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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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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우연


BY 조 양 희 2011-05-19

우여곡절끝에 남편은 자그마한 관세사에 취직이 되었다.

 

거의 백수생활 일년을 넘기고서야 얻은 일자리이다.

 

우연의 일치로 그 무렵쯤 내가 다니던 다방도 언니의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게 되어 나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지낼수가 있었다.악몽같은 세월이였다.

 

남편이 다시 회사를 구하게 되자 시어머님은 또 대단한 유세가 시작되었다.

 

여차하면 집에 노는 니가 할일이 뭐 있냐며 이일 저일을 핑계대며, 아이가 보고싶다는 핑계까지

 

보태서 나를 귀찮게 했다. 아이는 오히려 아주버님이 이뻐하셨다.

 

또 일이라고 한답시고 남편은 허구한날 술로 세월을 보낸다.

 

사회생활의 연장이라며...

 

아무리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는 하지만...다들 너무들 하는것 같다.

 

장가를 아직 안가신 시아주버님은 나를 무척이나 예뻐하셨다.

 

그래서 늘 나를 볼때면 고생한다며 안스러워 하시곤 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내 마음을 알아주시고 나름 시어머니 앞에서는 나의 든든한 방패막이

 

기꺼이 되어 주셨다.

 

어느날.....

 

"제수씨! 집앞인데요. 친구랑 술 한잔 하다보니 제수씨 생각이 나서요.맥주 한잔 하실랍니까?"

 

"술요? 제가 가도 되는 자리인가요? "

 

"예. 동생은 들어왔습니까?  제수씨. 내가 늘 얘기하던 재석이랑 있습니다.재석이가 제수씨 꼭

 

한번 보고싶어하는데..동생이 들어왔으면 집으로 갈려고 했지요.나오세요."

 

"네. 아직요...지민이도 아직 안자고 있어요."

 

"아이고... 데리고 나오세요. "

 

오랫만에 넋두리도 할겸해서 아이를 데리고 호프집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발이 얼어붙어버렸다.

 

멀찌감치 아주버님을 보고서 그곳으로 가려던중 아주버님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나는

 

심장이 멎을것 같았다.

 

얼른 발걸음을 돌렸고 다행히 아주버님은 나를 아직 보지 못한듯했다.

 

'세상은 정말 넓고도 좁구나..'

 

아주버님과 마주앉아 있던 그 친구라는 분은 바로 옛날 첫사랑의 절친한 친구였다.

 

이름을 들을때마다 동명이인이라 생각하고 무시해버렸었다.

 

그런데 동명이인이 아니라 장본인이였던것 같다.

 

그사람은 내 과거의 일들을 너무나 잘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와 절친이였기에 자주 자리를 함께

 

했던 사람이였다.

 

"저..아주버님 갈려고 했는데요..지민이가 감기기운이 좀 있더니 열도나고 많이 칭얼거리네요.

 

죄송해요.친구분한테도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아이고 아닙니다. 애 약은 있습니까? 큰일이네...우리 지민이가 먼저지요.알겠습니다."

 

대충 아이를 핑계로 얼버무리긴 했지만 뛰는 가슴은 진정이 되질 않았다.

 

그런일이 있은 후로 나는 본의아니게 시아주버님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아주버님이 친구들 얘기를

 

할때면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 재석이라는 친구분도 아주버님이랑 절친이였으며 같은 동문이기도 했다.

 

또 시댁과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서 명절날에도 시댁에 들러 시어머님께 인사를 드리는 정도로..

 

혹시나 하여 아주버님 전화번호 수첩을 뒤적이다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뻔 했다.

 

그 수첩속에 그 첫사랑의 이름도 또렷히 기재되어있었다.

 

핸드폰 번호도 똑같이.. 그외에 그를 만나면서 만났던 몇몇 친구들의 이름까지도...

 

아마도 다들 같은 동문이였던것 같다. 불행일까? 다행일까?

 

그 4년이라는 세월 동안 친구들은 거의 다 보다시피했는데...어쩜 우리 시아주버님만 한번을

 

본적이없었다.

 

어느날은...

 

모처럼 휴일이라 남편도 집에 있는데 아주버님 전화를 받더니 조방앞으로 놀러를 가자고 했다.

 

어디를 가냐고 캐물으니 그냥 오랫만에 데이트를 하잔다.

 

대충 준비를 하고선 조방앞으로 나갔더니 남편은 두리번 거리더니 어떤 가라오케로 나를 떠민다.

