쌍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내가 다른마음을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그는 왜그렇게 나를 믿지 못하는 걸까?
 
그러면서 왜그렇게 밤마다 나를 파고 드는걸까? 왜 해그렇게 사랑한다고 내 몸을 
탐하는 걸까? 이해가 되지않았다.
 
남편의 어린시절은 늘 외로웠다고 한다. 실직의 아버지는 술 주정뱅이였고
어머니가 날품팔이로 혹은 생선장수로 생활을 해오는 터라 엄마의 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소풍을 가도 김밥한번 제대로 싸가지고 가지 못하고 언제나 김한장에 김치를 넣어 둘둘 말아준
김밥을 신문지에 싸가지고 가는게 고작이었다.
언제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한구석에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소풍을 갔고
집에 돌아오면 술주정뱅이 아버지한테 두들겨맞는 일이 반복되었다.
고등학교 까지 그렇게 다니다가 교대를 들어가면서 그나마 그 지옥같은 집에서 해방 될 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그 흔한 미팅 한 번 해보지 못했다.
변변한 청바지나 셔츠한장이 없었고 형 입던 군복을 물들여 내내 입고 다녔다.
더구나 별별 아르바이트를 다 해야 했기때문에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다행이 졸업하고 금방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을 수 있었고 1년후 들어온 지현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정말 좋은 여자였다.
조용하고 사려깊고..
 
주변의 남자 선생님들이 지현에게 눈길을 주면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오지현 선생말이야..며느리감으로 최고고..
 
이런말을 하던 교감 선생님과 하마트면 싸울 뻔 하기도 했다.
오선생이 뭐 물건인가요? 왜들 그렇게 침을 흘려요..
 
그럴때마다 빨리 오선생과 결혼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묘한 쾌감이 들었다.
섭섭해 하던 총각선생님들의 표정에 불쾌감도 들었지만 이젠 오지현은 내여자다
라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 아내와 함께 나란히 학교에 나가는 것도 자랑스러웠는데
서로의 발령지가 다르고 나서부터 마음이 불안해 졌다.
누군가 내 아내에게 농담이라도 던지면...
아니면 회식 때 술이라도 먹이면..은근히 어깨를 치거나 손이라도 잡으면...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머리를 흔들었다.
내 아내는 그럴 여자가 아니야...라고 지우려 해도 불안감은 불같이 타올랐다.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성격은 그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었다.
 
나 처럼 착실한 남편도 없을거야
난 우리아버지 처럼 그렇게 살지않을거야..그래서 술도 담배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내가 조금 늦는 날이면 아내와 다른 남자가 모텔로 들어가는 환상이 보였다.
 
아내의 흰 피부에
통통한 젖가슴에 다른 남자의 입술과 손길이 닿는 느낌은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아내가 그 남자와 한몸이 되어서 헉헉이는 상상이 들 때면..
아내의 입에서 묘한 애음이 섞여 나오는 것이 보일때면 그야말로 미칠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의 학교 교문에 가서 지켜서 있었고 아내의 회식이나 출장을
시비 걸어야 했다.
 
정말 아내가 중한 병에 걸려서 집밖을 나가지 말았으면
그래서 나만 나만 바라보는 화초로 있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아내도 사람인데...그러나 그감정은 잠시뿐 아내가 눈에 뜨이지 않으면
불안에 흽싸였다.
 
아내가 학교에 사표를 내자 그야말로 반긴 사람은 나였다.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내 집착도 어느정도 사그러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병은 그렇게 잠들지 않았다.
가정주부들이 대다수 애인이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불안감이 덮쳤다.
하루종이 나는 나와 있고 애들은 학교에 가있고
혼자 뭐할까? 불안했다.
 
혹시 낮에 잠깐 잠깐 외도를 하고 내가 퇴근하고 오는 시간에 맞춰 들어와 있는게 아닐까?
퇴근하고 갔을때 저녁이 다되어 있지 않아서 허둥대는 아내를 보면
그래 어딘가 갔다 왔을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하느라고 저녁이 늦어
뭐해..오늘은 장농 정리하고 시장좀 보고 그러느라고..
 
나는 묘하게 아내의 아랫도리를 보고 표시를 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곳에 나만 아는 비밀을 만들어 놓으면 어떨까..매직으로 표시를 해 놓을까?
중세시대처럼 내 아내에게 정조대를 채월 놓을 수는 없을까?
 

