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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의 여자


BY 비단모래 2010-11-24

남편을 잃은지 1년쯤 되는 그녀는  모임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아코디언 처럼 주름이 진 가슴팍에 드문드문 보석이 박힌 원피스는 그녀의

생의 주름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도  아름다웠고 목소리가 나긋했다.

60을 넘은 나이라고는 영 보이지 않았다.

중국집 돌아가는 테이블앞에 앉은 우리들은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며

모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자고 했다.

남자다섯  여자둘..일곱명의 사람중에 셋은 교수교 나머지는 학생들이었다.

60이 넘은 그녀도 대학원 마지막 논문학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중에 50대 남자 대학원생의 꿈은 늘 뜨거운 연애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50대가 지나가기 전 뜨꺼운 연애를 한번 해볼거야"

"상대는 찾았어요?"

"아직은...하지만 꼭 하고 싶어"

"아내가 알면..가만두겠어?"

 

"예전에 한번 들켰었지..죽을듯이 빌었어...그래도 해보고싶어"

이남자가 아직 뜨건 맛을 못봤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은 하지않았다.

그중에는 결혼3년차에 이제 갓 돌이지난 출판사 직원도 끼여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이해가 안되는듯 고개를 갸웃했다.

"아내에게 죄짓는 것 같지않아요?"

 

"이친구 아직도 꿈속이구만..."

50대남자는 말했다.

 

메뉴는 전가복과 가와바시였다

갖가지 해물이 들어있는 해물잡탕볶음쯤 되는것이고 가와바시는 키조개 관자를 튀긴것이었다.

전가복 대형접시가 들어왔다.

간장을 따르고 고추가루와 고추기름을 섞어 젓가락으로 휘휘 돌렸다.

 

교수가 한마디 했다.

"전가복은 온가족을 행복하게 한다는 음식인데요.

우리 오늘 행복하게 먹읍시다"

 

 해삼 새우 갑오징어 소라 전복 관자 청경채 표고 죽순 송이버섯 아스파라거스

그야말로 이걸 먹고 이 남자 온가족을 행복하게 하는게 아니라 어떤 여자 행복하게

해주면 어쩔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자연스레 백알이 오가고 취기가 오르자 그야말로 이야기는 19세금이었다.

교수와 제자라는 사람들이 모두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 남편에게 10년간 다른 여자가 있었다"

순간 모두 젓가락을 정지시키고 들고 있었다.

 

1년 전 남편이 죽고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사람이 남편의 여자였다는 것이다.

그 남편의 여자가 남편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사망사실을 알렸고

그 친구가 그녀에게 사실을 알렸다는 것이다.

 

그녀도 남편이 교통사고가 나던 날 남편과 한시간 전에 통화를 했었다고 한다.

그때 남편은 밖에 있었고 손님을 만나고 들어간다고 했단다.

그러고 한시간 후 남편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경황이 없이 그녀는 남편의 장례를 지내고 남편을 화장해 집앞 공원에 묻었다.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다 남편 휴대폰에 남편이 사망하던 날

세번이나 찍힌 낯선, 그러나 이상하게 신경줄이 팽팽해지는 번호를 보았다고 했다.

누군지 싶어 전화를 걸었더니 조용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친구를 만났다.

처음 남편의 사망사실을 알린 그여자는 누구였냐고...그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만나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다.

남편의 여자에게는 남편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사랑하던 사람을 잃고 장례식장에도 나타날 수 없고 어디

산소를 멀리 쓴것도 아니어서 산소에 와서 정리를 할 수도 없어 남편이 죽은 후

49일이 되어 절에서 혼자 49재를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그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간 가슴시린 사랑을 나누었을테고 그사람이 죽은 것을 가장 처음 알아야했고

(남편의 핸드폰 1번에 저장된 사람이었기에)

그러면서도 장례식장에 와서 실컷 울 수도 없었고...오죽 했으면 혼자 49재를 지냈을까 싶어

만나서 위로하고 싶다는 말을 흘렸다.

 

전가복이 접시가 바닥을 보이자 가와바시가 들어왔다.

쫄깃하고 따끈했다.

이야기도 씹어야 맛이라고 가와바시도 씹을수록 잘깃하게 씹혔다.

 

"어머..어쩜"

"아녀요 만나지 마셔요"

"이렇게 아름다운 신데도 남편이 여자가 있었군요"

 

적당히 동조하고 어르고 하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솔깃하게 귀가울였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지않았어요..그런데 애증이 남았더라고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남편에게 여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에도 화가 나지않았어요.

그리고 그 여자가 궁금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남자를

10년 씩이나 사랑할 수 있었는지 그게 신기해요"

 

 

그녀는 스물다섯 나이에 결혼을 했다.

별반 일없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일하지 않아도 부모님 재산으로 때빼고 광내고 하고 싶은것 다하고 살아 온

사람이었다.

술을 먹으면 주먹이 날아왔다.

그래도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관의 자리에 까지 오른 사람이라서 남편의 폭력을

창피해서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지독한 술냄새를 풍기고 들어오는 날이면 거실로 나가 잠을 잤다고 했다.

며칠간 집안에 가득한 술냄새때문에 자신도 술에 절여지는 것 같아서 사회생활을 해도

 술을 입에 대지않았다고 했다.

 

흰도자기 잔에 말갛게 들어있는 백알을 코앞까지 가져갔다가 내려놓곤 했다.

 

그러다 신혼에 바람을 피웠다. 몇번의 바람이 지나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감정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사랑이 아닌 자식의 아버지로 생각하며 그나마 아비없는 자식을 키우것 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사람을 사랑했을까"

 

그것이 미스테리라고 했다.

남편 친구를 통해 안일이지만 그녀는 참으로 포근한 가정을 가졌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중소기업체의 사장으로 돈도 그렇게 부족한 편도 아니고 아이들도 그저

무해무덕하게 커서 별 마음고생도 없는 여자라고 했다.

 

"그런 여자가 어찌 그런 거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을까..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돼요.

남자들에게는 남자만의 매력이 있나봐요..나는 정말 내 남편이지만 사랑의 감정은 없었으니까요"

 

담담하다. 중국집 천장에 매달린 등처럼 묵묵하다. 붉은 등불에 복복자가 써있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몸이 붉게 물들것 같은 생각이다.

백알을 마신 몇몇의 남자들의 얼굴이 등처럼 붉다.

그러며 그들은 그녀의 남편이 살짝 부럽다는 눈치를 보였다.

 

"집에 편안한 아내있고 밖에 사랑하는 여자있고 그러면 환상이죠"

50대 연애를 꿈꾸는 그남자가 말했다.

 

"나는 정말 아내가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면 이해할 것 같아요"

"정말 ?...아내가 육체관계를 해도?"

"내가 모르믄..."

 

그 대답이 책임감이 없었다 안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못산다고 길길이 뛸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를 잡아 족칠것이다.

죽이네 살리네 네 가정을 파괴시키네 난리를 칠것이다.

그 아내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이혼을 당하든가 평생 죽은듯이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말했다.

저 믿지못할 남자의 속을 젓가락으로 쑤셔보고 싶었다.

 

 

 십대 어린것들의 사랑도 아니고 중년의 남녀가 만나서 무슨 프라스틱 러븐가 뭔가를

하겠는가!

그냥 살 섞는 사랑...그런것부터 시작 될것이다.

불붙듯이 옷을벗고 몸을 탐닉하고 그리고 일을 끝내고 부지런히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다고 하지않는가?

바람을 많이 피우는 남자는 습관적으로 일이 끝나면 얼른 옷을 입고

"얼마요?" 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내는 얼마나 웃기겠는가!!

 

그러고 보면 참 화가난다. 자기 여자에게는 단 한번의 정사에도 돈을 줄 생각도 안 하면서

다른여자에게는 꼭 돈을 지불 할 생각을 하다니..

아내는 창녀는 아니기에 화대료를 받으면 안되겠지만 그냥 맥주집에서 거저먹는 팝콘처럼

아니 달라면 달라는 대로 주는 팜콘처럼 수십년 무상으로 거저 먹으려 한다.

무상으로 거저 먹으면서 자꾸 다른 안주에 기웃이는 심사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맥주집 화장실의 낙서가 생각나서 푹 웃었다.

"왜 웃어"

거나한 50대 남자가 말했다.

"아니 뭐가 생각나서"

 

아내와 팝콘의 4대공통점

1, 습관적으로 손이간다

2.공짜다

3.다른안주가 있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4,달라면 언제든지 더 준다

기분나쁘다. 나도 아내라는 입장이 아니라 누구의 숨겨진 여자이고 싶어진다 이럴때는.

하하 웃으며 이야기를 해주다가 보너스로 한가지 더 해주었다.

우리 대학원 생들이니까 이 유머하나 더 해줄까?

화장실과 도서관의 3대공통점이 있는데..학문(항문)을 넓히고  학문(항문)에 힘쓰고

    학문(항문)을 닦는다.

보너스야 하면서 킬킬 웃었다.

