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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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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월여행


BY 조 양 희 2010-12-20

눈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마구마구 휘날린다.

눈보라가 적당한 표현인가보다.

나는 오봉에 찻잔을 담고 보자기를 씌운채 흩날리는 눈보라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서 있다.

호주머니에서 만지작 거리는 동전 몇닢과 가게안에 나를 쳐다보는 공중전화를 째려보듯해본다.

내가 져준다. 공전화에 낯익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다.

"여보세요.수고많으십니다.죄송하지만 신과장님 좀 부탁드립니다."

"네.잠시만요.."

"여보세요.전화 바꿨습니다.여보세요?여보세요?"

"....흑흑.."

"영희야! 영희지? 지금어디야? 내가짐 갈께.영희야!"

"..아니요. 그냥 목소리만 들어도 살것같아서..별일없죠?"

" 너...정말..지금 어디야?"

" 나 잘지내고 있어요.독하게 마음 먹었는데 흩날리는 눈을 보다 그냥 센치해져서.."

"만나서 얘기하자.응? 지금 있는곳이 어디야?"

" 이다음에..좀더 마음 정리가 되고나면 또 연락드릴께요.끊어요."

"영희야! 영희야!..."

그냥 끊었다.달콤한 그 목소리에 내가 또 흔들림을 느꼈다.

나를 태우러 일명'오토맨'이 달려왔다.

이곳은 밀양이다. 예전에 남편을 만났던 그곳에서 알게된 같이 일했던 아가씨가 이곳으로

시집을 와서 티켓다방을 하고 있었다. 영업이 너무 잘되는 관계로 순경이던 남편도 퇴직을 하고

아예 오토맨을 자청하고 나섰다한다.

일도 배울겸 숨을곳도 필요했고.마음정리할 시간도 필요했다.돈도 필요했고....

그이랑 나랑은 모텔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고 있던중 남편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그의 아내가

흥신소에서 사람을 그에게 붙였다. 그가 그걸 눈치채고 나를 혼자 모텔에서 일주일을 넘게

혼자 남겨두고 전화만 해대고 나타나질 못했다.

그동안도 동물원 원숭이가 된듯하여 서서히 욕심이 생기고 있을즈음이였다.

아침이면 먹을것을 잔뜩 사들고 나타나서는 점심도 모텔에서 시켜먹고 일을 잠깐 보러나갔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를 옆에 두고서도 다정스럽게 그의 아내와 일상적인 통화를 했다.

그때마다 나의처지가 견딜수 없었고 자꾸만 투정도 하게되고 섭섭함도 생겼다.

반쪽뿐인 이런 사랑은 하는게 아니다란 생각도 하게되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를 떠나기로...

혼자 모텔방에 일주일을 넘게 지내다보니 정신병원엘 가야할것 같았다.

거의 미쳐 혼자서 노래방도 가보고, 포장마차도 가보고,편의점에서 퍼즐낱말 풀이책도

잔뜩 사서 시간을 떼워보기도....

밤이면 모텔방안에서 혼자 즐거울 그의 가정을 상상하며 술을 마시면서 흐느껴도보고...

그의 아내에게도 못할짓이고..남편은 아예 전화번호까지 없애고 시누이에게 연락을 해보았더니

불똥이 저에게로 튈까봐 전전긍긍하면서 남편이 나를 찾아 죽이겠다며 혈안이 되어 내 주위의

친구들집으로.친정으로.지금 미친듯이 찾아헤매고 있으니 좀 숨어있다가 나중에 나타나라고한다.

미친놈!!! 내발로 가겠다고 연락하면 들어오면 죽인다더니...

그날 창문으로 나를 보았다한다,택시에서 내리는 나를...그리고 가로등에 비치는 내머리가

물에 젖어있었단다.그래서 혼자 돌아버린것이라한다.

억울했다.아마도 일명 물퍼머를 했더니 그게 가로등 불빛에 젖어 보였나보다.

술도 잔뜩 취해 있었으니...정말 그날까지도 우리는 깨끗한 관계였는데...

그것만으로 나를 잡년으로 몰아부치며 내겐 변명의 기회조차도 주지않고..

이제는 무식해보이는 무능력한 남편에게로 내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는일도 아직 없단다. 아이들이 걱정이되어 집앞까지 가보기도..

캄캄하게 불꺼져있는 창문만 쳐다보며 돌아왔다.

아이들은 지금 어쩌고 지내고 있는지...

그저 지금 내마음은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방한칸 구해지면 아이들 데려다가 내가 키워야겠다는..

그동안도 남편은 아이들과 나를 2년 가까운 세월동안 돌보지 않았었고.내 힘으로 잘지냈었다.

물론 그의 도움도 있었지만.....

친구의 만류를 무릎쓰고 한달에 120만원을 받기로하고 아침 6시에 기상해서 비닐하우스며

부동산 사무실등에 물병을 갖다 나르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하여 저녁 10시에 업무를 마감한다.

