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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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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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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런년의 팔자!


BY 조 양 희 2011-05-08

어느날 새벽녘이였다.

잠을 자다가 몸부림을 치던중 깜짝 놀라 손으로 방바닥을 문질러보았다.

방바닥이 온통 물바다가 된듯하여 혹시나 잠결에 나도 모르게 실례를 했나 싶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깊은 잠이 들어있는 그이에게 들킬세라 수습을 어찌할까 고민하는데....

손바닥이 쪼여옴을 느꼈다. 그러면서 비릿한 냄새까지 풍기는게 아닌가 !

얼른 일어나 불을 켜보고는 너무나 놀라서 비명을 질러버렸다.

그이도 잠에서 깨어나더니 같이 놀랄수밖에.....

온방바닥이 피바다가 되어있었고 내가 걸친 하얀 드레스 잠옷조차도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순간 우리는 아이가 잘못되었다는 판단과 함께 그이는 놀란 나를 안고서 병원으로 내달렸다.

응급실로 들어가서 확인을 했는데  '전치태반'이라고 했다.

아이는 무사했고 낳을 달까지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했다.

원인은 잦은 유산과 출산후의 후유증이라고나할까? 잦은 유산은 아니였지만 출산후의 산후조리가

잘못되었음은아닌지 모르겠다.

임신한지 7개월째의 일이였다.

아이가 신경을 누르고 자리를 잡고 있다하여 다리도 절룩거리며 다니면서 장사하랴~

시어머님 투정 받아주랴~ 남편 내조하랴~

그래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아이들을 떨어트려 놓고서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내 마음이 욕심이라

생각하며 모든게 내탓이요. 팔자려니 생각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제왕절개로 또 딸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딸아이라 섭섭하다면서 병원에 있는 일주일 동안 한번을 와보지도 않았다.

혈액형이 RH-B형이라서인지 간호사의 수혈 실수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기도 하였건만..

두시누이들이 방문하면서 전해주는말...

" 꼴랑 딸 낳아놓고서 배짱 좋게 2 인실에 누워 있냐 ? " 하시더란다.

말한 시어머니나 전해주는 두 시누이들이나...내복이 여기까지인것을....

그렇게 아이를 출산하고서 가게방의 좁은곳에서 아이를 키우기에는 생활환경이 맘이 편하질 못했다.

장사를 당분간접고서 아이 육아에만 신경을 쓰고 싶었다.

가게를 처분한 순전히 나의 자금력으로 전셋방을 하나얻었다.

일반주택의 미닫이문의 두칸짜리 방을...

짧게..아주 짧은 몇개월만큼만 행복했었다. 매일같이 징징대던 시어머니도 아이가 태어나자 어리광을

덜 부렸고, 남편도 아이가 태어나자 잠시 술자리를 멀리하며 내가 꿈에도 그리던 가정적인 남편이

되어주는듯했다.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

철없이 생긴줄도 모르고 임신에 대한 상식도 없이 아이둘을 낳아 키워보다가 이번에 태어난 나에게는

세번째의 딸인 지민이가 많이도 사랑스럽고 예뻤다.

처음으로 백일 잔치도 뷔페를 빌려서 호화판으로 치뤘고, 백일잔치를 치르고 얼마지나지 않아 남편은

초혼인지라 당연히 결혼식도 치뤘다.

비용은 그동안 내가 한푼두푼 모아 상조회를 들여놓은것으로 최대한 간소하게 치뤘다.

이번 역시도 나는 친정부모님의 도움 한푼도 받지 않고 순전히 내 힘으로 치뤄냈다.

아이의 돐이 다가올무렵...

IMF로 남편이 다니던 그 작은 관세사사무실 마저도 문을 닫게 되어 남편은 실직자가 되어버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리 넉넉지는 않았던 벌이였지만 내가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또순이 노릇하고 살면

희망이 보이리라 그나마 꿈꾸고 있었는데...