중세에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비인간적인 장치 중의 하나가 '정조대',

혹은 '비너스 대'라고 불리던 도구이다. 이것은 아내의 정결을 믿지 못하는

남편들이 먼 길을 떠날 때, 아내가 성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여자의 허리 부분을

빈틈없이 폐쇄시키는 역할을 했다. 물론 대소변을 위한 작은 구멍만은 남겨두었다.

정조대는 대체로 은으로 만들어졌고, 때로는 금으로 된 것도 있으며,

자개가 박혀 있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 사용자들은 상층 부르주아 계급과 절대군주 계급으로 여겨진다.

의심 많은 남편들은 아내에게 정조대를 채우고는 안심하며 먼 길을 떠나기도 했고,

혹은 아내를 자유롭게 외출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안심할 수 있었을까?

정조대와 관련된 믿지 못할 아이러니는 이것이 오히려

여성들의 성적 방종과 타락에 큰 몫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금속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정조대와 함께 만들어진 것이

그것을 여는 열쇠였기 때문이다. 정조대 상인들은 남편들에게 비싼 값에 정조대를

팔고는 아내들에게 비싼 값에 열쇠를 넘겼다. 결국 "자기 스스로 정조를 지키지 않으려는

여자들에게는 정조대를 채운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진리가 확인되었던 것이다.

 

남편들은 안심하고 길을 떠나거나 아내를 외출시켰지만,

덕분에 오히려 노골적인 부정이 자행되었다. 정조대는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의 끝없는 에로티시즘의 팽창을 역설적으로 입증해주는 도구인 것이다.

 

그러니 그것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한 왕이 있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왕비를 두고 먼나라를 다녀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아내에게 작두정조대를 채워놓고 신하들에게 내아내를 잘 보필하면

다녀와서 멀쩡한 신하에게 상을 내린다고 명했다.

 

그러고 한달 후 돌아와 보니 신하들의 성기가 다 잘려 있었다.

분노한 왕은 신하들을 처벌하고 말았다.

그런데 한 신하는 멀쩡했다.

 

그대가 나의 믿음직한 신하로구나

큰 상을 내리리다. 했더니 그 신하

 

서으이 마그 하나이다....

 

그 신하는 혀가 잘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것조차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내 아내 지현은 정말 환상적인 밤을 내게 주었다.

그녀의 매력은 적당하게 콧소리 섞인 사랑의 소리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녀와 섹스를 한날은 온 몸의 뼈마디가 맞춰지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혼해서 살면 아내와의 잠자리가 시들하다고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이해가 되지않았다.

그러며 다른여자들을 넘보는 놈들은 사람같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내아내 지현만 사랑했고 내 아내 지현의 몸만 생각하면 활력이 솟았다.

이런 아내가 낮에 나없는 사이에? 하는 생각이 들자 점심시간에 불쑥 집에 와보곤 했다.

소스라치는 아내를 보면서

왜 놀래 뭔짓 했기에..하는 말이 나왔지만

응 ..혹시 혼자 점심 않먹을까봐 같이 먹으러 왔어...

 

그러지 말아요...그러다 당신까지 학교에서 ..

 

그런 아내를 그냥 주방에서 안고 말았다. 아내의 유방은 언제나 따뜻하고 물큰하고

입에 넣으면 단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내의 입속은 향기로웠다.

아내의 침을 삼키면 그냥 아랫도리가 불끈서서 그 몸기둥을 아내에게 힘차게 박고 싶어졌다.

그리고 뜨거운 내 물을 힘차게 쏟아주면 아내 몸속에 있는 모든 나쁜 생각들은 그 뜨거운 물에

쓸려가고 말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나의 이 뜨거운 사랑에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낮에 들려 아내를 만족하게 해주었다는 자만심...

 

 

그런데 아내는 가끔 이 노래를 불렀다

구창모의 희나리였다.

 

 

사랑함에 세심했던 나의 마음이
그렇게도 그대에겐 구속이었소

믿지못해 그런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헤어지는 이유가 됐오

내게 무슨 마음에 병이 있는것처럼
느낄만큼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그대 왜려 나를 점점 믿지못하고
왠지 나를 그런 쪽에 가깝게 했오

나의 잘못이라면 그대를 위한
내 마음의 전부를 준 것뿐인데

죄인처럼 그대곁에 가지 못하고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지금에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불안했다. 이 노래를 자주 부르는 이유가 뭘까?

