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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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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은 무너져내리고..


BY 소피아 2009-06-20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아궁이에 불을 지펴 저녁밥을 지어놓곤 했다.

엄마의 칭찬을 들어서인지 매일 그렇게 하고 싶어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가 불을 떄서 밥을 하는게 참 위험한 일이 아니었던가싶다.

나는 5남매이다. 위로 언니한명 아래로 여동생한명 남동생두명이 있다.

엄마가 언니랑 교대로 밥 짓는 걸 하랬는데 언니가 잘 하지않아서 나혼자 했던거라고 말씀하셨다.

내 기억으로 언니랑 다른 형제들은 학교가 파하는대로 집에 바로 오질 않았었다.

나는 학교 파하는 대로 집에 오자마자 밥을 해놓아서 저녁밥을 먹을때 밥을 푸면 누룽지까지 다 일어나곤했다.

그래도 엄마는 잘했다고 칭찬하시곤했다.

밭에서 논에서 힘들게 일하시고 들어와 밥이라도 되어있으니 기분이 좋으셨었나보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때는 토요일은 빨래하는 날이었다.

일주일동안 입었던 옷을 모아 점심밥도 먹기전에 빨래부터 해널었다.

운동화빠는 것도 당연한 거였고 내가 입었던 옷은 내가 모두 빨아 입었다.

지금 중학교 2학년인 딸은 귀엽게 키우고 남들눈에 깔끔하게 보이게하려고

내가 다 해주어서 자기가 해야된다는 생각은 없는듯하다.

그리고 초등학교때에는 밭에서 풀도 매고 마늘쫑을 뽑기도하고 그랬다.

중학생때까지 이어서 엄마가 같이 고추라도 따자고 하시면 거역하지 않았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와 보리차 한병과 참거리가 될만한걸 챙겨가지고

논으로 달려갔다.

맨발로 바지를 걷어올리고 부모님을 도와 벼도 베어보고 볏단도 나르고 내가 생각해도

참 열심이었다.학교에서 중간고사 시험이 있는데도 논에 나가 일하고

그 다음날 시험을 보았다.

친구들은 내가 집에서 따로 공부를 많이 하는줄 생각하고있었지만 그리 따로 공부를

많이 한 적은 없었다.

중학생 시절이 그럭저럭 흘러가 고등학교를 결정할때가 되었다.

언니는 인문계 사립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난 실업계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어떤 선생님은 왜 인문계에 안 가냐고 하시고

또 어떤 선생님은 그냥 그러니하셨다.

솔직히 세월이 흐르고 형제들 중에 나만 고졸인것이

자존심도 상하고 후회도 생겼다.

부모님께 대학교 안 다닌걸 가지고 말했다가 엄청 꾸지람만 들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마치고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서

엄마께도 드리고 동생들 용돈도 조금씩 주곤 했다.

내 인생의 잘못된 길은 거기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금융기관에 취직한것이어서 점심을 먹고나면

외근을 나가 예금을 입출금해주는 일을 했다.

시장과 가게등에 들러서 하는 일이었다.

거래하는 식당의 짜장면 배달원이 내 아이의 아빠가 되는 일이

생길거라곤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렇게 된것이고 아이는 나의 십자가가 되었다.

직원들끼리 개업한 단란주점에 가서 술을 마셨었다.

그런데 거기서 그를 만났다. 나는 인사를 하고 맥주 한잔을 권하길래 마셨다.

그리고 그는 내게 애인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렇지않게 없다고 대답하고 인사를 하고 직원들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 뒤에 어떤일이 일어날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협박을 당해서 그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가 일하는 식당사장의 여동생이 직장으로 전화를 해왔다.

나때문에 그가 일도 안하고 마음을 못 잡는다고 정말 무섭게 말했다.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나는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친구와 함께 갔는데 친구는 같이 만나지 말라고 했다.

다방에 들어가서 커피 두잔을 시키고선 그는 자기가 짜장면 배달원이라서

싫으냐며 인상을 찌푸린채 말했다.

그때 그 상황은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공포에 휩싸여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오빠가 없으니까 오빠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그 뒤로 그가 데이트신청을 했다.

나는 약속장소에 미리 도착해 기다렸는데

그는 꽤재재한 옷차림으로 늦게서야 나타났다.

나는 너무 창피했다. 무슨 데이트하러 온 사람이 매너가 이모양인가싶었다.

그냥저냥 그사람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서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가 그가 일하는

식당에 있는 방에서 비디오를 보자고 해서 같이 보고 헤어졌다.

그뒤로 직장친구가 그와 친한 남자를 맘에 들어하고 만나고 싶어해서

넷이서 같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날은 내생애 최악의 날이었다.

직장에서 월급을 감봉한 날이었다.

그날도 넷이서 같이 만나 단란주점엘 갔다.

나는 맥주한잔 마신것 밖에 모르겠다.

나는 몸을 가눌수가 없었다.

그에게 이끌려 산에 올라갔고 그는 내 몸을 마구 더듬고 키스를 했다.

나는 어떤 저항할 힘도 없었다.

그 다음날 같이 어울리는 직장친구가 내가 하는 짓을 다 봤다고 하며

자기남자친구가 나를 그와 여관에 보내자는걸 막아서 집에 데려다주었다고 말했다.

나는 키스를 한후에 이젠 내가 그와 결혼을 해야되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날 우리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가 일하는 식당방에서 이상한 일본만화를 틀어놓고 보여주었다.

그리고 약혼을 하자며 반지를 내놓았다.

안 받아주면 버릴거라며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나는 결국 그 반지를 받았고

나는 그의 여자가 되었다.

나의 앞날이 그리 불행해지리라곤 생각지않았었다.