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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회는 원할 때엔 오지 않는다. 하지만 원하지 않을 때도 온 적은 없다.


BY 하늘콩 2010-04-06

2편  기회는 원할 때엔 오지 않는다. 하지만 원하지 않을 때도 온 적은 없다.

 

잎을 다 털어버린 나무들에는 걸죽한 밀가루 반죽을 뿌려놓은 듯 눈이 살짝 묻어 있고, 오가는 사람들은 바람이 들어갈까 옷깃을 여미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창문으로는 따사로운 정오의 햇살이 포근하게 들어오는 것이 이제는 맘껏 햇살과 봄바람을 누릴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해주는듯하다.


햇살이 내리쬐는 곳은 왕립마법학자양성 학교의 교장실.
그 곳은 그리 크진 않지만 오래 되어 반들반들 윤이 나는 나무 바닥에 사각의 모퉁이엔 검은색에 하얀 결이 잔잔히 들어가 있는 묘한 빛의 대리석 기둥이 듬직하게 천정을 받치고 있고, 벽에는 낡은 고서들과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으로 가득한 책상이 둘러져 있고 남는 벽에는 종교화 두 점이 바래진 금색의 액자에 넣어져서 성스럽게 걸려 있는 누구나 꿈꿀만큼 완벽하게 아늑한 서재의분위기에 잔잔한 햇살 조명까지 들어오고 있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그딴 것은 개나 줘버리라는 표정으로 앉아있다.
서재의 창가엔 커다란 원목나무를 자른뒤 고동색의 수액으로 여러번 발라 고풍스럽고 오래되어 보이는 책상은 이 분야에 관심있는 매니아라면 이 책상에 관한 이야기를 한나절 떠들어도 지치지 않을 만한 물건 이었지만 그 역시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쨋든 그 책상 건너편에 앉아 있는, 검은 머리의 동그스름한 눈에 발그레한 볼의 소년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고 어깨는 잔뜩 움추린채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한눈에도 몹시 긴장한듯 보였고, 그 앞에는 책상의 주인인 몇 년동안 자르지는 않았을테지만 극진한 정성이 들어간 듯 보이는 길고 고운 하얀 수염을 갖고 있는 늙은 남자가 앉아 있다. 이 늙은 남자 역시 햇살 아래 밖에서 보았다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존경심을 표할만큼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지혜로움이 온 몸에서 느껴지는 인물이지만, 난감한 듯 인상을 쓰며 건너편에 앉은 두 소년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다.


세 사람중 험악한 얼굴 베스트인  15세 남짓 되어보이는 은발머리의 소년은 표정만큼 차갑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교장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셔도, 절대 싫습니다."
 "젠슨 애클스. 너희들이 친 사고에 대해서는 관대한 처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른이라면 상대방이 잘못했을때, 그 잘못을 극대화 시켜서 누가 이 상황을 쥐고 있는지. 누가 우위에 서 있는지를 정확히 알게해줘야 원하는 바를 이룰수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런 취지로서 훌륭하고 위엄있는 발언이었지만, 순간 젠슨 애클스는 10분전 상황이 떠올랐다.

 

이 나라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왕립마법학자양성 학교. 그 중에서 앨리트들만 갈수 있다는 마법학자반. 젠슨 에클스 역시 어릴때부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이해도 안되는 마법서도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읽어 보았고 마나를 운용하는 법을 스스로 익혀보려 노력해왔었다.
몇 년 동안 준비해서 입학 시험을 치러 수도까지 왔는데, 여기, 옆에 - 온몸을 갈기갈기 찢은후 살과 뼈를 갈아서 오당즙(몹시 달콤한 맛의 과일)과 잘 반죽한 뒤 활활 타는 화로에 적당 시간 구워 맛있는 향기가 난다해도 마족들 조차 이걸 먹느니 자신의 다리를 잘라서 먹어버리겠다고 절규할 정도로 - 지독한 녀석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다시 끓어오르는 분노에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배의 아래쪽에서 따스한 기운과 함께 육두문자가 아름답게 발설되려던 찰라, 그 원인이 되는 것이 입을 열었다.

 "저기...교장 선생님. 입학시험도 못치뤘는데 어떻게 저희가 입학을 할 수 있다는거죠?"
 "물론 젠슨의 아버지와 내가 막역한 사이고 이 꼬마를 어릴때부터 보아왔기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시험을 보지 않고 들어올수 있는 클래스가 있단다."
 "잘됬네요, 도련님. 입학 할 수 있대요!"
 "그 입 열어서 지껄여도 된다고 누가 허락했지? 그 딴것도 모르는 녀석이 참모로 와? 너는 정체가 뭐냐?"
 "그건 입을 열어도 된다는 뜻인가요?"

또 다시 험악해지고 있는 분위기를 수습 한 것은 산전수전 다 겪어 하얀 수염만 남아버린 교장선생님이었다.

 "젠슨. 아티산(장인) 클래스도 배울 것이 많이 있단다. 내년에 다시 입학 시험을 치루느니 아티산 클래스에서 반년 있다가 마법반으로 승급시험을 치루는 것이 효율적일텐데, 어짜피 내년에 일반입학해도 반년 후에 승급시험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아티산 클래스는 죽어도 싫습니다! 전 귀족이에요. 여기에 와서 마법학자가 되고 싶은것이지, 돈많은 장사꾼 나부랭이의 자식들과 함께 묶여진다는 건 절대 용납 못 합니다.."

젠슨의 강한 의지에 교장 선생님은 그 생각 합리적이진 않지만 존중 해주마의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그러려무나."
 "내년에 올게요."

젠슨이 자신의 사고에 대한 변명도 사과도 하지않고 고개만 살짝 숙여 짧은 인사만 건네고 일어서서 문가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입을 열지도 못하고 귀만 열어 두었던 또 한 명의 소년은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서 쫒아가며 저도 모르게 젠슨의 소매를 부여잡고 입을 열고야 말았다.

 "헥, 도련님. 집으로 돌아가신다구요?"
 "놔! 어디 더러운 손을대? 니가 뭔짓을 한 줄이나 알고 나를 잡아? 그 입을 열어?"
 '쿠다다다다당'

꾹꾹 눌러두었던 분노는 드디어 폭발하였고 강하게 뿌리쳐진 소년은 바닥과 엉덩이를 커다란 소리와 함께 접촉시켰다.

 "한 번만 말 할테니 잘들어. 오늘 이 시간. 이 장소 이후 그 낮짝, 다시는 나에게 보이게 하지마. 우리가 다시 만나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저어어언혀 이상하지 않을꺼야."

바닥에 주저앉은 소년은 한쪽 꼬리가 올라간 살짝 올라간 입만 보면 농담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젠슨의 웃고 있지 않는 눈을 올려 보며, 시선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방금 쾅소리를 내고 나간 저 사람일꺼라고 생각했다.

 "허걱! 집에 돌아가시면 안되는데!!!"

넘어진 충격과 무서운 협박의 말에 잠시 정신줄을 놓아버렸던 소년은 정신을 차리고 쫒아서 달려나갔다.
그 뒷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교장선생님은 벌어졌던 입을 다물고는 오늘 저녁 식사의 기도때 할 감사인사가 떠올랐다.
아티산 클래스에 오라고 권유했던 자신을 칭찬하고, 단호하고 깔끔하게 거절해준 젠슨에게 감사하자.

아니 저녁 기도는 늦다. 점심 식사의 기도때 바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