 

 

서로 킥킥웃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 남편의 여자 내 남편 때문에 행복했을까? 무엇때문에 행복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남자

 여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재주 없는데..."

 

그때 교수라는 한 남자가 말했다.

 

"여자들에게는 베드보이 컴플랙스가 있잖아요. 자기 남편이 부드럽고 자상하면 거칠고

  터프한게 멋져보이고..남편이 돈 잘벌면 돈은 없어도 지적인것 같은 남자를 좋아하고..

  그러니 어디 여자 비위를 맞출 수 있어야지.."

 

쩝 하며 백알을 들이킨다. 이제 교수의 입에서도 시궁창 냄새가 날 것 같았다.

 

 

   

"그래 이제야 알았어..내가 밖에서 활동하고 다녀도 어느날 부터 남편이 너그러워 졌어

  신혼 같으면 조금만 늦어도 쌩 난리더니 늦어도 아무 말 않하고 나를 이해하더구만

  나는 그게 남편이 나이들고 이젠 자신을 뉘우쳐서 그런지 알았어..그래서 측은지심이 생겼지

 그래 아무리 잘났다고 뛰어봤자 너도 나이 들으니 별수 없구나..콧방구를 뀌었지

  더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고 더 열심히 내 취미생활을 하고 결국 60넘어 여기까지 왔지.

  그런데 그게 나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그시간에 그여자랑 ..."

 

   

그녀의 넋두리를 듣다가 남자의 두가지 유형을 생각해 냈다.

  바람피는 남자..한종류는 아내를 구박하고 때리고 한 종류는 곰살맞고 자상하고 ..

  그럼 어떤 남자가 진실한거야.도대체 믿을 수 없는 인간이 남자..아니 내 남편들이야"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그녀가 유머라고 말했다.

 

   

"바람피우는 남자 죽이는 방법 알아?내 남편은 스스로 알아서 죽어줬지만

  서서히 죽이는 방법이 있지..

 

 1. 기름기가 충분한 고기와 흰설탕이 듬뿍든 디저트를 자주 멕인다.

==> 비만과 당뇨병, 심장병에 직빵이다.

조언 - 돈이 아까울 경우...

사료용 우지, 공업용 돼지비계 등을 활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2. 술을 자주 권한다.

==> 술은 혈중 중성지방을 증가시킨다.

조언 - 집에서 먹는 꼴을 보기 싫으면...

돈 줘서 밖에서 먹고오게 한다...

술또라이가 돼서..어디가 맞아 죽는 의외의 효과를 얻을수 있다.

 

  3. 매일 아침 달걀후라이를 3~4개 먹인다.

==> 달걀은 콜레스테롤 덩어리라 심근경색을 유도할 수 있다.

조언 - 슈퍼 주인한테..미리 귀띔해 두거나...

큰 양계장을 물색해 별도의 계약을 맺으면...

노른자가 두개씩든 쌍알도 쉽게 구할 수 있다

 

  4. 밤에 잠을 못자게 하여 늦게 자는 습관을 키운다.

==> 이렇게 하면 매일 고문하는 효과를 본다.

조언 - 알겠지만..잠을 못자게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절대..즐거워서 잠못자게 하는 방법을 택하면 안된다...

살의가 약해지거나...당신 명이 짧아질 수도 있다. ^^;

 

  5. 휴가여행을 금지하여 스트레스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 빠져나가지 못하면 터질 수 밖에 없다.

조언 - 정 가겠다고 우기면...혼자 보내라...

미리..타이어 나사를 조금 풀어 놓던가...

술이라도 한잔 멕여 보내고 사고소식이나 기다려라...

기쁨의 크기는 보험갯수와 비례할 것이다...

 

  6. 모든 음식은 최대한 짜게해서 먹인다.

==> 동맥경화나 고혈압으로 언젠가 쓰러질 것이다.

조언 - 중국산 소금은 염도가 떨어지고

죽염은 비싸기만하지..효과가 없다...

대빵 굵은 국산소금..그게 최고다...

넘어갈 기미가 안보이면...밥에도 넣어본다...

 

  7. 커피나 홍차를 수시로 먹이되 흰설탕을 듬뿍 넣는다.

==> 흰설탕은 혈액을 산성화 시킨다.

곧 칼슘이 부족해져 뼈가 쉽게 부러진다.

커피나 홍차의 상습음용은 지방간과 심근경색의 원인이다.

조언 - 재래시장에 가면 대따 큰 머그컵을 구할 수 있다...

그걸로 성에 안차면..남는 사발을 활용하거나...

근처 호프집에서..하나 꿍쳐다 써라...

큰 일을 위해...작은 쪽팔림은..눈감아라..

 

 8. 흡연을 적극 권장한다.

==> 하루 세갑이상 피우게만 하면 연탄가스 중독 효과가 있다.

조언 -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값싼 걸 많이 사다 놓는다..

잠잘때...콧구멍에도 넣어보고...

내용물을 비운후..가끔..연탄가루도 집어넣어 보자...

 

 9. 늘 빈둥빈둥 누워있게 하고 걷지 못하게 한다.

==> 다리와 허리를 약화시키는 데 좋다.

조언 -- 음...글케되면 아쉬운거 한개는 있을거다...

그건 참을 각오 해야된다...^^ (뭔 야그인지 ㅋㅋ)

해결방법은 나도 모른다...

그리고..당신도 한개 정도는 참아라..

 

  10. 돈과 아이 문제로 조석으로 바가지를 긁는다.

==>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

당장 효과는 없지만...장기간 쌓이면...넘어가게 돼있다...

조언 - 당신이 좀 피곤할 수도 있지만...

가장 저렴하므로 일반에게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다...

위에 언급한 방법들과 섞어서 활용하면...효과 만점이다...

 

 

그녀가 말하는 걸 조목조목 적으며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를 생각했다.

그런데..내 남편은 무슨 떡이든 설탕 찍어 먹고, 김치찌개에 밥 비벼 먹으면서

조개젓 올려놓고 먹고, 간식으로 찐계란 엄청 좋아하고,

술은 일년 365일중 350일 정도 술마시고, 배추국 끓이면 소기름

잔뜩넣어 끓이란다 그러면 구수~ 하다고, 자기가 다 알아서~~ㅋㅋㅋ

웃음이 씩 나오다 그만 숨이 막혔다.

 

 

그녀의 빨간 원피스에 잡힌 주름에서는 끝없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접힌 골골마다에 그녀가 살아온 세월이 접혀져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 골마다 눈물이 담겨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피스의 주름이 펴지면 한꺼번에 눈물이 쏟아져 내려

우리몸이 잠기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럼 그동안 한번도 남편분을 사랑하지 않았나요?"

 

"결혼 전에 잠깐 사랑했지"

"어떤 분이셨는데요?"

 

"참 로맨티스트였지. 어느날 내앞에 버버리 코트를 입고 나타났어

키가 얼마나 컸는지 내가 하이힐을 신었는데도 그의 목까지 밖에 차지 읺았어.

만나는 첫날 그는 빨간 가죽장갑하나를 내밀었어...영원히 손시렵게 하지 않을게요"

 

"아...영원히 손시렵게 하지 않을게요..정말 근사한 프로포즈였다"

50대남자가 침을 꾹 삼키며 말했다.

 

"맞아 여자들은 손이 차더라..그래서 손을 주머니에 넣어주면 좋아하지"

"이그 그짓도 또 해봤구만"

"그럼 그 찬손을 주머니에 넣고 조물락 거리면 심장이 뛰고..

여자는 금방 눈물이 촉촉해지고.."

 

"너무 감상에 젖지마..여자라고 다 그런게 아냐..그런 여자들 다 어디두고 

지금 또 그렇게 껄떡쇠마낭 연애할 여자를 찾으려고 하는거야"

 

"이상하게 싫증이  잘나대"

"저 변태..."그렇게 말하려다 말았다.

 

나는 어떤 프로포즈를 받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밍밍하기 그지없었다 .

무슨일인가로 다투고 한 보름간 헤어졌다가..정말 다시는 않볼것처럼 헤어졌다가

슬슬 보고싶어지기도 했고 남편이 먼저 화해를 청해와 어느  통닭집에서 만났다.

 

닭을 통째로 밀가루 범벅을 해서 하루종일 닭을 튀겨내 검정색이 다 된 기름에다

튀긴 그 닭에다 맥주를 한잔 먹었다.

맥주를 마시는데 남편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핸드폰도 없는 시절인데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몰려온 그들은 내앞에서

나랑 헤어지고 보름동안 친구가 식음을 전폐하고 술로만 살았다고 했다.

그녀를 못잊겠다고 눈물까지 흘렸다고 했다.

이 친구 괜찮은 녀석이니 버리지 말고 결혼해 보라고 했다.

 

마음이 흔들렸다..

이남자 나 없어도 괜찮을것 같더니 그랬단 말이야

회심의 미소도 나왔다.