시골이라서 온갖 하우스며 방앗간.노름방등에 커피를 배달했다.

그렇지만 너무도 일이 고된탓에 잡다한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고 깊은 단잠을 잘수 있어 좋았고

많은 돈을 벌수 있어 좋았다. 굴욕적인 일들도 많았지만 견뎠다.

빠른 시간내에 돈을 벌려니 참아야했다.

삐삐가 또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떠나온 내내 그에게선 하루에 두세번은 삐삐가 들어왔었다.

그가 모텔에 있을때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사준 삐삐였다.

우리들의 암호는 119였다.

벌써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다 되어가건만...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더 그립기만 하다.하루에도 갈등을 수십번을 경험한다.

이튼날 낯선 전화번호로 자꾸만 삐삐가 들어왔다.

지역번호를보니 같은 밀양이였다.밀양에 친구말고는 아는 사람도 없는데...

잘못 친것인가?생각했는데 오후까지도 내내 들어왔다.

잘못친것이라면 그사람은 급한모양인데 얘기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에~역전 다방입니다."

"XXXX로 호출하신분요."

"여보세요.영희야!"

"........"

"밀양 좁은데 사람풀어서 잡혀서올래? 지금올래?여기 역앞에 다방이다"

"그냥 돌아가세요?괜한 걸음을 했네요."

"내 성질 몰라서 그런말하나? 빨리와.보고싶다."

"내가 갈께요."

심장이 멎을뻔 했다 그가 나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

그의 보고싶다는 말에 해버린 나의 마음이였다.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방에 들어섰다.그는 달려나와 나를 힘껏 안았다.

어쩌자고 배달중이였던 터라 오봉을 든채로 들어섰다.

그는 내몰골을 바라보더니 짐작한듯 한숨을 쉬었다.

눈이 내린다는 소리를 듣고 부산 근교에 내가 갈만한 곳으로 연락을 취해보았다한다.

울산으로..언양으로..등 여러곳에...해필 어제는 밀양에만 폭설이 내렸다한다.

언젠가 내가 밀양 친구얘기를 한적이 있다했다.

그도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날마다 술로써 하루하루를 견뎠다한다.

그의 아내도 이제는 더이상 의심의 눈초리는 내렸다했다.

아내를 곁에 두고서도 나를 그리워하는 그의 본심은어떤것일까?

지금 내몰골이 왜그리도 부끄러운지...나는 고개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서 이미 흙투성이가 되어버린

부츠만 하염없이 내려다볼뿐...

같이 부산으로 돌아가자고 한다.이곳은 나같은 사람이 있을곳이 못된다며....

나는 냉정해져야 했다.돌아간들 나를 기다리는건 아무것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더 막막하다며..

내 생각을 야무지게 전달하는데...

그는 갑자기 내앞에 무릎을 굽히며 모든게 자기를 만나서 생긴일이며 이대로 나를 이곳에

두고는 혼자서는 절대로 가지않겠다며 애원하듯 말한다.

이대로 돌아서면 그는 평생을 후회하며 살거라한다.

내 흙투성이의 부츠위에 무언가 계속 떨어져서 흙들이 씻기워진다.

그가 울고 있다.손수건을 꺼내어 내 부츠를 그의 눈물로 닦고 있는게 아닌가???

어떤 멜로 영화가 이처럼 간절하고 애틋할까?

나의 냉정함이 한순간에 와르륵 무너져 버렸다.

그를 선택한 댓가로 벼락을 맞는다해도 나는 감수할거라 생각했다.

그냥 이대로 하늘이 무너져도 좋았다.

그렇게 우린 친구 내외랑 저녁을 함께하며 그가 친구내외에게 정중히 사과를 하며

고맙다는 인사는 잊지 않고 했다.

그길로 얼마안되는 짐을 꾸려서 친구에게 두달치의 월급을 받아서 그와 그곳을 작별했다.

오히려 친구는 그를 더 반겨주었다.나와남편의 만남부터 모든걸 아는 친구였기에...

나를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하면서....

우리는 이튼날 부산가는 첫 기차를 타기위해 역 가까운 허름한 모텔에서 뜨거운 재회를 했다.

이대로....세상의 종말이 온다해도 후회없을만큼...

그도 나도 둘의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고서 이튼날 첫기차에 올랐다.

나는 대책이 없다. 그냥 그가 하자는데로 따를 밖에...

아무래도 좋았다. 더 큰 후회가 온다해도 나는 감당하리라..

창밖으로 우리를 축복이나 하듯이 눈발이 휘날린다.

그를 만나 2년 넘는 세월동안 꼬박 밤을 함께하고 아침을 함께 맞이한적도 처음이였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그를 느끼며 눈을 감는다.

처음으로 그와 밀월 여행이 된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