 

" 여긴 왜요? 애도 있는데..이게 뭔 데이트야? 또 술이 고파요?"

 

" 허허. 말 많네. 그냥 따라와봐~"

 

억지로 떠밀리다시피 그곳을 들어섰다.

 

종업원이 반색을 하며 맞이했고, 아직 영업을 개시하지 않은 개업준비를 하는곳인것 같았다.

 

이런곳엘 왜 왔는지 영문을 몰라 두리번 거리는데...

 

" 제수씨 !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앉으세요."

 

"어! 아주버님이 여긴 어쩐일로..?"

 

" 야 !야! 얼른와라 우리 이쁜 제수씨 왔다."

 

숨을곳도, 숨을 수도,피할수도 없었다.

 

아주버님이 소리지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 안..녕..하세요?"

 

"네 ? 아예...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 얌마! 뭘그리 빤히 보노? 우리 제수씨 너무 이쁘제?"

 

"응...으응..미인이시네요."

 

"고..맙..습니다."

 

이일을 어찌 할꼬...보지말아야할 그 재석이란 친구를 본의 아니게 보게되었다.

 

" 행님! 언제 개업합니꺼? 가게 멋지네요?"

 

" 응. 멋지나? 낼모레쯤 할라꼬.."

 

"제수씨! 이것 좀 잡수이소. 오늘 친구들하고 제수씨한테 이벤트도 해주고, 맛있는것도 사드리고,

 

또 오랫만에 제수씨 노래도 한곡 듣고 할라켔는데...친구들 두놈은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겨 먼저

 

갔심더..좀 잡수이소..."

 

펼쳐진것은 만두랑, 회랑 초밥이랑 아이 먹을 군것질거리까지 한상 가득이였다.

 

" 와? 진철이 행님이랑,성수행님은 일 터짔나? 오랫만에 함 얼굴 볼라켔더만..."

 

진철씨....성수씨...그들도 내가 잘 아는 사람들임이 분명해졌다.

 

앞으로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나이도 있고..아이까지 낳고 사는데 설마 아주버님한테 쓸데없는 얘기들을 할까? 않할까?

 

이런 기막힌 우연이 또 있을까?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였고 쥐구멍이 간절해지는 순간이였다.

 

그는 다행히 나를 아는척은 않했지만 상당히 당황해 하는 모습이 내눈엔 보였다.

 

한사람에게만 들킨게 오히려 다행이다라는 생각 밖에는 아무생각도 할수가 없었다.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 그곳을 어떻게 앉아 있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아주버님을 전처럼 대할수가 없었다.

 

혹시나 무슨 얘기를 들었나 싶어서....

 

이렇게 또 그와의 끈길진 인연(?)에 한숨을 내 쉬어본다.

 

고맙게도 그 날 이후론 그런 만남이 없었고, 그럭저럭 세월은 흘러 벌써 아이가 다섯살이 되었다.

 

우리의 가정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남편은 한푼 벌어 두푼을 쓰는 사람이였다.

 

남편의 관심사는 오직 무슨 색깔 와이셔츠엔 어떤 넥타이가 어울릴까?.양말 색깔은 무슨색?

 

구두는 무슨 색 구두? 신형으로 나오는 핸드폰 마다 이핑계 저핑계 대면서 바꾸기 일쑤였고..

 

주말이면 낚시를 가야했고,낚시를 갈때마다 낚시 장비는 바뀌어왔다.

 

이건 어디서 났냐고 물으면 대답은 늘 샘플이라했다.

 

아무리 내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을 해도 겨우 이것저것 제하고 120만원이 채 못되는

 

월급으로 시어머님 생활비 30만원을 드리고 아이랑 생활하기엔 빠듯했다.

 

그럼에도 남편은 사흘이 멀다하고 술마시기를 좋아했고, 술도 밥먹으면서 직원들끼리 소주한잔하는

 

그런 간단한 술자리가 아닌 늘 아가씨가 있는 술집에 가서는 새벽에야 겨우 들어왔다.

 

무슨 돈으로 술을 먹는지....늘 얻어먹었다고 한다.

 

남편의 낭비벽에 한숨을 쉬고 있을때쯤, 일본에 유학을 가 있는 고종사촌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본에 살고 있는 오빠의 처형이 출산 문제로 하던 가게를 잠시 쉬어야 하는데 내게 가능하면 잠시

 

건너와서 장부 관리만 좀 해줄수 있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비행기 왕복비와 사례금으로 한국돈 150만원을 주겠다며....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보름만 고생하면 이렇게 큰돈이 생기는데....