 

맥주집에서 나와 집까지 바래다 준다고 어둔 길을 걸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시절은 통행금지가 있었다.

나를 매일 데려다주고 가는 그는 늘 통금시간과 맞물려 한시간 이상을 이를 물고

달려야 했다고 했다.

어느때는 역으로 들어갔다가 손에 도장을 찍고 나올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11시 가까이 까지 집에 들여보내지 않으려 했다.

 

그 어둔길을 둘이 걸으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휙 돌아서 맥주냄새가 가시지 않은 입으로 첫 키스를 했다.

혀가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 참 따뜻했다.

맥주 뒷맛이 향기롭게 남아있었다.

 

그의 혀는 마치 달콤한 아이스크림같이 녹았고 내혀를 잡아 뺄 듯

힘찼다.

 

그러고 말했다.

"결혼하자...더 이상 헤어지기 싫다"

 

입이 얼얼해 나는 아무말도 못한 것 같다.

 

문학소녀였던 나는 결혼은 무슨 보랏빛향기가 나는 행사라고 느꼈었다.

늘 알싸하게 가슴이 뛰고 그의 발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그의 목소리에 꿈을 꾸고

그가 내미는 꽃다발을 받으며 둘이 함께 보글보글 끓는 찌게를 먹으며

둘이 손을 잡고 잠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없어도 좋고 집이 없어도 좋고 이렇게 나와 헤어지기 싫다는 그와 함께 있으면

매일 웃고 살수 있을것 같아서 어느해 겨울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은 이상향이 아니라 깨진얼음판을 딛는 현실이란 걸 곧 깨달았다.

 

 

이럴줄 알았다면 선이라도 한번 보고 시집 올 걸..

이럴줄 알았다면  ..첫키스만 해도 시집가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야 했는데..

 

 

"그래서요..그 빨간 가죽장갑을 받고 어떡하셨어요?"

 

"그날 밤..우리는 청주로 건너갔지..그당시 청주는 내륙지방이라 통행금지가 없었어

무심천 변을 걷다가 눈앞에 반짝이는 불빛을 보았지...금수장..이름도 하필 금수장이었어

금수..좋은뜻이지 ..금수강산처럼..하지만 그날의 금수는 짐승이었어"

 

입이 바짝 말랐다.

에로비디오가 상영되려는 중이었다.

교수들도 거나하게 취해 눈빛이 붉어져 있었고 50대 남자는 침이 줄줄 흘렀다.

 

때마침 종업원이 차를 가져왔다.

허브가 섞였는지 허브향이 났다.

아니 자스민차였다. 자스민 향내가 확 풍겼다.

그 자스민향속에 섞인 야릇한 향내는 혹시 그 금수장에서 풍기는 이상한

비린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로맨티스트였던 그남자는 금수장에 들어가자 마자 문을 잠갔지

그러더니 내 스물다섯살의 몸을 뭉개는거야

큰키의 거구에 깔려 나는 그냥 해부당하는 개구리였어.

블라우스는 찢어지고 브래지어는 뜯겨지고 팬티는 발가락으로 끄집어 내리더군"

 

 

남자들이 맥주를 시키더니 벌컥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자신의 아랫도리들이 팽팽해져 오는지 잠깐 화장실을 간다고 두어명이 나섰다.

오십대 남자와 교수하나의 바지앞 섶이 불룩했다.

그들이 돌아온 건 10여분이 지나서였다.

눈이 헤멀건해 져 있었다.

무언가 쏟아내고 온 것 같았다.

 

"남자란 동물은 뭐든 참을성이 없어..그러니까 무섭게 몰려왔다가도 금방 사그라지고 말지"

옆집 아줌마가 던지던 말이었다.

 

"우리집 인간은 저 밖엔 모른다..이런 말 아나 충청도  부부가 살았단다.

그날밤 남편이 뭐가 하고 싶어 부인옆구리를 꾹 질렀단다. "잘껴?" "할껴?"

그라곤 그 남편 헥헥거리며 "존겨?" 라고 물었단다

그 부인 왈.."한겨?"

 

그말을 듣고 밥알이 튀어나가도록 웃은 적이 있다.

"한겨?"라고 의문이 드는 그게 남자였다.

 

아무리 남자들이 용을 쓰지만 불로 치면 번갯불이고 여자들은 서서히 타면서

오래타는 장작불이고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부서지면 물거품만 남는 남자들에게 비해서

여자들은 늦게 타오른다.

 

그래서 술과 여자에 대한 오해를 하는 많은 남자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체로 술과 사랑에 너무 급하다.

술자리에 가면 우선 부어라 마셔라..그것도 모자라 폭탄주를 들이킨다.

소주 맥주 양주를 섞어서 마시면서 금방 취해 늘어진다.

처음엔 사람이 술을 먹다가 그다음엔 술이 술을 먹다가 마지막엔 술이 사람을 먹어버린다.

적당히 취해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과 흥분된 가슴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서 한말 또 하고 ,어쩌다 혀가 꼬여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절주절 해댄다.

술이 말하는 것은 어떤것도 영양가가없다.약속도 믿을 수가없다.

술이 취해서 깜박잊었다 하면 그만이다.정말 얼마나 관대한 술문화를 가졌는지

술이 취해서 하는 실수는 술이 그런 것이라고,평소는 그렇지 않은데..그사람 그날 기분

나쁜일 있나보다라고 너그럽게 넘기면 된다.

 

 

사랑은 어떤가!

여자는 정말 늦게 타오른다.

 

더구나 아이를 낳지않은 신혼초의 여자는 오르가즘에 대해서 처녀지다.

아이 둘을 낳아야 비로소 안다는 그 오르가즘

그게 도대체 어떤 것일까?

 

불을 때려고 해보자.

우선 가마솥을 걸고 장작을 넣기전에 작은 불쏘시개로(종이나 아니면 솔가지.가는 나무)

불을 붙여 조심스레 불을 피운다.

화구입구에 고개를 들이밀고 호호 불기도 하고(예전에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를 썼다)

부채질을 하면서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하면 잘 마른 가는 나무부터 넣기 시작한다.

장작도 무작정 쑤셔넣으면 불이 붙지 않는다.지그재그로 넣어야 한다.

마르지않은 장작은 연기만 무성할 뿐 불꽃을 피우지 못한다.

정성스럽게 불을때야 음식이 잘 된다.불 조절을 잘해야 밥이 잘 된다.

불이 너무 싸도 밥이 타버리고 불이 약해도 밥이 곯아버린다.

 

술과 여자....

 

우선 술을 눈으로 느껴야 한다.

이 술이 무슨 술인지...어디서 만든건지...어떤 종류인지 천천히 들여다보자

내몸에 과하지는 않는지...몇잔정도를 먹으면 되는지...

 

그러며 코로 냄새를 맡아본다.

이 술의 향기는 어떤지...이 술을 마시면 어떤 느낌이 올지

 

그러다 혀에 조금대고..맛을 본다.

어떤맛인지(하긴 하도 술을 많이 먹으니 척하면 알테지만...)

목줄기를 타고 넘는 느낌은 어떤지...그러며 천천히 마신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대화도 즐거워지고 사랑도 즐겁게 할수 있다.

 

여자도 그렇다.

우선 눈으로 바라본다.

오늘 내 여자의 모습이 어떤지...바뀐것은 없는지..힘든 표정은 없는지

(아내가 미용실 다녀온 것을 알수 있는지-이쁘다고 칭찬할 수 있는지)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러며 내 아내의 향기를 맡는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김치냄새만 난다고 하지만 사람에게는 특유의 향기가 있다.

오늘 내 아내의 향기는 어떤지..혹은 아내가 오늘밤을 위해 향수를 뿌렸다면

당신 향기 좋은데~라고 한마디 한다면 ....오늘밤 그남편은 ...

 

그리고는 남편의 부드러운 혀로 아내의 몸을 ....거칠게 혹은 부드럽게...

 

그저 급하게 불을 붙이려다가 성냥도 못켜든가 아님 금방 꺼져버려

아내를 실망시키지는 않는지...아내가 그저 눈 멀뚱멀뚱 뜨고 천장만 바라보게 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여성들 오르가즘이 뭔지 모른다는 불감증이 많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는 그냥 애 낳느라고....그 이상은 뭔지 모르는 세월을 사셨다고 한다.

 

오르가즘...그 얼마나 황홀한 무아지경인가!

밤하늘에 퍼져가는 불꽃놀이 같기도 하고.. 핏줄속을 차가운 물고기가 유영하는 듯

짜릿하기도 하고....온 뼈마디가 맞추어지는 듯하고..무언가 머릿속이 시원한 박하향으로

가득찬것 같기도 하고..  나른하게 퍼져오는 행복감으로 여자는 오늘 하루의 짜증나고 힘들었던 일들을 모두 잊고 잠속으로 빠져든다.

 

남편의 손을 꼬옥 잡고서....그리고 이튿날 아침 남편은 아내의 활짝핀 얼굴을 볼것이다.

