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반도체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867

뒤로 자빠져도 코 깨지는 년!


BY 조 양 희 2011-06-01

보름만에 돌아왔다.

 

공항에 마중나온 남편을 보자 반갑기보다는 짜증이 났다.

 

일본에서도 거의 매일을 의무감처럼 전화를 해 봤더니 거의 술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 울산으로 바로 가요."

 

"보자말자 울산부터 간다고? 우리 보름만인데?"

 

"그래서? 뭐 어쩌자고? 지민이도 보름이나 못봤거든요.."

 

"내일 가면 안되나? 아침에 회사도 그렇고.."

 

"그러면 내려줘요. 리무진 타고 나 혼자 가볼래요."

 

" 알았다. 가자.가자."

 

남편도 서운한지 볼멘소리로 대답을 해주었다.

 

친정에 도착할때까지 나는 차안에서 잠만 잤다. 아니 자는척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일본행이 나의 생계를 도와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형가게에서는 아가씨들이 필요했고 나는 주위에 많은 돈을 벌어야만 되는 처절한 처지들이

 

많았다. 그렇게 나는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고,또 그들이 원해서 본의아니게 본격적으로 소개쟁이가

 

되어버렸다. 한사람을 소개해서 일본까지 픽업을 해주면 각각 50만원씩의 소개비를 주었다.

 

사형이 그렇게 처리를 해 주었다.

 

작은 돈이 아니였다. 한사람 한사람을 모으다보니 한달에 두세번씩 갔다오기도 했다.

 

아이는 친정에 맡겨두고서 나도 거의 한국에 있을때는 친정에서 생활하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 카드빚도 해결을 해 주었고. 보는데서 다시는 카드 만들지 않겠다며 카드를 다 자르기도 했다.

 

조금 형편에 여유가 생긴다 싶으니 주위가 또 나를 괴롭힌다.

 

"제수씨 접니다. 잠깐 제수씨 좀 뵐수없을까요?"

 

"네.무슨일인가요?"

 

"그냥..의논드릴일이 좀 있어서요.."

 

"아~예. 내일 제가 내려갈께요"

 

"집으로 오시지 말고 저랑 밖에서 좀 만나지요."

 

"네..도착해서 전화드릴께요."

 

또 뭔일일까? 알게모르게 아주버님이 요즘 내게 실수를 많이 하신다.

 

자주 계좌로 입금을 좀 해 달라신다. 큰돈을 요구하는게 아니니 딱히 거절하기도 그렇고...

 

시어머님도 이제 내가 좀 변했다 싶은지 나를 불러 들이는 방법이 맨날 남편한테 전화해서 지민이

 

보고싶다는 핑계를 대신다.

 

이튼날 시댁 부근 커피숍에서 아주버님을 만났다.

 

"아주버님! 무슨일이신데요?"

 

"저.....제수씨...."

 

"네. 말씀하세요."

 

"저....실은...저 백만원만 좀 빌려주십시요. 철이한테는 말씀마시구요."

 

"아주버님! 죄송하지만 무슨일 때문인지 여쭤봐도 되나요?"

 

"말하기가..."

 

"저도 돈을 은행에 꽂아둘만큼의 여유는 없어요. 지금 일본에 물건해갈 돈이 조금 있긴 하지만요.."

 

"제수씨한테는 정말 미안한데요.실은 제가 아가씨를 하나 만났는데요.아가씨가..임신을 했어요."

 

"그래요? 아주버님 축하드려요"

 

"그게..저 제수씨..지금 제가 애를 낳아서 어쩌겠어요.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또 여자는 어떻게

 

책임을 지구요.그래서,병원에도 가고 국이라도 한그릇 끓여줄려구요.."

 

이럴수가? 할말을 잃었다.

 

도대체 어느 소설에서도 본적이 없다. 제수씨가 시아주버님 여자뒤치닥거리까지....

 

속으로는 맹세를 했다. 이집 사람들은 더 이상 내 가족이 아니다.

 

그렇게 맹세를 하고 딱 잘라 50만원을 건네주고 다시는 안보리라 맹세를 하면서 돌아서는데 마음이

 

몹시도 씁쓸했다.

 

이런일도 있었다. 세식구가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였다.

 

시어머님과 시누이가 문병온다며 추어탕이랑 김밥까지 잔뜩 사들고 왔는데..

 

하필 우리 친정엄마아빠와 같은 시간에 들어섰다.

 

기차를 타고 오시느라고 식사를 못하시고 온듯해서 내가 같이 먹자고해서 먹었더니

 

집에 돌아가셔서 전화를 했다.병원으로...

 

"너거엄마,아부지는 자식이 병원에 누버 있는데 입으로 음식이 잘도 드가데?"

 

"어머님!무슨 그런 말이 있어요.우리가 많이 다친것도 아니고 아이때문에 일부러 정밀검사 받을려고

 

입원 한건데 우리땜에 밥도 못먹으면 안되지요."

 

"하이고,내자식 같애봐라,그래 되는강.계모라서 안그렀는나?"

 

"어무이도 드셨잖아요."

 

"말이 그렇다 그말이다."