그러며 아내는 시드는 채소같았다.

그렇게 잘 웃던 웃음도 사라지고 나에게는 언제나 사무적이었다.

 

그런 아내가 어제저녁 잠을 못자고 뒤척이는 듯 햇다

왜 그럴까?

내가 모르는 고민이 있는 걸까?

어떤 나쁜 놈이 아내의 불륜을 알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는 걸까?

별별 생각이 또 한 잠못들게 했다.

그리고 아제 나도 어느정도 아내에게 자유를 주고 아내가 간간 친구들과 여행도 다녀오고

하게 만들어 주었는데..지난 겨울엔 친구들과 2박3일을 여행다녀왔는데..28년간 변함없이

살아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내 아내는 일편단심인 여자야.

 

지현은 지난 겨울 여고동창생 세명과 모처럼 2박3일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부산에 마침 동창 근이가 살고 있어서 마음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더구나 KTX는 재빠르게 우리를 부산역에 데려다 주었고 근이는 근사한 차를 가지고

우리를 픽업했다.

 

어디로 갈까?

바다없는 데서 왔으니 바다구경이나 하자

근이의 차는 해운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횟집에 우리를 풀었다.

뭐 먹을래?

몰라

그래 바다냄새 나는 회로 먹자

 

상한가득 차려진 스끼는 환상이었다

우리 얼마만이니..고등학교 졸업하고 근 30년이 지났네

그동안 어디좀 가려고 해도 지현이 요 기집애가 남편 못떨어져서 못다녔잖니

이젠 니 남편 젖좀 그만 멕이고 우리끼리 여행다니자

우리 아프지 말자

하나라도 아프면 이런 여행도 쓸쓸하잖니

 

맛있는 저녁을 먹고 욌는데 근이 남편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아유..미녀들이 부산에 뜨니까이 부산 밤이 훤해졌십니더

돈은 그마 걱정마이소

내가 낼거구마요

우리 집사람 그동안 부산와서 외로웠는데 오늘 회포마이 푸시다 가이소

 

무슨 제약회사 부산지사장이라는 근이 신랑은 카드를 꺼내 계신을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야 니 남편 멋지다.

 

지현은 곰곰 생각했다.

내 남편 조성기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찧고 까불며 여고동창생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녁 바다는 검게 물들고 여고동창생들은 근이가 마련한 호텔에 방을 잡았다.

그러며 이야기는 여고시절로 돌아갔다.

 

우리넷이 엄청 몰려다녔지

그때 너 좋아하던 그앤 어떻게 됐나

그리고 말이지 그 독종 교련선생 세상에 학도호국단 훈련때 여학생들을

군화발로 찼지..지금 같으면 그선생 당장 목아지다

그래도 지현아 너는 공부도 잘해서 반장이었고

글짓기도 잘했고 웅변도 잘했고...선생님들한테 엄청 귀염받았잖냐

 

그래도 지현이가 사명감도 있고 의리도 있다 아이가

뭐여 그때 교장이 누구였드라..그 교장이 우리반 개...교장실로 불러서

가슴 더듬는거 보고서 지현이가 전학교 학생들 솔밭으로 불러 시위했잖냐

그길로 교장 꽥 하고...

 

별별 추억의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런 지현이가 신랑한테 꼼짝 못하는거

아니 니 신랑이 너한테 아마 무신 자격지심 있나보다

그러니 너를 밖에 안 내보내지..니가 너무똑 똑한거 아이가...

 

모르겠다. 니들 맘대로 생각해 .이젠 나도 니들하고 놀러왔고

더 이상 무서운거 없다

우리나이가 50을 넘었는데 뭐가 무섭겠노?

근이는 눈을 크게 떴다.

 

그날밤은 꼬박 새웠다. 그 이튼날도 부산에다 웃음을 뿌려놓았다.

 

일요일 오후 대전으로 돌아오는 부산역에서 근이는 또 말했다.

누구 하나라도 아프지 않키다...아프면 파이다

슬퍼서 어찌 지내노..아프지 말고 여름되믄 또 오그라

하면서 떠나는 열차에 손을 흔들었다.