시끄러운 그릇소리를 내며 투가리 깨지듯 퉁명한 배웅이 아니라

남편의 출근길을 신바람 나게 할것이다...

(정말 경험담이다)

정말 경험담이라도 강조를 해놓고보니 좀 웃음이 나기도 하다.

 

자~술과 여자 급하게 다루지 말자

좀더 천천히 부드럽게...뜨겁게 다루어보자...


너무 비약이 심했나.

 

"그렇게 금수장에서 금수처럼 당하고 난뒤에 참 복두 없는 년의 불행은 시작된거지

덜컥 아기가 생긴거지. 그당시는 처녀가 임신하면 회사를 다니기 어려운 시절이라서

그 좋은 회사에 사표를 내고 결혼을 하고 말았어"

 

"아유..데이트도 제대로 못하셨겠네요"

 

"데이트는 무슨...금수장 이후로는 그는 만나면 의례 금수였지

우선 욕심만 채우고..어찌나 술을 먹는지 술냄새가 무슨 시궁창 썩는 냄새가 났지

그 입으로 내 몸을 핥을때는 그냥 온몸이 오그라들었지.

하지만 그 힘을 당할 수 없었어.그런데 그여자는 어떻게 이런 남자를 10년이나

조용히 사랑했을까?"

 

 

그녀는 계속 그것이 궁금한 것이었다.

 

"그럼 남편과 제대로된 사랑을 나누지 못했군요"

 

"사랑...그게 뭐 삶아먹는 이야기여...사랑이 뭔지 모르고 그저 폭력에

잡혀서 죽을까봐 살았지..그리고 말여..내 한뼘 얼굴이 있어서 잘나가던

누가 그렇게 산다더라 이런 이야기는 죽기보다 싫었지"

 

그 이야기에 화가 났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따뜻히 몸을 섞고 포옹하고

그리고 아름다이 살아갈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여자에게는 아름다운 성이 허락되지 못하는 걸까?

 

 

영화 ‘별들의 고향’을 보면서 잘생긴 당대의 최고 남자배우가  여자배우에게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하며  안는 장면을 보면서 숨 막히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남녀 간의 사랑의 표현이란 서로 떨리게 손을 잡는 것 이외 별다른 표현이 없다는

것만 알던 나이였기에 영화 속에서 남녀가 누워 안고 있는 장면은 일대

 커다란 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 우리 사춘기 시절 나온 하이틴 영화는 우리들의 마음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얼굴도 예쁜 하이틴 스타 임예진과 이덕화.진유영.전영록은 고교생의 신분으로 키스를 하고

 손을 잡고 서로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드는 모습은 우리의 심장을 벌렁 이게 했고

그들을 우상으로 가슴에 담아두게 되었다.

 그리고  여성의 몸이 수영복을 입은 채로 ‘나 한가해요’란 포즈로 섹쉬얼 하게 서있는

모습이 담긴 선데이 서울 같은 그야말로 통속적인 잡지는 남성들이

은근히 보는 빨간 잡지였다. 그 시절 성은 은밀하게 가려진 은막속의 그림이었고

잡지 속에 남몰래 관음으로 바라보는 장치였다.

그 시대도 어른들에게는 춘화라든가 가루지기 옹녀 소녀경 등이 은밀하게 거래되었겠지만

우리는 그저 성적 표현이란 손만 잡아도 임신이 되고 손 잡힌 남자에게 시집가야

된다는 어떤 관념을 안고 살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동네 아줌마들과 조조할인으로 본 영화 ‘원초적 본능’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목이 마르게 했다.

샤론스톤의 요염한 나체로 남자를 침대에 묶어놓고 여성상위 체위로 격렬하게

정사를 벌이고 얼음송곳으로 그 남자를 살해하던 장면은 이상하게 온몸의

피를 빠르게 돌게 했고 심장박동수를 배로 늘려놓았다.

영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첫 장면에 입술이 마른 우리,

성의 묘사에 너무도 서툰 우리가 본 첫 장면 때문 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 뽕, 변강쇠. 산딸기등 대체로 성이 강하다고 표현되는

 여성의 주도로 표현된 영화는 성행위의 대담한 표현으로 3류 극장에서 은밀히 상영됐지만

그 영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간간히 보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여자의 성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후 여성의 성이야기는 여성잡지의 부록으로 심심찮게 등장하고 그 부록 속에는

부부간의 성 체위라든가 어떻게 하면 즐거운 성생활을 하게 되는지 같은 방법을

친절하게도 공개해 놓았다 그런 잡지들을 읽으면 내 몸은 뜨거워졌고

그동안 시도하지 못한 그런 방법들에 대한 동경이 생기게 되었다.


이제 영화에서도 전라의 정사신은 보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고

특히 여성이 리드해가는 주도적인 성행위의 묘사가 부지기수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여성이 체위만을 상위로 올라갔다고 여성의 성이

 주체적인 성 으로 설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의 정조를 강요한 열녀문으로 그 집안의 훌륭한 가문을

내세웠던 시절을 지나며 어머니들 세대의 성이야기는 빨래터 아니면 김장하는 날,

40이 넘은 중년여인들의 웃음소재로 등장했던 여자의 성.

 

  21세기는 그야말로 성이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성 강사 구성애의 우리들의 아름다운 성이야기는 방송매체를 타고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수 주간 방송되었고 그러며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부간의 성숙한 의식, 아름다운 행위라는 인식으로 자리 잡으며 최고의

즐거운 놀이로 인식되어갔다.

 

그리고 요즘 케이블방송은 그야말로 성 천지다.

그것도 남성보다 여성들의 입에서 나오는 부부간의 성이야기는 이제 성은 남성에 의해

소통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주문에 의한 좀 더 과감하고 색다른 과정으로 변모해갔다.

우리시대의 어머니들은 그저 남성에 의해 치러진 성의식으로 출산의 바탕에 두었다면

아기도 낳지 않는  이시대의 성은, 쾌락의 도구로 쓰여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왜 여성들이 말하는 그 성이야기가 가끔은 후련한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30대의 여성들, 그야말로 결혼하지 않은 듯한 미시들이 어깨를 드러내고 허벅지를

드러낸 몸을 꼬고 앉아 우리는 어떤 체위가 좋고 하루저녁에도 몇 번을 하고

멀티오르가즘을 위해 어떤 걸 하고, 내 집안의 은밀한 이야기를 백주대낮부터 쏟아낸다.

 어느 프로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고발했는데 그의 아내는 남편이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면 자신의 팔 다리를 묶어놓고 상위체위로 성행위를 한다는

그야말로 원초적 본능의 대사를 쏟아내며 웃었다.

 

창호지 안에 가려 흐릿한 실루엣의 정사 신으로도 침이 넘어가고

목이 마르던 시절을 지나 유리상자안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세상에서 좀 더 강하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나열되고 있는 여자의 성.


그 런 여자의 성을 그녀보다 윗시대를 살아가신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느끼셨을까?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암 투병을 하시며 병원에 누워계신 어머니께 비로소

 어머니의 성을 물어보았다. 고단한 한평생의 길 위에서 이승에서의 삶이 조금씩

소진되어가고 있는 어머니에게 그동안 이세상의 소풍이 즐거웠는지 묻고 싶었다.

아버지 말씀에 열일곱 살에 시집오신 어머니는 그야말로 복숭아꽃 같았다고 하셨다.

결혼식을 치른 저녁 족두리를 벗기는 아버지에게 “나는 남의 남자하고 못자요”

라고 떨리게 말했다는 어머니셨다.


어머니의 방이 따로 없었다. 가난한 도시 언저리 산언덕에 자리한 사글세 방 한 칸에는

중학교에 들어간 큰오빠와 초등학교 다니는 작은오빠 나 그리고 여동생 

어머니 아버지가 옹색하게 다리를 뻗고 지내야 했다.

흐린 전깃불 아래 공부하는 오빠의 공부방이 따로 없으니 자연 어머니는 아랫목에서

동생을 데리고 주무시고 그 가운데 작은오빠와 내가자면 큰오빠가 공부하는

책상머리에서 아버지는 새우잠을 주무셨다. 큰오빠는 밤을 새워 공부하기 일쑤여서

우리의 잠을 방해하기도 했고 짜증나게도 했지만 어린 시절 우리는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2년에 하나씩 동생이 태어났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는 지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엄마는 자연히 아기를 낳는 그런 사람으로 여겨졌었다.

내 아래로 동생이 셋이나 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6남매가 단칸방에서 살았다.

그러며 어머니의 세월이 흘렀고 어머니의 시간 일흔 두해가 마감되려고 하고 있었다.


“엄마, 아버지하고 할 때 좋았어?”

“애는..별걸 다 물어본다. 좋기는 ...좋기는..힘들기만 했지.

그저 번개처럼 지나가는 아버지 손길이고..”

“그럼 오르가즘도 몰랐단 말야?”

“그게 뭔데..먹고 살기 바쁜데..”

"세상에~”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돌아가신 것도 서러웠지만 어머니의 여자로서의 삶이 가여워서 울었다.