 

 또.아이가 '할머니'하면서 친정엄마에게 왈칵 안기자

 

분위기가 '쏴'해진다 싶더니 아이를 안고 슬 병원을 나서더니 아이가 고모라며 와락 안기지 않고

 

멀리한다며 그게 섭섭하다며 이제 다섯살난 아이를 벽에다가 세워놓고 '너거외할매는 그래좋나?'

 

하면서 아이를 쥐어박고 꼬집어 비틀어서 팔에 피멍을 들게 만들었다.

 

마침 화장실 갔다 오시다가 그 광경을 우리 친정아버지가 보았단다.

 

내가 알면 속상할까봐 엄마에게만 말하고 엄마도 한참이 지난후에야 얘기해주었다.

 

평소 고기잡이를 좋아하시는 친정아버지가 회를 좋아하시는 우리 시댁 식구들과 모임을 갖자고 했다.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좋은게 좋다고 자리를 만들었다.

 

양가 식구들 합치니 모두 열명이 넘었다. 그많은 식구들 음식 준비는 친정엄마가 다 준비하신다고

 

했더니 왠일로 큰 시누이가 과일을 맡겠다고 했다.

 

집에서 하는것도 아니고 바닷가에서 할려니 갖고 올 짐들이 너무 많아서 택시 대절을 해 오셨단다.

 

" 아이고. 사돈 오신다고 고생했습니다."

 

"예.멀미를해서 온다꼬 진짜 힘들었심더.."

 

시어머니가 멀미한다 소리는 첨 들었다.

 

더운 여름에 사돈식구들 음식 대접한다고 힘들었을텐데 엄마는 많이도 준비를 하셨다.

 

음식들을 입에 넣으면서 하는 울 시엄니 왈.

 

" 아이고, 요거는 보기는 맛있게 생겨가 별로네, 이건 또 와이래 짭노, 이거는 마이 싱겁네

 

여름 음식은 그래도 좀 짭짤해야 안 변하는데, 이거는 좀 달아야 되는데 덜 달고......"등

 

내가 친정엄마 보기가 미안해졌다. 어린 애 돌보랴, 힘든었을 사돈한테....

 

사갖고 온 과일을 보고는 나는 도저히 내 놓을 수가 없었다.

 

참외3개.토마토3개.포도 한송이가 전부였다.

 

사람이 열명인데...차라리 수박이나 한통 사오지...

 

돌아오는 길은 더 가관이였다. 짐이 많아서 엄마 아버지 또 택시 불러 가시게 하는게 미안해서 ..

 

" 어머님은 아주버님이랑 고모 차 타고 오세요."

 

" 와?"

 

"저희는 엄마 아버지 모시고 울산 들렸다 갈께요."

 

그랬더니  헤어지는 과정에서도 사돈들끼리 인사는 커녕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차 타고 휑하니

 

가버렸다. 가잔다고 그냥 가는 시누이나.시숙이나.시매나....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는게 옳은 말일게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이혼을 해서는 안되겠기에....

 

이런 모습들을 보고도 남편은 '그게 뭐 어때서?'란 식이다.

 

살면 살수록 대한민국에 둘도 없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은듯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할머니 덕분에 고춧가루며 마늘.양파.참기름.갖은 콩등을 비롯해서

 

시어머님 김장까지 해다 줘도 명절에 친정간다면 벌써 아침부터 툴툴거리며 정종한병 어른들

 

갖다드리라는 말 한마디.잘갔다오라는 말 한마디가 없다.

 

오히려 뭐라도 갖다주면 고맙다는 말보다는..

 

"요번에는 이거 삐이가? 농사가 잘 안됐는가베?"하신다.언제나 늘...

 

어느집 할아버지,할머니가 손녀 시댁 양념까지 살펴주랴.

 

나를 키우셨길래 나를 손녀로 생각 않하시고 딸로 생각하시며 두번 시집을 갔으니 어떻게든

 

잘 살라시며 베푸는데...

 

남편은 내가 일본가고 없는 동안에는 아이나 보살피면 좋겠는데 낚시를 하러 다니는 팔자좋은

 

시절을 보내곤 한다.

 

돌아와서보면 늘 새로운 낚시 장비랑 새로운 옷들이 한두개씩은 보인다.

 

샀냐고 물어보면 늘 새로운 샘플이란다.

 

시댁 식구들은 일본 갔다 올때마다 뭐 좀 안사들고 올래나? 잔뜩 기대들이나 하고 있고...

 

여행 다니는 것도 아니고,아가씨들 입국 절차며.비자며 만든다고 같이 쫓아다니고, 또 일본에 있는

 

아가씨들 화장품이나,식품이나 주문 받아 사러다니고...

 

받아온 경비보다 한푼이라도 더 싸게 사서 이문 좀 더 남길려고 동분서주 발품팔며 다니고..

 

이렇듯 살아볼려고 발버둥치며 쫓아다니는데 주위에서 협조들을 하지 않는다.

 

내 인내심도 점점 바닥이 드러나고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했는데...어쩜 이리도 나는 계속 잘못된 단추만 계속 끼우려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