 

이렇게 남편이란 사람은 발전없이 늘 쓰기만 하고 집 경제는 뒷전인 사람에게

 

희망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어린 지민이가 걱정이였지만...궁리끝에 남편에게 상의 아닌 상의를 했고 남편은 예상데로

 

당연히 수락했다. 보름 비자라 아이를 시어머님께 맡기고 가기로 결정을 했다.

 

" 어머님 지민이를 보름동안만 좀 봐주세요. 사정이 생겨서 제가 일본엘 잠시 다녀와야 할것같아요."

 

" 와? 일본에는 뭣땜에 가노? 니는 애비랑 아를 놔두고 일본꺼정 여행가나?"

 

" 어머님 제 처지에 여행은 무슨 여행입니까?"

 

여차 저차해서 일본을 다녀와야겠다며 사정 얘기를 했더니...

 

"그라믄 나는 얼마 줄낀데? 다깡도 오는김에 좀 사온나..일본끼 맛있다.다깡은.."

 

옆에서 묵묵히 듣고 계시던 아주버님이 한마디 큰소리를 지르신다.

 

"엄마! 아 애비가 정신못차리고 댕기니까 제수씨가 일본까정 아도 띠놓고 돈벌러간다는데 엄마는

 

팔자 좋은 소리하고 있네요.와그라요?"

 

" 야야! 그런소리마라 요즘 세상에 우리 상이같이 마누라 하자는데로 다하고사는 아가 어딨노?"

 

답답한듯이 어머님을 쳐다보고 계시던 아주버님이

 

"제수씨!지민이 걱정 하지말고 조심해서 다녀오이소.내가 잘 돌보고 있을께요."

 

"아주버님이요? 회사는 안나가세요?"

 

" 아.예 회사에 요즘 문제가 좀 있어서 당분간 출근 안해도 될겁니더.."

 

눈치로 보아하니 당분간이 아니고 오래임에 틀림없는듯 했다.

 

이일은 또 어쩔꼬...아주버님은 소아마비시다.어릴때부터....거기다 교통사고로 또 그 다리를 다쳐서

 

걸음이 많이도 불편하시다. 심장 판막증 수술까지 하셨다.

 

그래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아직 장가를 안가신것이다.

 

겨우 대학은 졸업했지만 번듯한 직업도 없이 친구 건축회사의 장부정리만 해 주신다더니 이제는

 

그 마저도 어렵게 된 모양이다.

 

사정이 이러니 여자를 데려와 고생시킬수 없다며 연애도 제대로 안해 보신것 같다.

 

남편말을 빌리자면 수술할때 옆병동의 백혈병환자 아가씨랑 사랑을 하시다가 그 여자분이 저세상으로

 

가고서는 그날 이후로는 여자를 만난적이 없는것 같다고 했다.

 

그 동안도 아주버님 벌이가 제대로 없으신듯 하여 알게 모르게 아주버님께 용돈을 심심찮게 드렸었다.

 

그래서 나를 이뻐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몇만원 때문에 시어머님이랑 다툴때보면 너무 안스러워서...

 

집 팔아서 은행에 저금해놓고 야금야금 빼 쓰시는 시어머님이 미워서, 또 생각을 해봐도 그렇고..

 

"어머님! 조금의 여유가 되시면 아주버님 만화방이나 당구장같이 큰 돈 안들이고 할수 있는 가게를 하나

 

차려주시면 어떨까요? 아주버님도 무슨 희망이 있어야 결혼을 해도 할것 아입니까?그라고 벌이가 있으면

 

어머님도 훨 수월하실거구요..."

 

" 내 돈도 없지만 차려줘가 털어묵으면 어디가서 본전찾노?"

 

" 왜? 꼭 망할거라고만 생각하세요? 잘 될수도 있잖아요?"

 

" 됐다.마 능력있으몬 니가 차려줘라와"

 

이렇게 자식의 앞날 보다는 늘 당신이 우선이였다. 분명히 일억 가까운 돈이 은행 통장에 있는걸 우연히

 

내가 보게 되었었다. 그럼에도 늘 내게 우는 소리를 하며 돈을 요구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들을 잠시라도 잊고 싶었다. 숨이 막혀 죽을것 같았다. 일본행을 결정해버렸다.

 

일본행이 처음인지라 역시 유학을 가 있는 사촌 동생이 나를 픽업하러 나왔고, 이로써 나의 새 경험,

 

새로운 세상의 도전기가 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