여자의 몸이  노래하는, 불꽃 터뜨리는 불꽃놀이 한번 경험하지 못하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자식들 낳느라 , 그리고 키우느라 여성을 잃고 살아온 어머니의 세월이

너무도 가여워 울었다. 그러며 아버지와 55년을 살다 가신 어머니는 그 문제 때문에 이혼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아버지께 투정부리지도 않았고 그저 여자의 길로 순응하며

산 세월이 가여워 울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이혼사유가 성격차이라고 하면,

성격차이가 아닌 성적 차이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세월을 우리어머니는 가슴에 묻고 돌아가셨다. 이 세상에 자식 여섯을 남겨 놓은 채로 말이다.


그러나 여자의 성이 문 닫혀 있지만은 않았다. 

그저 애써 외면하려 했을 뿐인지 모른다. 일제 강점기시절을 지나며 일본으로 건너간

신여성들이 있었다. 그 신여성들이 가장먼저 받아들인 게 여성의 주체적인 성이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 남성에게만 지배받아온 여성의 성이 여성이 주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알게 되었다.

자유연애를 하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남자와의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이 닫혀있던 우리나라의 인습은 그녀들을 고운 눈으로 봐줄리 없었다.

자유로운 성을 추구하는 신여성들은 악마의 화신으로 낙인찍혔고 그들의 마지막 삶이 피폐했다.

 


돌아가신 시어머님도 24년간 8남매를 낳으시고 남편이 중학교 들어가기까지

친정을 한 번도 가지 못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된 시집살이를 하셨다 한다. 내가 결혼해 가서 본 어머니의 삶,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

집안의 일꾼이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펴 아침을 지으시고 새벽밥을 드신 후

밭으로 나가 농사를 지으셨다.

시어머니의 불호령을 들으며 일일이 이불빨래를 했고 아버님 입으실 옷을 일일이

손으로 꿰메 만들어야 했다. 늦은 밤 호롱불 아래서 옷을 만들다 잡이 들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한겨울 꽁꽁 언 냇물에서 광목이불 빨래를 맨손으로 했고 김장철이 되면 몇 백 포기나 되는

배추를 절여 냇물에서 절인배추를 씻어 김장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며 집안에 오는 손님들 일일이 술상을 차려냈고 밥상을 차려야 했다.

어머님은 내 남편인 아들을 첫째로 낳고 바로 아래 딸을 낳으셨는데

시할머니는 위에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딸을 낳았다고 첫국밥을 콩을 넣어 해주고,

 몇날며칠을 울어 어린 아기가 삼신이 틀어지는 (아기가 등이 굽으며 울었다고 함)

일을 겪었다고 하셨다. 아기 낳고 3일째 되던 날, 기집 년 낳고 뭘 잘했다고

자리보전이냐고 부엌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려 아기 낳은 지 3일 만에 일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도 여자면서 여자인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여자로 태어난

손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옆에 섰던 어머니의 남편은 어머니의 남편이 아니라 할머니의 아들로만 살았다.

 어머니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언제나 남의 편 어머니 편이었다.

아니 어머니의 역성을 들라치면 할머니는 길길이 뛰시며 통곡을 하셨다고 한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의 남편은 그 시절도 마마보이였는지 모른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할머니가 조종하는 대로 그렇게 사셨다.

아내는 그저 그 집안의 일꾼이고 남자의 욕정을 채울 때 마다 하나씩 아기를 낳아

24년간  8남매를 낳으셨다.

그런 어머니께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좋아서 아버지랑 자고 아기를 낳았느냐고.

어머니는 좋은 게 뭔지 모른다고 하셨다. 새벽부터 밤까지 집안일에 농사일에 밤이면

고꾸라져도 모르게 잠이 들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면 아버님은

 혼자서 자신의 일을 치르고 계셨다는 거다.

 

어머니께 단 한 번도 의사를 물어보거나 어머니가 성을 받아드릴 몸이 되었는지 않고

 일방적으로 치르는 의식 때문에 어머니의 질은 늘 헐어있었고 통증에 시달리셨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님도 아버님도 그 성교통의 의미를 모르셔서 왜 아픈지 왜 아프다고 하는지

조차 생각지 못하고 일생을 살아오셨다고 한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어머님의 성문을 보게 되었다.

석탄을 캐내고 방치해둔 폐광처럼 어머님의 성문은 하얀 쑥부쟁이꽃만

무성한 버려진 빈광이었다. 쓸쓸하기 그지없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자식 팔남매 낳으시느라 너 말 석 되의 피만 쏟으신

그 폐허의 문. 단한 번도 화사한 꽃 피워본 적 없는 어머님의 성문은

그렇게 또 쓸쓸히 닫히고 말았다.


주역에 보면 지천태괘와 천지비괘라는 괘가 있다고 한다.

그 글을 내가 본 것이 아니라 한학을 하신 친정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아니 오빠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의 결혼주례를 보시는 자리에서 꼭 말씀하시는 글이다.

아버지의 풀이에 의하면 아내를 하늘에 이고 있는 것처럼 위하는 집안은 윤택해질 것이고,

 아내를 무시하는 집안은 비색해 질것이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살아가는 사람들, 아내에게 잘하고 아내가 행복해하는 집안을 보면

남편들이 적당히 물러서주고 아내를 이해하는 집안이고,

아내에게 큰소리치고 아내를 무시하는 집안을 보면 별 능력도 없는 남자고

 아내에게 자격지심을 느끼는 남편의 행동임을 볼 수 있다.

 

여성이 밥을 먹을 때 남자들과 같이 먹지 못하고 부뚜막이나 혼자 상아래 놓고

먹던 시대를 지나 나는 가족이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여성상위라 해서 남자의 위에 올라서는 불합리한 행위가 아닌 남성과

 여성이 같이 살아가는 시대, 특히 남편에 의해 치러지는 성생활이 아닌 아내의

기분과 몸에 따라 함께 나누고 즐기는 놀이문화로 건전한 성문화를 가꾸어가는

 문화가 확산돼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성의 성이 출산을 목적으로 하는

엄숙한 행위로 비롯해 여성 몸이 원하는 아름다운 악기로 아름답게

조율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원초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지금 세상의 땅값이 얼마나

 비싼지를 자각하는 남성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30년 전, 나는 결혼하며 남편에게 부탁한 것이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자가...’라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는 거였다. 여자가 왜이래,

 여자가 무슨 참견이야, 여자가 뭘 알려고 해, 여자가 밖에는 무슨 볼일이 있다고,

등등. 남편은 어지간히 애쓰고 있다. 

 

  여성의 주체적인 성은 여성의 성 뿐 아니라 여성이 그 집안에서 차지하는 생활의

몫도 주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행각한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대다수라고 생각하는  남자들, 그 남자를 낳은 사람은 여자라는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여자의 아름다운 자궁과 따뜻한 질과 음핵을 통해 엄마는,

아니 여자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의 마지막처럼

그러면 안 되는 따뜻한 세상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참고로 원초적본능의 배우 샤론스톤의 나이가 1958년생, 나와 동갑 이란 걸아는 순간

가슴에 환희가 몰려오는 건 왜일까?

여자나이 50이 넘으면, 진정한 성의 즐거움과 주체적인 성을 엮어 갈 수 있는,

여성상위체위를 좋아하는 아름다운 나이라는 생각이다.

 

너무 많은 생각에 잠겨있는데 그녀가 내등을 툭 친다.

 

"내 이야기 ..자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 어떻게 그런 폭력을 당하면서도

40년가까이를 살았는지..요즘 여자들은 아마 벌써 이혼하고 말았을 걸.."

 

"맞아요. 제생각도 그래요. 경제적인 고생은 어쩔수 없다지만

폭력을 당하면서 사는건 너무나 힘들잖아요. 저도 제친구들이 간간히 이혼하는데요

경제적으로 이혼한다고 하면 결사 반대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한다면 그래..해라..맞고는 살지마라..그렇게 얘기하거든요"

 

"나도 몇번 이혼하려고 했지. 아이가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이혼해야지

중학교만 가면..고등학교만 가면 ..대학만 졸업하면..아니 결혼만 시켜놓고 이혼해야지

그러다 보니 손자를 보고..지금까지 왔네..

결국 마음은 다른여자에게 가 있는 껍데기 남자..아 ..맞아 언제부턴가

남편에게서 폭력이 사라졌어. 그리고 내가 사회활동을 하고 집에 늦게 들어가도

별 반응이 없었어. 이제 내게 미안한가보구나..이제 죄지은 걸 아는구나. 그런줄 알았지

다른여자와 사랑을 나누며 내게 신경끈줄은 모른거야"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지신들이 불리해진다고 생각하자

자꾸 술만 마셔댔다.