참담한 마음으로 궁리끝에 내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 지민아빠 ! 생각해 봤는데 이러다간 우리 지민이 우유값도 없어질것 같아요. 자기가 마음 한번만 고쳐

먹으면 가능하기도 할텐데 ? "

"뭐 ? 무슨생각인데 ? "

" 내가 음식을 좀 하는 편이니까 지금 당장 우리가 점포 하나얻을 돈도 없고, 또 얻는다해도 지민이도

그렇고 하니까, 매뉴를 짜서 음식 차림표 스티커를 신문전단지에 돌리고, 오토바이를 하나 사고,

철가방도 하나 사서,주인아주머니한테 사정얘기를 하고 수도세를 전적으로 우리가 부담하겠다고 하고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전화만 받는 배달전문 분식점은 어떨까? 야식집이나.."

" 내보고 철가방 들고 배달같은걸 하라 그말이가?"

"그러니까 자기만 자존심 좀 버리고...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먹고 살아야지..."

" 니 혼자해라 내가 워째 철가방 들고 배달을 하겄노"

" 옛날에 가난벵이 양반이 쫄쫄 굶고도 밖에 나올때면 갓쓰고 이쑤시고 나온다더만,요새 세상에 양반,

상놈이 정해져 있나? 돈있으면 양반이고 돈없으면 상놈이지. 체면이 밥먹여주나? 생각좀 해보소"

"......................"

그이는 들은체도 않고 말문을 닫아버린다.

나는 속이 새까맣게 타는듯했다. 결국은 아이 돐은 사진관에 가서 사진 한장 찍어주는걸로 끝냈다.

백일때 들어왔던 아이반지랑 그동안 모은 내 패물이랑 돈이 될만한것은 하나둘씩 내다 팔며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더이상 견디지를 못하고 동네 놀이방에 아이를 맡길만한 곳을 수소문했고, 벼룩시장

같은 구인광고 신문들을 모아와서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는 못살겠다며 남편에게 단호하게 말을 했고 내가 돈벌이를 하러 다닐테니 낮에는 아이를 잠시

놀이방에 맡기고 저녁엔 남편이 아이를 육아해달라고 통보를 했다.

무슨일을 할것이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서슴치않고 대답했다.

" 배운 도둑질이라고 다방밖에 더있겠나? 여자벌이로 그곳보다 월급이 더 센곳도 없다.

좀 떨어진 곳으로 알아볼께.진작에 분식이라도 했으면 좋았잖아 더 좋은 방법있으면 말해봐라"

"................."

틀림없이 허락하지 않을것이라 생각하고 단호하게 내뱉았는데 예상밖이였다.

" 내가 자기 성격을 아니깐 믿는데, 애엄마로서 부끄러운짓만 하지마라"

"..................."

내가 더 어이가 없었다. 내 발등을 찍고 싶었다.

사람을 잘못 선택했다는 후회감이 마구 밀려왔다. 하지만 이제와서 어쩌랴??????????

사직동쪽으로 직장을 구했고, 다행히 좋은 주인 언니를 만났고,처음엔 아가씨라고 속였지만 언니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면서 현 사정을 이실직고를 했고, 오히려 언니는 나를 더 딱하게 보고서는

더 배려를 해 주었다.  이것저것 아이 선물도 사주기도 했고 나에게는 항상 인생의 선배답게

많은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 희야 ! 양지도 음지 될때가 있고, 음지도 양지될때도 있는게 인생사다.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

또아니? 내가 어느날 음지가 되어 너한테 신세 질날이 있을지..."

" 그런일이 있었어도 안되겠지만 그럴리가요?"

" 세상살면서 절대로 남의 말 함부로 하는것 아니고, 사람앞날은 아무도 장담못한다."

매번 이런식으로 참담해하는 나를 하루에 한번씩은 좋은 말을 해 주면서 위로해주었고,격려해주었다.

" 희야! 돈버는 신랑 모시는것 보다 노는 신랑 모시기가 더 힘들다"

처음엔 나도 이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점점 흘러갈수록 이말의 참뜻을  새록새록 느낄수있었다.

어느날부턴가 출근길에 남편 머리맡에 몇만원을 챙겨두고 나는 토큰 두개를 들고 출근하였고, 좀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남편 눈치를 살피며 내가 더 미안해 했고,일주일에 하루 쉬는 일요일이면 남편이랑

놀아줘야 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아이보다도...