 

 

 

지현은 며칠간 곰곰 생각을 했다.

서울 병원에 가야하는데..내가 암이라는 데...

그런데 이상하게 남편에게 알리고 싶지않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18년.. 이제 너를 떠날 수 있는 구실이 생긴거야.

니가 원하는 대로 되었어. 28년을 너에게 이만큼 당했으면 됐어.

사랑한다는 구실로 나를 속박하고 내 몸을 지멋대로 탐하고..

언제 내의사를 물어보기나 했어..어느때는 생리할때도 빨갱이를 물리쳐야 한다며

관계를 한 너..그건 사랑이 아니라 병이야 병..

차마 너를 정신병자로 몰기 싫어 이태까지 참아왔지만 너는 불치병이야

 

아파서 누워있는 여자가 좋다고 ?..그래 니말이 씨가 된거야.

나 이제 너와 더 이상 살지 않을거야..

 

지현은 보험증권을 챙기고 보험설계사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암보험 두개와 입원료가 괜찮게 나오는 여성시대.. 실비까지 들어있었다.

그리고 임플란트 보험에서도 돈이 지급된다고 했다.

깜짝 놀랜 보험설계사는 얼마나 나오는지 알아본다고 했고 진료확인서와 암이라는

조직검사 결과지를 떼어 놓으라고 했다.

 

세 아이가 눈에 밟혔다,하지만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연애에 빠진 큰딸과

직장을 잡은 작은 딸 대학에 입학한 세째 딸이..다 자랐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큰애 시집이라도 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제는 바람처럼 떠나고 싶었다.

 

 

서울 S병원에 예약을 했다. 일주일 후에 아침 열시까지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내나이 52..아직 내 나이가 서러울 나이지만 나는 이제 나를 찾아야 한다.

비록 몸이 아파서 이지만 나는 이병을 이겨내고 내 삶을 다시 찾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참아내고 표현하지 못한 것들..철저하게 너에게 밟힌 시간들..

 

대학원도 들어가고 하고 싶었던 노래공부도 하고

아니면 세계일주를 할까 여행작가가 될까?

 

아직 내몸은 아무런 기척도 없다

어디 아픈것도 아니고 무슨 증세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서류상 나는 암 환자다.

 

일단 이사실을 바로 위 형님에게만 알렸다.

형님은 내게 동서 너무 참지말고 살어 그러다 병돼..

유일하게 나를 이해하고 여자로써의 삶을 걱정해주는 형님이었다.

 

애구 그놈의 병은 대물림인것 같어..자네 시숙도 언젠가 한번

서울로 출장갔다가 내가 늦었다고 25만원짜리 모범택시 타고 내려와서

나는 사에 마네 뒤집어놓고 그 병 고쳤잖어..

자넨 너무 착해서 ...

 

형님은 울었다,.

그러면서도 떠나려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

내가 힘들 때마다 내마음을 쏟아놓은 형님..

형님은 내 비상구였고 간간 나를 구해주는 손길이었다.

 

내가 전화해서 미칠것 같다고 울면 형님은 차를 갖고 달려와 나를 데리고

대청댐으로 동학사로 달려주었다.

 

오늘도 형님은 달려왔다. 눈이 퉁퉁 부어가지고 달려온 형님은 나를 데리고

청원 허브랜드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 앞에 꽃밥을 내밀었다.

 

우리는 꽃처럼 ..꽃밭을 비벼 입을 호사시켰다.

그리고 대청댐을 달려 넘실대는 물로 마음을 잠재웠다.

그리고는 형님은 바람의 노래라는 카페로 데리고 가서

달큰한 대추차 한잔을 사주었다.

 

대추자는 맛있었다.

직접 고았다는 대추차는 걸쭉했다.

 

동서...꼭 이겨야해..그리고 이제는 여자로 사는거야

 

바람의 노래에서는 대청호 물이 파랗게 보였다.

동서 --우리 나중에 이런 집 지어서 동서랑 같이 살자

 

그말이 위안이 되었다.

형님...미안해요..형님에게 이렇게 짐을 지우고 가네요

우리애들...형님 가슴에 맡기고 떠나요.

 

그이는 마음에서 도려낼게요.

 

나는 우리형님의 눈물의 배웅을 받을 수 있는 것만도 행복했다.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