 

"그러게요. 남자들은 젊을때는 다른여자에게 몸과 마음다 주고

다리에 힘빠지고 돈떨어지면 겨 들어온다 잖아요"

 

"남자가 돈이 많아지면 아내를 바꾸기 쉽고 남자가 명예가 높아지면

친구가 바뀌기 쉬우니...등뜨시고 배부르면 딴생각 한다는거 아녀요"

 

옆에있던 50대 남자가 혀가 꽈배기 처럼 꼬여 한마디한다.

"남자가 바람피우는 거 ..뭐..남자 혼자 하나 뭐..

상대가 있잖아..여자..여자가 ..."

 

백알과 소주 맥주까지 섞인 냄새는 뭐라고 표현을 할까?

입맛이 딱 떨어져 젓가락을 놓았다.

 

"근데 말야..애정과 애증 차이는 뭘까? 그것도 사랑일까?

나는 애정은 없었는데 애증은 남은 것 같아서 말야..그가 죽고 그를 화장해서

우리집 정원에 묻은 걸 보면 말야.."

 

"혹시 그녀가 찾아올까 봐 그런것 아닌가요? 산속 어디에 산소가 있으면

그녀가 필시 찾아와 산소앞에서 그리움의 눈물을 흘릴테고..그것마저

보기싫어 그러신거 아닌지.."

 

들고 있던 스마트 폰으로 애정과 애증의 차이를 검색했더니

종이한장 차이라고 나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을 만들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 괴로우니..이게 인생 인가봐요"

 

옆에 있는 남자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집에서 자꾸 문자가 오네..."

50대 남자가 말했다.

"아휴..이놈의 핸드폰이 족쇄야 족쇄"

 

"그래도 그 핸드폰 없으면 애인도 못 만들잖아요"

"애인...그러지 말고 나랑 뜨거운 연애 한번 하자"

"쿡...나?...나 눈 높아..."

 

"나 아직은 힘도 세고 말야.."

"무슨 힘..."

"여자 죽이는 힘..."

"여자가 죽으려고 연애를 하는줄 알아? 그리고 남자는 그여자를 사랑하지 않아도

하룻밤 지낼 수 있지만 여자는 그 남자를 사랑한다고 느껴야..그 남자에게

사랑받는다고 느껴야 문을 여는 거야...억지로 쳐들어갔다고 해서

그 여자의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마.."

"뭐가 그리 복잡하냐 여자들은..."

"그러니까 여자들은 뱃속에 생명을 품을 수 있는거야..아무렇게나 뿌리는 씨를

곱게 받아 기르고 잎만들고 꽃만들어 세상에 내보내는 대지 아니겠어"

"어휴..그런 도덕적인 말은 복잡하다"

비척거리며 일어나던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몸 기둥은 안죽는겨..어디라도 갔다 집에 가던지 해야지"

"곱게 가지고 가서 마누라에게 쏴줘..일수는 찍어야잖어"

옆에있던 어떤 남자 하나가 말했다.

 

'뭐...마누라에게 쏴줘..일수를 찍어? 마누라들이 무슨 고리대금 업잔지 알어'

시비를 걸려다가 말았다. 이미 남자들은 다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웃으며 하는 말이 기억났다.

-잡은 물고기에게 미끼를 주지않는다-

 

'몰라서 하는 말이지..젊었을 때야 여자들이 좀 약하다지만 여자도 애낳고 하면 무서운게 없는겨

50대가 넘은 여자들은 딸과 돈 건강 친구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50넘은 남자들은 말여 아내 여보 마누라 여편네 ..다 있어야 사는겨.

과부는 구슬이 서말이고 홀애비는 이가 서말이란 말 몰라?'라고 쏴주고 싶었다.

 

남자들이 급하게 대리운전을 불렀다.

"어떻게 ...집에 들어가셔야죠?"

"가야지...그런데 정말 남편의 여자 만나보면 안될까? 너무 딱하고 안됐어서 말야

그리고 그런 남자를 어떻게 사랑했는지..그남자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알고 싶어"

 

"알어서 뭐하시게요..어느 조강지처가 남편의 다른여자를 찾아갔대요.

그 여자가 그랬다네요..마누라랑 하면 재미가 없어..너는 말야 사람잡는다..

그래서 그 조강지처가 아무말없이 돌아와 이쁜이 수술을 했다네요..그게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짐승같은 놈.."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가지고 계시면 ..지금 충분히 아름다우시고..그것 까지 다치시면

정말 어떡하시려고요? 그리고 남편분과 그여자의 정사신을 듣게 되면

더 아득한 절망감이 드실텐데요"

 

그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은 들었다.

 

"그럴수도...있겠네."

 

"그 여자분 전화번호 알려주실래요...제가 한번 만나보게요..그리고 아직도 충분히 아름다우시니

그리고 제가 보니 주변에 아직도 좋아하는 분들 많으신데...새 사랑이나 시작해 보시죠"

 

"하하하하...얘는 "

 

그분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참 허탈했다.

남편 친구중에 한사람은 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자동차에도 스피어타이어가 있어야 하듯이 우리들도 스피어가 하나는 있어야 되는겨

갑자기 펑크나거나 하믄 바꿔야 하니께"

그럴때마다 이남자를 후려치고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이 남자의 이기적인 생각은

날아다니는 기러기만도 못했다.

 

기러기는 배우자를 잃으면 죽을때까지 혼자 산다고 하는데..남자는 아내가 번연히

살아있어도 스피어를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튼날 그녀는 미장원에 가서 퍼머를 했다.

좀 길다싶은 머리를 자르고 상큼하게 좀 굵은 세팅을 말았다.

그렇잖아도 귀여운 얼굴인데 퍼머를 하고 나자 정말 10년은 어려보인다고

미용실 정실장은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언니..오늘은 그냥 들어가면 안되시겠어요.

남자친구라도 만나야지..귀여우세요"

 

"픽...남자친구가 있어야지..이나이에..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 50넘은 여자가 얼굴을 성형해서 30대쯤 보이게 했대

그리고 30대 남자친구를 만들었지. 30대남자는 여자의 귀여운 모습에 호감을 가졌대

근데..그때 핸드폰 문자가 온거야..그 핸드폰을 멀리 두고 보니까 노안이라고 한거지

나이가 들통나 그 남자와 헤어졌대.

다음에는 정말 조심해야지 하고 30대 남자친구를 또 사귀었대.

그 남자가 명함을 한장 준거야..그래서 그여자는 아주 고고한척 하면서

명함을 가까이 들여다 보았대.

그런데 그남자가 말야...명함 뒤집어 보시는데요..하고 떠났대.

내 나이는 아무리 젊게해도 나이를 감출 수는 없는거지"

 

"어머 어머..그런 재밌는 말씀도 하실줄 아시네요..워낙

얌전하시고 ..."

 

미용실 강실장의 웃음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문을 밀고 나오는데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듣고 말았다.

"저분 말야..저렇게 고고한적 요조숙녀인척 해도 말야..남편이 10년이나 바람을 피웠다지 ..뭐니"

 

어둠이 엷게 깔리는 거리에는 폴란드망명 정부의 지폐같은 낙엽이 구르고 있었다.

밟으면 그냥 바삭 소리를 내며 부서질것 같은 마른 낙엽

어쩌면 나도 남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저렇게 바삭 부서지고 말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코끝이 찡 했다.

 

어디로 갈까?

 

남편도 없는 집...아이들도 분가해서 살고 있어서 집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며느리가 손자를 데리고 다녀가기는 하지만

집은 두꺼운 그늘이 덮고 있었다.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은 밤에는 더 적막강산 이었다.

간혹 TV를 보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사람의 그림자가 없는 집, 그러고 보니 맘이 맞지 않았어도

남편이 살아있을 적엔 집이 이렇게 적막하지는 않았었다.

아니 늘 불호령치는 남편의 목소리는 늘 집안을 꽉 채웠었다.

워낙 발이넓은 남편에게 걸려오는 전화도 많았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 늘 술상을 차리곤 했다.

 

아---그 핸드폰

 

아직 남편의 핸드폰을 정지 시키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다.

가방속에 넣어두고 간간 남편에게 오는 전화를 받곤 했다.

그들은 남편의 부고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신문에도 났는데 그렇게 모르다니...그러면서도 남편의 사고 소식을 자세히 설명해

주기도 했다.

 

남편 핸드폰을 정지시켜야 겠구나.

둘러보니 핸드폰가게가 즐비하다.

핸드폰을 꺼내 바라보다...1번에 눈이 갔다.

남편에게 1번은 누구였을까? 그 여자....

 

하면서 핸드폰을 내려다 보았다.

그래 이 핸드폰을 없애자. 영원히 남편의 기억을 없애버리자.

아니 그여자가 가끔 걸었을 번호, 그 여자의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을 번호

깨끗이 지워버리자. 행여 그여자가 너무도 외롭거나 슬픈 날

이 번호를 누를지도 모르니까 영원히 결번이게 만들어주자.

 

어디선가 전화가 올까봐 전화를 들고 전전긍긍 했었을 그여자.