운전면허증이 없는 남편에게 학원비를 대주며 운전을 배우게 했고,중고차이지만 차도 한대

마련해주었다. 이것도 다 언니가 남편이 집에 있을수록 자꾸 기가 죽으니까 남편 기를 세워주는것도

여자의내조라며 조언해준 덕분이였다.

그 와중에도 매주 토요일날이면 퇴근하면 으례히 시어머니는 집에 와 계셨다.

신혼초에 너무나 답답하여 한번 들렀던 점집 보살이 하던 말이 새삼 생각났다.

"전생에 이엄마와아들은 금실좋은 부부였는데..새댁이가 어찌 버티고 살겠노?"

마무리를 하다가 퇴근 시간보다 조금늦게 퇴근을 하면

" 와 인자 오노. 니 내 있다꼬 꼴뵈기 싫어 일부러 늦게 오제 ?"

날이면 날마다 그 아들이 보고 싶어 첩한테 뺏긴 남편 그리워하듯이 하던 노인네가 아들이 백수되어

마누라 일터에 내보내고 하루종일 집에서 빨래하고,밥해먹고, 아이랑 실랑이하며 지내는데

평일날 매일같이 낮에 좀 오셔서 손녀도 좀 봐주고, 집안일도 좀 도와주고 아들 실~컷 보시지...

꼭 토요일날 와서 늘 새벽같이 일어나서 일 나가는 며느리 하루쯤 늦잠이라도 자게 내버려두지....

다늦은 저녁에 와서 백수아들이 차려주는 밥상 받으면서 느끼시는것도 없는지..

시어머니 노릇도 내아들이 당당할때 하는것일진데, 내게 미안함조차도 못느끼시니..

어쩜 그리도 변함없이 한결같으신지.....

한두달이면 충분할것 같았던 일이 어영부영 벌써 계절이 바뀌어가고 있다.

순전히 내 덕분으로 가정경제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주인언니도 월급도 올려주었고..

사소한 생활비 정도는 '팁'이란걸로 충족하고 있다.

씀씀이가 헤프고,술을 좋아하고,멋내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보면서 어느날부터 나는 딴 주머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퇴근하면 정류소에 딸아이랑 같이 매일 마중도 나와주고,씻고 나면 '피곤했지?'하면서

팔다리도 주물러주기도 하고,쉬는 일요일날이면 어머님 집으로 가시고 나면 고생한다며 미안해하며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더니...

처음 운전을 하게 되었을때는 승용차로 아이를 태우고 나를 데리러 오기도 했다.

차 창문으로 '엄마' 하며 좋아라 손짓하며 부르는 딸아이를 바라보면서

'그래. 내 하나 희생해서 그렇게 해서라도 이 행복이 유지될수있다면 ..기꺼이'

그러던 어느날 운전을 하고 나를 데리러 아이까지 태우고 오면서 음주운전에 걸렸다 했다.

다행히 함량미달이라 경고 조치만 받았지만..그 길로 데리러 오는걸 멈추게 했다.

이제는 미안함은 찾을수도 없고,당연한 일이 된듯하고..어디서 줏어 들은 얘기는 있는지

하루종일 배달일하며 업무에 시달리다 거의 실신 일보직전인 나를 매일밤을 범하려한다.

부부간에 하는 사랑행위가 아닌 짐승처럼 느껴지기만 하다.

아예 직장 알아볼 생각조차를 안하는듯하다.자꾸 물어볼수도 없고..

언젠가부터 영업장에 나가는일이 즐거웠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싫어지기 시작한다.

두렵다는 말이 옳은지 모르겠다.

오늘도 늦은 귀가길 버스안에서 창밖에 나뒹굴어다니는 은행잎을 바라보며 혼자 뇌깔려본다.

'바람에 휩쓸리어 이리저리 나뒹구는 저 낙엽들 신세나, 내신세나...

니들도 봄을 맞아 새순 돋으며 푸르름을 만끽할때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니들 신세보다 내 신세가 더 만신창이 신세같다...

나는 니들처럼 푸르름을 자랑할 기회도..

붉게 물들어 그런 꽃피우는 청춘조차 없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