남편의 여자, 남편이 가슴에 품었었던 여자,

아니 남편의 살이 그 여자의 몸속 어디가를 휘저으며 사랑한다고 헛 약속을 했을 여자

그 두꺼운 남편의 손으로  희디흰 유방을 만지며 젖꼭지를 꼬았을 여자.

그래서 이상한 신음소리로 내 남편을 홀렸을 여자.

흥건하게 젖은 머리를 쓸어내리며 오늘 좋았어?를 물을면..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을 여자.

돌아가야 하는 시간에 "너랑 같이 있고 싶어" 하던 남편을 가만히 밀어내며

"집에 가봐야 돼요..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예요" 했을 그여자.

헤어지면서도 못내 아쉬워 옆구리에 손을 넣고

귓볼을 만지며 후 뜨거운 입바람 불어넣었을 남편의 여자.

그래 내 남편의 여자, 그 여자에게 다시는 누를 수 없는 번호를 만들어주자.

 

참 이상하게 시리 질투가 솟구쳤다.

교양있는 척 하는 모습이 가증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 여자를 만나

머리채라도 휘어잡고  길바닥에 눕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면 그녀도 체면 구기는 일이겠지만 속은 시원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금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세상에 없고 남편에게 구박받은 그녀와 남편과 달콤한 사랑을 나누었을 그녀만

남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1번을 꾸욱 눌렀다.

최진희의 노래 천상재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대는 오늘밤도 내게 올순 없겠지
목메어 애타게 불러도 대답없는 그대여
못다한 이야기는 눈물이 되겠지요
나만을 사랑했다는 말 바람결에 남았어요
끊을 수 없는 그대와 나의 인연은 운명이라 생각했죠
가슴에 묻은 추억의 작은 조각들 되돌아 회상하면서
천상에서 다시 만나면 그대를 다시 만나면
세상에서 못다했던 그사랑을 영원히 함께할래요

끊을 수 없는 그대와 나의 인연은 운명이라 생각했죠
가슴에 묻은 추억의 작은 조각들 되돌아 회상하면서
천상에서 다시 만나면 그대를 다시 만나면
세상에서 못다했던 그사랑을 영원히 함께할래요
세상에서 못다했던 그사랑을 영원히 함께할래요

 

노래를 들으며 울컥했다.

죽어서도 만나고 싶다 이거지? 죽어서도 같이있고 싶다 이거지?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남편의 여자는 아마 놀랐을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이 전화를 하다니..가슴이 벌렁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아..그사람 죽었지..영원히 그리운 사람이지 하고 전화를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혹시 그의 아내? 라고 눈치챘을지도 모르지...

노래를 다 듣고서야 핸드폰을 닫았다.

 

눈발이 히끗거리며 내리기 시작하는 거리는 불빛에 명멸하고 있다.

거리가 젖어들기 시작하자 마음이 젖어들었다.

어디가서 허기를 좀 채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도 고프지만 마음이 더 허기졌다.

눈발에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붙들고 작은 전통찻집 가인으로 들어갔다.

 

가인은 그녀의 친구가 하는 카페였다.

"어서와..."

아름다운 사람이란 이름답게 붉은 립스틱을 칠한 친구가 따끈한 물컵을 내밀며 곁에 앉았다.

"1년이 넘었네...우리집에 온지가"

"그러네..그동안 경황이 없었어"

"어떤 차 줄까?국화차 목련차 연꽃차 아니면 녹차...

여름이라면 마음에 살처받은 사람이 마시는 말차를 마시면 좋은데.."

"말차?"

"응 말차...녹색향기도 그만이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는 차야"

"그럼 그걸로 줘봐"

 

친구는 넓은 다기에 녹차가루를 넣고 차솔로 저었다.

녹색거품이 뽀글거리며 일어나는 차잔을 바라보았다.

"이거 마시고...다음엔 목련차 마셔봐..이것도 다기안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니까"

 

말차는 그야말로 짙은 녹색물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붉은 피가 녹색으로 바뀔것  같다고 할까?

갑자기 냉정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힘 들었지..남편이 돌아가신 것도 그렇지만 ...들리는 소문땜에"

친구는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몇년전에 남편을 잃고 미치게 울다가 전통찻집을 열고 조용히

그리움을 젓고 있었다.

"소문이 아니라...진짜였어"

 

친구는 한동안 아무말없더니 목련차를 꺼내왔다.

" 하얀꽃이 피기전에 따서 설탕에 재웠놓은건데..다기에 넣으면 꽃잎이 피어나"

목련차는 하얀 다기에서 봄을 피웠다.

"부질없는 거야..우리나이 되면 이런 꽃보다도 못해..."

그녀는 조용히 전축을 틀었다.

 

대금 연주에 맞춘 시낭송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이유
                        김명원


봄이 아름다운 이유는
봄이 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아름다운 까닭은
여름이 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가을도 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아름다운 까닭은
겨울 역시 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사랑이 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건 다 흘러가는데도 이 대목이 찻잔에 떨어졌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사랑이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때문입니다.

 

시낭송을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찻잔에 잠기기도 했지만 마지막 대목에서

그만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참 아직도 내게 이런 감성이 남았나..사랑이 가버리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그것 때문에 눈물이 나다니..."

"아직 여자기 때문이지...여자...참 이쁜 단어 아냐?"

 

"여자가 이쁜 단어라고?"

"그럼..여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꽃이고 싶은거야

꽃..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꽃...누가 우리에게 이쁘다고 말해줘봐

쑥스럽기는 해도 기분은 좋잖아...그래서 그꽃은 말야

여자라는 이름으로 피어나서 사랑하고 ..."

 

"나도 남편에게 이뻐 보인적 있었을까?"

 

그녀는 남편에게 이상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 나이가 서른 갓 넘었을때 자궁근종이 걸려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하게됐다.

그때의 자멸감, 여성성을 잃었다는 자멸감으로 지내야 했다.

그리고 그당시 주변에 있던 사십대 아줌마들의 입방아는 이런 대목도 끼어 있었다.

 "여자가 자궁을 들어내면 말야..빈궁마마라서 남편들이 틀림없이 바람을 피운대

생각해봐 허당이잖아..그 허공에 할 맛 나겠어?

 

같은 여자이면서도 여자들은 여성성을 잃은 여자들을 향해 이렇게 비수를 꽂았다.

그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었다.

그후 남편이 금수처럼 달려들어도 실은 피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두드려 맞기도 했다.욕망을 채우지 못한 남자는 씩씩거리며

"너 잘났다..하기 싫다고?...고고한척 하지마라..."

별별 욕설을 퍼부었다.

 

자신이 없었다. 남편이 만족하는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혹여 실망할까봐 미리 겁이 나곤 했었다.

그러다 사십이 넘고 오십이 넘고 육십이 넘으니 고통만 따랐다.

 

남편이 곰살궂게 애무를 해서 몸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욕망이 불꽃처럼 일때면 무작정 파고들어 유방을 쥐어짜면

유방암 검사를 하는 기계에 눌린것처럼 아프기만 했다.

 

그리고 혀를 빼먹을 것처럼 빨아들여서 늘 혀아래가 헐어버리기 일쑤였다.

자궁을 들어낸 후 건조해진 질에 무작정 파고들었다 나가면

질은 다 헐어 그야말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니 자연히 피할 수 밖에 없었다.

 

" 내 남편은 한마디로 말하면 참 무식했어..여자를 몰랐어

여자의 몸을 단 한번도 귀하게 여기거나 부드럽게 여기거나 한적 없었어

그 무식한 남자를 어디가 좋아서..."

 

친구가 말했다.

 

"그 여자의 남편이 부드러운가 보지 뭐..여자들은 참 이상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잖니

나쁜남자 컴플렉스...배드보이 컴플렉스..

자기 남편이 너무 부드럽고 다감하니까 진력이 났을지 모르지

여자는 남자 밑에서 으깨지는 것을 가끔 꿈꾸기도 하지..침대에 던져두고

야수처럼 달려들어 온 몸을 피멍들게 한다거나 얼굴이 얼얼하도록 까끌한 수염으로

문지르거나..드라마에서도 나쁜남자들이 떠오르잖니"

 

"무슨!! 나는 부드러운 남자가 좋더라..눈이 오면 문자보내주는 사람.

기념일에 꽃바구니라도 보내주는 사람..가만히 이마에 뜨거운 입술을 대주는 사람

머리칼을 만져주면서 잠들게 하는 사람...단 한번도 나는 사랑받는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어...어느땐 정말 이남자가 언제 죽어줄까..하는 생각도 있었어

그런데 남편이 죽었다고 연락을 받았을땐 머리속에 남아있던 나쁜 기억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어...공황상태..눈물도 나지않았어.."

 

"그런데..."

"나중 남편친구한테 내 남편의 여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화가났어?"

"아니!!첨엔 믿기지 않았어.그런 남자를 어떤 여자가 좋아할까 라는 생각때문에.."

"그런데"

"내 남편의 여자가 핸드폰에 1번으로 저장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땐 정말 배신감이 들었지.그때 결혼을 안했어야 했는데 금수장에서 ...

덜컥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40년이나 된 이야기를 하면 뭐해"

 

"수도없이 이혼하려고 했었지...결국 못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죽음 으로 갈라지는 이별을 할 수 있는 부부가 가장 좋은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나도 처음엔 남편이 죽었을 때 허둥댔었어

그런데 말야...이만큼 살다 헤어진다는것 ..그것도 이혼이 아니라

죽음이 갈라 놓을때까지를 지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이혼의

순간을 지나게 되는데...이 시 들어 볼래?"

 

하면서 또 한편의 시를 들려준다.

최석우 시인의 부부라는 시였다.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놓았는지
서로 그 틀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 마땅해 하고
그런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아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
비싼 차와 풍광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열 감기라도 호되게 앓다보면
빗 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 지겨운 남편인 걸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 송이
굳은 케익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 喪 같이 치르고
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을 것 같아
그래도 나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잔잔히 음악에 깔려 낭송되는 시는 부부의 일생을 딱 맞게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것이기에...

 

"잘 이겨냈지..잘 참아냈지..어느 부부인들 갈등이 없을 수 없고..

헤어지고 싶은적이 왜 없겠어..봐 잉꼬부부라고 그렇게 TV에 나와서

얘기하던 사람들도 나중에 헤어지는거.."

그녀의 친구는 헤어지지 않고 죽음으로 갈라설 수 밖에 없었던 일이

순애보라고 말했다.

 

"자..마지막은 말이야..보이차로 속을 다스리고 가"

하면서 떡처럼 뭉쳐져 있는 보이차 한귀퉁이를 떼내서 물에 넣는다.

붉은 빛을 띠는 갈색 보이차가 하얀 다기를 채운다.

 

"이 보이차도 말이야 오래 묵고 오래 발효된것이 좋은 거래

묵히고 썪히고..잘은 모르지만 우리 인생사처럼 다지고 다져져서

비바람속에서 말라가는거지..그래야 이런맛이 우러나는 거지"

 

찻집을 해서 그런지 친구는 고요함을 담고 있었다.

"친구는 헤어지고 싶을 적 없었어?"

"왜...없었겠어...우리집 남자라고 별 수 있나..

여일 여자가 바뀌곤 했지..그래도 미운정도 정이라고..

그리고 나이 들으니까 그것도 눈감아지대...더 웃기는건 울남편 죽었다고 하자

몇명의 낯선 여자들이 다녀갔지..내가 서있으니까...다소곳이 앉아 눈물을 떨구고 가더만

뭐..내놓고 울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그게 더 우습더라..어디라고 와 겁도 없이..

울 애들이 저분 누구냐고 묻길래..모르겠다고 했어..그런데 직감이 있잖아 직감.."

"화 안났어.."

"화는 뭘...가고 없는 사람한테 화 내봤자고...또 찾아온 그여자는

나보다 더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어...얼마나 망설이고 두려웠겠어..찾아오면서..

나는 당당히 남편의 아내 노릇을 하고 있지만 숨은 여자들은 내놓고 슬퍼 할 수도 없고

안 와보자니 갑갑하고 그랬을테지 뭐..그래도 막상 남편이 죽고나니..보고싶을때도 있고

그렇던데 뭘...친구는 안그래?"

 

"나는 보고싶단 생각은 없어 아직...간간 하늘보고 이런말은 하지

너 그여자 못봐서 어떻게 하고 있니..."

 

"애증도 남지 않았니?............."

"지금은 남편의 여자가 궁금할 뿐이야...만나볼까..그여자를 만나서 그냥 남편의 흔적이 남은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싶어... "

"쓸데 없는 짓이야..그냥 묻어..나도 그랬어."

"아니...만나볼거야..."

"맘대루..어쩌겠니 마음쓰이는 대로 해야지..하지만 울고불고..머리칼 잡는 일은 하지마

친구 만 추해져"

 

보이차를 마시고 일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대학원 마지막 종강 쫑파티를 하는 날이었다.

논문도 통과 되었고 이제 학위만 받으면 된다.

60이 넘은 석사라..대학을 졸업한지가 오래되었지만 하고 싶었던 미술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서

오십대 중반에 미대에 들어갔고 대학원 까지 오게것이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남편이 폭력적으로 변할때마다 더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고 공부를 했다. 그래서 그 시절을 버틸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팽팽하던 고무줄이 끊어진 느낌이다.

"잘났다 그나이에 공부는 무슨..남편이 돈 벌어온 걸로 그림이나 그린다고

여자들하고 떼져 다니고 무슨 전시회니 어쩌니 중국 일본 니맘대루 다 다니구 말여

니가 미대를 졸업하면 뭐 할라고.. 그 높은 콧대만 더 높아질라고..

별수없이 60넘은 할망구가 고고한 척은..."

그 비수가 독을 품게했고 더 밖으로 나가게 했다.

 

하지만 대학원에 간다고 했을땐 오히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맘대루 해..언제 나한테 물어보고 한 적이 있나.."

이남자가 무슨 자격지심이 있나...왜 그랬을까?석사과정을 갔을때는 왜 그리 고분고분 했을까?

 

남편의 가슴에 새로운 사랑이 싹 터올랐기 때문이었을 것 이다.

나 보다 열살 아래의 여자.피부가 아직은 촉촉할테고 가장 좋은 환상의 성궁합은 불륜이라고

둘은 얼마나 애절하고 뜨겁게 타올랐을까?

늘 밤이면 돌아가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더욱 더 둘은 달라붙었을 것이다.

남편의 여자의 남편이 혹시 채워주지 못하는게 있었을까?

그런 금수같은 남자에게 몸을 주고 마음을 주고 했으니..

이남자는 또 결혼 전처럼 로맨티스트가 되어 그녀에게 빨간 가죽장갑을 주었을지도 몰라

"당신의 찬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싶어..."라고 속삭였을지도 몰라.

귓볼에 닿은 그 뜨거운 숨결에 그녀의 입이 벌어졌을지 몰라.

그러며 그녀의 블라우스 속으로 커다란 손이 들어갔을지 몰라.

그 큰 손에 잡힌 그녀의 유방이 출렁 했을지 몰라.

"너랑 하고싶어" 금수같은 남편은 애절한 눈빛으로 말했을지 몰라.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지 몰라.

 

둘은 옆구리를 끌어안고 둘만의 공간으로 MT를 가듯 들어가

미친듯이 정말 미친듯이 서로에게 불을 붙였을지 몰라.

생전 처음 하는 체위..생전 처음 느껴보는 낯선 행위에

몰두했을지 몰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데...참 이상했다.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가만히 손을 팬티속으로 집어 넣었다.

온몸이 이상한 전율속에 사로 잡혔다.

'이걸 어째..도대체 이게 무슨 느낌이야. 지금까지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살느낌..주착이야.60도 넘었는데.아니..아니...여자 느낌 같아..여자느낌'

 

갑자기 남편이 남편의 여자에게 달라들었다. 남편은 옷을 벗길새도 없이 남편의 여자를

침대에 머리를 쳐받게 했다.

뒤에서 무릎꿇린 자세로 엎어졌다.

무언가 내리꽂았다. 강철같은 꼬챙이 같았다.

"아................"

남편의 여자는 저절로 비명을 질렀다.

남편의 두손은 유방을 거칠게 거머쥐고 젖꼭지를  비틀고 있었다.

여자를 거꾸로 세우기로 하고 배위로 올리기도 하고 기마자세를 하기도 하고

6.9자세를 하기도 하면서 물고 빨고 핥고

한참을 헐떡이던 남편은 뜨거운 폭포를 쏟아내고 나가 떨어지고

흥건한 액체가 흐르는 남편의 여자 몸은 흐느적 거렸다.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으로 그녀는 60평생 처음으로 오르가슴을 느껴 본 밤 이었다.

"이거였구나...온 몸에 1000볼트의 전기가 휘감는 느낌...하늘을 수 놓는 불꽃놀이

수천개의 불꽃이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거였구나..이걸 왜 남편이 살았을 때는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을까..치사하게 관음증으로 ...자위로 내 몸에 불을 켜다니...

그럼 내 남편의 여자는 이런 느낌을 수 없이 느꼈단 말인가."

 

목욕탕으로 가서 무언가 흘러내린 몸을 닦으며 첫 몽정을 거친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꼈다.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1년만에 깊숙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죽음처럼 깊은 잠이 바로 그런 것처럼..죽은 듯이 그밤을 잠으로 채웠다.

 

이튼날 거실을 반쯤 차지한 겨울햇살에 눈이 부셔 눈을 떴다.

더이상 무겁지 않은 머리..무언가 가슴에 남았던 덩어리 하나가

삭아져 없어진 느낌이었다.

아니 머릿속에 입속에 박하향이 가득했다

이상쾌 한 기분은 뭐란 말이지...

남편의 여자를 만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여자가 다시는 느끼지 못할 그 쾌감때문에 몸부림 칠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 남편의 여자 때문에 그녀는 비로소 여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